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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브 하기 좋은 계절의 복판

2020.11.07GQ

계절의 복판으로 차를 몰고 갔다.

들녘
서늘하게 변한 기온이 강원도 산세의 옷은 쉽게 갈아 입혔지만, 때를 기다려야 하는 곡식 앞에서 추수 시기까지 소란스레 재촉할 순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가을이 채색한 여러 풍경 중 추수를 앞둔 풍성한 들판을 보고 싶다면, 목적지는 남쪽이 아닌 북쪽이어야 맞다. 같은 이유로 이 시기에 강원도 쪽으로 차를 몰고 올라가면, 황금색 들판과 붉은색 산세가 함께하는 귀한 풍경을 만날 수 있는데, 위치를 콕 짚어보자면 태백산맥에서 내려온 지맥들이 기지개를 켜기 전, 그러니까 춘천과 화천, 춘천과 양구의 경계 즈음이 된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타고 시원하게 북진만 하면 되는데, 이때 춘천IC에서 빠져나가 다시 46번 국도로 갈아타면 더 많은 가을 풍경을 채집할 수 있다. 그렇게 20여 킬로미터를 국도를 타고 올라가면, 비로소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동화 같은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를테면 들녘의 짙은 황금 색체가 봄날의 어떤 꽃향기보다 진하게 느껴지기도 해서, 꽃이라고는 삐죽삐죽 솟아오른 코스모스뿐인 들판에서도 꼭 어떤 향기가 나는 것만 같은 풍경들이다. 가을 바람과 낱알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또 어떻고.

메밀밭
가을볕이 풍성한 단풍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다, 앞 유리창에 부딪쳐 비스킷처럼 부서진다. 그 아래로는 하얀 메밀꽃이 꼭 남학생의 짧은 머리카락처럼 송송 솟아올라 부서지는 햇살을 받아낸다. 이 시기 강원도를 지나다 보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이 메밀밭이다. 단풍이 지천인데, 아직까지 초록 옷을 무리 지어 입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또 뻔뻔해 절로 시선을 옮겨두게 된다. 자태는 소박하면서도 화사하고, 풍성하면서도 연약한 묘한 매력이 있다. 메밀은 산간 지형에서도 잘 자라는 덕분에 강원도 일대를 드라이브하다 보면 쉽게 만날 수 있다. 강원도를 서쪽에서 진입한다면, 강촌리부터 시작해 동쪽으로 이어지는 5번과 46번 국도 구간에서 메밀밭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특히 6번 국도로 갈아타고 1시간 정도 더 동쪽으로 올라가면, 메밀 산지로 유명한 영월과 평창에 닿게 되는데, 폭이 좁은 도로를 지나다 보면, 양옆으로 여린 꽃잎이 파스텔처럼 산야에, 들판에 번져 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잎이 불타 지는 지금의 계절 속에서 꼿꼿하게 피어 있는 것이어서 더 절정처럼 다가온다. 그 하얗던 잎이 지면 곧 겨울이다.

물레길
소양호에서 소양강로를 따라 남쪽으로 10여 킬로미터 내려가다 보면, 소양 2교가 나온다. 거기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소양강은 북한강을 만나 호를 이룬다. ‘의암호’로 불리는 이 커다란 강폭은 발가벗듯 계절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춘천의 봄도 부럽지 않을 만큼 빼어난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는 명소다. 그런 의암호를 공전하듯 빙 돌아 천천히 감상하며 빠져 나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꼭 산처럼 솟아 있는 섬이 하나 보인다. ‘하중도’다. 잔잔하고 평온한 의암호를 닮아서인지 능선과 굽이가 유순해 강의 풍경을 헤치지 않고 조화롭게 감싸 안은 모습이 포근하다. 요즘같이 일교차가 큰 계절이면 이른 아침에 의암호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기대해볼 수도 있는데, 그 풍경이 물안개가 의암호를 가득 메울 만큼 넓고 풍성해, 시간이 지날수록 하중도를 이불처럼 감싸 덮는 절경까지 만들어낸다. 볼 것 많은 강 위에는 ‘물레길’로 불리는 코스를 따라 카누가 떠 있고, 강 가까이에는 자전거를 타는 라이더가 줄을 지어 지난다. 기어이 가을볕을 받아내며 서서, 그 풍경을 구경하듯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고 낭만적이다.

46번 국도
푸르던 녹잎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에 홍잎이 있다. 하루에 많게는 14회, 서울과 춘천을 오가던 경춘선은 사라졌지만, 옛 백양리역은 남아 있다. 그러니까 10년 전 사라진 경춘선의 71년 추억을 다행히 옛 백양리역에서는 더듬어볼 수 있다. 철로 기준 성북역에서 68킬로미터 지점, 차로는 서울에서 1시간 30분 남짓 걸리는 거리다. 빠르고 시원한 드라이브를 원한다면 서울양양고속도로를 내달려보는 것도 좋지만, 아무래도 좀 지루하고. 그런 이유에서라면 46번 국도가 더 나은 선택일지 모르겠다. 구불구불한 국도를 천천히 따라 올라가면서 만나는 풍경은 저절로 주행 속도를 늦추는 묘한 요술을 부린다. 그렇게 숨기고 내어주듯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끝없이 근사하고, 가을볕이 스치듯이 반사된 북한강은 두 눈을 기분 좋게 찡그리게 만든다. 옛 백양리역은 그런 풍경의 한복판에 들어 있다. 강촌대교를 건너 ‘경춘선 자전거길’을 따라 다시 남쪽으로 500여 미터 내려가다 보면, 왼쪽으로 작은 샛길이 나온다. 무궁화호가 다니던 옛 철길은 흙이 덮이고 도로가 됐다. 이제 옛 백양리역 옆으로는 자동차가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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