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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게 하는 요즘 드라마들

2020.10.13박희아

세상이 변했다는 게 느껴지는 요즘 드라마의 ‘이 대사’를 콕 집어봤다.

# 새로운 지식 전달: “나도 그 생각 해봤는데…. 자궁경부암 예방주사 맞아.”

tvN 드라마 <청춘기록>에서는 종종 생각지도 못한 대사가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 서프라이즈는 정작 주인공인 안시하(박소담)와 사혜준(박보검)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에서보다, 서브 커플의 이야기에서 벌어졌다. 가장 화제가 됐던 장면은 원해나(조유정)가 섹스를 하자고 조르는 연인인 김진우(권수현)에게 “나도 그 생각 해봤는데”라며 말끝을 흐리다가 자궁경부암 예방주사를 맞고 오라고 말하는 신이다. ‘내성적이고 소심하다. 자신을 웃게 해주는 남자를 좋아한다’는 인물 소개와 별개로, “나한테는 자궁이 없다”는 남자에게 원해나는 망설임 없이 “맞으면 나한테 효과 있어. 오빠가 빨리 스탬프 세개 찍어왔으면 좋겠다”고 답해 시원한 웃음을 안긴다. 이어지는 장면은 세 명의 남자 주인공이 산부인과에서 주사를 맞는 장면. 실제로 남성에게 자궁경부암 주사가 필요하다는 많은 전문가들의 이야기들을 이렇게 재치 있고 직설적으로 풀어놓은 장면은 칭찬할 만하다.

# 성별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소개: ‘“미모만으로도 신은 나한테 충분히 불공평했다”라고 말하는 자뻑 왕.’

다음은 JTBC <경우의 수>의 주인공 이수(옹성우)를 설명하는 첫 줄이다. 이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차갑고 냉정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 남자 주인공이면서도, 특출한 능력을 지닌 자신의 모습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내보이는 타입의 청년이다. 종종 “재수없다”는 말을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청년 말이다. 과거 여러 드라마에서는 이런 청년을 두고 “잘생기고 능력이 있다”는 표현을 주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이 단순한 표현들이 클리셰가 되는 순간이 다가왔다. 남성의 외모를 이야기할 때 ‘조각 같이 잘생겼다’는 말만으로 쉽게 설레지 않는 여성들이 늘어났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작품은 남성의 외모를 얘기하며 공통적으로 ‘미모’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진상혁(표지훈)을 설명할 때는 ‘돈도, 학벌도, 미모도 없지만 성실도만큼은 최고’라고 말한다. 이런 흐름은 최근 몇 년 사이 SNS에서 ‘잘생긴 여자 짤 모음’ 같은 계정이 생겨난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성차별적 발언에 대한 반응: “왈왈! 왈왈왈왈!”

JTBC <경우의 수>가 던지는 또 하나의 홈런은 무역 관련 중소기업 대리인 김영희(안은진)의 발구르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희라는 평범한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29살 아니라 29년생 같은 현실주의자. 염세적이고 회의적이다. 조곤조곤한 말투로 팩트 폭행’을 하는 사람이면서, ‘그녀는, 강하다’라는 한 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인물. 그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남성 상사가 후배 여성의 간식을 보고 “이런 것 계속 먹으면 당이 아니라 급 떨어져. 관리를 해야지 사랑을 받지”라고 말하는 순간을 바로 옆에서 목도한다. 또한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면서 책상에 붙여놓은 연예인 사진을 보며 참견하는 그에게 “좋은 거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 과장님과 얘넨 살짝 다르다. 얘들은 가만히 있어도 좋고 과장님은 가만히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꾸한다. 이 장면의 연출에는 실제로 “왈왈”거리는 ‘개소리’가 끼어든다. 누구의 말에? 바로 남성 상사의 말에. 연출은 남성 상사의 말을 개소리로 취급하는 김영희의 모습을 통해 성차별적인 발언부터 눈치 없이 끼어드는 상사의 말들을 더 이상 웃으며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 대사를 치는 사람이 바뀌었다: “역시 사람이 아니었어.”

tvN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드라마 <구미호뎐>은 남성이 구미호라고 상상한 데에서부터 출발한 이야기다. 그동안 여러 화보를 통해 희고 아름다운 남성의 미모를 강조해왔던 이동욱이 구미호 이연을 맡았고, 이 캐스팅에 환호한 사람들은 여럿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단순히 이동욱이 아름다운 남성이라는 이유로 환영한 것만은 아니다.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는 늘 남성들을 홀려 그들의 간을 빼먹고 인간들에게 붙잡혀 마녀사냥을 당하거나 간을 빼먹고 싶지 않은 남성을 만나(다른 말로는 ‘순정을 바치고 싶은’) 대신 동물의 간을 먹고 사는 불행한 여성으로 묘사돼왔다. 드라마 <구미호뎐>의 구미호가 남성이라는 점은 단순히 판타지 설정에서 오는 재미만으로 얘기할 수 없다. 소위 ‘꽃뱀’, ‘구미호’ 같이 여성들을 비하하는 말이 익숙했던 과거와 과거의 잔재에 갇힌 대중의 사고를 전복하는 수단이 된다. “역시 사람이 아니었어”라며 이연의 목에 주사 바늘을 꽂아 넣는, 즉 구미호를 처단하려는 이가 여성이 되었다는 점이 달라진 현실을 반영하는 증거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변화를 담은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당분간은!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