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의 시각적인 인상은 고요함에 가깝다. 한쪽 벽면엔 하나하나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한 작은 액자들이 즐비하고 바닥엔 커다란 색종이를 오리다 만 것 같은 오브제들이 놓여 있다. 그 주변을 소리들이 메꾼다. 전시장을 채우는 여러 목소리와 언어들, 새 소리와 악기의 음이 침묵과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작품은 사운드 설치이기에 앞서 시 낭송회나 콘서트의 리허설을 연상하게 한다. 시각적 점유가 아닌 연약함과 불안정함이 살며시 깃들어 있다. 런던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박주연 작가의 개인전 <언어 깃털 Other Feathers>은 현대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청소년 시절부터 타국에서 살면서 겪는 개인적인 경험들, 그리고 동시대 시각문화에 대한 반성의 결과물들을 절제된 시적 표현으로 제시한다.
어긋남과 거리감, 그리고 그 모두의 합체인 낯섦 사이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의미에 도달할 수 있을까? 소리나 입 모양, 관습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모국어와 달리, 소통과 지식을 위해 통사의 문법을 배우고 받아쓰기의 훈련과정을 거쳐 습득하는 매개언어는 자신의 것이 아닌 이상 영원히 절룩거리고 더듬는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언어의 위계와 잠재적인 폭력성은 비단 외국어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주체를 드러내고 소통하는데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모든 언어에 내재된 부조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녀는 전시 타이틀을 <언어 깃털>로 잡았다. <언어 깃털>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루타르크의 짧은 이야기 중 나이팅게일의 깃털과 목소리에 관한 일화에서 영감을 받은 것인데, 잠재한 폭력성을 지닌 언어의 의미를 제거하고 남겨진 목소리에 주목한다.
그 중 전시 공간을 가득 채우는 〈그녀가 노래를 말할 때 When a Nightingale Speaks of a Song〉(2021) 작품은 여섯 개의 다중 채널로 구성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으로 나이팅게일 새와 드러나지 않는 그녀 에코를 교차해서 잔존하는 목소리들을 부각시키고자 했다고. 작품은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런던에서 봉쇄 기간 중에 작가가 발코니에서 들은 새소리와 멀리 아테네에 사는 그리스인 여성 성악가 네 명이 영어, 그리스어, 한국어로 작가의 글을 낭독하는 소리, 서울에서 악기의 440HZ의 표준음을 맞추려고 미세하게 피아노를 조율하는 소리, 그리고 침묵에서 영감을 받았다. 일종의 시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글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에 대한 사유와 에코의 공간을 펼쳐 보이지만 말은 더듬는 듯하고 때로는 삭제되기도 한다. 중얼거리는 소리일 뿐, 논리적인 문장으로 자리잡지 못한 목소리들은 그리스인들의 불완전한 영어와 한국어 발음으로 인해 더욱 강조되고 의미로부터 더욱 멀어진다. 영어의 대부분이 그리스어에서 유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인들에게 낯선 외국어로 회귀하는 상황은 언어에 있어서 의미 못지 않게 발음이 차별의 기준이 되는 잔인한 역사를 상기시킨다.
이렇듯 작가는 소리의 영역에서도 엄연히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규율을 지적하고, 현실에 반하는 모순된 사회 규정도 되짚는다. 팬데믹 상황에서 새롭게 생겨난 사회적 규칙의 임의성과 모순, 좌절과 실패, 또 다른 생성의 가능성으로 나아가는 출구의 이야기는 6채널 사운드 인스톨레이션을 비롯해서 드로잉과 글쓰기의 경계에 있는 평면작업, 조각 오브제 등 다섯 점의 신작으로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사진
- 김상태 © 에르메스 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