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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성웅’이 말하는 영화 <더 와일드>

2021.08.20김영재

“살면서 후퇴해본 적이 없어요.“ 언제든 어디서든 박성웅의 이야기는 끄떡끄떡 계속된다.

셔츠, 르메르. 데님 팬츠, 메종 키츠네.

로고 패턴 오픈 칼라 셔츠, 블루 팬츠, 모두 펜디.

GQ  오늘 촬영의 목표는 평소 교복처럼 입는 수트에서 벗어나는 거였어요.
SW  좋죠. 흰 티셔츠에 청바지. 그게 편해요.
GQ  사진 찍은 걸 모니터링하면서 이십 대 때의 외모는 어땠을지 새삼 궁금했어요.
SW  그래요? 여기, 보여줄게요. 첫 프로필 사진이에요. 스물다섯 살 때인데 지금보다 인상이 날카로웠어요. 쌍꺼풀도 없고 눈썹 부분이 두툼했죠.
GQ  이땐 주로 어떤 역할이 주어졌어요?
SW  건달이었죠. 1997년에 데뷔했는데 촬영 감독님들이 너같이 생긴 얼굴은 배우 하면 안 된다고 한마디씩 했어요. 그 당시엔 장동건, 원빈처럼 꽃미남형 배우가 큰 인기를 얻었어요. 심지어 키가 너무 크다고 지적을 당하기도 했어요.
GQ  지금은 거울 볼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요?
SW  잘 버텼고, 많이 유해졌구나.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졌어요. 보조 출연자 시절에는 현장에서 무시당하는 게 싫어서 말을 거의 안 했어요. 덩치 때문에라도 아무도 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죠.
GQ  안 봐도 알 것 같아요. 영화 <신세계>로 배우 인생의 전환점을 찍고 나서 맞이한 10년의 시간이 인생뿐 아니라 인상에도 영향을 줬을까요?
SW  그럼요. 주변의 모든 여건이 많이 달라졌어요. 현장에선 제 것만 잘하는 게 아니라 팀을 이끌고 챙겨야 하는 위치가 됐어요. 이젠 어딜 가나 후배가 더 많죠. 저를 롤 모델로 삼은 후배들이 있는가 하면, 타깃으로 삼는 후배도 있고요.

리넨 셔츠, 팬츠, 모두 르메르. 홈 슈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타탄 체크 팬츠, 로고 슬라이드, 모두 구찌.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타깃으로 삼는다고요?
SW  <신세계>를 찍을 때 민식이 형, 정민이 형한테 밀리면 안 된다는 각오로 무작정 들이댔어요. 그들은 챔피언이고, 비겨도 내가 이기는 거라고 생각했죠. 이젠 입장이 바뀌었어요. 예전의 저 같은 후배들이 생겼어요. 박성웅한테 밀리면 안 된다, 하는. 그런데 저는 절대 지지 않습니다. 나는 더, 더, 더 준비하고 노력하고 있다, 이놈들아.
GQ  하하. 주먹으로 테이블을 쾅쾅 치면서 말하는데 딱 느꼈어요. 단순한 으름장은 아니구나. 최고의 무기라고 자부하는 게 있나요?
SW  다양함요. 데뷔 때부터 로버트 드 니로 형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미드나잇 런>과 <케이프 피어>를 동시에 봤는데 와, 너무 다른 거예요. 이 작품에선 너무 인간적이고, 여기서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관점의 차이일 수 있지만 배우는 다양한 모습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결같이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이런 것도 하고, 저런것도 하고. 저는 코미디도 돼요. 악역이나 건달배역이 꾸준히 들어오긴 하지만.
GQ  센 역할을 제법 맡았기 때문에 이미지를 바꿀 생각으로 악역을 기피할 수 있겠단 짐작을 했어요.
SW  그렇지도 않아요. 다음 작품은 원래 선한 역할을 제안받았어요. 그런데 대본을 읽을수록 나쁜 놈이 더 탐났어요. 이전에 연기한 악역들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감독님에게 말했죠. 빌런 캐릭터가 제 것처럼 느껴진다고. 그랬더니 냉큼 고맙습니다, 그러더군요. 내심 바랐지만 제가 악역을 또 할 거란 기대를 하지 않았다고 해요.

드로잉 패턴 셔츠, 비이커. 카키 팬츠, 누마레. 로퍼, 살바토레 페라가모.

GQ  영화진흥위원회가 한국 영화배우들을 세계 영화계에 소개하기 위해 기획한 캠페인 ‘코리안 액터스 200’에 이름을 올렸죠? 소개 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법학을 전공한 박성웅은 스물네 살 때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 만약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쓴다면 제일 먼저 무엇이 떠오르나요?
SW  꾸준함, 버팀, 누구에게도 지기 싫은 승부욕. 그게 제 저력이죠. 특히 꾸준함이 배우 박성웅, 인간 박성웅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지 않을까. 사실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10년의 무명 시절을 버틴 것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아무리 힘들어도 이건 당연하다, 배우는 다 이런 시기를 거친다고 믿었어요. 연극영화과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선후배도 없고 하소연할 곳도 없으니 아무것도 몰랐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10년을 버틸 수 있었어요.
GQ  모델 에이전시와 액션스쿨 두 곳에 모두 합격했지만 액션스쿨을 택했죠. 만약 모델이 됐다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됐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SW  어쨌든 나중에 연기를 했을 거예요. 모델 일은 배우가 되기 위한 발판이지 않았을까. 배우가 아니면 지금 어떻게 됐을지 전혀 모를 일이죠. 해보니까 연기는 내공이 쌓이면 쌓일수록 앞으로 계속뻗어갈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스스로 내려놓지 않는 이상 쭉쭉 도약하는.

오블리크 피케 셔츠, 네이비 팬츠, 샌들, 모두 구찌. 선글라스, 젠틀 몬스터.

GQ  도약의 시작점은 어디인가요?
SW  영화 <넘버 3>에서 건달3 역으로 데뷔했을 때부터요. 지금까지 후퇴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격언집을 자주 읽는데 무슨 일을 하든 성공하려면 맨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하라더군요. 저는 보조 출연자로 시작했으니 낭떠러지 끝자락에서 출발한 셈이에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데가 없었죠. 거기서부터 계단을 하나씩 올라왔어요.
GQ  그렇게 시작해서 <신세계>로 보폭이 훌쩍 넓어졌어요.
SW  하고 싶은 연기를 계속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죠.
GQ  <신세계> 이후 자신이 꼽는 베스트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SW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를 찍을 때 구름을 밟고 걷는 듯한 기분이었어요. 한두 시간밖에 잠을 못 잤지만 촬영장 가는 길이 무척 즐거웠어요. 작품에 대한 반응도 좋았고 현장에선 하고 싶은 대로하라고 저를 풀어줬어요. 저는 알아서 잘하는 스타일이라 아주 활개를 쳤죠.
GQ  아까 꾸준함을 자신의 저력으로 이야기했는데 연기 말고도 꾸준히 해온 게 있겠지요?
SW  헬스를 30년쯤, 킥복싱은 5년, 복싱은 3년째 하고 있어요. 꾸준히 운동하는 것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내년이면 오십 대가 되는데 누구의 아빠 역할에 한정되긴 싫어요. 부모님께서 좋은 몸을 물려주셨잖아요. 잘 가꾸고 유지하면 앞으로도 여러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자신해요. 최근 촬영을 마친 영화 <더 와일드>에선 복싱 선수 캐릭터를 연기했어요. 스물여섯 살의 신인 배우와 합을 맞췄는데 복싱 스킬은 당연하고 체력적으로도 전혀 밀리지 않았어요.
GQ  예전 인터뷰에서 오십 대에 멋진 배우로 남는 게 목표라고 말한 게 생각나네요.
SW  스무 살 때 얼굴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죠. 거꾸로 세월을 먹는다고, 이제는 사람들이 제 나이를 듣고 깜짝 놀라요. 곧 오십인데 그렇게 안 보이니까. 앞으로의 시간이 저한테 승부처예요. 같이 나이 들어가는 꽃미남 배우들과 당당히 견줄수 있는, 하하하.

아이보리 배색 카디건, 타탄 체크 팬츠, 모두 구찌. 화이트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사십 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큐>와의 인터뷰에서 “강한 사람이지만 자기 역할을 정확히 알고 어떤 순간에 낮추거나 빠질 수 있는 남자”를 이상적인 남성상이라 말했어요. 그래서 얼마나 가까워졌나요?
SW  한동안 잊고 살았는데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더 와일드> 촬영 마지막 날 스태프들로부터 꽃으로 만든 곰인형을 선물 받았어요. 거기에 “부드러운 액션 배우”라고 쓰여 있더군요. 사람들이 짐작하는 대로 제 성향은 리더나 맏형이 맞지만 엄마처럼 사람들을 안고 가려고 해요. 빵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죠. ‘부드러운’이라는 글을 보고 동료들이 제 마음을 알아줬구나, 했어요.
GQ  엄마 같은 박성웅이라니, 실제로도 자상한 아버지라고 알고 있어요.
SW  아들이 열두 살인데 저를 굉장히 좋아하죠. 촬영때문에 떨어져 있으면 엄마한테 아빠랑 통화하고 싶다고 해요. 친구 엄마들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의아해한대요. 아직도 아빠와 친하게 지내냐고. 가족 단톡방 이름이 ‘짬짜해’예요. 저랑 아들이 짜장면을 워낙 좋아해서 우리 사이에 ‘짜장해’는 ‘사랑해’란 뜻이죠. ‘짬짜해’는 ‘엄마 아빠 다 사랑해’. 아내가 짬뽕을 좋아하거든요.
GQ  이야기를 하는 내내 얼굴에 미소가 피었습니다.
SW  아흐, 그럼요. 연쇄 살인마를 연기한 영화 <살인의뢰>에 온몸에 피를 적신 채 섬뜩하게 웃는 장면이 있어요. 그걸 찍으면서 아들 생각을 했어요. 자동 반사적으로 미소가 지어지니까, 하하.

스트라이프 리본 칼라 셔츠, 네이비 팬츠, 모두 드리스 반 노튼 at 분더샵 맨.

GQ  아들 말고 요즘 쑥 빠져 있는 건 뭔가요?
SW  아직도 영화 <더 와일드>에 머물러 있어요. 설레발 같지만, 제겐 두세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작품이 될 것 같아요. 진짜 열심히 찍었어요. 영화를 40회차 찍었는데 제가 38회차나 나와요. 흥행 여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이건 자신해요. 제가 느끼기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에요.
GQ  범죄 액션 영화라고 들었습니다. 예전에 죽이는 액션 영화를 찍는 게 꿈이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갈증이 확 풀렸나요?
SW  아니에요. 액션은 30프로? 느와르 느낌도 난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멜로 영화예요. 혼자서 잠잠히 지내던 호랑이 같은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해서 벌어지는 이야기죠. 영화를 보면 저게 박성웅이야? 하실 거예요. 멜로 눈빛이랄까.
GQ  영화 <무뢰한>도 하드보일드 멜로였죠.
SW  <무뢰한>이 거친 사랑 이야기라면 이 영화는 보고 있으면 그냥 먹먹해져요. 얼마 전 후반 작업도 없이 촬영본을 대충 이어 붙여서 봤는데…. 제 영화를 보고 그렇게 운 건 처음이에요.
GQ  일상에서도 멜로 감정을 민감하게 느끼나요?
SW  당연하죠. 그러니까 아내를 만나 결혼을 했겠죠.
GQ  그게, 지금 어떤지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SW  요즘은 애틋한 감정이 주로 아들한테 향해요. 아내는 갈수록 무서워지니까. 아, 이런 걸 왜 물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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