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힐튼 호텔의 숨겨진 이야기 | 지큐 코리아 (GQ Korea)

서울 힐튼 호텔의 숨겨진 이야기

2021-08-17T19:38:03+00:00 |culture|

이곳의 향방을 두고 설왕설래가 뜨거울 때, 말없이 서 있는 그를 들여다보았다. 한국 현대 건축의 지표, 무생물의 생기.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을 설계한 김종성 건축가가 짚고 분야 전문가가 톺았다.

VERTICAL EXPANSION 수직 팽창

건축가의 노트 –  1978년 초에 미국 시카고에서 서울 힐튼 호텔 설계를 시작했는데, 부지가 남산에서 예전 대우빌딩이자 현재 서울스퀘어 방향인 서쪽으로 12미터 정도 내려가는 경사진 형태였다. 경사를 활용해 방문객이 대지의 높은 쪽에서 호텔 로비로 들어서도록 설계했다. 즉, 입구가 건물 내부보다 더 높고 로비에서 아래층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구조다. 설계 시 로비와 로어 로비 Lower Lobby, 그리고 큰 오프닝을 뚫어서 2층까지 연결하면 가슴을 솟아오르게 하는 익사이팅한 공간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2층 스카이라이트(Skylight, 천장에 낸 채광창)까지 연결하는 디자인에 집중적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결과는 나로서도 크게 만족한다. 지하 1층에도 자연광이 들어오기에 힐튼 인터내셔널 임원진이 ‘지하 1층’이 아닌 로어 로비 Lower Lobby라고 부르자고 제안한 이름도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로어 로비 – 1층 로비 – 아트리움(Atrium, 건물 내부 중앙 안마당 같은 공간) 오프닝 – 스카이라이트를 잇는 18미터 수직 팽창. 서울 힐튼 호텔이라 하면 생각나는 공간이다. 서양 클래식 건축 대부분에는 환대의 공간이 있다. 예로 파리 오페라하우스는 넓은 홀이 있고 그랜드 스테어가 있으며 대개는 그 계단이 위로 올라간다. 서울 힐튼은 거꾸로다. 그랜드 스테어가 아래로 내려간다. 이 특징을 짚기에 앞서, 호텔은 크게 객실과 저층부로 나뉜다. 저층부에는 식당, 볼룸 등 중요 시설이 많다. 서울 힐튼은 대지 구조상 저층부가 호텔 입구보다 아래에 있고, 그래서 그랜드 스테어도 아래로 향한다. 그러나 2층과 윗부분이 개방되어, 계단으로 이어져 있지는 않아도 공간적으로 하나로 통일되게 느껴진다. 기능적인 역할도 잘 수행하면서 적층된 각 공간을 수직적으로 통합했다는 점에서 중심 공간의 힘이 전해진다. 공간이 갖는 격조. 김승회, 건축가 · 경영위치건축사사무소

FINISH MATERIALS 마감재

건축가의 노트 –  힐튼 호텔 설계와 시공에서 내가 제일 많은 노력을 기울인 부분은 마감 재료다. 서울 힐튼은 당시 일본의 종합상사 ‘도요멘까’(동양면화)와 합작 사업이었기에 외자를 수입할 수 있었고, 그러한 호조건을 잘 활용했다. 이탈리아 알프스산 녹색 대리석 베르데 아첼리오 Verde Acceglio, 이탈리아 로마 근처 티볼리산 대리석 트래버틴 Travertine을 수급하고, 아트리움 분수를 위해서는 지중해변 레반토에서 채석한 대리석 로소 레반토 Rosso Levanto를 위 분수 직경 3미터, 아래 분수 직경 1.5미터씩 4개를 현지에서 세공해 수송해왔다. 대리석 석상은 이탈리아 알베르토 부팔리니Alberto Bufalini 사였는데, 뉴욕 시그램 빌딩에 트래버틴을 공급·시공한 회사여서 선발했고, 기술 직원이 직접 서울에 와서 시공·감리하도록 했다. 로비 층의 넓은 벽면 마감으로는 약 1.5밀리미터 두께의 미국산 참나무 베니어를 미국에서 수입해 국내에서 코어보드에 접착해 제작했다. 또 하나 중요한 내장 재료인 브론즈는 방위산업체로서 동 제품에 기술력이 탁월한 풍산금속에서 황동 시트를 공급받아 원통형 기둥과 수평 피복하는 부품을 제작한 후, 브론즈 가공 장인과 그의 조수 몇 사람이 엷게 희석한 황산을 스펀지로 도포해 짙은 색상을 만드는 수공업 방법으로 브론즈 색을 만들어냈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1983년 오픈 이래 38년이 지났음에도 이 호텔의 인테리어가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모더니즘에 입각한 공간, 그리고 공간 안 마감 재료 사용법의 명료함 Articulation 때문이다. 특히 각 재료의 물성을 정직하게 선보이고, 이 사이의 조화를 이루어내고자 하는 건축가의 섬세한 디테일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로비 중정 아트리움에 대칭을 이루는 브론즈 기둥들과 공간을 감싸고 도는 브론즈 페이샤 Fascia는 넓게 개방된 공간을 집중시키고, 뒷배경의 오크 패널은 이를 무게감 있게 받쳐준다. 이에 이탈리아 알프스에서 채석되는 녹색 대리석인 베르데 아첼리오가 지닌 특유의 마블링 패턴이 공간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데, 뉴트럴 컬러인 트래버틴 대리석을 또 하나의 주 재료로 택함으로써 공간의 톤을 전체적으로 안정시켰다. 붉은빛을 띠는 대리석 로소 레반토를 트래버틴으로 마감한 계단 중앙에 분수로 활용한 것은 공간에 정점을 찍어주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인 미스 반 데어로에의 영향이 당연히 있겠지만 김종성 건축가는 그에 본인만의 치밀함을 더해 자신의 색깔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냈다. 좋은 재료를 좇는 고집은 다른 것을 남기는 게 아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건재한, 오히려 그윽하게 머금어가는 세월을 남긴다. 김석훈, 호텔 인테리어 전문 디자이너 · 스튜디오 익센트릭

EXTERIOR MASS 외관

건축가의 노트 –  1978년 초 설계를 시작할 당시 주어진 부지는 퇴계로에서 좁고 구불구불 휘어진 도로로 진입해야 하는 환경이었다. 현재 SK텔레콤 남산사옥이 들어선 곳은 오랫동안 중구 쓰레기 적치장이었기에 고급 호텔 진입로로 부적합했다. 디자인을 시작하면서 내가 제일 먼저 요청한 것이 남산순환도로변에서 호텔로 진입할 수 있도록 인접 한옥을 추가 매입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좀 더 넓은 부지에 발전된 디자인은 1층에 필로티 열주 Colonnade를 형성해 2층부터 기준 층의 매스 Mass를 가볍게 들어 올린 모양이 됐고, 호텔 객실인 매스의 오른쪽과 왼쪽 날개를 30도 안으로 꺾어서 남산을 끌어안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외관의 알루미늄 커튼월은 뉴욕 시그램 빌딩의 브론즈 커튼월을 설계·제작·시공한 업체 플라워 시티 Flour City에 위촉해 디자인하고 국내 업체가 압출·제작·시공하게 해서 당시로써는 최첨단 커튼월 건물을 완성했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남산을 끌어안는다’는 표현은 교수님이 하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대학원 시절 교수와 학생으로 만나 김종성 건축가가 설립한 서울건축에서 근무하며 곁에서 그를 보았을 김승회 건축가에게 ‘끌어안는다’는 묘사는 선생이 하기엔 가히 간지러운 표현이었나 보다. “‘남산을 존중했다’ 이러실 수는 있지만.” 온도 차는 있을지언정 남산을 끌어안듯 존중하듯 호텔 매스 양측을 안으로 살포시 모은 외관은 분명하고, 김종성 건축가는 이를 “병풍처럼 양단이 살짝 꺾인 디자인”이라고도 했다. 바우하우스 대표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를 잇는 제자,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일찍이 국내에 구현해 한국 건축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 틀린 말은 없지만 겉핥기에 그칠 수 있는 나의 얕은 시선에 묵직하게 핵심을 짚어준 한양규 건축가의 통찰을 옮겨 적는다. “좀 묘했어요. 모더니즘은 굉장히 이성적이어서 주변 감각을 배제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곳은 주변 산세, 우리가 몸속에 지닌 어떤 감각을 품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건축은 이런거야, 말을 건네는 듯한. 그런데 오만하지는 않은. 그건 자신감이기도 하죠. 지금은 건축도 어떤 이미지 한 장으로서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잖아요. 선생님은 그러셨더라고요. 다시 지어도 이와 비슷할 것 같다고. 그런 게 유산이 되겠죠.” 김은희, <지큐> 피처 에디터

GRAND STAIR 계단

건축가의 노트 – 1층 로비와 로어 로비의 높이 차이가 4.8미터인데, 방문객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만한 체험이 가능한 디자인 요소를 여러 각도로 생각했다. 고려 대상이었다가 일찍이 제외한 대안은 에스컬레이터다. 백화점 또는 공항 터미널을 연상시키는 것은 아주 부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계단이 로비에서 가운데로 조금 내려온 후 오른쪽과 왼쪽으로 갈라지고, 그러면서 생기는 중앙 빈 공간에 어떤 디자인 요소를 넣는 것이 최상의 안인가 하는 명제를 갖고 상당한 시간을 할애했다. 그 결과, 중앙에 대리석 원형 분수를 두고 각 대각 방향 네 군데에 작은 원형 분수를 두어, 분수에서 분수로 물이 흐른 후 아래층에 배치한 트래버틴 ‘연못’에서 머물다 배수되게끔 시공했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대부분도 아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건물을 이야기할 때 “평당 얼마”인지 금액 먼저 묻는다. 그다음은 “전용 얼마”인지 면적을, “방은 몇 개”인지 옵션을 체크한다. 평면은 잘 빠졌는지, 외장은 무엇으로 했는지, 건축가인 나마저 비슷한 순서로 잇는 질문들 사이 계단이라는 대상은 늘 뒷전이다. 말조차 나누지도 않는 대상. 굳이 나눈다 치면 “계단 밑 공간은 창고로 해주세요” 같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 떠올리는 존재. 그런데 이곳은 다르다. 계단에 풍요로움을 심어두었다. 나는 이 계단을 합리적인 사치라고 부르고 싶다. 길고 넓은 계단은 건축물 가운데 아트리움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공간 역할을 한다. 마치 실내 발코니처럼 계단을 지나가며 주위를 둘러보게 만든다. 계단이 고유하게 가져야 하는 ‘지나감’이라는 기능을 확대시킨다. 계단 가운데 분수를 둔 점도 놀랍다. 보통의 건축가가 남기는 설계에는 억압적인 면이 많다. ‘여기 앉아서 밖을 바라보세요’, ‘여기 앉아서 책을 읽으세요’ 무언으로 전하는 억압. 그러나 이곳의 분수라는 요소는 지나가는 사람을 억지로 앉아 쉬게 만드는 대신 시야에 머무르게 한다. 계단이니까 지나가야 하는 행위는 당연한데 ‘지나가고 나서 생각해보니 좋더라’ 하는 잔상을 남기는 것이다. 문득 얼마 전 다녀온 경복궁 근정전이 떠올랐다. 오버스케일에 뻥 뚫려있는데도 불안하지 않고 억압적이지 않던 공기. 전체를 관통하는 힘줄 같은, 계단. 한양규, 건축가 · 푸하하하프렌즈

HUMAN SCALE 스케일

건축가의 노트 – 호텔의 동쪽 주 출입구인 회전문과 양개문 위로 3.6미터 높이에 의도적으로 갤러(Gallery, 통로)를 배치했다. 방문객이 호텔 안으로 들어설 때는 익숙한 높이인 휴먼스케일 천장을 지난 다음, 6미터 천장 높이로 마감한 로비 공간을 통해 수직 방향으로 시선이 한 번 확장된 후, 천천히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아트리움 오프닝을 통해 2층부터 로어 로비까지 위아래로 다시 한번 확장되도록. 호텔 남북을 잇는 갤러리에서 로비와 그랜드 스테어를 내려다보는 경관을 좋아한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남산 아래 위치한 밀레니엄 힐튼 서울의 매스는 넓은 대칭의 모습으로 남산을 감싸고 있다. 외부의 대칭은 내부 인테리어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내부의 계단과 기둥 구조 그리고 가구 배치까지 대칭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건축에서 ‘대칭’이라는 디자인 어휘는 고대 건축부터 위계와 에너지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어 왔다. 힐튼 서울 호텔에는 대칭으로 표현된 위계와 에너지가 건물 내부에서는 수직적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이 표현은 방문객 입장에서 아주 세심하게 고려한 스케일을 통해 명확해진다. 주 출입구인 회전문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휴먼스케일 높이로 구성된 천장을 지나 6미터 높이의 로비 공간을 마주하게 되고, 그 로비를 따라 안으로 걸어가다 보면 18미터 높이의 거대한 아트리움 공간에 닿는다. 단계적으로, 점층적으로, 종국에 수직적으로, 외관에서 마주한 대칭으로 표현된 위계와 에너지가 건물 내부에서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김종성 건축가는 분명한 건축적 의도를 통해 그것을 이론적으로 알지 못하는 호텔 방문객에게도 공간적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다. 임성빈, 공간 디자이너 · 빌트바이

PERSPECTIVE 조망

건축가의 노트 – 동쪽의 주 현관인 회전문을 돌아 들어서는 방문객이 처음 마주하는 시야가, 정면인 서쪽의 로비 라운지(현 올데이다이닝 공간. 이하 로비 라운지)까지 64미터 깊이의 넓은 공간을 한눈에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가운데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Grand Stair을 두고 좌우 양 갈래로 길이 갈리다 다시 로비 라운지로 합해지는 평면을 만들었다. 로비 라운지는 계단 석 단을 내려가게 함으로써 가능한 한 시야에 장애가 되는 요소가 없도록 단면 계획을 했다. 김종성

여행자의 시선 – 서울에서 만나기 힘든 호텔. 나는 밀레니엄 힐튼 서울이야말로 서울에서 만나기 힘든 호텔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에는 도시의 캐주얼한 호텔에서는 찾기 힘든 클래식한 럭셔리가 있다. 로비 규모부터 그렇다. 로비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들어오는 시야가 막힘 없이 넓게 펼쳐지고, 게다가 로비 중앙은 천장 채광창까지 높게 뚫려 있어 시원하다. 압도적으로 넓은 로비다. 이것이 왜 남다른지는 지금 이 시각에도 도시 곳곳에 세워지고 있는 호텔, 최근 생긴 호텔들을 떠올려보면 이해가 쉽다. 이런 규모의 로비가 요즘 호텔에는 없다. 이왕이면 크리스마스 시즌에 꼭 방문해보시기를 바란다. 호방한 로비의 공간적 특징을 살려 마치 잭의 콩나무처럼 아래층에서부터 솟아오르게 배치한 초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가히 환상적이다. 크리스마스트리로 힐튼을 기억하는 분도 많으리라 생각한다. 로비 안에서 이뤄지는 일도 짚어야 한다. 호텔 나이만큼 최소 20년, 30년 경력의 호텔리어들이 정통적인 서비스를 전한다. 나는 이를 신선적인 서비스라고 표하고 싶다. 정중하고 숙련되었으며 정통적인 서비스의 원형이 이곳에 남아 있다. 공간과 공간을 빛내는 서비스가 한 몸처럼 어우러진 곳, 다른 표현으로는 럭셔리의 아주 고전적인 형태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김다영, <여행의 미래> 저자 · 히치하이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