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디판다가 치열하고 치밀하게 써내려간 성장과 반격의 서사.
귀엽다는 소리 진짜 싫어해요? 인스타그램 라이브 방송에서 그런 말했던데. 못 견딜 정도는 아닌데 사람들이 자꾸 귀엽다고 하니까 ‘내가 왜?’ 이런 생각도 들고, 귀엽다는 의미가 대체 뭘까 싶어요. 밥 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보내는 고양이를 대하듯 그렇게 말하는 거라면 마냥 좋지만은 않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길 원하는데요? 착하거나 여린 사람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왜요? 실제로 막 착하지 않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착하게 보이는 것도 별로예요. 또 여리고 약해 보이면 당장은 동정표를 얻을 수 있지만 멀리 보면 자기 약점을 노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약자라고 알리고 다니는 셈이죠.
오리지널리티랄까, 가장 쿤디판다다운 건 뭔가요? 모두가 네모를 향할 때 일부러 세모로 가려는 마음요. 누가 봐도 네모가 맞지만 세모도 한번 보려고 해요. 음악적 스타일이 마이너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쉬운 음악은 만들고 싶지 않아요. 그건 누구나 만들 수 있으니까.
작년에 선보인 첫 정규 앨범 <가로사옥>을 둘러싸고 많은 해석이 나왔죠. 어렵다는 반응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어쩔 수 없어요. 한 입 거리로 만든 앨범은 아니니까. 디테일한 부분들을 하나로 연결하기 위해 유기적인 서사 구조를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나름의 해석이 필요했고, 처음 듣고 이해되지 않으면 반복해서 들었을 때 새로운 재미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물론 저만의 판단일 수 있죠. 하지만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가사를 뜯어봤을 때 이게 과연 어려운 내용인가 싶어요.
앨범 속지의 아트 워크에 각 트랙을 비주얼로 표현하고 이를 전시로 연계했죠. 그걸 보면서 앨범으로 다 소화할 수 없을 정도로 디테일한 내용이 많구나 생각했어요. 작품이 완성됐기 때문에 의미를 갖는다는 건 말도 안 돼요. 의미를 가지려면 작품 자체에 의미가 담겨 있어야죠. 어떤 음악이든 좋아하고 다 들어보려고 하는 편인데 딱 들으면 가늠이 돼요. 얼마나 고민해서 만들었는지. 아무 주제 없이 랩을 하고 나서 이게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하는 건 허영, 허세에 불과해요. 저도 그런 소리를 듣기 싫어서 죽어라 스토리, 구조에 대한 생각을 해요. 그러다 보니까 보조적인 콘텐츠를 만들어야 할 정도로 많은 내용이 나온 거죠.
최근 <가로사옥>이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랩&힙합 음반 부문을 수상했어요. 프로듀서 비앙과 만든 앨범 <재건축>에 이어 두 번째 수상인데, 이제 확실한 인정을 받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재건축>을 통해 커리어가 폈지만 온전히 저의 성과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작곡, 편곡에 기여한 부분이 적고 비앙의 음악적 조예가 뛰어났기 때문에 점수를 더 받았을지도 몰라요. <가로사옥>은 한번 마음대로 해보자, 이런 거죠. 피드백을 여럿 받았지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만들었어요. 그 결과물로 상을 받았으니 제가 어떤 수준에 도달했다는 지표가 될 수 있겠죠. 하지만 이대로 결론을 짓고 싶지 않아요. 비슷한 근거가 서너 개쯤 생겨야 스스로 좀 더 성장했다고 느낄 것 같아요. 이 상은 그 근거 중 하나이지 않나 싶어요.
나아갈 방향 정도는 잡았을 것 같은데요. 방향은 알지만 방향을 잡지 못했다고 할 수 있으려나? 별자리처럼 큼지막한 점들이 있고 그걸 이으면 어떤 모양이 나올 것 같은데 무엇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앞으로의 작업을 통해 알아가야 할 것 같아요.
<가로사옥>으로 2017년에 발매한 <쾌락설계도>와 <재건축>을 잇는 3부작의 마침표를 찍었어요. 그동안 시원하게 털어놓은 것 같아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더 남았나 싶기도 해요. 당분간 자전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요. 제 이야기가 종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매듭을 지으려고 했지만 안 됐어요. 스물넷, 스물다섯 살에 인생에 대한 결론을 지을 수 없으니까. <가로사옥>은 정신적 안식처 같은 집을 찾아 떠나는 내적인 여행에 관한 이야기인데 역설적으로 마무리했어요. 집을 찾아 들어왔지만 결국 다시 집을 찾아 떠난다는. 끝이 없다는 결론을 얻은 거죠.
안식처처럼 느껴지는 게 있다면요? 예전에는 막연하게 삶의 환경, 주위에서 받는 사랑이 그런 존재인 줄 알았는데 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냥 제가 안식처인 것 같아요. 누구라고 할 수도 없고, 어떤 공간도 아니고 제가 믿는 저라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가로사옥>의 마지막 트랙 ‘집’에 이런 구절이 있었죠. “어느 안식처를 찾기보단 비좁아도 내가 바로 내가 지은 나의 집이었다는 것을 알아”. 본인 이야기를 음악과 그냥 말로 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편안한가요?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나 이면에 관한 내용은 아무래도 음악으로 표현하는 게 나아요. 작품이라는 성질을 끼얹어서 중화시킬 수 있죠. 그런 게 아니고 평소의 생각, 사상, 감정 등은 말로 하는 게 편해요. 캐주얼한 주제를 남들과 다르게 쓰기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자신의 부족하고 부끄러운 부분까지 깊게 들여다보고 사색하는 것은 어떤 경험인가요? 내가 가진 문제를 성찰한다고 해서 그게 해결되거나 사라지진 않아요. 내 방에 돌덩이가 있다고 치면 자아 성찰은 그 돌덩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봐주는 거지, 옮기는 행동은 아니니까. 다행이라면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하고, 스스로 어떤 상태인지 의식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건강하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쾌락설계도>를 만들었을 때와 지금 크게 달라진 게 있겠죠? 내적인 변화와 외적인 변화가 있어요. 일단 성격이 둥글둥글해졌어요. 예전에는 잘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경계부터 했어요. 나한테 가식을 떨고 있다,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말자, 이랬죠. 친구들과 나눈 메시지를 봐도 지금과는 완전 딴판이었어요. 뾰족하게 날이 서 있었죠. 외적인 부분은, <쇼미더머니5>에서 일찍 탈락한 뒤 <쾌락설계도>를 통해 다시 나가지 않겠다고 피력했지만 지난 시즌에 좋은 성적을 거뒀고 팬도 많이 늘었어요.
4년 만에 다시 참가한 <쇼미더머니9>에서 세미파이널까지 진출했어요. 어땠어요? 우승을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만족해요. 목표는 최대한 높이 올라가는 거였어요. 물론 우승할 각오로 하지 않았다면 그때까지 살아남지도 못했겠죠.
다시 참가할 의향도 있나요? 아뇨. 더 보여줄 게 없어요. 사람들도 같은 이미지를 두 번 이상 보면 금방 싫증이 날 거예요.
지금이 전환점일 것 같아요. 앨범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는데 어떤 이야기인지 말해줄 수 있어요? 게임으로 비유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어요. 복수, 극복, 최고가 되는 게 기본 설정으로 쿤디판다의 이야기인지, 게임 캐릭터의 이야기인 건지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 콘셉트예요. 힙한 신을 배경으로 자신의 실력을 무기 삼아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도 있고요. 속편이 나올 수 있게끔 엔딩도 정했어요. 캐릭터만 잘 만들면 될 것 같아요.
그 캐릭터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어요. 검은 고양이 캐릭터를 만들고 있어요. 특별한 의미나 비화는 없어요. 평소 검은 고양이를 좋아해서요.
쿤디판다도 어릴 적에 상상해서 만들었던 캐릭터의 이름이죠? 처음에는 랩네임으로 쓴 걸 후회했지만 <재건축> 이후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저와 비슷한 랩네임도 없고, ‘쿤디’든 ‘판다’든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하기 쉽더라고요. 탁월한 작명이었죠.
쿤디판다가 꿈꾸는 판타지는 무엇인가요? 평생 창작을 하는 거죠. 꼭 랩이 아니더라도 뭐가 됐든 세상에 최대한 많은 것을 남기고 싶어요.
그럼 복현이라는 한 사람으로서는요? 곱게 늙고 싶어요. 그러려면 자신의 시간대나 위치를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실력이 부족했던 어린 친구들이 나를 앞서가기 시작한다면,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더 노력해야 해요.
랩을 하는 쿤디판다와 요리를 즐기고 게임, 만화를 좋아하는 복현 씨는 어떻게 달라요? 복현은 포기가 허용돼요. 공부가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되고, 좋아하는 그림을 그만둬도 괜찮아요. 인간관계에 질리면 잠시 탈출해도 돼요. 그런데 쿤디판다는 망가지거나 무너지면 안 돼요. 외부의 힘에 의해 쓰러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너지면 안 된다는 의미예요. 지금껏 음악을 하면서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쿤디판다는 그냥, 완벽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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