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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에서 만난 자동차의 숨은 매력

2021.02.16GQ

캄캄한 골목길에서 마주친 숨은 매력들

MASERATI Ghibli S Q4

참을성 좋은 저속감 ― 고풍스러운 삼지창 문장이 라디에이터 그릴 앞에서 번쩍인다. 기블리 S Q4의 점잖은 등장은 마치 헌팅트로피처럼 우뚝 드러나 있는 그곳에서부터 시작된다. 기블리가 도로를 덮은 눈을 지긋이 밟고 섰을 때 바닥에서 허연 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헤드라이트가 천천히 눈을 들어 올리면 바닥 아래서 피어오르는 김은 순간 선명해졌다가 다시 물안개처럼 퍼져 사라졌다. 녹은 눈이 피어내는 은밀하고 묘한 장면은 빨간색 기블리가 길고 굽이진 골목을 돌아 나올 때까지 계속됐다. 지난밤 넓은 4차선 도로를 기품 있게 질주하던 모습은 어쩌면 기블리에게는 익숙한 멋일 테고, 오늘 밤 좁은 골목을 천천히 탐색하듯 돌아 나오는 모습은 새로 발견하듯 만난 의외의 매력일 것이다. 커다란 타이어가 바닥의 눈을 찍어내듯 느리게 굴러간다. 세상 급할 것 없는 듯한 그 모습이 우아해 보이다가도, 가끔씩 폭발할 듯 그르렁대는 엔진 소리를 들으면, 반듯한 신사의 튼튼한 참을성이 얼핏 떠오른다.

VOLVO V60 Cross Country

지혜로운 실루엣 ― V60 크로스 컨트리의 가장 빼어난 매력은 단연 길고 시원하게 뻗은 왜건 실루엣에 있다. 낮고 샤프한 엔진룸, 운전석부터 점점 높아지는 차고, 깎이듯 단절되어 뚝 떨어지는 리어 라인은 ‘왜건’이라는 장르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귀한 디자인이다. 그래서 V60 크로스 컨트리 본연의 초상은 옆에 두고 서서 바라봤을 때 그 매력을 발견하기 좋고, 기울거나 틀어 세우지 않고 바로 서 있어야 그대로 감상하기 좋다. 간판 불이 꺼진 가게 옆으로 V60 크로스 컨트리를 나란히 세웠다. 마치 궤도 위를 다니는 열차처럼, 핸들의 조작 없이 진행방향 그대로 들어와 시동만 툭 껐다. 띄엄띄엄 켜져 있는 작은 빛 아래로 왜건 특유의 실루엣이 끊어질 듯 이어져 있어, 마치 별자리를 따라 그림을 그리듯 헤드라이트부터 리어 램프까지, 천천히 시선을 더듬어가며 왜건의 맵시를 감상했다. 어둠이 스민 자리에 선 V60은 밤하늘에 돋아난 별처럼 굳이 조명해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스스로를 잘 드러내 보였다.

VOLKSWAGEN The new Passat GT

빛의 주행 ― 영업을 마친 캄캄한 상가 아래를 통과하는 건 차가 아니라 빛이다. 파사트 GT의 헤드라이트에서 흐르듯이 쏟아지는 맑은 색 빛은 눈이 부시거나 쨍하지 않고 은은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주행 흐름과 함께 잔잔하게 이어진다. 그래서 밤 혹은 다른 어둠 속에서 파사트 GT의 존재를 발견하는 건 아마도 헤드라이트부터다. 정면에서 바라본 파사트 GT의 인상은 사람으로 치면 단정한 얼굴에 가까운데, 라디에이터 그릴이 요즘의 것처럼 과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단순한 덕분이다. 고르게 뻗은 라디에이터 그릴은 입체적이지 않고 그대로 헤드라이트까지 직선으로 연결돼 있다. 헤드라이트를 켜놓고 정면에서 바라보면, 라디에이터 그릴은 쏟아지는 빛과 평행하게 이어지는데, 그래서 밤에도 파사트 GT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난다. 조용한 주행을 이어가는 동안 호젓한 상가의 어둠은 헤드라이트를 따라 사라졌다 살아나길 반복한다. 어둑한 밤의 골목이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다 빛에 부딪쳐 뒤로 사라져 간다.

KIA Stinger Meister

멀티 플레이 ― 저녁새 내린 눈이 길을 지웠다. 밤이 깊어질수록 쌓인 눈에 어둠이 내려앉아 캄캄한 골목을 더 캄캄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골목 사이사이 멀리 떠 있는 빛이 스팅어 마이스터의 굴곡진 근육을 슬며시 비췄다. 문득 가파르고 좁은 골목을 꽉 채우고 서 있는 정체가 꼭 푹푹 콧바람을 내쉬는 싸움 소같이 크고 장대하게 보였고, 또 가만히 서서 앞을 밝히고 있는 시야는 꼭 바닷길을 비추는 등대처럼 깊고 또렷해 보였다. 헤드라이트는 캄캄한 골목을 선으로 가로지르며 어딘가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다. 시원하게 뻗은 도로를 빠르고 날쌔게 달릴 때와는 다른 매력, 다른 모습이다. 달릴 때는 날렵하고 맹렬한데, 서 있을 때는 단단하고 묵직해서 덕분에 안에서는 주행하는 재미를 느끼기 좋고, 밖에서는 바라보며 듬직한 멋을 즐기기 좋다. 굽이진 골목길을 헤치듯 오른 스팅어 마이스터가 잠시 숨을 고른다. 리어 램프 뒤로는 가쁜 숨이 구름처럼 뿜어 오르고, 그 뒤로는 타이어 폭만큼 다시 길이 생겼다.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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