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민아 말고 '배우 방민아' | 지큐 코리아 (GQ Korea)

걸스데이 민아 말고 ‘배우 방민아’

2021-08-24T11:00:23+00:00 |interview|

89퍼센트의 의심과 11퍼센트의 겁. 방민아를 이루고 방민아가 이겨내는 것.

화이트 톱, 잉크. 블랙 레더 팬츠, 이자벨마랑 에뚜왈. 벨트, 디올. 화이트 부츠, 레이첼콕스. 이어커프, 포트레이트 리포트.

GQ 축하합니다.
MA 감사합니다.
GQ 무슨 축하인 줄 알고 덥석 받아요.
MA 으하하하하. 워낙에 그날 축하를 많이 받아서 감사하다는 말밖에 안 나와요.
GQ 제가 생각하는 그날 맞겠죠? 영화 <최선의 삶>으로 제20회 2021 뉴욕 아시아 영화제에서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한.
MA 네, 회사(소속사) 통해서 연락 받고 알았어요. 뉴욕에서 그렇게 전해왔다. 어안이 벙벙했어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실감이 안 나요. 그냥 감사한, 너무 감사한.
GQ 라이징 스타상의 역대 수상자로는 영화 <미쓰 홍당무> 공효진, <은교> 김고은, <야구소녀> 이주영 배우 등이 있더라고요.
MA 정말 기분 좋더라고요. 전부 다 제가 재밌게 본 영화고 거기 출연한 배우분들이 받아서 ‘어? 그럼 우리 영화도 다들 재밌게 보시려나?’, 되게 기대되고 설레고 있습니다.
GQ 9월 개봉 예정인 <최선의 삶>을 먼저 볼 기회가 있었어요.
MA 진짜요? 어떠셨어요?
GQ 이렇게 적었어요. 신발 안의 유리 조각, 그럼에도.
MA 아, 아프다.
GQ 아프죠.
MA 생각만 해도 아파요.
GQ 아주 작고 뾰족한 돌멩이, 자잘하게 부서진 유리 가루가 신발 안에 있는데 그럼에도 걸어 나가는 이야기 같았어요.
MA 그럼에도 불구하고.

GQ 민아 씨에게는 어떤 이야기였어요?
MA 비슷한 결 같아요. 강이(이강이, 주인공이자 방민아가 맡은 역)를 따라가다 보면 힘들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대본 읽을 때 심장이 정말 많이 뛰었어요. 여러 의미로. 마음이 힘들고 불편한 점과 함께 강이라는 인물을 내가 할 수 있을지 막연함도 있었고. 사실 불가능이라고 봤거든요? 강이의 감정을 모른다기보다 겁이 났어요. 주변 시선으로 인해서 못 할 수도 있겠다, 그런 막막함. 하고 싶은 마음이 89퍼센트인데 늘 11퍼센트의 겁 때문에 주변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 같아요. 그럴 때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주신 연기 선생님 덕분에 감독님과 미팅할 수 있었어요. 감독님을 뵙고서는 ‘하고 싶다,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정말 확실하게 들었어요. 너무 이상하리만큼. 약간, 이런 확률이라고 해야 하나? 소개팅으로 연애할 확률.
GQ 하하하, 소개팅에서 기적적으로 둘 다 마음에 든 경우군요.
MA 확률적으로 높은 경우가 아니란 말이죠? 그런데 감독님과 처음 만나서 두 시간 반, 한 세 시간 동안 쉼없이 계속 얘기했어요. 미팅 마치고 ‘감독님 만나길 잘했다’ 그러면서 주차장에서 도로로 딱 나오자마자 전화가 왔어요. 같이 하고 싶다고. 저도 바로 “저도요” 그랬죠. 정말 흔치 않은 일이었어요.
GQ 그렇게 이어준 세 시간여의 대화가 궁금해요. 방민아의 무엇이 이강이에 투영됐을까. 이우정 감독님이 두루뭉술 전한 말에 힌트가 보이긴 했어요. “민아 씨가 자신이 가진 두려움부터 비슷한 점까지 얘기해줬다.”
MA 맞아요. 강이랑 비슷한 부분이 되게 많았어요. 강이가 왜 저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GQ ‘저렇게’라는 건.
MA 계속 참고, 참고, 참고, 참고. 참는 게 맞는 줄 알고 살았던 거죠. 내면적으로는 누군가에게 더 사랑받고 싶은 욕구, 욕망이 있지만 눈치를 보느라 상대방을 더 위해주는. 강이는 제가 후회하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요. 강이가 좀 밉기도 했어요. 왜 싫을까? 이 모습이 왜 이렇게 싫지? ‘얘가 왜 싫을까’가 저한테는 제일 특별했어요. 그런데….
GQ 민아 씨와 비슷해서 싫었군요.
MA 네. 누군가 미운 이유를 보면 결국에는 제게도 그런 면이 있어서 그게 보기 싫어서인 경우가 많더라고요. 강이를 보면서 ‘이러지 말지, 이러지 말지’ 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내 모습이고.
GQ 제게 강이는 경계선에 서 있는 아이 같았어요. 평균대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고.
MA 아슬아슬한.
GQ 맞아요. 아슬아슬한 선을 걸어 나가는데 오른쪽으로 가고 싶어 하다가도 친구들이 왼쪽으로 가자고 하면 휙 따라가고, 그래서 갈 지자로 걷게 되는 그런 아이.
MA 저는 정상적인 학교생활은 중학교까지였던 것 같아요. 고등학교 입학하고 나서는 4교시 후에 무조건 빠졌으니까. 또래 친구들보다는 빨리 다른 경험을 했고 그때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강이 같은 삶이. 흐흐흐흐.
GQ 그때라는 건 연예계 데뷔를 말하는 거겠죠? 열여덟 살이었죠.
MA 열일곱에 준비해서 열여덟에 데뷔했죠. 네, 어릴 때 사회에 나와 보니 다른 세상이 열린 거죠.
GQ 그건 어떤 세상이었어요?
MA 그냥…, 낭떠러지. 코너에 몰려 있는. 정말,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버티는. 최선을 다해서 거기에 버티고만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그룹 생활이 엄청 위태로웠다고 오해할까 봐 걱정스러운데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저의 심리 상태가 그랬던 거고 좋은 일도 많았어요. 재밌는 것도 많았고, 추억도 많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대였으니까. 그래서 더 불안정했던 것 같아요.
GQ 아까 <최선의 삶>을 89퍼센트 하고 싶은데 주변 시선 때문에 망설였다고 했어요. 그 시선이라는 건 걸스데이라는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의구심이기도 한 걸까요?
MA 맞아요. 이게, 그렇잖아요. 남들은 “너가 믿고 가면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을 거야”,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러지만 이런 말들이 저한테 위로가 되진 않았어요. 믿음을 주지도 않았고. 저는 저의 믿음이 필요했고, 그런데 그때는 그런 믿음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걸스데이를 절대, 절대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저는 걸스데이를 정말 정말 사랑하거든요. 아직까지도. 제가 근 10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해 일해온 저의 직장이자 인생이에요. 인생의 한 부분이에요.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경험이에요. 그렇지만서도 제가 다음 스텝, 다른 어떤 일에 도전했을 때 내면에서부터 부딪히는 벽이 분명히 존재했어요. 그런데 “그 벽을 깼느냐” 물어보신다면, 이제는 별로 상관없어요.

옐로 브라렛, 옐로 카디건, 모두 코스. 패턴 레깅스, 가니. 블랙 워커, 오프 화이트. 이어링, 페이브.

GQ 깼는지 궁금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군요.
MA 깨고 안 깨고가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최선의 삶>은 제게 이런 것들을 준 작품이에요. 그 전까지는 내가 해도 될까? 내가 폐를 끼치진 않을까? 이런 두려움, 고민이 진짜 많았죠. 89퍼센트 하고 싶었는데 89퍼센트 의심이 됐어요. 그런데 연기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해보고 싶으면 해.” 그 말에 용기가 났어요. 선생님은 맨날 저 못한다고 막 그러시거든요. “연기를 뭐 그렇게 하니?” 그런데 저는 선생님한테 좋은 소리 들으러 가는 게 아니거든요. 잘하면 왜 가겠어요. 잘 못하니까,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선생님한테 물어보러 가는 거예요. 연기를 뭐 그렇게 하냐고 그러시면 제가 그래요. “아, 못하니까 오죠.” 하하하하. 내일 또 하면 되지, 뭐. 내일 더 잘하면 되지 그러는데, 해보고 싶으면 하라는 선생님 말씀에 그래 가보자, 싶었어요. 정말 정말 하고 싶었어요.
GQ 그런데 말이에요, 두려웠어요? 저는 의아했어요. 원작 소설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왜 두려워하는지 이해되면서도 한편으로는, <미녀 공심이>의 공심이였잖아요. 그때 방민아가 얼마나 충격이었는데요, 대담해서.
MA 오, 그럴 수 있어요. 저도 충격이었거든요. 너무 못생겨보여서. 하하하하. 그때는 제 모습이 너무 싫었어요.
GQ 그래서 좋았는걸요. 아이돌로서 두르고 있던 외면적인 꾸밈을 벗어 던진 모습이라니.
MA 그러니까 얼마나 충격이었겠어요. 어렸을 때니까 더 충격이었겠지.
GQ 그런데 해냈잖아요. 결국 공심이는 그 누구도 아니라 방민아였잖아요.
MA 그건 정말 백수찬 감독님과 남궁민 오빠의 공이 아니었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인물이었어요. 모든 공은 감독님과 남궁민 오빠에게 드려야 해요. 그때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가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늘 연예계 생활이 위태위태했던 것 같아요, 저 혼자서는. 이제는 한 살 한 살 시간이 지나가면서 내면적으로 자리를 잘 잡은 거죠. 이제야 비로소 제가 보이더라고요. (<미녀 공심이>를 보면) 이게 나다. 좋은데? 너무 귀여운데? 이제는 진심으로 너무 좋아요.
GQ 단순히 시간이 가져온 변화는 아니리라 생각해요.
MA 제가 옛날엔 말을 되게 못했거든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웃었어요. 남들 웃으면 같이 웃었어요. 이것도 강이랑 되게 비슷한 거죠. 너무 답답했어요. 말을 못하는 제가 너무 답답했는데, 강이가 선택한 결말이 있듯이 저는 제 식대로 선택했어요. (강이와) 출발선은 비슷하다 생각하는데 저는 뚫고 나온 거 같아요, 저만의 방식으로. 지금은 제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모습만큼 불편한 게 없어요. 그런 모습을 보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없어요. 요즘에는 편한 게 좋아요.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얘기하고 싶고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러고 싶어요. 그런데 이게 답인가? 그건 또 아니거든요.

셔링 시스루 원피스, 분더캄머. 데님 팬츠, JW 앤더슨 at hanstyle.com. 워커, 포츠 1961. 이어링, 비올리나. 네크리스, 브레이슬릿, 모두 포트레이트 리포트.

GQ 그냥, 지금 방민아의 모습은 이런 거죠.
MA 네. 아마 이번 영화 <최선의 삶>이나 드라마 <이벤트를 확인하세요> 홍보로 몇 개의 예능 프로그램 통해 오랜만에 인사드릴 것 같은데 너무 기대돼요. 재밌을 것 같아요. 지금의 제 모습은 어떻게 담길지 궁금해요. 예전만큼 맞춤식으로 웃음질 것 같진 않아요. 그때는 아마 웃는 게 다 똑같았을 거예요. “(눈웃음 지으며) 아하하하하” 이렇게 웃었다면 이제는 이해가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무슨 말인지 되묻기도 하고 그러겠죠. 그걸 또 캐릭터로 만들 수도 있는 거고. 하하하하. 그런데 제가 진짜 사오정이긴 하거든요. 진짜 잘 못 들어요.
GQ 벽을 깨부수는 대신 자신만큼의 구멍을 내고 자유로이 오가는 것 같네요, 지금의 방민아는.
MA 원작에도 있고 영화에도 있는데 저는 이 문구가 제일 좋아요.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 무서운 순간 같아요. 그게 제일 무서운 순간 같아요.
GQ 기억나요. 너무 따뜻하고 포근해서 싫어지는 마음. 여기 안주하는 게 아니라 벗어나서 다른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MA 저는 속뜻이 이렇게 느껴졌거든요? 따뜻한 이불 안에서는 나가고 싶지 않잖아요. 바깥이 무섭고 안주하는 게 무서운 게 아니라, 안주하고 있는 걸 알면서도 여기서 나가지 못하는 자신이 무서울 것 같았어요. 저는 그렇거든요. 저는 이불 안에 못 있어요. 그 꼴을 못 보겠어요. 가끔씩 이불 안에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끔찍해요. 그때 한 번씩 낙담해요. 가다가 한 번씩 그렇게 낙담하는 순간이 와요. 대신 옛날에는 깊게 오르락내리락했는데 이제는 (오른손 검지를 아래로 찍어 내렸다가 빠르게 올리며) 빨리 다시 올라와요. 그렇지 않으면 저만 손해거든요. 아, 이거 너무 행복 전도사 같은데 그냥 저는 그래요. 제가 불행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더라고요.
GQ 이 물음은 모호하고 멀리 있다고 생각해서 평소에는 하지 않는데 민아 씨에게는 물어보고 싶어지네요. 행복이 뭐예요?
MA 이건 제 꿈이기도 한데, 주변 사람이 아프지 않은 것. 요즘 저한텐 이게 정말 되게 커요. 저는 그렇게 믿어요. 제가 온전해야 주변 사람들,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살아가요. 예전에는 주변 사람의 좋은 소식이 배아플 때도 있었어요. 나는 힘든데 왜 쟤는 좋은 소식이 있지? 부럽다. 왜 나는 이러지. 그랬는데, 요즘엔 누군가의 좋은 소식이 제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너무 고마워요. 저의 걱정을 하나 덜어줘서. 누군가 힘들면 저도 그렇게 힘들더라고요. 그 사람이 제 마음속 한쪽에 걱정되면 저 또한 힘들 걸 아니까 이제는 누군가 무탈한 게 그렇게 고마워요. 남의 행복이 요즘 저한텐 정말 행복이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몸도, 마음도.
GQ 민아 씨 스스로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하네요.
MA 저는 힘들어도 괜찮아요. 왜냐면 어차피 저는 정신 승리를 할 거거든요. 다들 자신을 온전히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어요.
GQ 정신 승리.
MA 정승! “못생겼다!”, “괜찮은데? 예쁘다. 이게 내 모습인가 보다.” 그래서 저는 요즘 제 모습이 꽤나 마음에 든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