CULTURE

미술을 마주하는 방법

2020.09.04GQ

전시장 근처 맛집에 눈독 들이거나, 온라인 뮤지엄에서 스크롤을 오르내리거나, 서문의 마침표를 놓치지 않거나. 미술과 마주하는 방법은 모두에게 다르다.

전시 <카미유 앙로: 토요일, 화요일>.

도토리로 미니홈피 꾸미던 시절을 지나 웹에서 전시(pxtnd.kr, )(③)가 열리는 일을 기념하며 방문한 파주 심학산 할머니묵집의 묵전.

권경환, <오퍼튜니티>.

통의동 보안여관 전시 <식물계>.

통의동 보안여관 전시 <식물계> 근처 티칵테일 바 오무사의 동백뮬.

최하늘 개인전 <샴>이 열린 경리단길 P21 근처 태국식당 쌉.

최하늘 개인전 <샴>.

전시 근처 맛집 @oottoogi

인스타그램에 전시와 근처 맛집을 소개하고 있다. 어떻게 시작한 계정인가? 첫 직장이 미술 잡지사였다. 취재 다닐 때 선배들이 “거기에 가면 이것을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맛있는 음식점을 소개해주던 추억이 있다. 그게 참 즐거운 기억이어서 이후에도 자연스레 전시와 근처 맛집을 엮게 되었다.

소개하는 전시의 기준은 무엇인가? 전시 규모, 장르, 미술관의 유명도와 상관없이 폭넓게 올리려고 노력한다. 전시 보는 일이 취미이기도 하지만 미술 관련 직업이라 리서치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취향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전시를 보려고 한다. 본 김에 좋았던 전시를 계정에 소개한다.

그렇다면 맛집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내가 먹어서 맛있는 곳을 소개한다. 별다른 기준은 없다. 전시 운영자와 참여 작가를 아는 경우에는 일하면서 자주 가는 곳을 여쭤보고 찾아가보기도 하고, 사전 정보가 없을 때는 지도 앱에서 가게 이름을 보고 로드뷰로 간판을 본 뒤 찾아가기도 한다.

9월이 오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전시가 있나? 아트선재센터에서 9월 13일까지 열리는 세 전시 <카미유 앙로: 토요일, 화요일>, <이미래: 캐리어즈>, <돈선필: 포트레이트 피스트>를 고대 중이다. 카미유 앙로는 4년 전 광주비엔날레에서 인상 깊게 보았고, 이미래와 돈선필은 평소에도 좋아하는 작가라 세 작가의 작업을 한 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한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주최하는 <오민: 초청자, 참석자, 부재자>와 9월 5일에 개막하는 부산비엔날레도 기대하고 있다. 특히 부산비엔날레는 올해 팬데믹 여파로 많은 행사가 취소된 와중에 열리는 유일한 비엔날레다. 그래서 더 기대되고 응원하고 싶다.

그 근처의 맛집도 묻지 않을 수 없다. 소격동 아트선재센터 근처에서는 조선김밥에서 간단히 먹거나 스시키즈나에서 거하게 먹을 생각이다. 극과 극으로 말이다. 논현동 플랫폼엘 근처에서는 진미평양냉면, 가람국시, 학동호프 중에서 날씨에 따라 고를 예정이다. 그리고 부산비엔날레에 가서는 이왕 부산까지 갔으니 전시장 근처에서만 찾기보다 부산 구석구석에서 돼지국밥, 밀면, 갯장어, 생선회, 해산물 등 이것저것 맛볼 예정이다.

전시 근처 맛집 정보는 미술관, 전시 관람과 심적 거리가 먼 이들에게도 호기심을 돋우는 방책 같다. “근처에 이런 맛집이 있다”라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하기도 하고 지인들을 전시장으로 유혹할 때도 있지만, 대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같이 즐기자고 권하지는 않는다. 나는 70퍼센트 이상의 전시를 혼자 보고 50퍼센트 이상의 밥을 혼자 먹는다. 다만 전시를 보러 가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시장을 찾는 계기를 사람들에게 하나쯤 더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활자.

김보희 작가 초대전 의 리플릿.

<텍스트, 콘텍스트가 되다>, 전주연 작가가 글자로 만든 배드민턴 필드.

<바바라 크루거: Forever>의 티켓과 한국 전시를 위한 한글 작업.

<바바라 크루거: Forever>의 티켓과 한국 전시를 위한 한글 작업.

양정욱 작가 작품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 서문.

송지민 작가의 손글씨.

전시 서문의 예술 @artwriting.kr

인스타그램의 첫 게시물 날짜가 2020년 7월 10일이다. 이제 막 시작한 계정이다. 지금까지 찍어둔 아트 서문을 아카이브할 겸 시작했다. SNS에 보면 전시회에 다녀온 인증샷이나 추천 게시글이 정말 많다. 현재 #전시회라는 해시태그에 177만 개의 게시물이 있다. 잠재적 관람객이 SNS를 통해 작품 이미지에 먼저 노출되는 거다. 그런데 실제 전시장에 가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전시를 소개하는 글들이다. 그 글은 벽에 작은 글씨로 쓰인 소개문일 수도 있고 리플릿에 적힌 기획 의도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지나치는 순간을 조명하고 싶었다.

전시 서문을 즐겨 읽어보는 입장에서 “관람자의 미학적 실천은 읽기에서 발을 뗀다”라는 프로필의 문구가 와 닿았다. 내가 글을 쓰는 처지라서 벽 위의 글자들에 더 공감한 것일 수도 있다. 나는 기획자이고 작가와 지역 구성원과의 협업을 시도하는 성격의 프로젝트를 오랜 시간 진행해왔다.(경기도 안양에서 2014년부터 아카이브 플랫폼 ‘주밍안양 Zooming Anyang’을 공동 운영 중이고 독립 기획자로서 로컬 커뮤니티 아트 프로젝트를 실천 중이다.) 전시는 관람자라는 외부인이 처음 보는 결과물이지만 작업을 진행하는 작가나 프로젝트 구성원에게는 기나긴 소통과 창작 과정의 마지막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 사이에서 기획자는 비전문가인 대중과 전시에 얽힌 행정집단 모두에게 이해하고 만족할 만한 텍스트 자료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기획자는 작업이 곡해되지 않도록 정교하고 섬세한 언어로 작업을 전달하는 대리인이 된다. 이렇게 완성된 서문을 읽는다는 것은 관람객이 작가와 그의 작업을 이해해보려는 최초의 시도라고 생각한다.

전시 서문 읽기의 측면에서 인상 깊었던 전시는 무엇인가? 최근 재개관한 의정부미술도서관에서 10월 11일까지 열리는 <텍스트, 콘텍스트가 되다> 전시다. 텍스트를 예술 작업의 소재와 주제로 적극적으로 끌어왔다. 전시 서문에 힘을 준 전시라기보다는, 작품 안에 활용된 텍스트를 통해 텍스트의 무한한 가능성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마치 들풀이 선 모습처럼 글자가 표면 위로 일어나 있는, 전주연 작가의 작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전시 서문은 전시의 완성도와 비례할까?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운 좋게 두 가지 모두가 훌륭하다고 느껴지는 전시를 보면 감상보다는 질투가 앞서기도 한다. 전시 서문이 잘 읽힌다 해도 작업과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다면 실패한 전시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작업 그 자체만으로 온몸으로 이해되는 전시가 있다. 그때 곁들인 전시 서문이 감상의 마무리를 지어주기도 한다. 내게 그 좋은 예는 양정욱 작가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다.

9월이 오기를 기다리게 만드는 전시가 있나?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0월 4일까지 열리는 전시 <낯선 곳에 선>을 기대하고 있다. 부산 기반의 젊은 작가를 지원하는 기획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의 일환인데, 부산과 서울의 작가와 비평가를 연결해주어 서로의 작업을 바라보도록 진행한다는 점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로서 인상적이었다.

그 전시의 서문 중 밑줄 치고 싶을 만큼 좋았던 한 문장이 있다면. 전시 기획 의도 중 이런 문장이 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일부로 항상 함께 존재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누락된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대부분이 잊고 살아가는 어느 한 시공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하며,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사회의 삶의 모습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제기와 유리 주전자. 소장·출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제기와 유리 주전자. 소장·출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세로 11센티미터인 작은 각병.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출처 e뮤지엄.

옆으로 기운 집 모양 토기. 소장 국립김해박물관, 출처 e뮤지엄

청화수복 무늬 각병. 소장·출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동물 모양 녹유 연적. 소장·출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오리 토기. 소장·출처 모두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서 김서방 찾기 @seoulatseoul

본명이 김서울인가? SNS 활동을 시작하며 익명성을 원해 만든 필명이다. 속담 중 “서울 가서 김서방 찾는다”에서 따왔다. 서울 사는 김서방이 가지는 익명성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흔하디흔한 김서방과 서울을 결합해 김서울이라 이름 지었다.

박물관, 유물 이야기를 포스팅한다. 특별히 박물관과 유물을 좋아하는 연유는 무엇인가? 업무 시간 대부분 전국의 유물과 박물관을 찾아다닌다. 익숙하지 않은 유물을 개인적인 감상과 이야기로 풀어 소개하는 글쓰기가 업이다. 최근에는 <뮤지엄 서울>이란 책을 작업 중이다. 시간의 관점에서 유물과 전통의 개념,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박물관과 유물은 들여다보면 볼수록 궁금해진다.

특히 온라인 박물관을 적극 활용해서 유물을 감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부터 e뮤지엄(emuseum.go.kr)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게 됐다. e뮤지엄은 시민이 이미지 자료 등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공공 서비스, 공공 사이트다. 원래는 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에서 유리건판 자료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감광유제를 유리판에 발라 건조시킨 일종의 필름. 20세기 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각 자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유리건판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소장품으로 관리하며 디지털 이미지화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인터넷으로 유물을 원하는 만큼 줌 인하여 구석구석 탐색할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온라인 세계는 매우 방대하고 무궁해 오히려 탐색이 쉽지 않을 것도 같은데. 거의 매일 유물을 찾다 보니 일상적인 소재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다. 한여름에는 부채나 우산 혹은 제주도를 검색 테마로 잡고 유물을 찾아보고, 가을과 겨울에는 불에서 나온 물건이나 토기, 도자기, 방한 용품을 찾아본다.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좋아하는 소재나 계절, 느낌은 저마다 있을 테니 그것을 키워드로 찾아보는 것도 괜찮은 탐색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국립중앙박물관 웹사이트에서 ‘고양이’만 검색해도 다양한 유물이 나온다. 유물의 학술적인 정보나 역사적 맥락보다 이미지 자체가 주는 느낌을 중심으로 가볍게 검색해보면 예상치 못한 자기 취향의 유물이나 의외의 웃긴 유물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기분이 좋지 않을 때 e뮤지엄에서 무엇을 키워드로 유물을 찾아보면 좋을까? 토우. 재미있는 얼굴을 한 토우, 귀여운 동물 모습의 토우, 한편으로는 슬픈 얼굴을 한 토우도 있다.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조그만 토우를 만들었을 과거의 누군가를 상상하면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 만약 호사스러운 느낌을 만끽해야 기분이 나아지는 이라면 삼성 리움미술관 사이트를 추천한다.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많다. 세계 박물관, 미술관에 관심 있다면 구글 아트 앤 컬처(artsandculture.google.com), 양질의 사진을 보고 싶다면 미국 클리브랜드 뮤지엄(clevelandart.org)을 추천한다. 한국 유물을 정말 잘 찍어놓았다. ‘이게 이렇게 예뻤나’ 싶은 유물이 많다.

온라인으로 둘러볼 수 있길 고대하는 박물관은 어디인가? 2018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브라질 국립박물관. 화재 전 박물관 내부와 소장 유물을 온라인에서라도 잘 구현해낸 사이트가 생기면 좋겠다. 구글 아트 앤 컬처로 간략히 볼 수는 있는데 아쉬운 감이 있다. 물리적으로 손실된 박물관과 유물이 데이터만으로 얼마나 복원되고 정보를 갖출 수 있을지, 브라질 국립박물관의 온라인 개관을 바라고 기다린다.

    피쳐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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