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며 변화해왔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삶. 최근 <이태원 클라쓰>와 <청춘기록>이 그려낸 청춘의 얼굴이다.
“대학에는 사랑이 꽃피지 않아!” 사촌 언니는 혀끝을 차며 말했다. 1990년대 초반이었다. TV에선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1991)가 방영되고 있었다. 언니가 운동권이라는 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알았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에 눈물을 쏟았을 언니에게 <사랑이 꽃피는 나무>에서 흘러나오는 감성적 눈물은 하이퍼 판타지였을까. 언니가 느낀 괴리감과 달리 많은 사람이 <사랑이 꽃피는 나무>를 보며 캠퍼스에 대한 낭만을 꿈꿨다. 나 역시 대학을 TV로 처음 배웠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가 떠난 후 찾아온 <내일은 사랑>(1992~1994)과 <우리들의 천국>(1990~1994)을 통해서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신인류 X세대의 등판과 맞물려 두 드라마는 용호상박의 인기를 누렸다. 낭만적이고 감각적이었던 이들 드라마는 나 같은 10대들에게 대학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게 했다. “공부해야 좋은 대학 간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보다 더 강력한 동기 부여 영상이기도 했다. 대학에 가면 이병헌이나 장동건 같은 선배를 만나리라는 환상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두 드라마를 모두 챙겨 봤다. 특히 <내일은 사랑>에서 박소현이 이병헌에게 “형”이라고 부르는 게 어찌나 느낌 있어 보였던지. 시간이 흘러 대학에 입학했을 때 썸 타던 동아리 선배를 “형”이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청춘 드라마는 원빈 주연의 <광끼>, 과학도들을 그린 <카이스트>(1999)로 이어져 명맥을 유지했다. <남자 셋 여자 셋>(1996~1999)을 기점으로 시트콤 장르와 결합해 생명 연장의 꿈을 이어가기도 했다. 방송이 끝나면 시청자들은 PC 통신으로 달려가 의견을 나눴다. 놀라운 인기였다. 방영 도중 IMF가 터졌다. 송승헌이 IMF 때문에 신입사원 채용이 취소된 사실을 여자친구 이의정에게 차마 알리지 못하고 매일 어디론가 출근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현실을 반영하기도 했다. IMF로 달라진 대학가 풍경을 더 깊게 담아내지 못한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시트콤이라는 장르 안에서 시청자들은 현실의 고단함을 잊고 싶어 했다. <남자 셋 여자 셋>의 인기를 물려받은 건 <논스톱>(2000~2005)이다. 시즌5까지 이어지며 사랑도 많이 받았고, 스타도 많이 배출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청춘 드라마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조짐이 없었던 건 아니다. <논스톱4>에서 고시생을 연기한 앤디는 이렇게 외쳤다.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 실업이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유행어로 등극한 이 대사는 청춘물의 위기를 예고하는 징후였다. 청년 실업 40만 명이 육박하자 청춘들은 더 이상 시트콤을 보며 마냥 낄낄댈 수 없었다. 너도 나도 도서관으로 달려가 토익책을 펼쳤다. 천정부지로 뛴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알바 전선에 뛰어들었다. 판타지가 사라진 공간에서 판타지를 계속 이야기하는 건 힘이 없었다. 대학은 드라마의 주변부로 밀려났다.
주춤했던 청춘 이야기에 화약고 역할을 한 건 출판계에서 불어온 청춘 담론이었다. 2007년 세상에 나온 책 <88만원 세대>는 막연하게 떠돌던 당시 청춘들의 정체성에 어떤 실체를 부여함으로써, 청년 세대 논의의 기폭제가 됐다. 2010년에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시대가 열렸다. 트렌드에 발 빠르게 반응하는 미디어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낭만의 상징이었던 청춘은 ‘88만원 세대’라는 이름으로 TV에 연착륙했다. 대학 캠퍼스가 있던 자리엔 옥탑방, 고시원, 빈지하 방이 들어섰다. 학자금 대출 이자에 시달리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해나가는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2011)의 백진희는 88만원 세대의 상징적 인물이었다. 동시에 현실의 축소판이라 여겨지는 단막극 역시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의 각축장이 됐다. <달팽이 고시원>이 등장하고, <습지생태보고서>가 보고되고,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는 등 제목에서부터 청춘의 현실을 안구에 습기 차게 드러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류작이 쏟아지고,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냐”는 비판이 흘러나오는 사이 소설가 장강명이 외친 말이 2015년 서점가를 강타했다. <한국이 싫어서>. 그해 SNS에는 ‘헬조선’, ‘노오력’, ‘수저론’ 같은 키워드가 유행을 선도했다. 청년들은 구조적 문제를 도외시하고 “노오오오력하면 된다”는 멘토들의 빤한 메시지에 반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성세대들이 성공이라고 규정한 것이 진정한 성공인가에 대해 청년들 스스로 진지한 물음을 던지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런 분위기 안에서 호평받은 건 <쌈, 마이 웨이>(2017)다. 알고 보니 재벌 2세나 금수저였다 식의 반전 없이 청춘의 맨얼굴을 현실감 있게 파고들며 공감을 샀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청춘들은 자학하지 않았다. 열패감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에 연연하지 않는 삶. 마지막 회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대화는 이를 밀도 있게 압축했다. “남들이 뭐래도 쪼대로 사는 게 장땡이고”(박서준), “사고 쳐야 노다지도 터지지”(송하윤), “남들 뭐 먹고사는지 안 궁금하고”(안재홍), “내가 서 있는 여기가 메이저 아니겠냐?”(김지원)
올해 청춘 드라마는 청년 세대의 가치관 변화를 더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다. JTBC <이태원 클라쓰>와 tvN <청춘기록>을 통해서다. 포차로 시작해 주식회사 CEO가 된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박서준)는 자신의 권위에 무릎 꿇을 것을 강요하는 경쟁사 장 회장 앞에서 마지막까지 소신을 접지 않고, 반대로 그를 무릎 꿇게 한다.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시청자를 뜨겁게 한 박새로이의 명대사다. 스스로를 ‘흙수저’라 칭하는 <청춘기록>의 배우 지망생 사혜준(박보검)은 시궁창 같은 현실에서도 스폰 제안과 같은 유혹에 영혼을 팔지 않는다. “라떼는 말이야~”라는 윗세대의 충고에 “노”라고 말할 줄도 안다. 기성세대에 대항해 자기 권리를 찾고,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는 점에서 박새로이와 사혜준은 인상적인 청춘들이다.
<이태원 클라쓰>에서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학벌에 대한 신화 뒤집기다. 전과자가 되는 바람에 경찰의 꿈을 버릴 수밖에 없었던 박새로이는 대학 대신 창업을 선택한다. 조이서(김다미)는 명문대 입학을 포기하고 새로이 가게에 매니저로 취직한다. 스펙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중졸 출신 전과자와 고졸 학력 매니저의 창업 성공기는 그 자체로 신화이기도 했지만, ‘일단 대학은 나오고 보자’는 편견 아닌 편견에 태클을 걸었다.
물론 드라마는 판타지를 동반한다. 현실의 청춘들이 모두 박새로이처럼 기똥찬 사업 수단이 있는 게 아니다. 톱스타로 거듭난 사혜준처럼 얼굴이 개연성인 것도 아닐 테다. 신문에는 오늘도 2030이라 쓰고, 영끌·빚투·마통이라 수식하는 기사가 넘쳐난다. 청년들에게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정치권에서는 2030 키워드를 여전히 진보/보수 프레임 안에서 해석해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데 활용한다. 그러나 모두가 박새로이나 사혜준이 아니듯, 모든 청춘이 영끌에 뛰어든 것도, 기성세대가 규정한 세대론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 해묵은 조언이나 규정은 삼가길. 테스 형에게 물어봐도 평생 모르는 게 인생이거늘. 시대의 에너지인 청춘들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건 건강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들을 객체가 아닌 주체로 바라보는 청춘 드라마가 더 필요하다.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
- 피쳐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