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9월을 읊는다

2021.09.09김은희

문인 짓고, 예인 쓰다.

오은 시인 × 윤민구 서체 · 그래픽 디자이너
내가 쓴 시 ‘1년’의 일부다. 주변에서는 가을이라고 하는데, 몸은 여름으로 감각하는 달이 바로 9월이다. 성인이 된 후부터 내게는 환절기처럼 다가오는 시절이기도 하다. 2학기가 시작되는 달, 한가위가 목전이라 부산한 달, 가을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 다들 뭔가를 궁리하는 달인데 나는 그렇게 무기력할 수가 없다. 학교도 자주 빠지고 친척들 앞에서 자꾸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일에 대한 의욕도 바닥나 있다. 한여름 뙤약볕에 몸뿐 아니라 마음도 녹아내린 것처럼. 마음을 다잡으려고 애쓸수록 그것은 손가락 사이의 물처럼 나를 놀리듯 빠져나간다. 그래서 9월에는 나처럼 한발 늦게 도착하는 존재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지 모르겠다. 가장 마지막에 단풍 드는 나뭇잎처럼, 하필 이사 간 다음 날 도착하는 우편물처럼, 과거를 회상하다 그것이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사람처럼. 어쩌면 미련한 사람은 미련이 많은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 오은
잡지 못한 마음이 무슨 상관인가요. 가을에는 중후하게, 과격하게, 멋스럽게 흘려 써내려간 활자처럼 우리 흘려보내요.― 윤민구

윤지양 시인 × 권준호 서체 · 그래픽 디자이너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볼 때도 있다. 그럼에도 자전거 타는 게 싫지 않다. 오히려 좋아한다. 비틀거릴지언정 페달을 밟으며 속력을 낸다. 마음만은 달까지 갈 기세다. 이 마음이 어디서부터 왔더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 고등학교 2학년 때로 돌아간다. 저녁 무렵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모님이 싸워서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는 얘기였다. “너도 자전거 끌고 나와.” 나는 자전거가 없어서 그냥 맨몸으로 나갔다. “뭐야, 너 자전거 없어?”, “응, 그냥 걸으려고.”, “뒤에 타.” 그렇게 친구 뒤에 앉았다. 친구는 열심히 페달을 밟고 나는 편하게 개천의 경치를 감상했다. 아니, 엉덩이가 조금 불편했던가. 물가에 핀 억새와 간간이 안개처럼 피어난 꽃을 보았다. 친구 뒤에서 내내 웃었다. 그때 불었던 바람이 지금도 분다. ― 윤지양
종이에 써 내려간 글자, 억새풀의 질감. 문장에서 전해진 정서를 표현하는 방법. ― 권준호

윤해서 소설가 × 이수연 서체 디자이너
플로리다에서 무족영원이 발견되었다. 공룡시대부터 살아온 원시 양서류. 무족영원이 산 채로 발견된 것은 처음 있는 일. 눈이 퇴화되어 머리와 꼬리의 구분이 어려운 발 없는 영원을 보고 있는데. 매미가 운다. 매미는 매년 똑같이 우는데. 올해의 매미는 유독 악을 쓰는 것 같다. 매미의 울음 때문일까. 무족영원이 끝을 보러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무족영원의 울음을 상상한다. 끝을 결정하는 것은 누구인가. 마음이 꼼짝도 않는 사이 여름이 간다. 견디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누구나 한 계절의 끝에 서 있다. ― 윤해서
넓은 납작붓을 역전시켜 단정하게 써 내려 간다. 글자의 가로획을 세로획보다 두껍게 쓰는 것은 금기시되는 일. 그러나 서 있다. 끝의 계절은 반복되고 계절과 계절은 맞닿아 연결된다. 그곳에 나도 서 있다. ― 이수연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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