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적은 작은 흔적이라고 말했지만, 노래로 남긴 그의 발자취는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7년 만의 정규 앨범입니다. 오랜만의 기별처럼 느껴져요. 2013년 11월에 5집 <고독의 의미>를 발표한 뒤 드라마 OST 2곡이 있었고 2017년에 <흔적> Part 1, 2019년에 <흔적> Part 2를 냈어요. <흔적> Part 1이 새 앨범의 시작점이에요. 곡을 추가해서 정규 앨범을 완성하려고 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시간이 좀 지체됐어요. 앨범은 원래 봄에 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연말 공연에 맞춰 일정을 미뤘어요. 하지만 공연은 여전히 어려워요. 그러는 와중에 새로운 곡들을 더 작업해 좋게 말하면 앨범이 풍부해졌어요. 처음 생각했던 그림과 많이 달라졌어요.
4집, 5집 때도 마지막 앨범이라는 각오로 작업했다고 말한 적이 있죠. 이번에도 그랬어요. 앨범 중심의 음악 시장이 아니다 보니 정규 앨범을 또 언제 낼 수 있을지 몰라요. 앨범을 낼 것인지 고민을 했지만 기승전결의 긴 호흡을 들려 주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싱글로 내면 빠지는 곡들이 있을 테고, 고민 끝에 정규 앨범 형태를 택했어요.
노래를 설명하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물어볼게요. 무엇에 대해 말하고 싶은 앨범인가요? <흔적> Part 1, Part 2와 연결시켜 그동안 제가 살아온 흔적, 남기고자 하는 흔적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흔적’이란 제목의 곡도 수록했고요. “어차피 우리 이야기가 별다른 흔적을 남기지 않을 거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그게 얼마나 아름다웠고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 가사처럼 세월이 지나면 우리는 사라지겠지만 작은 흔적이라도 남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왜 지금 ‘흔적’이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나요? 데뷔한 지 25년이 됐어요. 어딜 가도 선배 입장이에요. 저는 제 것을 하면서 늘 같은 자리에 있는데 물리적인 시간 때문에 사람들은 제가 많은 커리어를 쌓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면서 저도 자연스럽게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얼마나 더 활발하게 음악을 할 수 있을지 전체를 보게 됐어요. 여기서 25년을 더 한다면, 일흔 살이 넘어가네요.
25년 동안 이적은 성실한 뮤지션이었나요? 적당히 앨범을 냈고 곡도 몇백 개를 쓴 것 같아요. 20대 때는 1년에 한 장씩 앨범을 만들기도 했어요. 책도 내고 방송도 했으니 게으르진 않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부지런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주위를 둘러보면 회사를 차려 제작을 하거나 프로듀싱을 꾸준히 하는 선후배가 많아요. 저는 그런 사람은 못 돼요. 바쁘게 돌아가는 삶에서 만족을 얻거나 쾌감을 얻지 않거든요. 유유자적, 안분지족이랄까, 멜로디와 가사가 나오는 것도, 앨범을 만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발생해요.
그럼 앨범을 내기에 적절한 순간 같은 게 찾아오나요? 눈이 차츰차츰 쌓이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뭉쳐지듯이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런데 그 텀이 길어지고 있어요. 음악이든 가사든 새로운 주제를 찾다 보니까 시간이 걸려요. 처음에는 어떤 곡을 쓰든 새로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1백 곡이 넘어가면 어쩔 수 없이 과거의 작업과 비슷한 느낌이 나와요. 가사도 그렇고요. 저는 커리어 전체를 한 권의 책으로 생각해요. 그래서 동어반복이 싫어요.
실은 오는 길에 새 앨범의 타이틀 곡을 들었어요. 할 이야기가 많은데 공개 전이라 그럴 수 없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나마 얘기를 한다면, 듣는 동안 패닉의 ‘왼손잡이’가 생각났어요. 곡을 먼저 완성하고 가사를 쓰려는데 패닉 때의 정서가 떠올랐어요. ‘왼손잡이’의 25년 후 버전이에요.
‘왼손잡이’에 애정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곡에서 “모두 다 똑같은 손을 들어야 한다고 그런 눈으로 욕하자 마”라고 했어요. 마이너리티의 자기 항변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잘 쓴 가사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강력한 은유인 셈이죠. 멜로디도 되게 좋아해요. 음악을 하면서 이런 노래를 써야지 생각하고 만드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하지만 ‘왼손잡이’ 같은 곡은 마음에 두고 있었어요.
바로 그 ‘왼손잡이’의 2020년 버전은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에 딱 부합하는 곡이란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이적이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태도가 감지되기도 했어요. 다수의 사람이 어떤 한 개인을 겨냥해 집중포화를 퍼붓는 일이 아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정의감이나 분노에 사로잡혀 비난과 조롱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단지 다르다는 이유로 앞뒤 맥락을 무시하고 누군가를 뭉개버리기도 해요. 다수와 다르기 때문에 개인을 말살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 연대를 이뤄 약자를 지켜줘야 한다, 결국 다양성에 관한 노래예요. 딱딱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음악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아요.
화법이 달라졌달까, ‘왼손잡이’를 불렀던 당시의 이적은 불합리한 세상과 제대로 한판 붙을 것 같았다면, 이번엔 어르고 손을 내밀며 위안을 준다는 느낌이 들어요. 20대 초반에는 사회 문제를 두고 기성세대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가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야 임마, 네가 기성세대야”라는 소리를 듣겠죠. “너희가 나빴어”가 아니라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 식의 자기반성을 할 수밖에 없어요. 서른 살이 넘으면서부터 남 탓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됐음을 알게 됐어요. 앨범으로 말하면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가 수록된 패닉 3집부터 남을 비판하기보다 저 자신을 들여다보게 됐어요. 전작인 패닉 2집은 상당히 공격적이었어요.
듣다 보니 패닉에 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데뷔했을 때의 각오 같은 거 기억나요? 음악을 통해 저희 목소리를 내면서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도모하고 싶었어요. 저나 진표나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심은 전혀 없었어요. 우리 음악이 어떤 파장을 일으키면 좋겠다, 이 정도였어요.
그런데 일이 커졌죠. 깜짝 놀랐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이 저희 음악을 들어줬고 ‘왼손잡이’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때부터 인생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어요.
그 시절 가요계에서 패닉은 눈치 보지 않고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음악을 했어요. 대중에게 자신의 음악을 설득해야 하는 시기가 있긴 했나요? 설득이라기보다 ‘저는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제 음악에 공감한다면 같이 갑시다’라는 마음이었어요. 저는 기본적으로 대중적인 음악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쓰는 발라드를 잘 들어보면 이른바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곡의 형식이나 가사와는 거리가 멀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노래를 좋아해주는 분들이 계시고 알음알음 퍼지면서 누군가에게 불리어지고 다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게 저로서는 다행인 거죠. 그 힘으로 아직까지 음악을 하는 거고요. 얼마 전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고 있는데 2집에 수록된 ‘순례자’가 엔딩 곡으로 나왔어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인데 가사와 맞아떨어지는 장면들과 듣다 보니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어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을 때 희망을 꿈꾸며 만든 노래 ‘당연한 것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했어요. 가장 그리운 감각이나 경험은 무엇인가요? 많죠. 많은 것이 있지만 직업적으로는 공연을 못 하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공연하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게 갑자기 사라진 거예요. 무대에서 관객들과 소리 지르고 뛰고, 그리운 장면이 많아요.
<놀면 뭐하니?>에서 밴드 긱스의 멤버들과 오랜만에 선보인 ‘짝사랑’ 무대가 떠올랐어요.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노래를 부르는 내내 얼굴에 “나 진짜 행복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죠. 노래 부르는 행위 자체를 좋아해요. 데뷔했을 때는 노래를 잘하는 보컬이 아니었어요. 라이브 무대가 늘 스트레스였죠. 밴드 긱스에서 보컬을 맡으면서 단련이 됐고, 목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게 넓어지고 깊어졌어요. 그때부터 공연이 잘되기 시작했어요. 재작년 목 상태가 안 좋았을 때를 제외하고는 노래를 부르는 게 늘 즐거웠어요. 술자리에서 기타를 쥐여주면 안 시켜도 대여섯 곡씩 불러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노래는 뭐예요? 어릴 적에는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진짜 좋아했어요. 3집 <나무로 만든 노래>에 수록된 ‘노래’라는 곡이 라디오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던 날의 이야기를 쓴 거예요. “한 순간에 내 인생을 통째로 바꿀 줄이야”라는 가사처럼 충격 같은 노래였죠. 요즘은 잘 찾아 듣지 않아요. 좋아하는 노래가 계속 바뀌거든요. 혁오의 노래도 즐겨 듣고 BTS의 ‘Dynamite’도 좋아해요. 또 오마이걸의 ‘Dolphin’을 들었는데 너무 좋은 거예요. 새롭게 나오는 좋은 노래들은 다 배울 게 있어요.
25년 동안 음악에 영향을 미쳤을 만큼 컸던 삶의 변화가 있을까요? 아내와 아이들의 존재예요. 아내를 떠올리면서 ‘하늘을 달리다’, ‘다행이다’를 만들었고, ‘나침반’은 아이들을 위해 썼어요. 그 외에는 큰 변화라고 할 것이 없어요. 제 직업이 승진이 있거나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호봉이 올라가는 게 아니거든요. 회사 다니는 친구들 중에는 이사급의 중역이 몇 명 있어요. 신입 사원 때와 비교하면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요. 뮤지션은 오래 음악을 하더라도 뮤지션일 뿐이에요. 심지어 어린 친구들과 똑같이 경쟁해야 하죠. 나이가 들었다고 사람들이 음악을 더 들어주거나 하지 않아요. 큰 변화가 없다 보니 이쪽 사람들은 철이 없기도 해요. 특히 결혼을 하지 않은 선후배들은 20대 때와 삶의 방식이 똑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마음이 젊어요.
뮤지션이 나이가 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세상에 많은 음악을 내놓는 거죠. 많은 사람이 제 목소리와 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만큼 사람들이 저마다 떠올리는 제가 다 달라요.
어떻게요? 어떤 사람에게 저는 잘 모르는 옛날 가수일 수 있고, 누군가에겐 20대의 성장을 함께한 노래의 주인공일 수 있어요. 또 누군가는 존경할 만한 선배라고 생각하고, 어떤 이는 너무 오래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기도 하겠죠.
이적이 사랑 노래를 해서 사람들이 놀랐던 시절이 있었다면, 이적이 사랑 얘기를 하지 않으면 이상하다고 여기는 세대도 생겼어요. 패닉 2집이 인생 음악인 사람은 ‘다행이다’를 듣고 왜 그런 말랑말랑한 음악을 하냐고 해요. 반대로 ‘말하는 대로’, ‘걱정말아요 그대’ 때문에 저를 ‘위로남’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어요. 재작년에 콘서트에서 그로테스크한 무대를 선보였더니 코어 팬들은 좋아서 난리가 났는가 하면, 충격을 받았다는 관객도 있었어요.
1집 <Dead End>에 수록된 ‘적(敵)’에서는 생의 변두리를 흐느적거리고, 5집 <고독의 의미>의 ‘이십년이 지난 뒤’에서는 터벅터벅 걷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했어요. 지금은 어떤 걸음으로 생을 나아가고 있나요? 뚜벅뚜벅. 빠르지 않게 저만의 페이스대로 걷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지 않았지만 꾀부리지 않으면서 괜찮게 살아온 것 같아요. 때로는 비틀비틀하거나 넘어지기도 하면서. 곡이 안 써져서 슬럼프도 겪고, 판매가 저조했던 적도 있었지만 계속 그 길을 갔던 것이 하나의 괜찮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적의 발걸음이 가장 신날 때는 언제예요? 무대에서 까불까불 깡총깡총 제일 잘 뛰어 다녀요. 콘서트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죠.
- 피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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