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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디판다 "검은 고양이를 좋아해서요"

2021.03.26GQ

쿤디판다가 치열하고 치밀하게 써내려간 성장과 반격의 서사.

블랙 레더 재킷, 그레이 이너 재킷, 화이트 레이스업 슈즈, 모두 프라다. 스티치 디테일 데님 팬츠, 블러. 체인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체인 브레이슬릿, 페페쥬. 오닉스 링, 아르세닉스.

쇼트 슬리브 프린팅 셔츠, 수기. 화이트 팬츠, 르메테크. 나일론 버킷 햇, 프라다. 체인 네크리스, 페페쥬.

귀엽다는 소리 진짜 싫어해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그런 말했던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귀엽다고 하니까 ‘내가 왜?’ 이런 생각도 들고, 귀엽다는 의미가 대체 뭘까 싶어요. 밥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고양이를 대하듯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데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요? 실제로 막 착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착하게 보이는 것도 별로예요. 또 여리고 약해 보이면 당장은 동정표를 얻을 수 있지만 멀리 보면 자기 약점을 노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약자라고 알리고 다니는 셈이죠.

오리지널리티랄까, 가장 쿤디판다다운 건 뭔가요? 모두가 네모를 향할 때 일부러 세모로 가려는 마음요. 누가 봐도 네모가 맞지만 세모도 한번 보려고 해요. 음악적 스타일이 마이너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쉬운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까.

작년에 선보인 첫 정규 앨범 <가로사옥>을 둘러싸고 많은 해석이 나왔죠. 어렵다는 반응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어쩔 수 없어요. 한 입 거리로 만든 앨범은 아니니까. 디테일한 부분들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유기적인 서사 구조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름의 해석이 필요했고, 처음 듣고 이해되지 않으면 반복해서 들었을 때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저만의 판단일 수 있죠. 하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가사를 뜯어봤을 때 이게 과연 어려운 내용인가 싶어요.

앨범 속지의 아트 워크에 각 트랙을 비주얼로 표현하고 이를 전시로 연계했죠. 그걸 보면서 앨범으로 다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내용이 많구나 생각했어요. 작품이 완성됐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의미를 가지려면 작품 자체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죠. 어떤 음악이든 좋아하고 다 들어보려고 하는 편인데 딱 들으면 가늠이 돼요. 얼마나 고민해서 만들었는지. 아무 주제 없이 랩을 하고 나서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건 허영, 허세에 불과해요. 저도 그런 소리를 듣기 싫어서 죽어라 스토리, 구조에 대한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보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많은 내용이 나온 거죠.

아가일 컷 아웃 니트 톱, 스테판쿡 at matchesfashion. 레더 셔츠, 실버 체인, 모두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블랙 팬츠, 더그레이티스트. 펜던트 네크리스, 아르세닉스.

그래픽 프린팅 재킷, 막시제이. 화이트 셔츠, 엑스페리먼트.

에어 패딩, 파라코즘 스튜디오. 프린팅 셔츠, 수기. 체인 네크리스, 페페쥬.

최근 <가로사옥>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을 수상했어요. 프로듀서 비앙과 만든 앨범 <재건축>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인데, 이제 확실한 인정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재건축>을 통해 커리어가 폈지만 온전히 저의 성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작곡, 편곡에 기여한 부분이 적고 비앙의 음악적 조예가 뛰어났기 때문에 점수를 더 받았을지도 몰라요. <가로사옥>은 한번 마음대로 해보자, 이런 거죠. 피드백을 여럿 받았지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어요. 그 결과물로 상을 받았으니 제가 어떤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표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대로 결론을 짓고 싶지 않아요. 비슷한 근거가 서너 개쯤 생겨야 스스로 좀 더 성장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이 상은 그 근거 중 하나이지 않나 싶어요.

나아갈 방향 정도는 잡았을 것 같은데요. 방향은 알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별자리처럼 큼지막한 점들이 있고 그걸 이으면 어떤 모양이 나올 것 같은데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가로사옥>으로 2017년에 발매한 <쾌락설계도>와 <재건축>을 잇는 3부작의 마침표를 찍었어요. 그동안 시원하게 털어놓은 것 같아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남았나 싶기도 해요. 당분간 자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제 이야기가 종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매듭을 지으려고 했지만 안 됐어요. 스물넷, 스물다섯 살에 인생에 대한 결론을 지을 수 없으니까. <가로사옥>은 정신적 안식처 같은 집을 찾아 떠나는 내적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인데 역설적으로 마무리했어요. 집을 찾아 들어왔지만 결국 다시 집을 찾아 떠난다는. 끝이 없다는 결론을 얻은 거죠.

안식처처럼 느껴지는 게 있다면요? 예전에는 막연하게 삶의 환경, 주위에서 받는 사랑이 그런 존재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냥 제가 안식처인 것 같아요. 누구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공간도 아니고 제가 믿는 저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가로사옥>의 마지막 트랙 에 이런 구절이 있었죠. 어느 안식처를 찾기보단 비좁아도 내가 바로 내가 지은 나의 집이었다는 것을 알아. 본인 이야기를 음악과 그냥 말로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편안한가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나 이면에 관한 내용은 아무래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게 나아요. 작품이라는 성질을 끼얹어서 중화시킬 수 있죠. 그런 게 아니고 평소의 생각, 사상, 감정 등은 말로 하는 게 편해요. 캐주얼한 주제를 남들과 다르게 쓰기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자신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깊게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요? 내가 가진 문제를 성찰한다고 해서 그게 해결되거나 사라지진 않아요. 내 방에 돌덩이가 있다고 치면 자아 성찰은 그 돌덩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봐주는 거지, 옮기는 행동은 아니니까. 다행이라면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의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쾌락설계도>를 만들었을 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게 있겠죠?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변화가 있어요. 일단 성격이 둥글둥글해졌어요. 예전에는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부터 했어요. 나한테 가식을 떨고 있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 이랬죠.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를 봐도 지금과는 완전 딴판이었어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죠. 외적인 부분은, <쇼미더머니5>에서 일찍 탈락한 뒤 <쾌락설계도>를 통해 다시 나가지 않겠다고 피력했지만 지난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뒀고 팬도 많이 늘었어요.

4년 만에 다시 참가한 <쇼미더머니9>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했어요. 어땠어요? 우승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만족해요. 목표는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거였어요. 물론 우승할 각오로 하지 않았다면 그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죠.

다시 참가할 의향도 있나요? 아뇨. 더 보여줄 게 없어요. 사람들도 같은 이미지를 두 번 이상 보면 금방 싫증이 날 거예요.

지금이 전환점일 것 같아요.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게임으로 비유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복수, 극복, 최고가 되는 게 기본 설정으로 쿤디판다의 이야기인지, 게임 캐릭터의 이야기인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콘셉트예요. 힙한 신을 배경으로 자신의 실력을 무기 삼아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고요. 속편이 나올 수 있게끔 엔딩도 정했어요. 캐릭터만 잘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 캐릭터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검은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나 비화는 없어요. 평소 검은 고양이를 좋아해서요.

쿤디판다도 어릴 적에 상상해서 만들었던 캐릭터의 이름이죠? 처음에는 랩네임으로 쓴 걸 후회했지만 <재건축> 이후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한 랩네임도 없고, ‘쿤디’든 ‘판다’든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기 쉽더라고요. 탁월한 작명이었죠.

쿤디판다가 꿈꾸는 판타지는 무엇인가요? 평생 창작을 하는 거죠. 꼭 랩이 아니더라도 뭐가 됐든 세상에 최대한 많은 것을 남기고 싶어요.

그럼 복현이라는 한 사람으로서는요? 곱게 늙고 싶어요. 그러려면 자신의 시간대나 위치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실력이 부족했던 어린 친구들이 나를 앞서가기 시작한다면,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더 노력해야 해요.

랩을 하는 쿤디판다와 요리를 즐기고 게임, 만화를 좋아하는 복현 씨는 어떻게 달라요? 복현은 포기가 허용돼요. 공부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만둬도 괜찮아요. 인간관계에 질리면 잠시 탈출해도 돼요. 그런데 쿤디판다는 망가지거나 무너지면 안 돼요. 외부의 힘에 의해 쓰러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쿤디판다는 그냥, 완벽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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