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완은 자기 페이스대로 꾸준히, 끝까지 달린다. 빨리 뛰는 데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아까 슬리브리스를 입고 촬영하기 전 푸쉬업을 했잖아요. 땀까지 흘려가며 열심히 하는데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하하. 저도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노출이 있는 옷을 입는다고 해서 부랴부랴…. 평상시 운동을 꾸준히 했다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됐을 거예요.
일주일 전쯤 인스타그램에 올린 드라마 <런 온> 촬영 종료 인증샷을 봤어요. 어떻게 지냈어요? 작년 여름부터 드라마를 찍었는데 초반에는 영화 <비상선언>의 촬영 일정과 겹쳤어요. 두 작품을 합쳐 1년 가까이 쉬지 않고 일하다 보니 나중에는 번아웃 비슷한 증상을 겪기도 했어요. 그래도 며칠 푹 쉬었더니 컨디션이 올라오고 있어요. 한동안 못 했던 달리기도 다시 시작했고요. 아, 운전 연습도 하고 있어요. 예능 <바퀴 달린 집 2>에 출연하게 돼 트레일러를 몰아야 해요.
꾸준히 러닝을 한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하다가 달리기에 재미가 들렸나요? 어떤 사람들은 달리면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느낀다, 희열과 성취감 때문에 뛴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가 않아요. 운동을 썩 좋아하진 않거든요. 무거운 운동 기구를 사용하는 근력 운동은 딱 질색인데, 이 일을 하는 한 운동은 뗄 수 없잖아요. 그래서 달리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나마 할 만하니까.
노력하고 있는 거네요. 이마저 안 하면 나태해지고 게을러질까 봐, 그게 싫어서 뛰게 돼요.
<런 온>에서 연기한 ‘기선겸’은 단거리 육상 선수였고, 촬영을 마친 영화 <보스턴 1947>에서는 마라톤 선수를 연기했어요. 어느 종목이 더 자신 있어요? 마라톤이 저와 잘 맞아요. 어릴 때부터 오래달리기는 남들만큼 했고 영화를 찍으면서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배웠어요.
대회 경험도 있나요? 10킬로미터 코스에 출전해 41분대로 완주했어요. 30분대가 목표예요.
오, 아마추어 기록으로는 수준급인데요. 또 하나의 작품을 완주하기도 했는데 ‘완주’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로 와 닿는지 궁금해요. 돌이켜보면 지구력이 부족했달까, 막판에 힘에 부쳤던 기억이 꽤 있어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수능을 앞두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어요. 그런 경험 때문에 골인 지점까지 흔들리지 않고 잘 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아요.
처음으로 끝까지 잘 해냈다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은 뭐예요? 영화 <변호인>에서 고문으로 피폐해지는 과정을 찍으면서 넋이 나갈 정도로 힘들었는데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해내고 나니까 알겠더라고요. 끝까지 잘 마무리할 줄 알아야 어떤 차이를 만든다는 걸.
<런 온>에서 후배가 기선겸에게 왜 달리냐고, 자기는 선배를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임시완은 누굴 보며 연기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할 수 없어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연기를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대단한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췄어요. 바로 옆에서 보고 느끼면서 정답이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죠. 지금도 그렇고요.
<보스턴 1947>에서는 하정우와 만났고, <비상선언>에는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김남길, 박해준이 함께 출연하죠. <변호인> 개봉 즈음 만났을 때 저한테 이렇게 말했어요. “첫 영화부터 이래도 되는 건가, 앞으로 이런 좋은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괜한 걱정이었네요.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운이 좋았어요.
좋은 작품이 임시완을 찾는다는 건 임시완이 좋은 배우라는 의미이기도 해요.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대로만 연기한다면 이 역할을 오롯이 저만 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전문가는 나’라는 생각으로 끝도 없이 파고들어 고민하고 의견을 내면서 나만의 것을 만들려고 해요. 이건 어느 배우나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최선의 선택도 그만큼 중요할 거예요. 선택의 기준이 명확한 편인가요? 고민이 많이 돼요. 기준의 필요성을 느끼지만 기준이 고착화되면 생각과 시선이 편협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 이런 게 있어요. 선택의 결과와 상관없이 내가 얻는 게 있을지 따지면 결정하기가 조금 더 수월해요.
<런 온>을 통해서는 무엇을 얻게 될 거라 예상했어요? 드디어 로맨틱 코미디 작품이 생기겠구나, 했어요. 2013년에 했던 <연애를 기대해> 이후 로맨틱 코미디는 처음이었어요.
2013년은 아이돌 활동을 병행할 때였죠. 음악적으로 좀 더 잘 풀렸다면 상황이 바뀌었을 거라 생각해요? 네. 노래를 좋아해서 가수로 데뷔했고, 음악에 대한 욕심도 적지 않았어요. 상대적으로 연기에 대한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배우 일에 더 집중하게 됐지, 그만큼 음악적 기회가 주어졌다면 현재 제 상황도 달라졌을 거예요.
인터뷰마다 노래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는데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든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제 이야기라고 하면…. 글로 쓸 수는 있는데 곡 작업은 어려운 것 같아요. 오히려 캐릭터의 감정을 빌려 가사를 쓰는 게 편해요. 그래서 OST 작업에 관심이 많아요. 캐릭터를 통해 경험하는 생경한 정서와 감정을 곡으로 압축시켜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거든요.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는 건, 조금 더 저를 들여다보고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겠죠.
그럼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세 개의 단어를 꼽는다면요? 상경, 데뷔, 연기. 이 세 가지가 가장 중요한 키워드예요. 스물한 살 때 가수가 되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고, 제국의아이들 멤버로 데뷔하지 못했다면 연기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임시완이라는 이름은 이제 어때요? 연습생 때 개명을 했다고 들었거든요. 제 인생에 꽉 박혔어요. 원래 이름은 수컷 웅, 재상 재, 웅재였는데 듣기에도, 부르기에도 딱 붙지 않았어요. 입에서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런 이유에선지 남들이 제 이름을 많이 부르지 않았어요. 시완이라는 좀 더 부드러운 어감의 이름으로 바꾸고 나서 많이 불렸죠.
지금껏 연기한 역할 중에서는 어떤 이름이 제일 와 닿아요? 아무래도 <미생>의 ‘장그래’가 많이 생각나요. 이 작품은 장면, 장면을 다시 찾아보곤 해요. 확실히 지금과는 다른 느낌이 나요. 연기적 부족함은 어쩔 수 없지만 지금 가공할 수 없는 그때의 정서와 느낌이 있어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도 그렇고, 예전 출연 작품을 다시 보면 신선한 자극이 돼요.
그때 임시완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나요? 요령이 많이 부족했어요. 인생이든 연기든. 있는 그대로 부딪히고 무조건 노력만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니 결과는 좋았을지언정 삶의 밸런스가 무너졌어요. <미생>을 하고 나서 이런 방식으로 계속 연기를 하면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오래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뒤로 배역에 깊게 빠지지 않으려고 신경을 써요.
자기 자신과 잘 지내는 편인가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내가 뭘 해야 기분이 좋고, 행복한지를 알아가려고 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취미로 요리를 시작했고 노래도 꾸준히 불러요.
요리가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어줘요? 되게 단순해요. 내 입에도 맛있거나, 다른 사람에게 음식을 대접했는데 맛있다는 얘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요.
요즘 어딜 가나 “잘 지내나요?”라고 안부를 물을 수밖에 없는데 그에 대한 답을 들은 것 같아요. 모두가 어려운 상황을 보내고 있잖아요. 저도 무기력감을 느끼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나아질 거라고 확신해요. 그런 생각으로 잘 지내려고 해요.
해피 엔딩을 꿈꾸나요? 그럼요.
어떤 장면인지 이야기해줄 수 있어요? 음, 훗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내 곁에 있을지 궁금해요. 단순히 숫자의 의미가 아니라 나와 인생을 깊게 교류한 사람이 많이 남아 있으면 좋겠어요.
마라톤의 골인 지점이 떠오르네요. 사람들이 박수 치며 환호하는.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 부지런히 달릴 자신이 있죠? 계속 달리기만 해야 할까요? 가끔은 멈춰 주변을 돌아보기도 해야죠.
최신기사
- 피처 에디터
- 김영재
- 포토그래퍼
- 김선혜
- 스타일리스트
- 최윤걸
- 헤어
- 이재선 at Lee Kyung Min Foret
- 메이크업
- 이지선 at Lee Kyung Min Fo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