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이 "음악이 질리는 순간이 올까 싶어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이하이 "음악이 질리는 순간이 올까 싶어요"

2021-10-20T13:31:45+00:00 |interview|

도저히 잊을 수 없을걸. 이하이의 목소리부터 자태까지.

HI 아이패드 쓰시네요. 저도 얼마 전에 샀어요. 친한 사람들 고양이 그림을 그려주고 있는데 너무 재밌어요. 며칠 전엔 7시간 동안 그림만 그렸어요.
GQ 바쁘지 않아요? 시간이 돼요?
HI 네, 활동이 끝나가요. 오늘이 정식 활동 끝나는 날이에요.
GQ 축하해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HI 후련하기도 하고. 확실히 아쉽다기보다는 후련한 게 커요. 이번 앨범에서 배워가는 게 많아요. 정말 작은 것까지 다 같이 했거든요. 이런 것까지 같이 만들 수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GQ 오랫동안 준비한 앨범이잖아요. 하이 씨가 그렸던 큰 그림이 많이 실현된 것 같나요?
HI 그런 거 같아요. 사실 정규 2집이 마음에 들어서 준비하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해본 거 치곤 생각했던 방향대로 잘 나와서 만족해요.
GQ 스스로 선택하고, 표현하고. 그래서 그런지 활동 내내 더 자유롭고 편안해 보였어요.
HI 그런 거 같아요.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그만큼 책임감도 많이 따르지만. 저는 자유롭게 하고 책임 지는 환경이 저한테 잘 맞는 옷 같아요. 마음이 편해요.
GQ 이번 앨범의 제일 큰 목표가 뭐였어요?
HI ‘많은 사람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이게 제일 컸어요. 지금의 내가 제일 쉽고,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를 전하고 싶었고요.

GQ 레이블을 옮긴 만큼 욕심내서 하이 씨가 하고 싶은 대로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HI 처음엔 온전히 내가 즐거운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홀로’ 할 때부터 준비를 했는데요. 나 혼자만 즐거운 게 아니라, 다 같이 즐거운 음악을 만드는 게 제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라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더라고요. 5년 만에 내는 거니까 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앨범을 만들자, 좀 더 어릴 때 그런 음악을 많이 해놓자고 방향을 틀었어요. 그래서 결국 딥한 방향을 바꾸고,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음악으로 채웠죠.
GQ 선택의 시간들이었네요.
HI 네, 선택의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큰 만큼 즐거웠어요. 과정을 알아가는 기쁨이 있었거든요. 남에게 곡을 받아서 ‘잘’ 부르는 일만 했지 제가 직접 곡을 써서 디렉팅하고 과정에 참여한 건 처음이라 앨범 공개 직전에는 걱정도 되더라고요. 그래도 팬들에게 한 번쯤 해주고 싶은 솔직한 제 이야기를 담아서 공개하고 난 뒤에는 후련했어요.
GQ 한 번 내보고 나니까 알게 된 것들이 있죠. 다음엔 어떻게 하고 싶어요?
HI <4 ONLY>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만인의 언어로 풀어서 썼다면, 다음에 선보일 노래들은 더 아이 같은 마음으로, 더 솔직하게 쓰고 싶어요. 지금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거든요.
GQ 벌써요?
HI 네, 쉬는 게 불안한 타입이거든요. 활동하면서 데모를 조금씩 녹음해놨어요. 정규는 아니고, 소규모로 제 주변분들, 팬분들이 듣고 좋아하실 수 있는 앨범을 하나 만들고 싶어요.
GQ 결이 다르겠네요.
HI 제가 들었을 때 좋고 아티스트적인 만족도를 위해 만드는 앨범이 있고, 어떤 앨범은 사람들이 불러주고 즐겨줄 때 완성되는 앨범이 있다고 생각해요. 두 앨범 다 제 앨범이라고 생각하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가수를 오래 하다 보니 공연장에서 관객분들, 팬분들과 함께하는 노래, 앨범의 의미와 기쁨을 알겠더라고요. 요즘은 무대에서 함께할 때가 가장 즐겁다는 생각이 들어요.
GQ 관객을 못 만난 지 오래됐죠.
HI 네. 공연을 하고 관객분들을 만나려면 무대에서 함께 나눌 수 있는 곡이 꼭 필요해요. 혼자만 부르고 만족하는 곡이 아니라요. 그래도 일단 다음 앨범은 제 취향과 만족을 위한 걸로. 하하.
GQ 하이 씨가 만족한다면 사람들도 좋아하겠죠.
HI 그렇겠죠?

GQ 하이 씨만의 취향이 온전히 담긴 곡은 어떨지 궁금하네요.
HI 전 옛날 노래를 너무 좋아해요! 한 앨범에 빠지면 딱 그 곡만 듣는 게 아니라 그 앨범을 통으로 들어야 만족하는 스타일이거든요. 그래서 요즘 노래 나오는 속도를 따라잡기가 힘들어요. 빨리 나오고, 다른 장르로 트렌드가 빨리 바뀌니까요.
GQ 요즘 듣는 노래 추천해줄 수 있어요?
HI 데니스 윌리엄스요. <This Is Niecy>도 너무 좋고. 아니타 베이커의 앨범을 너무 좋아해서 언급을 많이 하는데 편집을 많이 당해요. 하하. 오디션에서도 불렀는데, 저조차도 부르기 어려운 곡이 많아요.
GQ 하이 씨도 부르기 어려운 곡이 있군요.
HI 전 제가 가수가 될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르는 것보다 듣는 걸 좋아했어요. “이런 멋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게 너무 좋다” 그런 생각뿐이었어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는 사운드가 완벽해서 믹스하면서 제일 많이 들었어요.
GQ 너무 좋죠. 저도 좋아해요. 특히 매년 9월이 오면 ‘September’는 들어야 해요.
HI 맞아요. 스튜디오 가서 하루 종일 믹스하면 너무 스트레스 받는 거예요. 근데 이분들 노래를 들으면. 아 내가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내 음악이 의미가 있나, 이미 이렇게 완벽한 음악이 세상에 나와 있는데. 하.
GQ 여전히 엘피 모으는 거 좋아해요?
HI 이사하면서 한 번 정리했는데 그래도 좋아해요. 잊히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옆에 두면 듣게 되고 하니까. 진짜 좋아하는 건 엘피로 사요.
GQ 언제부터 이런 취향이었어요?
HI 어렸을 때부터 이런 노래만 들었어요. 엄마가 패밀리 레스토랑을 하셨는데, 거기 한쪽 벽면에 CD가 엄청 많아서 골라 들었던 게 생각나요. 그때도 똑같았어요. 캐럴마저도 데스티니 차일드 같은 것만 좋아했대요.
GQ 한결같네요.
HI 그게 저도 신기해요. 어려서부터 뭘 오래 못 했거든요. 사람한테도, 물건한테도. 뭘 오래 꾸준히 못 하고 질려 해서 엄마도 걱정하셨어요. 근데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은 유일하게 질려 하지 않고 하루 종일 하니까 신기해하셨죠. 그래서 직업이 된 거 같아요. 지금도 너무 즐거워요. 질리지 않아야 오래 일로 할 수 있잖아요.
GQ 오, 방금 진심으로 멋있었어요. 그럼 만약 음악이 질리는 순간이 오면 어떻게 할 것 같아요?
HI 만약 정말 그런 순간이 오면 음, 글쎄요. 진짜 질리면 안 하지 않을까요? 근데 사람들이 착각을 해요. 잘 안 풀리거나, 정체되는 순간이 오면 그만둬야겠다고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다 그런 순간을 겪잖아요. 근데 싫고 힘들겠지만 그 순간을 넘기는 것도 필요해요. 저는 일단 싫어도 한 번 해보라고 해요.

GQ 하기 싫은 거랑 질린 건 다르니까?
HI 네. 아까 제가 대중들이 완성시켜주는 곡이 있다고 했잖아요. ‘아 노래하기가 힘들고, 사람들을 위로할 마음이 안 든다. 오히려 내가 위로받아야 할 거 같다.’ 저도 이런 마음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근데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 부를수록 제가 위로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슬럼프를 극복하는 일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음악이 질리는 순간이 올까 싶어요. 왜냐하면 너무 많은 음악 장르가 있고, 가사가 있고. 또 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렇게 빨리 질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GQ 그런 믿음만큼 책임감도 강해 보여요. 인터뷰 내내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네요.
HI 있는 편인 거 같아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는 걸 스스로 인지하고 있죠. 너무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해서 그런지, 하기 싫은 걸 해야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 이후부터는 무조건 하기 싫은 것부터 해요. 미루는 것도 별로 없고요. 일할 때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GQ 그럼 ‘할머니가 된 하이’를 상상해볼게요.
HI 유치한 할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할머니면 좋겠어요. 나이가 들수록 하고 싶은 대로 못하고 사는 거 같아요. 왜 사람들은 어렸을 때 ‘어른이 돼면 해야지!’ 했던 걸 오히려 어른이 돼서 ‘이렇게 하면 안 되지’ 하면서 점점 스스로를 작게 만들까요. 그래서 할머니가 되면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할 거 같아요. 하하.
GQ 소소한 즐거움! 마스크 없이 산책하고 싶어요.
HI 맞아요. 정말 꿈같지 않아요? 저는 가을을 좋아하는데 초등학교 1학년 때 하굣길에 아파트 단지에서 동요 부르면서 집에 간 게 아직도 생생하게 생각나요. 그런 게 그리울 때가 많아요. 햇빛도 좋고 숨도 편하게 쉴 수 있고. 이제는 그때가 가짜 같아요.
GQ 그쵸. 너무 많은 게 변했죠. 이번 활동도 마무리 단계인데 아쉬운 게 있다면요.
HI 공연이 제일 아쉽긴 해요. 앨범을 내고 공연을 못하니까 허전해요. 활동이 뚝 끊긴 느낌?
GQ 그럼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까요? 펌킨 사장님이 예산 상관없이 콘서트를 열어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고 싶어요?
HI 음, 멋있는 조명을 엄청 많이 하고 싶어요. <태양의 서커스> 보셨어요? 그런 희한한 조명들도 달고요. 비즈 발도 달고 싶고요. 스팽글 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