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추럴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으로 | 지큐 코리아 (GQ Korea)

내추럴 와인을 즐기고 싶다면 ‘이곳’으로

2021-07-30T14:26:27+00:00 |drink|

거품을 헤집고 들여다본 기본 정신. 내추럴 와인 바 2세대를 통해 다시 만난 내추럴 와인 세계.

 

HILLS & EUROPA
힐즈 앤 유로파

훌륭한 무명 배우는 늘 존재한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아서 이름을 가지지 못했을 뿐.

“네임드 와인에 목숨을 걸던 때도 있었죠. 내추럴 와인 붐 초창기에는 흔히 톱 생산자라 불리는 네임드 와인에 집착하느라 다들 정신이 없었어요. ‘우리 바에서만 맛볼 수 있는 내추럴 와인!’ 그런 말들이 또 다른 권력을 만드는 건 아닐까요? 내추럴 와인을 내추럴하게 즐기지 못한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죠. 특별함에 도취해 평범함을 잊지 않는 것도 중요해요. 경쟁에 익숙한 우리들은 내추럴 와인 트렌드를 경쟁적으로 즐겼죠. 내추럴 와인 메이커와는 상반되는 사고로 말이에요. 다행히 내추럴 와인 수입사와 바가 다양해지면서 이제 그런 현상은 희미해지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곳은 자연스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이 공간을 둘러싼 동네 해방촌의 꾸밈없는 모습처럼. 단순히 음식만 맛있거나, 와인만 잘 셀렉해주거나, 분위기만 좋거나, 어느 하나만 잘난 것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싶었어요. 이곳을 한 편의 연극 무대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배우, 무대, 관객, 조명, 음악이 전체적으로 어우러져 만들어진 멋진 장면. 여기서 내추럴 와인은 주인공일 수도, 조연일 수도 있겠죠. 관객이나 무대일 수도 있겠고요.”

대낮부터 활짝 열린 바에서는 와인을 입 안 가득 넣고 인상 쓰는 표정으로 가글을 하는 사람도, 와인 라벨을 한참 들여다보는 사람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누군가는 바 좌석에 엉덩이를 비스듬이 걸친 채 한 손엔 와인을 들고 음악에 따라 몸을 가볍게 움직이고, 누군가는 동행인과 열띤 토론을 벌이고, 누군가는 심드렁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위아래로 찍찍 긋는다.

“품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지 않는 것도 중요할 것 같네요. 내추럴 와인만큼은 품종보다 생산자, 더 나아가 자연의 힘에 무게를 실어주고 싶어요. 가령 갸메 품종은 컨벤셔널 와인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지만, 내추럴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인기가 높기도 해요.

또 잊지 말아야 할 것. 지속 가능성.

“우리의 지구는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후손들로부터 빌린 것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면서요.”

LOFT POST POETICS
로프트 포스트 포에틱스

“내추럴 와인을 대하는 데 저희 모두가 공유하는 특별한 태도나 원칙은 없어요. 오히려 그게 태도라면 태도일까요? 내추럴 와인에 대해 갖는 생각은 애호가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수준의 긍정적인 시선, 그 정도예요. 다만 유행이나 희소성 탓에 다소 과열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꾸준히 좋은 와인을 소개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죠. 이미 모두가 인정하는 와인도 좋지만, 새로운 생산자와 와이너리를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작은 수입사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애초에 내추럴 와인을 위해 탄생한 공간이 아닌 곳. 예술 서적을 국내에 소개하고, 의뢰인을 위해 그래픽 디자인, 아트 디렉션을 수행하는 포스트 포에틱스의 본사 제일 꼭대기 층의 쓰임새를 궁리하다가 시작된 프로젝트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다.

“자극적인 콘셉트나 희소성이 있는 와인으로 단숨에 이목을 끌고 싶지 않아요. 음악도 틀지 않죠. 룸 어쿠스틱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은 공간에서 듣는 음악은 그저 소음에 불과하니까요. 그런 댄스플로어를 위한 음악은 클럽에서만 들었으면 해요. 대신 일행과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테이블 간 거리를 여유 있게 확보해두었죠. 요즘은 유명 생산자 아래에서 수련을 거치거나 대를 이어 와이너리를 운영하며 젊은 감각으로 개성 있는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 새로운 세대의 생산자들을 눈여겨보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마르틴 붸너 Martin Wörner, 제이슨 리가스 Jason Ligas, 바인굿 슈미트 Weingut Schmitt가 눈에 띄더군요. 코로나19가 종식되면 가게 문을 닫고 다 같이 세바스티앙 히포의 와이너리에 가보고 싶어요. 프랑스 상세르 지방에서 대를 이어 와인을 만드는 생산자인데, 컨벤셔널 와인을 만들던 아버지를 오랫동안 설득해 유기농법으로 전환했죠. 루아르에서 가장 명성 있는 지역 중 하나인 상세르에서 굳이 내추럴 와인을 양조하는 수고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벌써 특별한데 자신의 단단한 철학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내요. 아마도 올여름 가장 맛있게 마신 와인으로 기억될 거예요.”

LIP PRINTZ
립프린츠

“드라마틱한 맛, 정답에 가까운 맛. 그런 건 내추럴 와인에 기대하지 마세요. 애초에 내추럴 와인의 정신에 위배되는 걸지도 몰라요. 변화무쌍한 발효와 숙성이 가능하게 한 포도와 테루아, 생산자의 투박하지만 값진 손길, 내추럴 와인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습득해 전달하는 것이 제 임무죠. 그 과정을 전달하려다 보니 와인 너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자연 친화적인 공법은 당연하고,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열성적이며 건강하게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좋아해요. 요즘 곳곳에 내추럴 와인 바, 보틀숍이 속속 생겨나고 있지요. 저도 물론 그중 하나고요. 그런데 독특한 뉘앙스와 스토리텔링, 예쁜 라벨만으로 내추럴 와인의 이야기를 다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사소하지만 토마토 포장 박스나 석화 포장용 스티로폼 박스를 차곡차곡 모아 판매처에 다시 가져다주는 수고를 실천하고 있어요. 와인 셀렉부터 요리, 운영에 이르기까지 자연 친화적인 움직임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해요. 내추럴 와인을 전달하는 매개자라면 더더욱. 이미 산업화된 와인 산업에서 과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내추럴 와인의 기본 정신엔 불편함이 뒤따르고 있으니까요. 그 불편을 즐겁게 누릴 줄 아는 자세야말로 내추럴 와인을 즐기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내추럴 와인 바에서 그동안 보인 은근한 권위가 불편했던 이들에게 ‘낮추럴’이란 이름으로 낮부터 글라스 와인과 간단한 요리를 곁들이는 캐주얼한 바가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요즘 주목하는 와이너리 중 하나는 이탈리아의 테누타 포레스토예요. 환경 친화적인 정신이 아주 인상 깊었지요. 파보니오라는 모스카토 화이트 와인도 아주 훌륭하고요. 실험적인 와인을 선보이는 프랑스 줄루의 줄루 한치 퀴베 +23도 좋아요. 23년 숙성한 화이트 와인인데, 이건 뭐 그냥, 사랑입니다.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비올라는 그 고운 결에 한없이 취하고 싶은 와이너리이고, 프랑스의 레 프레르 술리에는 제가 소개한 와인 중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와인이에요. 그리고 언젠가는 피에몬테의 발디솔에 가보고 싶네요.”

PER
피이알

모든 이의 취향은 그 자체로 귀하다. 피이알은 그것을 기본 전제로 깔고 있는 듯하다. 주인장은 직접 마셔본 와인의 뉘앙스를 라벨에 적어놓되, 강요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알기 쉬운 언어로 설명한다. 와인 설명에 패션브랜드, 단편 영화, 배우 이름이 툭툭 튀어나오는 이유다.

“기득권에서 벗어나고 싶고, 탈 권위를 꿈꿉니다. 내추럴 와인에서도 그런 정신이 보여야 해요. 내추럴 와인, 솔직히 싸지 않아요. 그럼에도 기꺼이 마시는 이유? 정당한 생산과 그에 따른 노력에 대한 지불이에요. 만약 불법 노동 착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생산자를 알게 되었다면 과감하게 리스트에서 제외해야죠. 고르는 기준? 개성이에요. 맛이든, 향이든 반드시 이 와인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죠. 지역적인 특성도 보여야 해요. 지역의 특색, 문화의 다양성은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해줄 거라 믿거든요. 그리고 유쾌해야죠. 라벨 얘기가 아니에요. 유쾌한 와인은 유쾌한 자리를 만든다고 믿으니까요. 건강한 포도와 건강한 맛은 반드시 우리를 좋은 자리로 안내할 거예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와인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있어야 해요. 대화가 있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풀 수 있는 분위기에 맞는 와인이라면 좋겠어요.”

피이알이 들려주는 생산자 이야기도 늘 흥미롭다.

“라 소르가의 생산자 앤서니 토르툴은 미친 사람 같아요. 눈빛부터 포스가 느껴지죠. 브루탈 와인 코퍼레이션을 만든 사실도 멋지고 와인 라벨부터 위트와 생각지 못한 품종의 조합까지. 광인 맞습니다. 생각만 해도 침이 고이죠. 마르토 와인의 바이스를 마시고는 머리가 멍해졌어요. 많은 맛이 한 번에 밀려와서 표현의 한계를 느꼈달까요? 첫 빈티지 이후 모든 도시의 내추럴 와인 러버들이 기다리는 와인 메이커가 되었어요.”

8월엔 뮤지션이자 아티스트 김오키와의 협업, 그리고 지긋지긋한 코로나19가 물러나면 언젠가 열릴 24시간 무제한 와인 파티까지. 언제 어떤 요동이든 일어날 것 같은 피이알 같은 요즘의 내추럴 와인 바들이 자꾸만 외친다. 이제 그만 경직된 자세를 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