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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폐허의 도시 로마로

2021.02.17GQ

과거로 통하는 관문. 시간의 층이 켜켜이 쌓인 이탈리아의 수도를 걷는다. 로마, 그 환상적인 폐허를 아일랜드 출신 여행 작가 스탠리 스튜어트가 지극히 사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판테온 내부.

보르게세 공원의 정원에는 회전목마가 있다. 저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잠깐 들러 회전목마를 타는 것이 소피아와 나의 즐거움이었다. 시간이 늦어 운행을 끝낸 말들이 가만히 멈춰 있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든 관리인은 낯익은 우리를 위해 회전목마를 돌려주었고, 그러면 나는 소피아를 안아 올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말에 태워주곤 했다. 갈기가 금빛인 화려한 말이었다. 소피아가 회전목마를 타고 저무는 햇빛을 경쾌하게 가르는 동안 나는 나무 아래 앉아 분수대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로마를 생각했다. 이곳이 알게 해준 갖가지 감정이 떠올랐다. 로마는 우리의 도시라는 어떤 내밀한 확신. 로마에 묻어둔 시간을 돌이켜본다.

낯선 도시를 알아가고 삶의 일부로 삼게 되는 길은 많고도 다양하다.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도시의 때 묻지 않은 인상을 오래도록 간직한다거나, 사랑에 빠진 상대와 지붕이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낸다거나, 또는 사람들이 무심하게 오가는 어느 골목 어귀 카페에서 연인과 이별을 경험하는 식으로 말이다. 때로는 나처럼 아이를 통하는 일도 가능하다.

나의 딸 소피아는 로마에서 태어났다. 영국에 머문 시기도 있었지만 딸아이가 처음 마주한 도시는 엄연히 로마였고, 그래서 나 또한 이곳을 새로운 집으로 삼았다. 소피아는 아주 어릴 때부터 나와 나란히 이탈리아의 수도 로마를 탐험해왔다. 우리는 함께 자전거를 타고 로마를 누볐고(나중에는 베스파를 타기도 했다), 뒤편의 유아용 좌석에 앉아 웃고 떠들던 소피아는 내가 시야를 가려 콜로세움이나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잘 안 보인다 싶으면 내 등을 밀어내곤 했다.

기적으로 가득한 이 도시를 소피아에게 구석구석 보여주기 위해 나는 종종 멈춰 섰다. 섬세하게 뿜어내는 물줄기가 마치 유리창처럼 보이기도 하는 포폴로 광장의 사자 분수, 거인이 늘어선 듯한 카라칼라 욕장의 거대 아치들, 장대를 타고 나보나 광장을 가로지르는 은색 비단 모자 차림의 사내와 산탄젤로 다리의 천사 대열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게 있어 우리 여행의 주인공은 카라바조의 그림이나 베르니니의 분수대, 또는 누가 만들었는지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오래된 성당들이었다. 그러나 소피아의 눈에 든 것은 나무와 새, 회전목마와 아이스크림이었고 보르게세 공원의 소나무들 사이로 갑자기 얼굴을 드러낸 보름달이었다. 내가 도시를 발견하고 있었다면 소피아는 세계를 발견하고 있었다.

레골라 지역 어느 건물의 파사드.

트레비 분수의 조각상.

 

 

성 베드로 광장의 콜로네이드.

로마에서 두 번째로 높은 언덕인 야니쿨룸 언덕에서 바라본 로마의 동틀 녘.

포폴로 광장의 분수대.

로마의 웅장함은 어디에 비견해도 뒤지지 않는다. 제국의 수도였던 곳이자 교황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갖는 위용이 있으며, 때로는 그저 비대한 자아에서 비롯된 듯한 기세가 내비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아름답게 보이는 경우가 드물고, 동시에 그저 그림 같은 풍경으로 그치는 법이 절대 없기도 하다. 상처와 황폐함이 고스란히 남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깨가 둥글게 굽은 것만 같은 모양새다. 로마의 벽들은 낡았다. 얼룩과 덧댄 흔적이 가득하다. 수세기 동안 덧칠을 거듭한 페인트가 벗겨져서 그간 겹겹이 쌓여온 색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적갈색, 황토색, 연지색 등 카이사르 시절 유행한, 남부의 대지를 닮은 따뜻한 색조다. 당시에는 가장 좋은 것을 고른다고 고른 선택이었을 것이다. 기원전 1세기 에트루리아인에서 오늘날 모더니즘 건축가까지 모두가 로마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시도했고, 그 결과 아주 보기 좋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다.

다만 실로 정교하고 근사한 엉망이라 할 수 있겠다. 어두우면서도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엉망이다. 영화 <그레이트 뷰티> 같은, 부스스하고 단추도 풀어 헤친, 광기로 일렁이는 눈빛 같은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과장되었으며 너그럽고 은밀하면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공허한 로마는 우아하고 음탕하며 세련되고 상스럽고 역동적이면서도 절망적으로 게으르다. 그리고 끝없이 즐겁다. 로마는 뻔뻔스럽게도 부패한 곳이며 지금도 부패가 진행 중이다. 스프레차투라 Sprezzatura(어려운 일을 쉬운 것처럼 해내는 능력, 세련되고 우아하게 다루는 능력을 일컫는 이탈리아어)를 열망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열정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탓에 제 발에 걸려 거꾸로 넘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스프레차투라는 요원하기만 하다.

대부분의 대도시는 현재와 미래가 과거보다 나을 거라 믿지만 로마는 낭만적인 우수에 젖어 있다. 라 벨라 피구라 La Bella Figura(아름다운 형태라 는 이탈리아어. 단순한 형태적 아름다움을 넘어 세월을 뛰어넘는 미학적 관념을 좇는 행위에 가깝다) 아래 유약한 면이 감춰져 있다. 구시대의 화려함,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누린 호사가 여전히 이 도시의 DNA에 각인되어 있다. 과거의 영광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는 현재가 끝없이 계속된다. 이곳에서 산 자는 죽은 자의 자리를 대신하는 게 불가능하다. 곱게 자란 탓에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버릇없는 자식으로 영원히 남고만 것이 로마다. 오늘날 로마가 누리는 명성이라고 해봤자 물려받은 유산이 전부일 뿐, 스스로의 힘으로 일궈낸 것은 없다. 유약함이란 얼마나 무력하고도 매력적인가.

나는 멜로드라마를 좋아한다. 다른 스캔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의 크나큰 스캔들과 도무지 믿기지 않는 헤드라인들을 좋아한다. 활기 넘치는 거리를 좋아하고 길을 잘못 들면 지금껏 본 적 없는 은밀한 광장으로 연결되는 미궁 같은 첸트로 지역을 좋아한다. 또 로마의 카페와 레스토랑의 친근한 분위기와 매력, 수다 떠는 소리가 좋다. 로마에 비하면 파리는 시체들의 도시로 보이고 런던은 서투른 어린아이들의 도시로 보일 정도다. 이탈리아 디자이너들이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건축물에 현대적 요소를 솜씨 좋게 도입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이탈리아어의 풍성하고 감각적인 모음 소리가 좋고, 어딜 가든 풍겨오는 요리하는 냄새가, 그리고 발코니를 꽃처럼 수놓은 빨래걸이가 좋다. 그리고 문득 저 먼 곳의 산을 바라 볼 때가 참 좋다. 아펜니노산맥의 지평선 끝에 검게 자리 잡은 산줄기는 겨울이 되면 꼭대기가 눈으로 덮인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도심에서 바라보는 야생의 풍경이다.

길가의 카페에 들러 잠시 에스프레소를 즐긴다.

성 베드로 대성당의 아치형 천장.

보르게세 공원에서 바라본 일몰.

스페인 계단 근처 비아 콘도티의 쇼핑객.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로마가 있다. 각별한 의미를 지닌 거리들과 운명적 만남이 일어난 광장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몽상에 빠지던 카페들이 대변하는 각자만의 사적이고 정서적인 지도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2천 년 넘게 수백만 명이 거쳐간 이 도시에서 나와 소피아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한데 모아 우리만의 로마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천진하게도.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 아래에서 우리는 경쾌한 곡을 연주하는 군악대를 보았다. 당시 두 살이던 소피아는 오래된 자갈길 위에서 춤을 췄다. 햇빛과 사랑을 꿈꾸다 세상을 떠난 키츠가 마지막까지 머무른 방 바로 아래였다.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는 금빛 공기가 사방을 채운 신랑 身廊에 서서 부모님을 위해 초를 봉헌했고, 소피아는 깔깔대며 촛불을 껐다. 아마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겨울 판테온에 방문했을 때 소피아는 천장의 구멍을 통해 내리는 눈을 향해 손을 힘껏 뻗기도 했다. 판테온 로툰다 중심에 뚫린 원형 구멍을 통해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눈송이는 하얀 유령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콜로세움에서는 마치 검투사처럼 지하 통로를 따라 걸었고, 첸치 궁전에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5백 년 전 부친 살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녔다. 몰타 기사단 광장에서는 비밀 열쇠 구멍을 통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둥근 지붕을 엿봤다. 나무가 푸르게 늘어선 길 끝 정가운데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는 벨라스케스의 명화 ‘교황 이노센트 10 세의 초상’을 구경했다. 그림 속 인물에 비하면 월터 매튜가 차라리 흥겨워 보일 정도였고, 소피아는 “아빠, 저 교황님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아”라는 감상을 남겼다. 그러나 진짜 로마인은 절제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소피아는 아직 완벽한 로마인이 되기 전인 것이다.

성 안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에 있는 베르니니의 조각 ‘두루마리를 든 천사’.

판테온의 화강암 기둥.

카라바지오의 작품 ‘성 마태오의 소명’.

카스텔 산탄젤로.

상점 간판.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로마가 있다. 각별한 의미를 지닌 거리들과 운명적 만남이 일어난 광장들, 그리고 자리에 앉아 몽상에 빠지던 카페들이 대변하는 각자만의 사적이고 정서적인 지도 같은 것이 있다는 말이다. 2천 년 넘게 수백만 명이 거쳐간 이 도시에서 나와 소피아는 즐거움과 놀라움을 한데 모아 우리만의 로마를 손에 넣으려고 했다. 천진하게도.

스페인 광장, 스페인 계단 아래에서 우리는 경쾌한 곡을 연주하는 군악대를 보았다. 당시 두 살이던 소피아는 오래된 자갈길 위에서 춤을 췄다. 햇빛과 사랑을 꿈꾸다 세상을 떠난 키츠가 마지막까지 머무른 방 바로 아래였다. 트라스테베레의 산타 마리아 성당에서는 금빛 공기가 사방을 채운 신랑 身廊에 서서 부모님을 위해 초를 봉헌했고, 소피아는 깔깔대며 촛불을 껐다. 아마 누군가의 생일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한겨울 판테온에 방문했을 때 소피아는 천장의 구멍을 통해 내리는 눈을 향해 손을 힘껏 뻗기도 했다. 판테온 로툰다 중심에 뚫린 원형 구멍을 통해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눈송이는 하얀 유령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콜로세움에서는 마치 검투사처럼 지하 통로를 따라 걸었고, 첸치 궁전에서는 로마 역사상 가장 유명한 5백 년 전 부친 살해 사건의 단서를 찾아다녔다. 몰타 기사단 광장에서는 비밀 열쇠 구멍을 통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둥근 지붕을 엿봤다. 나무가 푸르게 늘어선 길 끝 정가운데 자리 잡은 모양새였다. 도리아 팜필리 미술관에서는 벨라스케스의 명화 ‘교황 이노센트 10 세의 초상’을 구경했다. 그림 속 인물에 비하면 월터 매튜가 차라리 흥겨워 보일 정도였고, 소피아는 “아빠, 저 교황님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아”라는 감상을 남겼다. 그러나 진짜 로마인은 절제된 표현을 쓰지 않는다. 소피아는 아직 완벽한 로마인이 되기 전인 것이다.

로마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유지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처럼 소유권에 기반한 유대감을 느낀 건 우리만이 아니었다. 로마가 인생을 바꿔놨다고 믿는 이들이 작성한 로마 여행기에는 으레 주체할 길 없는 열광과 기쁨이 넘쳐흐르기 마련이다. 몽테뉴, 스탕달, 샤토브리앙, 보즈웰, 바이런, 스윈번, 워즈워스, 호손, 디킨스, 트웨인 등은 헨리 제임스의 설명에 따르면 모두 문화와 예술, 성적 모험, 그리고 지나간 시대의 달콤한 감각을 찾아 거리를 헤매며 신음했다. 메리 셸리는 “로마가 주는 기쁨이 내게 미친 영향이 얼마나 큰지 로마를 알기 이전의 인생이 백지로 돌아갈 정도였다”라고 적기도 했다. 제임스 또한 호텔 딩힐테라에 머무르며 셸리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가 친형에게 보낸 편지에는 “처음으로 진정 살아 있는 듯하다”라고 숨가쁘게 적혀 있었다. 한편 괴테는 로마에 와서 새롭게 눈뜬 에로스에 꽤 열중했던 것 같다. 그는 조각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루만지는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펼쳤고, 잠든 연인의 드러난 등에 6보격 시구를 적어 내려가곤 했다.

보르게세 공원의 핀초 언덕, 야니쿨룸 언덕, 퀴리날레 광장 등 로마를 조망하는 명소에 오를 때마다 나는 심장이 부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열기구처럼 솟아오른 반구형 지붕들은 저마다 이야기를 간직한 듯하다. 교황이 터 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을 마리아에게 맹세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산타마리아 델 아니마 성당도 시야에 들어온다. 베르니니가 조각한 아름다운 천사들이 마치 혼란스러운 청춘들처럼 황홀한 듯 부루퉁하고 기쁨에 겨운 듯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부유하는 성 안드레아 델레 프라테 성당과 성 필립보 네리를 위해 지은 키에사 누오바도 보인다. 성 필립보 네리는 선교사로 인도에 가려 했으나 아마 로마에 죄인이 더 많을 것이라는 친구들의 지적을 듣고 그만뒀다고 한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의 경우 이교도 사원에서 떼어온 기둥이 사용되었으며 천장에는 콜럼버스가 항해를 시작한 이후 신세계에서 가져온 첫 황금이 포함되어 있다. 건립을 의뢰한 교황은 실망스러워하며 파사드를 무도회장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든 돔 중 가장 완벽한 돔이라 할 만한 성 베드로 대성당이 있다. 밧줄을 걸어 맨 형상인데, 미켈란젤로를 포함한 수많은 건축가가 1백 년 가까이 시간을 들여 조심스레 저 우아한 곡선을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는 로마다. 한 꺼풀만 벗겨내면, 문을 열어젖히고, 모퉁이를 돌고, 열쇠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만 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다. 그 이야기는 오래 곁에 두고 보고 싶은 보물 같다.

아이가 있기에 도시의 가장 깊은 곳까지 다가가는 길이 조금 더 수월해지는 것은 분명 맞다. 세상 모두가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만큼 내 아이를 좋아한다는 착각이 들 정도이기 때문이다. 가령 동네 꽃집 주인은 우리가 지나갈 때마다 소피아에게 가장 예쁜 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고, 빵집 주인은 늘 갓 구운 비스코티를 쥐여주었다. 카페에서는 오렌지 주스를 가져다주는 종업원이 소피아의 이름을 다정스레 불러주기도 했다. 소피아가 온 동네 사람들이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존재하고, 그래서 제멋대로 굴어도 괜찮다고 생각할까 봐 걱정될 지경이었다.

로마는 소피아가 인생의 중요한 시점을 차례로 맞은 곳이기도 하다. 아마도 로마의 한 낡은 궁전에서 잉태되었을 그녀는 하늘 높이 치솟은 돔 아래에서 세례를 받았다. 소피아가 다닌 보르게세 공원 안의 프랑스 국제학교는 담이 사방으로 뻗은 구조였는데, 나폴레옹이 남긴 유산의 일부로서 로마 중산층에게 대대로 익숙한 풍경으로 존재해왔다. 또한 소피아는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서 견진성사를 받았다. 나는 카라바조의 최고 걸작 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성 마태오 연작 바로 앞에 앉아 견진성사를 지켜 보았다. 높은 독서대 뒤에서 성경 구절을 읽는 소피아는 그 자그마한 머리 의 정수리 끄트머리만 간신히 보일 정도였다.

캄포 데 피오리 재래시장 채소 가판대의 라디치오.

대성당 앞 성 베드로 광장.

콜로세움.

허물어진 벽.

행사가 끝난 후 우리는 첸트로 지역을 걸었다. 포근한 봄날의 저녁이었다. 비아델라 마달레나를 따라 늘어선 건물들의 저층부는 고대 메트로폴리스의 마룻돌과 기억을 여전히 간직한 채였다. 스페인 광장의 꽃 판매상들을 지나 스페인 계단을 올랐다. 로마의 제일가는 호텔인 하슬러 호텔의 이마고로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식사가 어찌나 훌륭했는지 우리는 지금도 그날에 대해 얘기하곤 한다. 꽃이 수놓인 흰색 견진성사 가운을 걸친 소피아를 두고 종업원들은 호들갑을 떨었다. 옥상 위로 어둑해진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제비가 보였다.

우리의 로마에서 음식은 늘 중요했다. 키오스트로 델 브라만테에서 우리는 애프터눈 티를 즐기기에 딱 알맞은 장소를 찾았다. 최고의 당근 케이크를 만드는 카페였는데, 최고로 아름다운 르네상스풍 중정이 내려다보이는 자리도 있었다. 우리는 비아 데이 반키 베키에 위치한 소박한 비노 올리오의 허름한 식탁을 좋아했고, 게토 지구 끝자락에 자리 잡은 살루메리아 로시올리의 분주함을 좋아했다. 일 팔라체토의 테라스에서는 저 아래 스페인 계단에 모인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웃음과 함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피자를 먹었다. 피자에 얹어진 들큰한 토마토의 맛이란. 무용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종종 단골 젤라테리아에 들러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앉아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함께 나눴다. 그리고 우리는 아페리티프 감정사라도 된 듯 도시 곳곳의 바를 돌아다녔다. 우리가 찾는 것은 언제나 와인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맛 좋은 식사였다.

로마에서 계절은 급작스레 변한다. 계절의 변화 또한 내 고향 영국과 다르게 뚜렷한 편이다. 영국의 한여름은 눅눅한 11월과 비슷한 경향이 있다. 낯선 이국의 겨울은 차갑지만 길지 않은 편이고, 봄은 어느새 도래한다. 티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덮쳐오는 것만 같은 봄이다. 마트와 시장의 채소 가판 에는 아티초크와 잠두, 그리고 딸기가 가득 들어찬다. 아페니노산맥의 눈이 녹으며 불어난 테베레강이 제방 아래쪽까지 차오르고, 가마우지들이 조그마한 갈색 장어를 잡아먹기 위해 사냥에 나선다. 그리고 제비들이 돌아온다. 광장에 모인 주민들은 햇볕 아래 벤치에 앉아 수다를 떨거나 언쟁을 벌인다. 로마가 되살아나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 봄은 사정이 달랐다. 거리는 텅 비었고 로마의 시민들은 발코니에 나와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며 락다운을 견뎌내야 했다. 다시 거리로 나왔을 때는 지난 수십 년간, 어쩌면 수백 년간 한 번도 보지 못한 고요함이 감돌았다. 이탈리아인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마스크 착용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방문객들도 돌아왔지만 그 수는 줄어 있었다. 인파가 물러남으로써 이 도시는 제 모습을 되찾았다. 평상시에는 고성과 혼잡한 교통, 길고 긴 대기줄 탓에 다분히 혼란스러울 수 있는 곳이 로마다. 지난 몇 개월은 보다 조용하고 사색적으로 보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건물과 명소들도 되살아나는 듯했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이 없다면 건축물과 기념물도 더 이상 관광 명소로 그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파르코 디 트라이아노의 소나무 사이로 커다란 범선 같은 모습을 어렴풋이 드러낸 콜로세움의 아치들은 텅 빈 창문처럼 보인다. 카스텔 산탄젤로는 별안간 원래의 무덤으로 돌아가 음울하고 구슬픈 분위기를 내뿜는다. 평화의 제단 아라 파치스에 정교하게 조각된 황제의 수많은 친인척이 모두 나 한 명 때문에 강둑에 모인 것만 같다. 관광 명소라는 옷을 벗은 로마 곳곳이 그 오래되고 황폐하고 그래서 빛나는 아름다움을 고고히 드러냈다.

사방에서 분수대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로마가 만들어내는 소리, 물의 소리다. 2천 년 전 개척한 2개의 물길을 통해 아페니노산맥에서 끌어온 물로 수백 개의 분수대가 밤낮없이 돌아간다. 그런 분수대의 소리가 너무나 자주 소음에 묻히곤 했다. 그러나 이제 나보나 광장에서, 포폴로 광장을 가로지르면서, 그리고 보르게세 공원의 반송 아래를 서성이면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물이 돌에 닿으며 내는 휘파람 같은 속삭임이 전해져 온다. 귀하고 드문 성찰의 순간이다.

    Writer
    Stanley Stewart
    Photographer
    Jenny Zar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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