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모지 세계

2021.09.14김은희

우회적인 의사 전달을 위해 개발한 이모지에는 직접적으로 시대상이 축적되어 왔다. 올 하반기 공개 예정인 2020년대 새 이모지에는 무엇이 담길까. 

“세상에 망조가 들었다.” 최신 이모지 기사에서 <중앙일보>는 이렇게 강력한 표현을 썼다. 한국의 신문으로부터 망조 판정을 받은 이모지는 임신한 남성 이모지다. 이 이모지는 2021년 7월 17일, 세계 이모티콘의 날을 맞이해 새로 공개된 임시 이모티콘 중 하나였다. 이 이모지에 대한 판단을 떠나 이런 사실이 신문 기사에 논란이라 소개되는 거야말로 놀라운 일이다. 그냥 그림 문자 중 하나일 뿐인데. 그러나 2019년 <와이어드> 기사의 표현에 따르면 이모지는 ‘디지털 시대의 공용어’다. ‘이모지가 뭐길래’라는 짧은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꽤 긴 시간과 사람들의 여정을 따라가야 한다.
이야기는 일본에서 시작된다. 일본 전에도 초기 이모티콘이 있었다. 이를테면 🙂 같은 기호들은 20세기 초반의 미국 잡지에서도 인쇄됐다. 이모지의 차이점은 특정한 틀 안에서 특정한 의도를 가진 여러 종류의 기호가 마치 언어처럼 한 번에 발명되어 쓰였다는 점이었다. 그 시도가 시작된 곳이 1990년대 일본이었다. 일본이 무선전화를 통한 초기 무선 인터넷을 시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무선 인터넷은 데이터 송수신량이 제한되어 간단한 종류의 문자 정보만 보낼 수 있었다. 데이터 송수신량이 제한된 상황에서 더 풍부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다.

일본인들이 찾아낸 방법은 기호였다. 기호 중에서도 제한된 그래픽 환경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정보를 보낼 수 있는 기호여야 했다. 여기서 현대 이모지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등장한다. 쿠리타 시게타카, 당시 일본 통신사 NTT 도코모 개발자다. 그는 12×12 단위의 픽셀 안에서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 기호를 고안했다. 그는 일본 만화의 상징이나 픽토그램 등을 이용한, 지극히 현대 일본적인 기호를 176개 제작했다. 이 새로운 기호의 이름은 그림 문자라는 뜻의 ‘에모지 絵文字(えもじ)’, 지금과는 한 글자가 다르다.
일본 문화가 이모지를 낳았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권은 직설적인 말을 삼가는 풍조가 있다. 소설가 무라카미 류는 1990년대의 수필에서 설명했다. “일본에서는 어떤 사실을 솔직히 말했다가는 상대방의 기분을 거스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에는 일본 사람들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우회적 표현이 존재한다. (중략)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고 또 직접적인 표현도 쓰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일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이건 어느 정도는 한국적인 커뮤니케이션이기도 하니까 우리도 이해하기 쉽다. 문자로만 말하면 커뮤니케이션의 느낌이 너무 딱딱해질 수 있으니, 이모지는 이런 문화권에서 나올 법한 그림 문자였다. 실제로 이모지는 일본에서 성공했으니 무라카미 류의 통찰은 정확했다.
류의 통찰은 정확했으나 그가 약간 간과한 게 있다. 우회적 표현은 일본인을 넘어선 보편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라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다 말하지 않고 직접적인 표현도 쓰지 않는” 표현법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이 사실이 극적으로 증명된 계기가 이모지의 해외 진출이다. 여기서는 손정의가 큰 역할을 했다. 애플 아이폰이 일본에 진출할 2008년쯤 이모지는 일본인 문자 소통의 일부가 되어 있었고, 일본 소프트뱅크 창업자 손정의가 애플에 “일본에서 이모지가 없는 이메일은 이메일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애플이 2008년 아이폰에 이모지를 탑재했다. 이모지는 2008년 지메일에 등록되고, 2008년 iOS 2.2에 등록되고, 2011년 iOS 5에서 이모지 키보드가 따로 만들어지며 대중화의 길을 걷는다.

아이폰과 이모지의 만남은 인류 커뮤니케이션 역사의 한 페이지에 실어도 될 법한 의미가 있다. 애플이 글로벌 단위로 판매하는 상품에 이모지를 탑재하고 쉽게 쓸 수 있게 만들면서 이모지가 일종의 세계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다. 유럽 제국 시절 영어나 프랑스어 등이 각자의 무역망을 따라 퍼지듯, 이모지라는 의사소통 체계 역시 아이폰의 글로벌 유통망을 따라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이렇게 전파되며 이름까지 변했다. 일본어 ‘에모지’를 영어로 적으면 emoji가 되고, 그걸 영어권에서 읽으면 ‘이모지’가 된다. 일본이 만들고 미국이 퍼뜨린 게 전 세계의 기호가 된 것이다.
이모지는 공통 언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체계적으로 발전했다. 2008년 지메일과 아이폰이 이모지를 지원한 이후 2010년 유니코드가 유니코드 6.0을 발표하며 이모지를 지원했다. 유니코드는 전 세계의 문자를 컴퓨터에서 일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산업 표준이고, 유니코드 협회가 이를 지정한다. 말하자면 인터넷 언어의 사제단 같은 곳이다. 이들이 이모지를 언어 체계로 넣었다는 건 이모지가 컴퓨터 세계의 정식 언어 중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다. 유니코드가 2010년 유니코드 6.0에서 발표한 이모지의 수는 722개였다. 2018년 이 수는 3천 개에 가까울 정도로 치솟았다.
이모지의 수가 이렇게 많아진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이모지가 흥행했다. 사람들이 그림 문자에 익숙해지자 쓰임새가 엄청나게 넓어졌다. 2013년에는 턱이라는 미국인이 <모비 딕>을 이모지로 번역했다. 유니코드 협회 역시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계속 이모지를 새로 출시했다. 대표적인 변화가 2015년부터 시작된 다양한 피부 톤이다. 이제 피부 톤이 표현되는 이모티콘은 모두 5가지 색으로 표현 가능하다. 언어로 치면 그만큼 기호가 늘어나는 거니까 이 모든 게 이모지가 늘어나는 이유가 된다.

세상에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듯 보이지만 모든 규칙은 흐지부지 생겨서 서서히 변해가며 점점 굳어진다. 세계가 이모지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 증거다. 이모지로 번역된 <모비 딕>은 지금 미국 의회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다. 2015년에는 옥스퍼드 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울면서 웃는 이모지를 선정했다. 공신력 있는 단체들이 이모지를 세계의 정식 언어로 인정했다. 이제 일본이 이모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잊힌 가운데 2016년 이모지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일이 한 번 더 일어났다. 뉴욕 현대미술관이 1999년의 초기 이모지 176개를 영구 소장한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문자와 기호는 어떤 방식으로든 편향성이 생긴다. 현대의 이모지는 공정성을 강하게 주장하는 언어라 볼 수 있다. 5가지 피부 톤이 대표적인 예다. 성 불평등 논란 역시 이모지가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부분이고, 모든 인간형 이모지의 양성 버전이 만들어진 이유다. 예를 들어 요리사는 남녀가 피부색별로 5개씩 있으니 같은 직업을 말하는 기호가 10개다. 이모지를 기호 체계라고 생각하면 효율이 떨어지지만 공정성이 먼저라고 생각하면 공정한 일이다. 화제가 된 ‘임신한 남자’ 이모티콘 역시 공정성과 성 중립성을 중시하는 유니코드 컨소시엄의 의도가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모지가 전 지구적 기호 체계가 된 지금도 초기 이모지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대표적인 게 와인잔 이모지와 손가락 브이 이모지다. 언젠가 이 기호를 쓴다면 자신도 모르게 1999년부터 만들어진 클래식 ‘에모지’의 최신판을 쓰는 셈이다. 2021년 연말에 추가될지도 모르는 이모지 목록에는 K-팝의 손가락 하트도 있다. 약 20여 년의 시간을 거친 결과 일본인의 V와 한국인의 손가락 하트가 함께 기호화되는 세상이 왔다. 이 모든 게 21세기다. 이모지는 유니코드에 들어 있기 때문에 방금처럼 원고 페이지에 적어도 깨짐 없이 표현된다.  글 / 박찬용(칼럼니스트)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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