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연예계 관계자들이 변해야 학폭도 변한다

2021.03.09박희아

산업적 특성이라는 이유로 넘어가선 안 될 문제들이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되돌아봐야 할 적기다.

“가해자가 없다고 피해자가 없던 게 되나요?”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에서 학교 폭력을 당한 딸의 말을 믿지 않는 천서진(김소연) 때문에 화가 난 엄마 오윤희(유진)이 소리 높여 외친다. 많은 사람들에게 “재미있다”는 평과 “우스꽝스럽다”는 평을 동시에 듣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나온 한 마디. 살인과 치정, 폭행 등을 거의 죄의식 없이 다루고 있는 드라마에서 뱉어낸 말이라고 치면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최근 들어 연예계에서 큰 문제로 대두된 학교 폭력, 팀 내 왕따 논란 등과 관련해 수많은 소속사가 내놓고 있는 “사실 확인 중이다”, “그런 적 없다”,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의 여러 입장문을 상대로 의도치 않게 권선징악에의 태도를 취한다. 당연히, 오윤희의 딸은 피해자임을 인정받는다.

그런데 현실은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이 드라마의 흐름과도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20년 넘게 연예 산업에 종사해온 A씨는 말한다. “이런 일을 할 만한 끼가 있는 애들이기에 그런 것 아니겠어요?” A씨가 말하는 ‘끼’란, 타인의 앞에 자신을 내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지닌 춤과 노래, 예능인으로서의 자질을 뜻한다. A씨는 여기에 덧붙인다. “유명해졌다고 너무 오래된, 작은 일들까지 언급되면서 연예인들이 오히려 피해를 받고 있어요. 옛날 같으면 그냥 넘어갔을 텐데.” 다른 연예 기획사 직원 B씨는 “팬들이 자꾸 탈퇴를 시키라고 하기 때문에 인정을 하기도 어려워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연예 기획사에서 일하고 있는 C씨도 마찬가지의 입장이다. “물어봐도 기억을 못하더라고요. 너무 옛날 일이라서 증거가 없으니 일단 멤버를 감싸고 아니라는 입장을 내는 게 회사의 일이죠.”

어쩌면 지금 논란의 중심에 선 연예인들은 A씨의 말처럼 자신의 유명세 때문에 도리어 피해를 받고 있다고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지금 논란이 된 연예인들 중에는 “김지우(이달의 소녀 츄)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랬다”며 일명 ‘폭로글’을 지우고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주장을 금세 철회한 사례도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연예인 당사자는 실제로 학교 폭력이나 왕따에 가담한 가해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져도 작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들이 마주한 사안에서 ‘폭력’이란 단어를 둘러싼 본질은 반드시 언급돼야만 한다. B씨처럼 “아무래도 주목받는 애들이다 보니 노는 무리에 껴있었을 테니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탓에 명백히 폭력적인 행동조차 폭력이라고 인지하지 않는 산업의 괴팍한 특수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버리기 때문이다.

A씨의 말은 사실 매우 위험하면서도 자기기만적인 발언이다. “이런 일을 할 만한 끼가 있는 애들”이라는 말은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잘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폭력성이나 자기 과시의 욕구와 연관돼 있다고 인정하는 꼴이 돼버리고, 결과적으로 현재 언급된 연예인들을 가해자로 의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A씨 자신은 결코 도덕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나 또한 과거에 친구를 괴롭혀 봤는데, 나는 연예인이 아니니까 무사한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다 그렇다. 질투 때문에 이제와서 폭로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연예 기획사 직원 D씨도 있다. A씨와 마찬가지로 D씨 또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질투 때문”이라며 연예인을 관리하는 기획사 관계자들의 책임을 회피하는 말을 함으로써 폭력을 두둔하는 사람이 돼버렸다. 동시에 그는 “어린 시절에 벌인 일”이라며 잘못에 대한 지적들을 일시적이고 과장된 것으로 치부하도록 유도한다. 미숙했던 청소년기에 저지른 잘못에는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 학교 폭력과 왕따 논란에서 언급된 연예인들이 모두 가해자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거짓 폭로글에 의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되면 일반인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떠안고 살아가게 된다는 점에서 대중 또한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저질렀던 일 아니냐. 우리 다 그러고 살지 않았냐”고 무조건적으로 연예인들을 두둔하고, ‘노는 애들이 다 연예인하고 그런 거’라는 일부 대중의 편견에 기대서 이해를 바라는 어떤 관계자들의 태도는 이 산업의 동력이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예쁘고, 잘생기고, 노래를 잘하고, 춤을 잘 추고, 연기를 잘하고, 언변이 좋은 사람들을 연예 기획사는 계속 찾아내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이들을 잘 가꿔 대중 앞에 선보이고, 연예인들은 많은 관심 속에서 자신들의 화려한 삶을 광고하듯 뽐낸다. 하지만 이런 특성을 폭력의 당위로 연결 짓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만일 그런 생각을 속으로 숨기고 있는 관계자들이 대부분이고, 스스로의 과거를 되돌아보며 자신들이 자랑스레 칭했던 ‘공인’의 위치를 잃어버릴까 걱정을 하고 있는 연예인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면? 대중은 결국 거대한 부도덕함이 용인되는 산업 속에서 재미와 흥미를 찾는 비이성적이고 속없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러니까, 학교 폭력의 피해자가 피해자로 인정 받은 ‘펜트하우스’를 보면서든, 일련의 사태를 쭉 따라가면서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금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돌아볼 때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자신만의 기준을 재정립할 시간이 왔다는 뜻이다. 지금 당신이 보고 듣고 있는 콘텐츠가 정말 “재미있다”, “매력적이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아수라장이라도, 그 안에 하나의 교훈은 있는 법이다.

    에디터
    글 / 박희아(대중문화 저널리스트)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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