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빈 "제가 다시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 지큐 코리아 (GQ Korea)

김우빈 "제가 다시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2021-10-12T22:58:56+00:00 |interview|

고마워. 김우빈이 오늘에 부치는 말.

플론지 레더 셔츠 3백만원대, 실크 코튼 스웨터 90만원대, 스카프 30만원대,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GQ 계절의 국경이죠. 요즘 느끼는 감각이 있어요?
WB 가을 냄새, 가을 향 하면 어렴풋이 나무 냄새가 떠올라요. 그런데 향보다 온도에서 느껴지는 감각이 더 큰 거 같아요. 차가운 공기. 요즘 새벽이나 저녁에 창문을 열어놓으면 상쾌하더라고요.
GQ 좀 아까 인스타그램 보니 스토리에 촬영장 사진을 하나 올렸더라고요. 우빈 씨 뒷모습이 담긴.
WB 얼마 전 촬영장에서 찍힌 사진인데, 업로드하긴 아쉽고, 나만 소장하기에도 아쉬워서 하루살이용으로 스토리에 올렸어요.
GQ 작년 인터뷰에서 SNS 할 계획 없다고 말했는데, 요즘 제법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하고 있어요.
WB SNS를 안 하니까 늘 인터뷰에서 질문을 받았어요. “왜 안 하세요?” 그때마다 잘 할 줄 몰라서요, 실수할까 봐요, 대답하다 보니 저를 가두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나는 SNS 못 하는 사람. 그걸 깨보고 싶었어요. 결정적인 이유는 기다려주시는 팬들을 위해서죠. 제가 다시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서 용기를 냈죠.
GQ 인스타그램엔 주로 우빈 씨 사진인데, 휴대 전화에는 어떤 사진들이 있는지 궁금해요.
WB 소속사 식구들이 모니터링할 때 찍어주는 사진이 가장 많고, 제가 볼 때 예쁘고 기분 좋아서 찍은 것도 많아요. 하늘, 나무, 자연….
GQ ‘모야모’ 앱으로 수종을 종종 찾아본다면서요.
WB 맞아요. 최근엔 뭘 찾아봤더라…. (휴대 전화를 꺼내어 보여준다) 제가 쓴 글이 78개인데, 궁금한 꽃, 나무를 찍어 올리면 전문가들이 바로 댓글을 달아주세요. 1분도 안 걸려요. 진짜 좋아요. 최근에 올린 건 배롱나무, 그리고 란타나네요.

GQ 붉은 꽃이 많은 것 같네요.
WB 미처 몰랐는데 정말 그렇네요.
GQ 이름을 알게 되면 애정이 생겨요?
WB 그런 거 같아요. 더 관심이 생기고 마음이 가더라고요. 어쩐지 가까워진 느낌도 들고.
GQ 식물 박사가 되어가고 있겠네요?
WB 찾아보고도 까먹어요. 똑같은 거 또 물어보기도 하고. 순간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죠.
GQ 촬영 외의 일상은 어때요?
WB 반드시 오전에 일어나서 세수와 양치를 하고, 따뜻한 물 한잔 마시고 아침을 먹어요. 하루 세 끼를 꼬박꼬박 먹으려고 해요. 기본적이지만 지키기 어려운 것들을 지키려고 해요.
GQ 나 퍽 잘 살고 있다, 생각이 드는 루틴이 있어요?
WB 일상에서 깨어 있으려고 해요. 전에는 의미 없이 흘려보낸 시간이 많았어요. 아 피곤하다, 생각에 사로잡혀서 뭘 해도 다 피곤할 때도 있었죠. 요즘은 달라요. 대화할 때는 대화에 집중하고,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하고, 일할 때는 일에 집중해요. 순간에 집중하고 상대에게 마음을 열려고 해요. 그러니까 후회를 덜하게 되더라고요. 하루를 마무리할 때 이런 생각을 해요. 오늘 아침으로 다시 되돌아간다고 해도 오늘보다 더 잘 살 자신은 없어. 어쩌면 이것이 제가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일상의 루틴이 아닐까 해요.
GQ 변화가 찾아온 시점이 있었나요?
WB 쉬면서 든 생각이에요. 법륜 스님의 유튜브 보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주변 사람들과 부모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GQ 현재를 오롯이 사는 방법이 있어요?
WB 저도 오롯이 현재를 살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그 노력을 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인 것 같아요. 오늘 하루 단 한순간이라도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려고 한다면, 어제와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물론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하루아침에는 안 되고, 저도 매일 무너져요. 스님들도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그 마음가짐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지금 무척 행복해요.
GQ 달라진 삶의 태도가 연기에도 영향을 미쳐요?
WB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촬영하다 보면 순서가 뒤죽박죽일 때도 있거든요. 같은 장면, 같은 연기를 여러 번 반복해야 할 상황에서 보다 그때그때 순간의 느낌을 더 표현하게 되는 것 같아요.
GQ 요즘도 감사 일기 써요?
WB 네. 하루를 마무리하고 자기 전에 다섯 개씩.
GQ 언제, 어떻게 시작했어요?
WB 너무 오래되어서 시작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어요. 큰 계기가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GQ 배우가 되기 전인가요?
WB 아마 배우가 될 즈음인 거 같아요. 모델, 연기, 제가 원하는 것을 하나씩 이루어가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지금 갖고 있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고 싶어서 시작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에요.
GQ 최근에는 뭘 적었어요?
WB 지금 이 휴대 전화에 저장되어 있는 건 841개네요. 어제 쉬는 날이었거든요. “쉬는 날. 푹 잘 자고 일어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운동 즐겁게 하며 건강 챙길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옷 정리하며 잊고 있었던 옷들 찾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늦은 시간까지 일 정리해주는 채린 실장 감사합니다.” 오늘의 감사했던 것들을 떠올리고 더듬더듬 찾아가는 과정이 참 좋아요. 오늘도 감사한 일이 정말 많았네,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게 되거든요. 갈수록 점점 더 사소한 것들을 찾으려고 해요. 거창하고 특별한 새로운 이벤트야 너무 많으니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방법 중 하나예요.
GQ 쉽지만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WB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아요. 길어야 5분. 마음 먹기에 달렸죠. 초반에는 쉽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숨 쉬듯 일상이 되어서 전혀 어렵지 않아요.
GQ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는 걸로도 유명하죠.
WB 표현하는 걸 좋아해요. 말 안 하면 모르잖아요. 알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해주는 게 더 좋은 거 같아요. 나는 너에게 고맙고 나는 너를 좋아한다. 듣는 입장에서 불쾌하다면 안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표현은 할수록 좋은 거 같아요.

GQ 우빈 씨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표현은 뭐예요?
WB 고마워.
GQ 반대로 어떤 말을 들을 때 가장 기분 좋아요?
WB 고마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순간 당황하고 행동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그 공기를 좋아해요. 예상하지 않았을 때 머쓱해서 괜히 말을 돌리게 되는 그런 상황, 그런 느낌요. 으허허.
GQ 그러면 고맙다는 말을 습관처럼 하는 편이에요, 아껴두었다가 대단히 고마울 때 턱 하고 내놓는 편이에요?
WB 자주 고맙다고 해요. 대단히 고맙지 않을 때도 그렇죠.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들 때도 대단한 고마움은 아니지만 그 수고로움이 고맙잖아요. 웬만하면 표현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해서 고마운 마음이 0인데 하진 않고요. 으하하.
GQ 자연으로부터 고마움도 많이 느끼죠?
WB 집 마당에서 작년에 잘 자라던 꽃이 올해도 나와주면 너무 고마워요. 날 위해서 나온 것도 아닌데, 존재하는 것뿐인데도 고맙더라고요.
GQ 자연을 가까이 두면 그런 생각도 들죠. 반복된다고 생각한 매일매일이 사실은 새로운 하루로 차곡차곡 쌓이는 거다. 새로운 오늘이 내게 와줬다.
WB 맞아요, 맞아요. 그걸 알게 되어서 좋아요.
GQ 마당의 꽃과 나무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해요?
WB 들여다보고, 물 주는 정도예요. 그런데 그들을 위해서라기보다 그 행동을 하면서 제가 행복한 까닭이 더 커요. 물을 주면서 자연을 온몸으로 느낄 때의 감각이 좋으니까요. 그러면서 감사함을 느끼죠. 지금 내가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GQ 행복이 멀리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군요.
WB 맞아요. 사소한 걸 찾을수록 행복하죠.
GQ 최근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바라지 않으려고 한다.”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나요?
WB 사실 지금도 욕심은 많아요. 백 살까지 건강했으면 좋겠다,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다, 오늘 촬영 잘 나왔으면 좋겠다, 모두 욕심이죠. 달라진 건, 전에는 미래에 살았어요. 미래의 나를 위해서 지금의 나를 가꾸고, 채찍질을 했죠. 현재가 중요하고 좋다는 걸 알게 된 것이 큰 변화예요. 제 안에서 올라오는 욕심을 인지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요. 욕심을 버리려고 하는 게 오히려 욕심인 것 같아요.

멜란지 캐시미어 케이블 풀오버 1백만원대, 솔리드 플란넬 팬츠 70만원대, 페이즐리 스카프 30만원대, 모두 랄프 로렌 퍼플 라벨.

GQ 2015년 인터뷰에서 그랬어요. “빨리 마흔 되고 싶다.” 삶의 경험치를 빨리 쌓고 싶다고요. 이제 그런 욕심은 없나요?
WB 이틀 전에 촬영장에서 제가 그랬어요. “예전에는 맨날 마흔 되고 싶다고 했는데 이제는 싫어”라고요. 당시는 막연히 마흔의 남자 배우는 굉장히 멋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지금이 좋아요. 서른셋.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라서 뭔가 새롭게 열심히 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그리고 모니터링 하면 20대의 제 얼굴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 보고 굳이 빨리 마흔이 될 필요는 없겠다 싶기도 하고요. 으흐흐.
GQ 삶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느낌이 드네요.
WB 억지로 끼워 맞춘 것 없이 자연스러웠으면 해요. 드라마틱하게 굉장한 걸 바라고 원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냥, 자연스러웠으면 좋겠어요.
GQ 모든 게 순리대로 흐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WB 믿음은 없어요. 장담은 못하지만 그런 생각은 해요. 어떤 상황이 와도 받아들여야지. 후회하고, 자책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아요. 좋으면 좋은 대로, 혹시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 안에서 지혜롭게 해결하는 방법을 찾으려고 해요. 그런데, 아마 생각처럼 잘 안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