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비통은 이 세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고립되고 단절된 세상 속에 우리의 삶이 존재했다니. 신종 바이러스가 파고들기 시작한 1년 전 그날 이후, 머리를 쥐어뜯을 것 같은 찬바람의 계절이 다시 돌아왔지만 일상에 균열이 생기기 전의 좋았던 것들은 여전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코로나 시대의 유실물 목록에는 ‘여행’이라는 단어도 있다. 나아갈 길도 막히고 만남과 이동이 논란을 낳는 풍토이니 여행의 효용은 퇴색될 수밖에. 그렇기에 최근 루이 비통이 선보인 브랜드 캠페인은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다.
시커먼 물감을 엎지른 듯한 검은 모래 해변, 허공처럼 투명하고 광막한 빙하 호수, 바람과 햇볕조차 어둠 속으로 하강하는 용암 동굴. 루이 비통의 새로운 캠페인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꿈을 향하다>는 빛과 어둠, 불과 얼음을 부둥켜안은 아이슬란드의 경이로운 풍광을 배경으로 삼았다. 보자마자 고여 있던 여행의 열망이 다시 흐르는 기분이다. 제발 착각이 아니길. 사진가 비비안 사센이 포착한 작품 속 아이들의 모습은 몽상적으로 보인다. 동그란 모자 트렁크는 아이들의 탬버린 합주에 쓰이고, 알제 트렁크는 우뚝한 에펠탑 형상으로 변신한다.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어줄 것 같은 초현실적인 크기의 트렁크 자물쇠를 든 아이들은 씩씩하게 행진한다. 순수의 영혼과 태어난 그대로의 대자연, 루이 비통의 원류인 트렁크의 조화. 이게 우연일리는 없다. 근원적인 존재에 관한 은유라고 이해해도 좋을까?
여행과 연결고리를 가진 패션 브랜드는 꽤 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자장 안에서 1854년 트렁크 메이커로 출발한 루이 비통보다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브랜드를 떠올리긴 어렵다. 특히 루이 비통은 1980년대부터 세계적인 사진가들과 손잡고 전 세계를 돌며 ‘여행 예술’을 비롯해 꿈, 모험, 문화유산의 계승 등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담은 캠페인 이미지를 심혈을 기울여 세상에 남겼다. 비비안 사센의 작품도 이 계보의 일부다. 궁금한 건 왜 여행을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지금이냐는 것이다. 루이 비통의 회장 겸 CEO 마이클 버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락다운 상황에서 우리는 꿈같은 일상 탈출이라는 메시지를 담아 희망적인 캠페인을 제작하고 싶었다. 시대를 초월해 오랫동안 지속된 여행 그 자체를 다루는 동시에 풍경을 넘나들며 조우하는 내면의 감성적인 여정과 우리가 원하는 간절함의 메아리를 불러일으킬 수 있도록 말이다.” 단절과 고립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점점 둔감해지는 여행의 감각을 환기할 수 있도록, 여행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경험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니, 꽤 고무적이다.
온기 어린 취지로 기획된 이번 캠페인을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흔들어 세상을 흔드는 선한 영향력으로 읽을 수 있다면, 이어서 주목할 만한 루이 비통의 의미 있는 행보는 더 있다. 이건 좀 더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이야기다. 친환경, 동물 윤리, 재생 에너지 등의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지속 가능성이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자 담론이 된 가운데 루이 비통 역시 그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우선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가죽, 양털, 솜털 등 원재료의 70퍼센트가 친환경 인증 절차를 밟았으며, 2020 가을겨울 남성 컬렉션은 RWS 인증을 받은 실만 사용했다. RWS는 울을 만드는 양들의 자유롭고 안전한 사육 환경 보장, 방목지의 토양 보호 등의 기준 항목을 준수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루이 비통은 재활용에 한계 같은 건 없다는 듯이 재활용을 한다. 아무렴 좋다. 쇼핑백과 포장 용품은 하나도 빠짐없이 재활용이 가능하다. 국제산림관리협회의 인증을 획득한 재활용 종이 펄프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2018년에는 미사용된 가죽의 사용 방법을 체계적으로 확립해 재활용률을 두 배로 높였다. 2019년 주요 행사와 설치에 사용된 재료도 95퍼센트 이상 폐기처분 되지 않고 쓰임을 확장했다. 예를 들어 봄여름 여성 컬렉션 패션쇼에 쓰인 구조물, 좌석, 조명, 아크릴은 문화기관에서 재사용했고, 멕시코에서 열린 루이 비통 타임캡슐 전시의 디자인 재료는 원주민 공동체 발전을 돕는 단체와 고아원에 기부됐다.
루이 비통은 재활용에서 한 단계 더 힘을 낸 업사이클링에도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아티스틱 디렉터 버질 아블로가 전면에 나섰다. 그는 “낡은 시즌이란 없다”는 원칙을 세운 뒤 2021 봄여름 남성 컬렉션에 재고 소재로 만든 룩을 선보이는가 하면, 새로운 제품 개발로 인한 낭비를 줄이고자 이전 컬렉션의 룩을 다시 내놓았다. 이참에 업사이클링 시그널 로고도 디자인했는데 과연 버질 아블로답다. 세상의 모든 업사이클링 제품에 적용하고 싶을 만큼 세련되고 멋지다.
칭찬은 하면 할수록 좋고, 좋은 건 알릴수록 더 좋다. 루이 비통은 인류애적인 측면에서도 꾸준하고 굵직한 행보를 이어왔다. 2016년 유니세프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끔찍한 고통과 불행에 노출된 전 세계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기금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모금한 후원금은 약 1백45억원. 구매할 때마다 일정 후원금이 기부되는 실버 락킷 목걸이와 팔찌가 이를 단단히 거들었다. 루이 비통은 록 밴드 U2의 보노가 에이즈 퇴치를 위해 설립한 레드 재단의 캠페인에도 동참했다. 2019년에는 레드 캔들, 2020년에는 남성용 빨간색 스니커즈를 출시해 판매 수익금 일부를 기부했다.
이상적인 동경과 설렘 대신 현실에 눈을 맞춘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이타적인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사회적 책무, 환원 활동, 인류 존립이라는 고루하기 짝이 없는 명분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이 세상을 위해 그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 같은 시대에 우리가 필요한 건 명확한 현상 분석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불확실한 미래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니까. 내일의 시간을 맞이하는 것도 새로운 여행이라면 여행이다. 그 여행이 아름다울 수 있도록 루이 비통은 그렇게 최선을 다한다. 결국 이야기는 여행으로 되돌아간다. 이 또한 루이 비통이 그리고 있는 큰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루이 비통의 지속 가능성을 향한 여정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kr.louisvuitton.com/kor-kr/magazine/sustainability
- 피처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