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 | 지큐 코리아 (GQ Korea)

레오 카락스의 선명한 세계

2021-10-19T19:31:03+00:00 |interview|

<아네트>를 들고 8년만에 나타난 레오 카락스를 만났다. 40년 동안 영화를 찍어도, 여전히 혼란하다는 거장 감독에게 물었다.

GQ 밴드 스팍스의 제안으로 <아네트>를 만들게 됐다고 들었다.
LC 그렇다. 형제가 보내준 15곡의 노래가 시작이 되어 새로운 영화를 찍을 수 있었다. 난 어렸을 때 레코드숍에서 스팍스 엘피를 훔쳐서 들었고, 내 영화 <홀리 모터스>에 그들의 음악을 삽입했을 만큼 그들의 팬이어서 즐겁게 작업했다. 아, 그 레코드는 아직도 갖고 있다.

GQ 새로운 영화에 들어갈 때 어떻게 확신을 만드는 편인가.
LC 어릴 때보다는 지금이 더 쉬워졌지만. 다른 사람들을 설득함으로서 나를 설득하는 편이다. 혼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특히 돈을 대는 사람들. (웃음) 그리고 배우들. 그래서 이 사람들을 설득하면서 ‘이걸 해야된다!’ 느끼면 확신이 생기고, ‘이건 좀 허풍이다’라고 생각하면 아예 프로젝트를 하지 않을 때도 있다.

GQ <아네트>는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은 나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다. 좋고 나쁜 부모의 기준은 뭘까?
LC 나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시도를 하지만 잘 모르겠다. 아버지가 되고 영화 두 편을 만들었는데 둘 다 나쁜 부모만 나온다. 좋은 아빠를 그리는 영화는 재미가 없지 않나. 늘 영화에 정답 대신 질문을 넣으려고 한다.

GQ 8년 만의 신작이다.
LC 그렇다. 스스로 ‘새로운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야 새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이제 막 <아네트>가 끝났는데 지금 생각으로는 다음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이 지점은 내게 미스터리 한 부분이다.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가야만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말이다.

GQ 그럼에도 관두지 않고 지속해올 수 있었던 힘은 뭔가?
LC 영화를 공부한 것도 아니고, 음향이나 영상도 잘 모른다. 심지어 날 영화감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혼란 속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시작할 때부터 프로듀서부터 포토그래퍼까지 항상 3-4명이 나를 도와준다. 그들이 나의 혼란에 선명함을 가져다주지.

GQ 가장 고마운 협력자를 꼽는다면?
LC <아네트>크루가 제일 좋았다.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는 크루 중 내가 제일 어렸는데 지금은 가장 나이가 많은 이들 중 하나다. 과거에는 거의 남성들과 일을 했는데, 요즘은 여성이 많아졌다. 그런 사람들을 찾을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스무 살 때나 지금이나, 절대 혼자서는 영화를 만들 수 없다.

GQ 현장이 매우 즐거웠을 것 같다.
LC <아네트>에서는 배우들이 거의 라이브로 노래를 녹음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촬영하며 보는 것 자체만으로 너무 행복했지. 목소리라는 게 참 연약한 존재이지 않나. 실제 뮤지컬에서는 노래를 해도 뭘 먹거나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이상하니까.(웃음) 하지만 우리 영화에서는 노래하면서 아담 드라이버가 오토바이를 탈 수도 있고 화장실을 갈 수도 있다.

GQ 뮤지컬이라는 장르에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LC 배우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오히려 더 자연스러웠다.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대사보다 노래를 하는 게 표현하는데 더 자유로웠다. 현실에서는 노래를 하지 않으니까 현실에서 섞을 수 없는 요소를 더 쉽게 섞을 수 있었다. 그로테스크하거나 심오한 것들을 말이다.

GQ <아네트>는 당신의 첫 영어 영화이기도 하다. LA를 배경이지만 유럽의 여러 도시를 오가며 찍었다고 들었다. 로케이션을 섞은 이유는 제작비 외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LC 물론 제작비 문제도 있었지만, 한 곳에서만 찍을 수 없는 물리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에 도전을 하고 싶었다. 그럼 영화가 흥미로워지니까. 목각인형 대신 노래가 가능한 아역배우를 찾는 것도 비슷한 문제였다.

GQ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그 배우 말인가?
LC 맞다. 이름은 데빈이다. 마지막 장면은 사실 어떻게 할지 나중에 정해졌고, 노래도 중간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걱정이 많았지. 목각인형을 대신할 실제 사람을 찾아야 했다. 엄청 많은 아역 배우의 비디오를 봤고 훌륭한 배우가 많았지만 함께 촬영 하고 싶은 배우는 없었다. 그때 데빈을 발견 했다. 데빈은 가장 어리고 집중력 시간이 짧았지만 오히려 그 점 때문에 흥미로웠다.

GQ 여담이지만 마리옹 꼬띠아르가 들고 다니는 붉은 사과가 장면마다 눈에 띄었다.
LC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 스탠딩 코미디언에 비해, 마리옹 꼬띠아르가 맡았던 오페라는 내게 낯설었다. 그래서 장르를 이해하기 위해 소프라노 배우를 실제로 만나보기도 하고, 이해하는데 시간을 많이 썼다. 만나보니 그들의 식습관이나 삶이 느껴졌다. 선수처럼 운동도 많이 하고, 잠도 잘 자야하고 물도 많이 마셔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다들 사과를 갖고 다니더라. 사과와 관련된 전래 동화가 많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백설공주’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넣었다. 바나나를 먹는 코미디언과 사과를 먹는 오페라 배우.

GQ 요즘은 다양한 형태의 영상이 범람한다. 이런 시대에 영화만이 가져야 할 문법이 뭘까.
LC 영화의 문법은 달라야겠지. 일본 영화감독 중에 오즈 야스지로라는 감독이 내게 말하기를 “시각을 완전히 씻어야한다”(we need to clean our eyes)고 이야기 했다. 인류 최초의 무성영화를 보고 지금은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영화는 생긴 지 100년 밖에 안된 어린 산업이지만 무성에서 유성, 흑백에서 3D로 정말 빠르게 발전해왔지 않나. 이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히 세대마다 새롭게 발전시켜 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새로운 힘을 만들지 않으면, 영화가 발전할 수 없을 것이다.

GQ 가장 좋아하는 <아네트>의 장면은.
LC 마지막 장면. 내가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는 게 자랑스럽다. 내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그 장면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

GQ 나 역시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었다. 아네트에게 심연을 보지 말라고 한다. 심연은 뭘까? 영화 내내 등장하는 ‘심연’에 대해 말해달라.
LC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원작으로 쓴 노래다. ‘sympathy for the abyss’라는 곡인데, 바다 위의 절벽에 매달린 상태로 바다를 쳐다보면 떨어져서 죽을 걸 알고 있다. 하지만 계속 쳐다본다. 멈출 수가 없는 거다. 그게 바로 심연에 대한 마음이다. 죽고자 하는 마음과 같은 것.

GQ 마지막 질문이다. 40년째 천재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거다. ‘천재’, ‘감독’ 말고 다른 단어로 당신을 표현한다면.
LC 카오스 cha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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