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십과 추문과 추정이 빛처럼 전파되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스타의 신비감은 싹 달아났다. 이젠 스타가 되려면 인성 검증이라는 것부터 통과해야 한다.
1999년 세기말, SK텔레콤에서 선보인 광고 한 편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궁금증을 자아낸 건 광고에 등장한 모델의 정체였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아이래?” 그러나 누구도 소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TTL 소녀라 명명된 모델을 두고 사람들은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일본 사람이다, 광고회사 딸이다, 사이보그다, 실은 소년이다! 루머가 돌았다. 루머 덕에 TTL 소녀는 더 유명해졌다. 소녀의 유명세에 TTL 브랜드도 대박이 났다. 신비주의 마케팅의 레전드로 남은 광고 속 TTL 소녀는 알다시피 임은경이다. 임은경은 훗날 <라디오스타>에 나와서 이렇게 말했다. “3년 동안 신분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계약서에 있었어요.”
같은 방법의 마케팅을 지금 다시 한다면 어떨까. 광고는 또 성공할 수 있을까. 회의적이다. 보안 유지 때문이다. 누군가 광고에 등장해 대중의 뜨거운 눈도장을 받는 순간,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해 신상을 털 것이고 관련 제보들이 SNS를 헤엄칠 것이다. “얘, 우리 학교 얜데?”, “내 친구의 사돈의 팔촌인데!” 같은 인증들 말이다. 임은경의 TTL은 그러니까 1990년대니까 가능한 광고였다.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신비주의로 명성을 얻은 이가 적지 않았다. 신비주의는 스타가 인기의 생명 연장을 위해 쓰는 전략이기도 했다. 정보 통제가 수월했기 때문이다. 평소 뭘 먹고 뭘 입고 어딜 가는지가 베일에 가려 있었기에, 스타는 대중들이 더 알고 싶어 하는 존재였다. “아무 데서나 나를 쉽게 만나는 건 신비성이 없죠.” 가요계의 디바 패티김이 한 말이다. 신비주의는 스타를 신화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오프라 윈프리 쇼> 소파 위를 뛰며 케이티 홈즈에게 구애함으로써 자신의 신비주의 신화에 커다란 구멍을 낸 톰 크루즈처럼만 하지 않는다면야, 이미지 통제가 가능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이라는 발명품은 스타와 팬 사이에 존재했던 심리적 거리감을 일거에 좁혔다. 스타들의 일상이 미디어나 디카나 폰카를 든 대중에 포착되면서 이들은 신전에서 추방돼 인터넷 세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가십과 추문과 추정이 유튜브나 SNS를 통해 빛처럼 전파되는 세상이 도래하면서 스타의 신비감은 위협받았다. 상황이 빠르게 변하다 보니 신전에서 자발적으로 하산해 친근함을 공략하는 연예인도 늘어났다. 리얼리티 예능의 유행이 이러한 분위기에 힘을 보탰다. 스타들이 예능에 뛰어들어 뒹굴었다. 이젠, 스타의 사생활 없이 방송국 예능은 돌아가지 않는다. TV를 틀면 스타의 일상을 파는 프로그램이 쏟아진다. 바야흐로 신비로움을 절대적 매력으로 내세운 스타를 만나기 힘든 시대가 된 것이다.
1990년대에 신비주의로 인기를 얻은 스타 중 지금도 완벽한 신비주의로 남은 스타는 누가 있을까. 심은하 정도가 떠오른다. 가장 정점에 오른 순간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짐으로써 그녀는 영원한 물음표로 남았다. 요절한 스타가 그렇듯, 예기치 못한 순간 은막을 떠난 이에게도 어느 정도의 신화가 동반되기 마련이다. 신비주의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스타라면 아마도 서태지일 것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에드거 모랭은 저서 <스타>에서 “스타는 확실히 하나의 신화인데, 그것은 단지 몽상일 뿐만 아니라, 힘 있는 관념”이라고 했다. 서태지는 그에 완벽하게 부합했다. 그는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팬덤은 그를 스타 이상의 존재로 우상화했고, 미디어는 서태지에게 ‘문화 대통령’이란 수식어를 부여했다.
활동 후 종적을 감췄다가 컴백하는 그의 행보는 신비로움을 강화시켰다. 뭐랄까. 그는 팬들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해 외로워지길 선택한 사람처럼 보였다. 숨겨왔던 사생활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2011년의 이혼 소송 논란에 대해서 딱히 언급할 생각은 없다. 요는, 서태지는 팬들에게 신처럼 추앙받은 거의 ‘마지막 보이스카우트’ 같은 존재였다는 점이다. 지금의 스타 산업 시스템에서는 어떤 스타도 서태지처럼 신격화되기 힘들다.
신비주의는커녕 이젠 스타가 되려면 인성 검증이라는 것부터 통과해야 한다. <슈퍼스타K>, <프로듀스 101> 등에서 인성 논란으로 하차한 참가자가 어디 한둘인가. 인터넷이란 ‘신문고’를 통해 도전자의 과거 행적이 노출되면, 여론이 형성되고 대중이란 ‘심판관’이 등장해 땅땅 판결을 내린다. 스타 탄생에 대중이 문자 투표나 전화로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사생활 피드백이 소비자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이도 많아지는 분위기다. 일부 연예인의 도덕 불감증이 ‘버닝썬 사태’를 통해 알려지면서 스타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더욱 엄중해진 탓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 인성은 대한민국 연예 산업의 떠오르는 신상 상품이라고 하면 누군가에겐 부담이 될까.
부모의 허물이 자식의 허물로 둔갑하는 것도 근래 자주 포착되는 풍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서 스타는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또 한 번 인성을 평가받는다. 가끔은 그 과정에서 뜻하지 않게 스타가 인간적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모친 채무 논란에 휩싸였던 한소희가 그렇다. 논란이 일자 그의 동창들이 한소희의 집안 사정과 품성을 증언하며 상황을 역전시켰는데, 여러모로 특이한 사례. 어쨌든 요즘 같은 시대에 논란 없이 이미지를 사수하려면 부모의 재정 상태도 살펴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점점 더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이 희미해지는 폭로 방식이다. 조금 예민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찬열 여자친구의 폭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싸움을 붙이려는 게 아니다. 생각해보자는 거다. 나는 엑소 팬도, 찬열 팬도 아니고, 찬열의 행동에 대해 옹호할 생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극히 개인적인 연애사가 전 국민이 쉽게 볼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 까발려지는 것도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문제라면 또 다른 이야기겠으나, 그저 직업 특성상 대중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을 뿐인 사람의 사적 삶에 대한 정보가 아무 필터 없이 폭로되고 그것이 언론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는 건 조금 무섭지 않나.
신비주의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신비로움을 고수하는 스타들이 있다. 스타 중의 스타, 톱스타일수록 이런 경향은 강하다. 인기가 올라갈수록 지켜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말실수 하나가 광고 계약 취소로 이어지니 매사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너무 걱정되면 인터뷰도 하지 말고, 개인 SNS도 안 파면 되지 않느냐고? 아뿔싸, 오늘날의 스타는 해커와도 싸워야 한다. 사회적 평판 유지가 중요한 스타는 해커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해킹된 정보 안에 스타의 이미지에 손해를 입히는 치명적이 무언가가 있어야만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그 자체가 사생활 침해 범죄이기에 문제다. 당신이 누군가와 나눈 카톡 내용이 온라인 바다에 유출된다고 생각해보라. 개인 정보 공개를 볼모로 협박받는 상황에서 해커와 ‘오돌뼈’, ‘배밭 무밭’ 드립 치며 경찰에 제공한 단서를 찾는 기지를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니, 하정우밖에 없지 않을까.
물론 신비주의가 가능한 방법이 있긴 하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자발적 히키코모리가 돼서 일이 없을 땐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노는 개인적 욕망도 버리고, 세상과 완전히 차단되면 된다. 그런데 그렇게 자유를 저당 잡혀서 얻은 이미지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렇게 해서 과연 행복할까. 글 / 정시우(칼럼니스트)
- 피처 에디터
- 김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