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박해수 "사춘기가 갓 지난 시기예요"

2020.10.21GQ

박해수, 그 진솔함만이.

네이비 재킷, 실크 이너 재킷, 모두 던힐. 데님 팬츠, 캘빈클라인 진. 네크리스, 마르지엘라.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레더 퍼 코트, 그레이 레더 팬츠, 모두 코치. 티셔츠, 올세인츠. 스트랩 디테일 부츠, 디올 맨.

블랙 벨벳 코트, 벨벳 팬츠, 모두 조르지오 아르마니. 터틀넥, 에르메네질도 제냐. 첼시 부츠, 코스.

레더 코트, XYZ. 레더 집업 재킷, 세퍼 at matchesfashion.com. 팬츠, 프라다.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랙 재킷, 준지. 터틀넥, 휴고 보스. 팬츠, 토즈. 부츠, 코스.

모험. 주연으로 처음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2017)에 발탁됐을 때도, 연극 <39계단>(2009) 무대에 올랐을 때도, 여러 분이 박해수라는 배우를 설명할 때 자주 한 말이 ‘모험이었다’이더라고요. 아무래도, 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당시에는 인지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어서 저를 선택했을 때의 결과를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었죠.

그럼에도 택한 건 ‘이 배우와 함께해봐도 되겠다’ 신뢰하게 하는 박해수 씨만의 무기가 있어서겠죠. 꼭 실력적인 면보다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작용하는 면모들, 이 친구 열심히 하겠구나, 거짓으로 하진 않겠구나, 그런 면모를 봐주시는 분들이 저를 택해주셨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신원호 PD님이나 이우정, 정보훈 작가님은 과정을 굉장히 중시하는 분들이었어요.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를 즐거운 모험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신원호 PD는 남다른 오디션 스타일로 유명하잖아요. 감독님이 당시 제가 출연하던 <남자 충동>(2017)이라는 연극을 보신 걸로 알아요.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하셨더라고요. 그때 <슬기로운 감빵생활> 대본이 전혀 노출이 안 돼 있었거든요. 무슨 배역인지조차도 몰랐어요. 만나서 그냥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라고요. 아주 사소한 질문들, 집에서 뭐 하냐, 어제 뭐 했느냐, 그런 것들.

어제 뭐 했어요? 어제 (넷플릭스 방영 예정 드라마) <오징어 게임> 촬영했습니다.

집에서 뭐 해요? 집에서…, 집에서는 계절마다 가구 배치 바꾸기를 좋아합니다. 이번 가을에는 제가 촬영하는 동안 아내가 바꾸어놨더라고요.

집안일 또 뭐 잘해요? 자취를 오래 해서 웬만한 집안일은 다 자신 있게 하는데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요리를 재밌어하죠. 그런데 사실 어머니 김치 덕분에 김치찌개가 맛있고, 어머니 된장 덕분에 된장찌개가 맛있죠, 뭐. 제 실력보다는 어머니가 주신 재료와 아리수가 맛있어서.

이런 질문들 말이죠? 허허허. 네.

그렇게 오디션을 통과해 맡은 김제혁이라는 역할이 당시 연기 생활 10년 만의 첫 드라마 주연이었네요. 감사한 일이죠. 감독님, 작가님과 총 한 달 반 정도 만났나, 만날 때마다 편하게 해주신 덕분에 그냥 편히 이야기 나눈 건데. 제가 주인공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대본 보고서야 알았어요.

그런데 정말 극중 김제혁 선수 모습과 매우 겹쳐 보여요. 말투도 굉장히 닮았네요. 제게 김제혁이 분명히 있어요. 약간 어리바리하기도 하고. 비슷한 면모를 찾아주신 것 같아 굉장히 감사하죠. 특히 말투는 감독님과 작가님이 절 보시면서 대본을 조금씩 조금씩 더 수정해 주신 것도 같아요.

지난해에는 영화 <양자물리학>으로 청룡영화제 신인남우상을 받았어요. 기사마다 꼭 ‘최고령 신인’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더라고요. 너무 좋아요. 최고령 신인상. 뜻깊잖아요.

따지자면 데뷔는 2007년에 했잖아요. 연극 <최강 코미디 미스터로비>로. 그러니까 더 뜻깊죠. 용기를 주는 것도 같고.

꾸준히 하기에 마냥 쉬운 일은 아니었을 듯한데요. 결국 재미죠. 하면서 계속 조금씩 재미를 찾았던 것 같아요. 제가 낯은 많이 가리는데 연습하고, 사람들 만나고, 이런 걸 되게 좋아해요. 자연스레 동료 배우들과 많이 친해지다 보니까 끊지 않고 계속 일을 했던 것 같고, 그걸 보면 결국 사람이 제게 원동력인 것 같아요.

사람이 더 힘들게 할 때도 있잖아요. 그렇죠. 사람을 좋아하다 보면 상처도 많이 받죠. 아주 사랑하는 사람, 아주 가까운 가족도 상처를 줄 때가 있잖아요. 그래도 제게 힘을 주는 점이 더 많아서 그런 상처를 두려워하는 편은 아닙니다.

박해수 씨가 다른 사람을 볼 때 눈여겨보는 지점은 뭐예요? 그의 성품을 알아차리는 자신만의 질문이 있다면요? 사실 누군가를 어떤 순간으로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서. 시간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같이 오래 보내온 시간이 서로에 대해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제가 무언가로 단번에 누군가를 알아보는 재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 박해수 씨와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요? 소중한 동료들, 이 일을 하면서 희로애락을 같이 겪는 친구가 많은데 다들 별로 그렇게 때묻지 않은, 좀 순수한 친구들이죠. 바보스럽게 한 길만을 욕심내고 순수하게 접근하는. 어떤 결과만 추구하기보다는 과정 속에서, 현장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 자체가 굉장히 예의 바르고 정서 상태가 건강한 그런 친구들 같아요.

그런 점이 박해수 씨에게도 있어서 친구가 됐겠죠? 그러면 감사한데 그러고 싶은 사람이죠, 저는. 저도 과정을 더 중시하는 면이 있는 건 같아요. 그래서 그런 사람과 친해지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요, 귓불이 굉장히 크네요. 어릴 때 어르신들한테 귓불 칭찬 많이 들었겠어요. 저희 집에서는 제가 제일 작아요. 집안 어르신들은 귓불이 어깨에 닿습니다. 저보고 귀 작다고 놀리셨어요. 허허. 남들보다는 귓불이 있는 편이죠. 귀가 커서 참 인복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작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어요. 영화 <야차>는 설경구 배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은 이정재 배우와 준비 중이죠. 저는 꼭 설경구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설경구 선배님이 현장에서 보여주는 에너지와 열정과 후배 배우들, 동료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많이 느꼈어요. 이게 진짜 영화 바닥이구나 싶었어요.

왜요? 만나면 거침없이 안아주세요. 만나자마자 “형이라고 해”라고 하셔서 형님이라고 부르는데, 정말 깨끗하게, 벽 없이 다가오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도 저런 사람이 돼야겠다 싶어요. 이정재 선배님도 남자가 봐도 너무 멋있죠.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보고 현장에 갔는데 완전히 다른, ‘다만악’과는 또 갭이 엄청난 연기를 하시는 걸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변화무쌍할까, 너무 멋있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죠.

저도 그 영화를 재밌게 봤는데 이정재 배우가 자신이 맡은 레이의 목 타투라든지, 스타일링에 많은 아이디어를 냈다고 하더라고요. 하, 정말. 저도 궁금해서 “선배님, 그 (극 중 항상 들고 다니는) 커피는 어떻게, 대본에 있었어요?”라고 했더니 자신이 얘기해서 수용된 설정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장면이 너무 좋았거든요. 가장 일상적인 소품 하나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비주얼적으로도 설명되는 걸 보고 와….

궁금함을 못 참았군요. 조심스레 물어봤죠. 아주 보편적이면서도 단순한 걸로도 효과를 낸다는 게, 그걸 찾아냈다는 게 또 참 멋있죠.

10월 22일부터 무대에 오를 연극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을 연습할 때 발레 동작으로 몸을 푼다고요. 가장 곤혹스러운 발레 동작을 꼽는다면요? 이렇게 (일어나 보여주며) 양 발을 평행하게 교차해서 한쪽 발뒤꿈치에 다른 발 엄지발가락이 닿도록 겹치는 동작이 있어요. 5번 동작. 이게 잘 안 돼요.

저도 잘 안 되네요. 더, 더. 더 붙이셔야 해요.

연습한 지 얼마나 된 거예요? 7월부터요. 극 중에 발레하는 동작이 있는 건 아닌데 김주원 선생님이 기본적으로 몸에 코어가 잡혀야 다치지 않는다고 가볍게 발레를 가르쳐주시기 시작했어요.

제일 자신 있는 동작은요? 사실은 모든 동작을 그렇게 잘하지는 못하는데, 표정? 발레는 하체로 에너지를 굉장히 많이 쓰잖아요. 조이고 힘주고 밀고 당기고 그러는데 얼굴은 아주 아름다운 표정을 지어야 해요. 저와 같이 출연하는 윤나무 배우와 제가 표정만은 거의 수석 무용수처럼 짓고 있죠.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인데도 ‘최고령 신인’다운 초심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요. 저는 지금이 시작점이죠. 쫙 습득해서 조금씩 발현하는 시기. 점점 감성, 감정, 시각이 열리는 것 같아요. 더 많이 경험해보고 싶고, 하루가 참 귀하구나, 오늘 최선을 다해야겠다, 남 눈치 덜 봐야겠다, 비교하지 말아야지 싶고. 제가 지금 마흔인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제게는 굉장히 재밌는, 왕성한 에너지가 있는 시기예요. 뭐라고 해야 할까, 연기자로서는 사춘기가 갓 지난 시기?

    피쳐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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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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