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기도했다. 열심히 간절히 기도하며 살았다.’ 돌아보니 그러하다는 엄태구에게 무엇을 그리 바랐는지는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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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뮌. 네크리스, 프리모떼. 그린 레더 글러브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갑자기 비가 쏟아지네요. 비오는 날씨 어때요?
TG 싫습니다.
GQ 왜 싫습니까?
TG 이따 밖에 나가야 하는데 비 오면…, 차갑잖아요.
GQ 아주 현실적인 이유군요.
TG 사실 크게 상관없습니다. 지금은 맑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GQ 엄태구 씨와의 대화를 활자로 옮길 때는 이 지문을 꼭 적어야겠어요. ‘수줍어하면서도 분명하게.’
TG 아학학학, 아닙니다.
GQ 새 작품에 집중하고 싶어서 이번 인터뷰 진행 여부를 하루만 고민해보겠다고 하셨죠.
TG 죄송합니다.
GQ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절대 아니에요. 일정이 바빠서, 시간이 없어서, 그런 대개의 이유보다 “작품에 집중하고 싶다”는 말이 순수하게 느껴졌어요.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배우가 안팎으로 무척 정제하는가 보다 싶기도 했고요.
TG 그렇게 하는 게 엄청난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에요. 사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원래도 외출을 잘 안 하긴 하지만 웬만하면 작품 할 때는 좀 더 자제하려는 편입니다. 그렇다고 이렇게 하루 화보 촬영하는 게 절대 (작품) 촬영에 지장을 주지는 않거든요. 그래도 그렇게나마라도 더 잘해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 같습니다.
GQ 더군다나 이번 신작 <홈타운>에서는 무차별 테러를 저지르고 외부와 소통을 단절한 무기수 역할이라면서요. 심리적으로 괜찮으려나, 괜히 밖으로 끄집어내나 우려스러웠어요.
TG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 작품이 특히 어렵긴 해요. 캐릭터가.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렵지 않은 캐릭터가 없었고, 이번에도 똑같이 어렵겠지만 다른 색깔로 어렵겠구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홈타운>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감사한 건 배우분들과 현장 스태프분들, 감독님이 다 너무 좋으셔서 진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라는 생각으로 하고 있어요.
GQ 박현석 감독님이시죠? KBS 드라마 스페셜 <아트>(2012)라는 단막극을 통해서 엄태구 배우를 처음 주연으로 발탁한.
TG 맞습니다. 주연으로는 <아트>가 처음이지만 그전에도 감독님과 많이 해서, 제가 저희 형(엄태화감독)이랑 한 작품 수와 감독님과 한 작품 수가 거의 비슷할 거예요. 당시 오디션에 많이 떨어질 때였는데 믿고 캐스팅해주시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셨던 되게 감사한 감독님이시거든요. 이번에 다시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좋습니다.
GQ 9년 사이 많은 게 달라졌죠?
TG 달라진 건 그때는 20대였는데 지금은…, 하하하. 달라졌다기보다는, 모르겠습니다. 이번 현장을 예로 들면 감독님은 어떠실지 모르겠는데 저는 더 돈독해진 느낌이거든요. 그때는 긴장만 많이 했는데, 물론 지금도 많이 하지만, 감독님과 이렇게 해볼까요 얘기도 많이 하고 밥도 같이 먹고 그러면서, 그냥 너무 좋아요. 감독님이 원래 파이팅이 넘쳐서 여전히 현장에서 힘 얻고 참 좋습니다.
GQ “독립영화를 해온 열정이 마음에 들었다”고, 감독님은 당시 캐스팅에 대해 그러시더라고요.
TG 과찬이십니다. 감독님은 그 전 작품들에서 단역 할 때도 항상 존중해주셨어요. 지금도 한결같으세요. <아트> 촬영할 때 그렇게 많은 대사를 해본 적이 없어서 긴장을 너무 많이 했습니다. 대본을 거의 머리맡에 두고 살았던…. 감독님이랑도 최근에 <아트> 얘기를 했어요. 감독님은 “그거 아쉽지 않냐, 다시 하면 나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시고, 저도 저대로 “다시 하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농담 반 진담 반 식으로 했어요. 그럴 기회가 있으면 재밌을 것 같단 생각이 듭니다.
GQ 배우 엄태구에게 ‘잘한다’의 기준은 뭐예요?
TG 좀 더…, 좀 더…, 재밌게 놀아보는 것? 사실 이 마음은 매 작품마다 느끼는 건데 지나고 나면 더 잘할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아트>는 10년 된 작품이니까 10년 동안 겪은 것들이 합쳐지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GQ 연륜이 묻어나려나요.
TG 연륜까지는 아닌 게 막상 또 내일 촬영이라고 하면 똑같이 긴장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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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모스키노. 톱, 뮌. 네크리스, 프리모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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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팬츠, 팔찌, 모두 디올 맨. 키링,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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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셔츠, 스카프, 모두 김서룡 옴므. 팬츠, 보스 맨. 로퍼, 쥬세페 자노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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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킷, 팬츠, 모두 김서룡 옴므. 셔츠, 베르사체 at yoox.com. 스니커즈, 컨버스.
GQ 연기에 발을 들인 계기는 고등학교 자퇴 후 친구가 연기를 배워보자 권유해서인 것으로 알아요.
TG 맞습니다. 친구가 더 정확히 기억하고 있더라고요. 본인이 연기하자고 한 순간을. “도서관 계단에서 내가 너한테 40분 동안 얘기했다.” 들으니까 얼핏 기억나더라고요.
GQ 그보다 앞선 시점의 선택부터 궁금했어요. 엄태구 학생은 왜 고등학교를 자퇴했을까? 왜 본가인 안산에서 최소 4시간은 가야 하는 진주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를 택했을까?
TG 그때가 열다섯인가 열여섯인가. 중학교 3학년이면 열여섯이네요. 열여섯…. 되게 이상하네요. 그때의 저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GQ 열여섯 살의 엄태구 학생 좀 불러와주세요.
TG 하하하하. 일단 그런 거 있잖아요. 고등학생들이 중학교 수업에 들어와서 “저희 학교 오세요” 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때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 학생분이 제복을 입고 들어왔는데 그게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월급을 준다고도했고…. (검지로 관자놀이를 긁적이며) 학교생활이 재미없었나? 어디론가 가고 싶었나?
GQ 월급을 받아서는 어디에 쓰고 싶었어요?
TG 그냥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월급이 10만 원이었고 휴가가 한 달인가 두 달에 한 번인가 있었는데 안산까지 오가는 차비만 해도 많이 들었죠. 그래도 당시 제게는 1만 원도 큰돈이어서, 딱히 어디 쓰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했습니다.
GQ 10대에 엄마 아빠 품을 벗어나서, 게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타지에서 생활하기를 결심한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TG 하필이면 그때 ‘어머님께’ 노래가 나와서.
GQ god의 ‘어머님께’?
TG 네, 참 슬펐습니다. 아직까지 기억이 납니다. 그때 처음 느꼈어요. 부모님과 떨어진다는 것에 대해서. 그런 걱정은 전혀 안 하고 갔거든요. 어 근데, 이게 완전 진짜 다르더라고요. 그때 좀 놀랐죠. 이게 이렇게…, 이렇게 되는구나. 그때가 명확히 기억나요. 저기 멀리 부모님이 가시는 게 보이고 ‘어? 진짜 가네?’ 싶던. ‘나 혼자 여기 있으라고?!’
GQ 본인이 선택해놓고.
TG 저는 당차게 선택한 건데 깜짝 놀랐죠.
GQ 학교를 그만둔 건 그 영향인가요?
TG 졸업하면 7년 동안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 했어요. 스물일곱에 제대할 수 있었어요. 그때 제게 스물일곱은 너무나 먼 이야기였고 그래서 고민됐죠. 1학년 때 자퇴한 친구들은 종종 있었어요. 2학년 때는 거의 없었죠. 저도 처음엔 적응을 못 했지만 2학년쯤에는 재밌기도 하고 적응도 됐는데 뒤늦게 진로를 고민한 거죠. 군인도 정말 좋은 직업이지만 선택해야 했어요. 앞으로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는 직업 대 군인 사이에서.
GQ 그때만 해도 배우를 꿈꾼 것도 아니었는데.
TG 전혀, 전혀 아니었습니다. 딱히 뭘 해야겠다 결심은 없었지만 나름대로 고민하고, 금식 기도도 해보고, 그러고 나오게 됐어요. 아빠 차 타고 돌아오던 길이 지금도 기억나요.
GQ 강단 있다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돌아오는 아버지 차 안에서 혼자 말없이 걱정했을 것도 같아요.
TG 사실 막막하긴 했죠. 그런데 모르니까. 예를 들면 군대 다녀오고 나서 군대 다시 가라고 하면 아니까 가기 싫은데 잘 모르니까 그냥 부딪혀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GQ 모르니까 부딪혀본다.
TG 여기가 (정강이를 문지르며) 계속 까졌습니다.
GQ 정강이가요?
TG 까먹고 있었는데 기억이 납니다. 삼수할 때 고시원에(삼수 끝에 건국대학교 영화학과에 입학했다), 검정고시 학원 다닐 땐 학원 옆 고시원에, 창문도 없이 정말 ‘요만한’ 고시원에 있었는데 여기에 (책상 밑을 가리키며) 다리를 넣고 잤거든요.
GQ 부딪쳤군요.
TG 네. 항상 여기가 까져요. 잘 때 발차기하는지 항상 부딪쳐서 까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고시원에만, 고시원에서 되게 오래 있었네.
GQ 뭐랄까, 아련한데 재밌어하는 표정이에요.
TG 재밌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슬펐죠. 그런데 슬프지만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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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재킷, 뮌. 화이트 팬츠, 보스 맨.
GQ 태구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뜻한다고요. 그 아홉 가지 중 지금 엄태구 씨에게 가장 필요한 키워드는 뭐예요?
TG 다 필요한데…, 아홉 가지를 포함하는 건 사랑과 겸손 같아서 사랑과 겸손이 많으면 좋지 않을까.
GQ 제가 아는 아홉 가지 키워드에 겸손은 없는데 무엇이 겸손한 것과 비슷한 거예요? 인내? 절제?
TG 아, 겸손은 아홉 가지 키워드에는 없습니다. 제 생각에 겸손하면 사랑도 하고, 인내도 하고, 절제도할 것 같고 그래서요. 그런데 약간 부끄럽네요.
GQ 왜 또 부끄러워요.
TG 제가 그렇지 않아서.(아홉 가지를 작게 중얼거린다.) 사랑, 희락, 화평, 인내, 충성, 자비, 양선, 온유, 절제…. 그렇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거리가 멀어질 것 같은 거죠, 이런 훌륭한 단어들과는. 가만히 있으면. 노력 안 하면. 그래서 노력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노력? 열심히? 그렇다 말하기도 민망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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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 디올 맨. 볼 캡,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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