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한 흑백 영화 세 편을 소개한다. 배우들의 표정, 목소리, 주변 배경에 집중해서 볼 것.
맬컴과 마리
2021 넷플릭스 신작 프리뷰 영상를 통해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던 <맬컴과 마리>는 맬컴 역의 존 데이비드 워싱턴과 마리 역의 젠데이아 콜먼을 투톱으로 내세웠다. 영화는 두 사람의 상반된 감정 상태에서의 이어지는 대화만으로 전개된다. 차분하다가 격해지기도 한다. 가끔 색이 주위를 산만하게 하는 것과 달리, 105분짜리의 흑백 영화로 다른 것에 시선을 뺏기지 않고, 온전히 이들의 대화에만 집중하게 된다. 영화 속 이날은 영화감독 맬컴의 첫 장편 연출작이 개봉한 날이다. 관객은 물론 평론가에게 걸작이라는 찬사까지 받았다. 그리고 이 최고의 순간을 그의 인연인 마리와 밤새 만끽하고 싶지만 그녀는 어딘가 우울하다. 개봉 직후 연설에서 마리의 이름을 쏙 빼놓고 주변 사람들에게만 감사의 말을 전했던 것. 더군다나 영화는 마리의 이야기를 소재로 썼고, 맬컴의 성공에는 마리가 차지하는 부분도 상당했다. 두 사람의 언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맥 앤 치즈를 먹지만 마카로니와 치즈가 녹아내려 범벅이 된 모습은 마치 이들의 사랑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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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크
데이비드 핀처가 6년 만에 선보인 신작 <맹크>는 다가오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넷플리스 흑백 필름 영화다. 1930년대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배경으로, 미국영화연구소 선정 위대한 미국영화 목록 1위에 꼽힌 걸작 <시민 케인>의 각본을 쓴 허먼 J. 맹키위츠의 집필 과정을 재구성한다. 맹키위츠 역을 맡은 게리 올드만은 배역을 위해 7Kg 가량 살을 찌웠고, 시나리오 작업과는 별개로 술과 도박으로 망가지는 모습마저 대담히 연기했다. 아만다 사이프리도도 매리언 데이비스의 회고록과 인터뷰 등 과거 자료들을 찾아보고, 특유의 브루클린 억양도 연습해 실존 인물에 뼈대를 둔 연기를 했다. 맹키위츠의 비서 리타 알렉산더 역을 맡은 릴리 콜린스 역시 할리우드 외부인으로서의 제3자의 시선과 그 시절 여성들의 시대상을 여실히 드러냈다. 영화 <맹크>는 당시 할리우드의 모습 뿐만 아니라 배역들의 감정, 대사의 의미, 장면에 담긴 복선 등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맹크> 자체로 걸작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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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40
영화 제목은 <위 아 40>이지만 원제를 직역하면 ‘마흔 살 버전(The Forty-Year-Old Version)’이다. 연출과 각본, 주연까지 맡은 라다 블랭크는 극중 나이 마흔을 앞둔 뉴욕 거주 극작가로 등장한다. 영화는 ‘40살엔 성공한 예술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지. 한물간 극작가가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서 다 포기해야 할까? 아니, 내 얘기를 랩으로 해보자. 할 말은 넘쳐나니까’라고 소개한다. ‘곧 마흔’이라는 말을 듣는데 그때마다 ‘아직 3개월이 남았다’라며 어리지는 않지만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태도를 보인다. 백인 제작자에게 자신의 원고를 퇴짜 맞는 등 되는 일 하나 없는 최악의 하루, 라다 블랭크는 거울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즉흥적으로 랩을 뱉어낸다. 여기에 힙합 비트가 얹혀지고 무대 위 관객 앞에서도 서게 된다. 이후 그녀는 40세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를 비롯 백인이 원하는 흑인의 이야기, 작가인 자신의 이야기, 1년 전 세상을 떠난 엄마가 대한 이야기를 가사에 담는다. 보는 내내 이 영화가 꼭 흑백이여야 했던 이유를 알게 된다. <위 아 40>는 나이 마흔의 실패한 극작가, 흑인 여성에 대한 고찰을 유머로서 풀어내며 2020년 선댄스 영화제 전미 드라마 감독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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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디터
- 글 / 주현욱(프리랜서 에디터)
- 사진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