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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브랜드로 보는 오트 쿠튀르 6

2021.09.06김유진

남성을 위한 오트 쿠튀르의 세계가 열렸다.

BALENCIAGA
아티스틱 디렉터 뎀나 바잘리아가 발렌시아가의 오트 쿠튀르 컬렉션을 53년만에 부활시켰다. 그가 쓴 새로운 챕터엔 발렌시아가 역사상 처음으로 남성이 포함됐다. 숭고한 패션의 본질로 돌아간 듯 흰색으로 꾸민 살롱을 배경으로 웅장한 의상이 등장했고, 63벌 중 무려 30벌이 남성을 위해 준비한 것이었다. 턱시도 사이 테크니컬 패브릭 소재의 파카와 트랙 수트가 뎀나 바잘리아가 재정립한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유서 깊은 하우스이자 동시대 패션을 대변하는 발렌시아가는 스트리트 웨어를 입는 남자도 오트 쿠튀르를 입을 수 있다는 태도에 대해 웅변했다.

FENDI
킴 존스가 펜디의 여성 디렉터로 임명된 후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 여사는 남성 컬렉션 디렉터로 돌아왔다. 다양성의 가치에 대한 뜻이 같던 두 사람은 Fall 시즌, 아틀리에를 가진 하우스가 보여줄 수 있는 남성 쿠튀르가 무엇인지 본격적으로 증명했다. 예술적 기교와 장인 정신이 담긴 남성복은 비중은 높지 않아도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펜디는 천천히 그리고 확실하게 남성들에게 오트 쿠튀르의 문을 열고 있다.

MAISON MARGIELA
젠더리스 오트 쿠튀르의 선구자 존 갈리아노. 그는 2015년 메종 마르지엘라에 합류한 후 필요하다면 언제든 쿠튀르 쇼에 남성 모델을 기용했고, 기성복 컬렉션에서도 아티스틱한 의상을 선보이며 경계를 넘나들었다. 이번 컬렉션은 영화감독 올리비에 다앙과 함께 ‘A Folk Horror Tale’이라는 제목의 필름을 제작해 또 다른 판타지를 실현했다. 중세 잉글랜드 크누트 대왕 이야기와 네덜란드 어부들의 전통 의복을 테마로, 성별과 인종이 다른 모델들이 존 갈리아노의 페르소나가 되어 극적인 순간을 완성했다.

AZZARO
메종 아자로의 새로운 아티스틱 디렉터 올리비에 테스켄스는 로리스 아자로가 하우스를 설립한 1970년대로 돌아갔다. 글래머러스 쿠튀르의 힘에 다시금 눈을 돌려 관능적이고 섹시한 아자로식 쿠튀르가 남성에겐 어떤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파리 오트 쿠튀르 협회가 인정한 하우스만이 쿠튀르 컬렉션에 참여할 수 있는 까다로운 조건에 걸맞게 아틀리에에서 제작한 섬세한 스팽글 팬츠, 최고급 원단과 정교한 테일러링이 단단한 남성의 몸을 유연하게 감쌌다.

GIAMBATTISTA VALLI
남성복의 오트 쿠튀르 무대 데뷔는 디지털 세상에서 빠르게 소비되는 패션의 반대편, 사람의 손으로 만드는 최고급 맞춤복에 대한 열망의 결과다. 똑같은 트렌드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들에겐 새로운 것이 필요했고, 여성 쿠튀르의 중심축인 지암바티스타 발리는 이런 요구를 빠르게 수용했다. 자수와 깃털로 장식한 턱시도, 거대한 케이프를 통해 자유를 원하는 남성들에게 패션 판타지를 선물했다.

VALENTINO
발렌티노의 수장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공개한 2021 Fall 오트 쿠튀르 쇼를 여성과 남성 어느 쪽도 아닌 “Just Couture”라고 표현했다. 거대 패션 하우스가 발 벗고 나서서 남녀 통합 쿠튀르를 선보인 배경엔 지난 기성복 컬렉션에서 보여준 남성용 쿠튀르 의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성별에 상관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MZ 세대의 생각이 자극제가 됐다. 의상은 17명의 아티스트와 긴밀한 대화 끝에 선명하고 다양한 컬러, 우아한 가운과 케이프, 일일이 수놓은 깃털 장식 등 절제됐지만 미학적 해석이 담긴 내러티브로 완성됐다

    패션 에디터
    김유진
    어시스턴트
    박지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