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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의 실패가 담긴 무엇

2021.05.20전희란

실패했다, 고로 존재한다 말하는 셰프들의 실패가 담긴 무엇.

오골계 밍글스, 강민구

실패? 당연히 좋은 인상은 아니죠. 실패 하니 지금 번뜩 떠오르는 게 하나 있네요. 오골계. 1일 1닭, 1인 1닭 할 정도로 한국은 닭을 사랑하는 민족이잖아요. 닭은 튀겨먹고 삶아먹고 구워먹고 별의별 방법으로 식탁에 놓이죠. 대개가 대형 양계장에서 대량 사육된 닭들이에요. 상상만 해도 숨 막히는 그 비좁은 닭장 말이에요. 토종닭, 오골계는 달라요. 그런데 이 녀석들 백숙 말고 즐기는 방법 퍼뜩 떠오르세요? 그게 저의 과제였어요. 오골계를 다른 길로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단 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사실 오골계는 다루기 굉장히 까다로운 녀석이에요. 육질이 터프하고 향이 강하죠. 누군가는 내가 오골계 먹으려고 파인다이닝까지 왔어?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오골계 메뉴 수정만 몇 번을 했더라…. 지금 기억나는 것만 수차례니까 그동안 주방에서 얼마나 실수, 실패란 말 외쳤을지 상상이 되죠? 실패는 참 얼굴을 당장 드러내진 않아요. 목 잘린 채 엎어진 오골계가 접시 위에서 어떤 근사한 얼굴을 보여줄지 누가 알아요?

MSG 모수, 안성재

그것만은 확실해요. 저희가 하는 것 중 99.9퍼센트는 실패예요. 0.1퍼센트만이 접시에 담겨 주방을 나서는 것뿐. 모수의 비전은 맛있는 요리 그 너머에 있어요. 서울에서 가장 맛있는 레스토랑이 되겠다? 아니요, 결코. 한 도시에서 10명에게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을 물었을 때 전부 다른 10가지 답이 나오면 진정 미식으로 성숙한 도시가 아닐까 해요. 한식의 세계화? 웃기는 소리. 김치, 간장을 더 맛있게 만들겠다? 아이 돈 띵 소. 요즘 저희는 모수만의 MSG를 연구하는 중이에요. 대기업의 대규모 자본력, 연구원 없이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감칠맛은 아주 다양한 곳에 숨 쉬고 있어요. 고기, 생선, 조개, 버섯, 시금치, 토마토 등등 아주 다양한 곳에 숨은 감칠맛을 어떻게 뽑아내서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이참에 각 식재료에 맞게 조합해 쓸 수 있는 조미료를 만들어보자 했죠. 각국에 살고 있는 균이 달라서 발효 방법도 다 다르니 실험을 계속할 수밖에. 실험실이 따로 있냐고요? 아니 그냥 저희 주방에서요.

쌀 그리고 잡곡 베이스 이즈 나이스, 장진아

고기 없이 되겠어? 채소가 주인공인 레스토랑을 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걱정했어요. 어쩌면 실패는 예견된 거였죠. 처음 한두 달은 혹독할 정도로 손님이 없었어요. 당장 홍보에 도움이 된다 해도 채식주의, 비건, 매크로비오틱 같은 의식적인 단어로 포장되는 걸 원치 않았어요. 채소는 그 자체로 충분히 맛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 시간의 여백을 채소 각각의 수분과 당분, 질감과 향미를 최대한 살리는 방법을 고민하면서 채웠어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실패는 쌀, 그리고 잡곡의 배합. 사실 저는 오랫동안 레스토랑 기획, 디렉팅 일을 해왔을 뿐 셰프가 아니에요. 제가 요리하는 방식은 이러해요. 우선 상상의 나래를 마구 펼쳐요. 상상 속에서 재료를 혼합한 뒤 그에 맞는 조리 방법을 고안해 완성하죠. 쌀에다 수많은 곡물을 혼합하면서 원하는 찰기, 식감을 내려고 몇 번이나 다시, 다시를 외쳤던지. 왜냐고요? 손님들에게 “밥만 먹어도 맛있다”는 그 한마디를 듣고 싶어서요.

생면 오르조, 김호윤

주황색 신호등 같은 거죠. 지금 액셀을 밟을 것인가 기다렸다가 안전하게 갈 것인가? 하지만 어차피 실패란 건 안 하려고 해도 따라오기 마련이에요. 잔잔하게 실패하고 큰 실수를 피하는 편이 낫지 않아요? 그리고 중요한 건 실패한 뒤예요. 새로운 레시피를 만드는 건 실험과 같으니까. 합리적인 근거로 가설을 세우고 결론 도출에서 오차 범위를 줄이는 것. 내가 왜 실패했는지 기억하는 것. 생면은 늘 저를 동하게 하는 재료예요. 완벽한 면에 대한 집착이 어제의 성공을 자꾸 오늘의 실패로 뒤집곤 하죠. 오르조의 생면은 만족스럽지만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어요. 뻔한 말이지만 요리사에겐 완벽이란 없으니까요. 완벽한 면? 툭툭 끊기면서도 아주 미묘하게 쫄깃한 느낌을 지니고 있어야 하고, 소스를 충분히 흡수하면서도 쉽게 붇지 않는 형태여야 하고, 씹을 때 고소함과 함께 밀가루 특유의 단맛이 밀려들어야 하고, 면 혼자 튀지 않고 소스의 장점 또한 잘 살려주어야 하고, 그리고 또…. 우리가 왜 아직 배고픈지 알겠죠?

파에야 레에스티우, 이새봄

실패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저희도 마찬가지. 레에스티우의 파에야 육수엔 그동안 육수만큼 흘린 짠 눈물의 역사가 서려 있는데, 지금도 실패는 과정 중이에요. 육수가 망해서 나무 주걱으로 팬을 치면서 이 맛이 아니야, 틀렸어, 하며 엉엉 울다 매니저한테 들킨 적도 있어요. 하필 레스토랑 오픈이 코로나19와 맞물려서 선도 떨어진 육수를 하수구에 자주 흘려보내기도 했죠. 매일 손이 벌개질 때까지 새우 몇백 마리씩 손질하고, 토마토를 수백 개씩 강판에 갈아도 보고, 구워도 보면서 여러 버전의 육수를 시도해봤어요. 불에 새까맣게 탄 주걱을 보면 그동안의 망한 역사가 화투장처럼 촥 펼쳐지는 느낌이라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가도, 주방 너머로 팬을 벅벅 긁어 남은 파에야까지 그러모아 씹어 삼키는 손님들을 보면 마음이 풀어져요. 실패가 그토록 미웠던 건 시간이 덧없이 가는 것 같아서였는데, 어차피 시간은 덧없이 흐르는 거라….

칠리 오일, 흑초 베이스의 홍콩식 소스 퐆, 오준탁

실패가 뭐 별거예요? 저희는 매일 하는 거라 별로 감흥 없는데…. 실패작? 하나 생각나는 게 있긴 해요. 칠리 오일과 흑초 베이스의 홍콩식 소스. 원래는 돼지고기 요리에 사용하려고 만들었는데, 다 만들고 보니 소스 단독으로는 만족스러운데 메인 재료로 준비한 돼지고기와의 합이 영 꽝인 거예요. 망했네. 냉장고에 처박아두곤 한동안 잊고 있었죠. 그러다 중요한 손님에게 특별한 요리를 새롭게 고안해낼 일이 생겼어요. 메인 재료 생선 카마구이는 완성했고, 여기다 어떤 소스를 더할까? 손을 쓱쓱 비비는데 순간 그 새빨간 오일이 뇌를 쓱 스쳐 가는 거예요. 홀린 듯이 냉장고에서 그 소스를 찾아서 휙 둘러봤는데 이게 썩 괜찮더라고요. 됐다. 손님도 만족했어요. 그리고 이제는 이걸 스페셜 메뉴로 넣으려고 준비 중이에요. 마치 예선 탈락했다가 패자 부활전으로 올라와 1등하는 그런 기분 알죠? 그래서 실패란 말 별로 감흥 없어요. 냉장고에 패자 부활전 기다리는 탈락자들이 수두룩해서.

    피처 에디터
    전희란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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