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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밍 포인트

2021.05.20GQ

난 네게 반했어.

Roof Line ― 엉뚱하게도 스포츠카의 매력은 속도도, 출력도 아닌, 넓은 보닛 뒤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루프 라인이 으뜸이라고 믿어왔다. 초를 다투는 레이스에서는 결국 기체에 팽팽하게 맞서기 보다 순응하듯 유려하게 흐르는 루프 라인을 가질수록 돌진하며 달려드는 바람을 넘겨내기 수월할 테니까. 뭐 아무튼 CLA 45 S와 같은 영리한 곡선을 만날 때면 늘 드는 생각이었다. 참, 영국 출신의 카레이서이자 엔지니어인 켄 마일스 역시 속도(엔진)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다고 했지. 그는 차체를 뜯고 다시 붙이기를 반복했다는데, 무게와 저항에 민감하게 반응한 탓이다. 이쯤에서 그가 영화 <포드v페라리> 속 크리스찬 베일이 연기한 그 대쪽 같은 인물이라고 고백하면, 앞서 밝힌 엉뚱한 믿음이 꽤 그럴싸하게 보이려나?

Head Lamp ― BMW 5시리즈가 처음 파란색 렌즈를 끼고 나타났을 때를 기억한다. 나란한 전시 차들 사이에서 돋보이는 건 차갑게 빛나고 있는 키드니 그릴도, 입체적인 리어 램프도 아니었다. (버니나 그레이로 불리는)그레이 톤 보닛 아래로 가늘고 맵시 있게 치켜 뜬 파란색 헤드램프가 그날 BMW 5시리즈의 존재였고, 전부였다. 그리고 그 모습은 톰 브라운의 수트처럼 분명한 상징처럼 보이다가도, 토즈의 파란색 스웨이드 로퍼처럼 한 번쯤 시도해보고 싶은 귀여운 욕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무튼. 5시리즈의 커다란 몸집을 훑어보다, 아름다운 포인트 하나 콕 짚어내서는 이런저런 재밌는 상 상들을 뜨개질하듯 이어갔다. 보닛을 열어젖히고 이런저런 수치들을 줄줄이 이야기하는 것보단 왠지 나을 것 같아서.

Rear Spoiler ― 차에 올라 막 시동을 켰을 때, 바리톤처럼 점잖게 울리는 엔진음이 듣기 좋아서(밖에서도 들어보자 싶어), 냉큼 문을 열고 머플러 쪽으로 돌아 나오다가 이 신선한 디자인과 눈이 맞았다. 선명한 리어 램프 위로 처마처럼 뻗어 앉은 수평한 스포일러는 보는 위치에 따라 DBX의 뒷모습을 슬쩍 슬쩍 바꿔 보였는데, 다른 곳보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봤을 때 웅장함이 더했다. DBX의 리어 디자인이 흥미로운 건 직선과 곡선이 함께 연결되기 때문이다. 곡선이 시작되는 C필러를 따라 혈관처럼 이어진 붉은색 리어 램프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다 보면, 선은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덕분에 디자인은 뒤에서 툭, 하고 끊기지 않고 다시 차를 감싸듯이 연속돼 돌아 나오는데 그런 연속성이 DBX의 백미다.

Rear Side View ― 투명하게 빛나는 블랙 다이아몬드 컷 휠이 타이어의 존재를 감쪽같이 감췄다. 단단하게 균형 잡힌 19인치 휠 위로는 S60의 상체를 감싸 안은 펜더 패널이 육중한 차체를 견인할 준비를 마쳤다. 그와 반대로 휠 안쪽으로 섬뜩하게 번쩍이는 브레이크 디스크와 캘리퍼는 언제든지 달리는 네 바퀴를 잡아 멈출 기세다. 제 위치에서 각자의 준비를 마친 믿음직한 모습이 곧 가장 ‘볼보’다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안전’을 제1의 가치로 두는 볼보의 노력은 기능과 디자인을 구별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리어 라인 아래로 캐릭터 라인이 평행하게 따라붙다가, 다시 스포일러로 이어진다. 따로 또 같이, 새롭게 시작되고 끝나는 지점이 더 있을 것 같아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천천히 한참을 빙 둘러봤다.

Big Front ― 다들 네비게이터의 커다란 몸집에 집중할 때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뻔히 드러나 보이는 크기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보단 그 커다란 몸에 뭘 입고, 둘렀는지에 대해 이야기 하는 편이 더 흥미로울 것 같아서 당장 번쩍이는 것들로 눈을 옮겼다. 그러고는 네비게이터를 컴컴한 터널에 세워두고 조명을 모조리 끄면, 커다란 몸은 여전히 존재감을 드러내 보일 수 있을까, 싶어 정말 꺼봤다. 순간 레슬링 선수의 두꺼운 목을 닮은 커다란 라디에이터 그릴이 번쩍 빛났다. 그 옆으로 물소의 네모난 눈을 닮은 헤드램프가 묵직하게 빛을 들어 퍼뜨렸다. 잠시 존재감을 숨겼던 커다랗고 푸른 몸체가 그렇게 다시 드러난 순간, 집중하지 않아도, 칠흙 같은 어둠에 꽁꽁 숨겨도 절로 드러나는 존재가 있음을 깨달았다.

    에디터
    신기호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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