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대 안의 블루

2021.08.31김은희

높고 푸른 하늘 아래 저마다 일으킨 파랑.


한강 My Blue 지금의 내게 블루는 판타지다. 한강 시리즈를 작업하면서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푸르게 톤을 잡고 있어서다. 더 푸른 색감으로 하는 이유는 물빛은 푸른 하늘이 반사되는 것인데 날씨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내 욕심, 내 욕망이다. 푸르면 맑아 보인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사실 투명해야 맑은 건데. 아, 이건 무지함인가. Color Name 한강 블루 표기식, 포토그래퍼


데이브 브루벡 <타임아웃> My Blue 전체적으로는 보라색에 가까운 이 음반은 내게 항상 ‘블루’로 기억된다. 수록곡 ‘Blue Rondo A La Turk’ 때문이기도 하지만, 음반 전체 사운드가 모던하고 쾌적해서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재즈의 역사에 신선한 활기를 불어넣었던 작품 중에는 제목에 ‘블루’ 가 들어간 것이 꽤 있다. 조지 거슈윈의 곡 ‘랩 소디 인 블루’가 그렇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반 <카인드 오브 블루> 역시 그렇다. 게다가 이 ‘블루’를 담은 음악들은 이미 존재했던 스타일이나 선법을 신선한 방식으로 도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임아웃>도 터키의 5박자 등 민속 리듬을 도입해 재즈에 신선한 자극을 준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 음반에서 느끼는 블루는 하얀 천 위에 놓인 사파이어 같은 블루다. 선명하고 고귀한 블루, 모리스 라벨이 ‘볼레로’에서 들려준 것 같은 이국적이고 우아한 블루. 1959년에 나온 이 음반의 곡들이 여전히 CF에서 곧잘 쓰이는 것은 이 쾌적한 블루가 웬만해선 닳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도 혁신적이고 모던하며, 심지어 매우 대중적이다. Color Name 모던 블루 김목인, 싱어송라이터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My Blue “푸른색이 이 시집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첫 시집을 낼 때, 나의 첫 번째 편집자에게서, 첫 대면에서 들은 이야기다. 그날 나는 아껴 입던 새벽빛 스웨터를 입고 있었는데, 바로 그 색을 표지로,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그날부터 푸른색은 내게 ‘처음’에 관한 색이 되었다. 나는 바다에 비쳐 보이는 푸른색보다는 하늘을 채우는 푸른색을 좋아하고, 밤 하늘의 푸른색보다 새벽 하늘의 푸른색을 좋아한다. 자고 일어나 새벽에 눈을 뜬 다음, 멍하니 천장을 보는 시간을 보내고 나면 하루가 시작되는데 무척 만족스럽다. 아무 생각도 계획도 없이 그냥 푸름을 보는 것이다. 그 새벽의 푸른빛(색이라기보다 빛에 가깝다)이 여기 저기 깃들어 있다가 슬며시 물러나는 순간이 오면 내게도 푸른빛이 머물렀다 사라졌다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새벽의 푸른색이 나를 가라 앉히고 나로부터 나를 걸러내고, 뭐든 처음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Color Name 시 Poem 김복희, 시인

사진은 ‘이택균이 그린 책가도 병풍’ 중 부분. 상단에는 ‘청자상감 운학무늬 매병’, 하단에는 ‘백자청화 파초 국화무늬 항아리’를 콜라주한 것. 세 작품 모두 서울공예박물관 소장.

책가도, 청화백자, 상감청자 My Blue 파랗다, 시퍼렇다, 푸르죽죽하다, 푸르스름하다…. 우리말의 다양한 파란 빛깔만큼이나 공예 속의 블루의 스펙트럼은 넓다. 고려시대 청자나 조선의 청화백자와 쪽빛 염색도 모두 푸른색으로 수렴된다. 여기, 공예 속의 세 가지 블루를 소개한다. 먼저 ‘이택균이 그린 책가도 병풍’(1871년)의 블루는 쪽빛 藍色이다. 그 깊은 파랑이 서가에 놓인 모든 사물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모름지기 조선 사대부의 공간에서 양반의 권위와 품격을 완성한다. 이 인공 군청(울트라 마린 블루)은 1850년 서양에서 개발된 안료로 국내의 값비싼 천연 청금석이나 석청 대신 사용한 것이다. 두 번째 ‘백자청화 파초 국화무늬 항아리’(1785년 또는 1845년)의 담청 淡靑은 화원의 유려한 붓 터치와 농담으로 햇살과 바람마저 느껴진다. 청화백자는 이슬람에서 수입한 코발트 안료로 그림을 그렸다. 우리나라에는 1457년 명나라를 통해 전래되어 금값보다 귀히 여겼다. 당시 공예의 결정체인 청화백자의 탄생은 동서양의 교류를 확장시켜 도자기의 길이라는 말이 있다. 세 번째, ‘청자상감 운학무늬 매병’(13세기)의 푸른빛이다. 청자 靑瓷는 오늘 날 색상으로는 그린에 가까우나 옥을 닮은 푸른빛의 무한한 깊이감을 형용하기 어렵다. 이들 공예의 세 가지 블루는 세상을 열광시켜 동서양을 관통하는 항해와 교류의 길을 열었다. 그 탄생과 향유의 배후에는 바다를 넘나든 화려한 과거사가 있다. 그러므로 내게 블루는 길 Road이다. 흥미진진한 대항해의 오디세이 Odyssey다. Color Name 오디세이 고미경, 서울공예박물관 큐레이터 · 미술사학자


에미시키 블루 My Blue 블루! 에미시키 블루를 마신 후로, 블루라 하면 에미시키 블루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땀마저 싱그러운 청춘의 어느 날이 술이 되면 이런 맛이지 않을까? 여름과 가을 사이, 엷은 하늘색 리넨, 눈부신 햇살에 살짝 찡그린 미간, 그래도 웃고 있는 입과 맨발에 밟히는 자잘한 조개껍데기 같은 것이 떠오른다. 완벽해서 부서질 것만 같은 불길한 조짐마저 현재를 더욱 빛나게 할 뿐. 무구함과 청량함, 미래의 징후까지 완벽하게 담아낸 블루의 이데아. Color Name 에미시키 블루는 에미시키 블루 양유미, 양조사 · 이쁜꽃 대표


과학하는 일상 My Blue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실험실로 들어선다. 실험에 사용할 시약들과 숫자가 빼곡히 적힌 노트 하나를 들고 파란색 실험복을 입는다. 감염병을 연구하는 실험실에서는 천으로 된 실험복을 입지 않는다. 세탁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오염될 수 있어 바로 폐기 가능하게끔 부직포로 된 실험복을 입는다. 손목을 훌쩍 넘는 길이의 파란색 긴 라텍스 장갑을 끼고 고글을 쓴 내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스머프를 닮았다. 오늘 실험은 백신을 만든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백신의 활성이 달라지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백신의 유효기간을 결정하는 실험이다. 백신을 만든 후 다른 보관 온도, 다른 기간(일주일, 1·3·6·9·12·18·24개월) 동안 백신 안에 든 항원이 분해되지는 않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투명한 96개의 칸막이가 있는 플레이트에 항체를 코팅 하고 백신을 넣고 또다시 효소와 연결된 항체를 붙이는 몇 번의 배양 과정을 거친다. 나는 제일 마지막 과정을 좋아한다. 마지막 항체에 연결된 효소는 특정 기질과 결합하면 특유의 색깔을 나타낸다. 내가 사용하는 기질을 반응시키면 선명한 코발트블루가 칸칸이 채워진다. 늘 그렇듯 시작과 끝이 블루로 채워지는 삶. 그것이 내가 과학을 하는 일상이다. Color Name 블루 고즈 온 Blue Goes On 문성실, 과학자 · 미생물학 박사

    피처 에디터
    김은희
    포토그래퍼
    김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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