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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이라는 불안감

2021.10.06김영재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었던 순간 역시 서서히 저물고 있다.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 뒤에 달린 패들 시프트를 당기는 순간 변속이 이뤄진다. 최신식 듀얼 클러치 자동변속기(이하 DCT)에서 변속이 이뤄지는 시간은 평균 0.1~0.2초다. 변속 과정에 실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운전자가 변속 버튼을 누르자마자 전기 신호가 변속기 컴퓨터에 데이터를 전송하면, 홀수 단 혹은 짝수 단에 연결된 두 개의 클러치가 기다렸다는 듯 다음 단으로 엔진 출력을 연결한다. 이 과정이 전개되는 0.1초란 시간은 거의 즉각적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대로 수동변속기는 어떨까. 운전자가 직접 손으로 변속 과정에 개입하는 형태다. 클러치 페달을 밟고, 변속기를 낮은 단에서 높은 단으로 바꾼 후 다시 클러치 페달에서 발을 떼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변속 시간은 아무리 빨라도 0.3초 이상 필요하다. 평균 0.5초 수준이고, 운전자의 스킬에 따라서는 그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게다가 확률로 따지면 변속 실수는 수십 번에 한 번 정도 발생한다. 이 경우 보정 과정을 더하면 1.5초 이상 소요된다.
그럼 위 두 차가 서킷을 달린다고 가정해보자. 더 빠른 기록 측정이 목적이다. 한 바퀴를 도는 데 대략 1분 30초 정도가 걸리는 서킷에서 변속은 20회 이상 이뤄진다. 단순 계산을 했을 때, 듀얼 클러치보다 변속 시간이 평균 0.3초 느린 수동변속기는 매 바퀴에서 0.60초씩 뒤처진다. 서킷을 30바퀴 도는 경주였다면? 설명할 필요가 없겠다. 십수 년 전, DCT가 세상에 등장한 이후부터 수동변속기의 효율성은 나날이 떨어지고 있다. 특히 스포츠카나 레이스카 분야에서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포뮬러원이나 월드 랠리 챔피언십같은 세계 최정상 모터스포츠에서는 이미 한참 전부터 패들 시프트로 조작하는 자동변속기를 쓴다. 따라서 0.1초의 승부를 겨루는 모터스포츠 드라이버는 자동차 영화의 주인공처럼 박력 있게 변속하지 않는다. 그냥 손가락만 까딱하는 간결한 행위로 최고의 효율성을 보장받는다.
DCT의 장점은 이것만이 아니다. 최신 모델의 경우 뛰어난 내구성을 바탕으로 사소한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저속에서 클러치가 작동하는 느낌은 부드러우며 그만큼 시내 주행에서 승차감도 뛰어나다. 정밀한 컴퓨터 유닛이 주행 상황에 따라 대응한다. 고속 주행 때 클러치를 살짝 떼고 탄력으로 주행하며 연료를 절약하는 똑똑한 처세도 보여준다. 빠르고 효율적이고, 경제적이기까지 하다니.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수동변속기가 더 이상 존재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결국 DCT의 존재는 반박하기 어렵다. 자동차 마니아인 나를 포함한 수동변속기 예찬론자들이 궁지에 몰렸다. 자동차 회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래서 논리가 명쾌하지 않은 수동변속기를 제품군에서 점점 줄이는 중이다. 얼마 전 유럽 자동차 시장조사 기관 자토 다이내믹스가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유럽에서 판매 중인 5천8백여 종의 자동차 가운데 수동변속기를 제공하는 모델은 32퍼센트 정도로 줄어든 추세다.
한국 시장에서도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는 승용차는 10종도 안 된다. 수동변속기의 미래를 내다본다면 전망이 더 어둡다. 변속기가 필요 없는 전기차가 주력이 될 시대를 앞두고 수동변속기를 최신식으로 개발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맞다. 인정한다. 표면상으론 DCT의 승리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동변속기가 사라지는 것에 동의하는 건 아니다. 이건 물과 커피, 혹은 전자식 시계와 기계식 시계처럼 관점에 따른 문제다.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커피를 마시거나,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는 용도로 수천만원에 육박하는 기계식 와인딩 시계를 차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수동변속기를 다룰 땐 특유의 ‘손맛’이 있다. 특히 고회전, 고출력 엔진의 힘을 운전자 마음대로 끊거나 연결하면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감동이 따르는데, 자동차와 소통하는 하나의 연결고리 같다. 운전이란 행위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목적의식은 책임감까지 불러온다. 더구나 실제로 차를 조작하는 특정 상황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에겐 변속기가 차의 속력을 바꾸는 장치지만, 자동차 마니아는 이걸 방향을 바꾸는 역할로도 쓴다. 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스포츠카의 경우 차 뒷바퀴를 미끄러뜨리며 차 앞머리의 방향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일정 엔진 회전수에서 클러치 페달을 빠르게 밟았다가 놓는 행위로 이 동작을 구현한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이게 바로 드리프트나 짐카나 경주에서 자주 쓰이는 ‘클러치 킥’이란 기술이다.
수동변속기와 마찬가지로 효율성이란 측면에서 궁지에 몰린 기술은 또 있다. 대배기량 자연 흡기 내연기관 엔진이다. 내연기관 엔진은 인류가 110년간 발전시켜온 현대 산업의 원동력이다. 하지만 엔진이 내뿜는 배출가스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이 알려진 이후, 엔진은 필요악의 존재가 됐다. 그때부터 정부는 엔진의 각종 기술을 규제하고, 저탄소에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일부 고급차 브랜드는 2030년부터 판매하는 제품의 50퍼센트를 전기차로 바꾸거나 비슷한 시기 내연기관 판매를 완전히 중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비슷한 이유로 이미 12기통 같은 엔진은 씨가 마르기 직전에 달했다. 4000cc 이상의 대배기량 엔진에서도 터보나 하이브리드가 아닌 자연 흡기 방식은 극소수에 달한다.
시대의 흐름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다. 자동차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역동적이었던 순간 역시 서서히 저물고 있다. 그래서일까? 위기를 느낀 자동차 회사들은 의도적으로 도전적인 제품이나 에디션을 제작해 소비자의 시선을 잡는 데 집중한다. 이를테면 포르쉐 718 GT4가 있다. 수동변속기에 4.0리터 자연 흡기 엔진을 달고 엔진을 차 정중앙에 둔 미드십 타입 제품이다. 소비자는 열광적으로 반응했고 미디어는 ‘마지막’이란 수식어를 동원하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최근 람보르기니가 아벤타도르 S 로드스터 코리아 에디션을 발표했다. 단 넉 대만 만드는 이 모델은 한국 시장의 열정적인 반응에 응답한 제품이자 자연 흡기 V12 엔진의 종말을 예고하는 마지막 에디션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탄소 배출이 세금과 각종 규제의 영역이 되면서 스포츠카 전문 브랜드들도 마지막 에디션으로 화려한 작별을 준비 중이다. 아우디는 50대 한정 R8 그린 헬 에디션을 내놓았고, BMW M2 컴페티션 파이널 에디션도 국내 87대를 마지막으로 단종된다. 판매 부진이 큰 영향을 줬겠지만, 아큐라 NSX 타입 S 같은 일본슈퍼카도 350대 판매를 끝으로 EV 모델로의 전환을 예고했다.
‘더 이상 구입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자동차 시장에 작동한다. 1990~2000년대에 등장한 특정 영타이머(젊은 클래식카)는 판매 당시보다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공랭식 포르쉐는 어제가 가장 쌌다”는 말처럼 이미 단종된 과거의 찬란한 유산들은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지막 순서로 만들어지는 차가 있을 것이다. 5~10년 내로 순식간에 지난 시대를 상징하는 차들의 종말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그 예측이 현실화될 때 신차보다 비싼 값을 지불하고 내 인생의 마지막 자연 흡기나 수동변속기를 타긴 싫다. 그렇게 자기 합리화했고, 다짐을 실천으로 옮겼다. 수동변속기에 미드십 구조 자연 흡기 엔진을 얹은 차를 구입했다. 이 차의 값어치는 오늘보다 내일 더 높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글 / 김태영(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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