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남긴 흔적을 쫓는 4대의 추격자.
JEEP GLADIATOR ― 갈대밭 사이에 몸을 숨겼다. 미끄럽고 끈적이는 바닥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괜찮다. 이보다 더한 곳도 충분히 달리고 올랐으니까. 쫓을수록 짙어지는 연어 빛 흔적을 따라서 홀린 듯이 차를 몰았다. 매끄러운 도로를 벗어나 갈대밭을 가로질렀을 땐, 아득하게 떠 있던 태양이 마침내 눈앞으로 기울어 떨어졌다. 풀숲에 납작 엎드려 사냥감을 노리는 고양이과의 맹수처럼, 순간 글래디에이터도 속도를 줄이고 정면을 응시한다. 질펀한 바닥을 떠올리며 기어를 사륜에 집어넣은 채, 주행 모드를 바꿔 하체를 단단하게 붙잡아둔다. 마치 발톱을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커다란 오프로드용 바퀴는 금방이라도 튀어 나갈 듯이 바닥을 뭉개고 앉아 때를 기다린다. 캄캄한 밤, 빛을 반사하는 육식 동물의 동공처럼 글래디에이터의 헤드라이트가 매섭게 빛난 건 그 순간이다.
PORSCHE PANAMERA 4 ― 성큼성큼, 파나메라가 빠른 속도로 도로를 접어 당기듯 달린다. 속도가 붙을수록 묵직해지는 엔진음이 마치 광야에 울려 퍼지는 힘찬 나팔수의 진군 신호처럼 통렬하다. 쫓는 실체는 보이지 않지만, 남겨진 흔적은 선명하게 존재하니까. 붉은빛을 쫓아 달리는 이 추격전이 결코 무모하지 않은 이유다. 캘리포니아의 1번 도로처럼 끝없는 지평선을 향해 뻗은 이 이름 모를 국도를 얼마나 달렸을까. 국도 주변으로 컴컴한 어둠이 천막처럼 내려앉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주변이 어두워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실체 없는 표적은 파나메라의 추격 욕구를 교묘히 채근하듯 멀리 떠 있다. 잠시 숨을 고른 파나메라가 헤드라이트를 서서히 켜 올린다. 날카로운 굉음이 파나메라를 화살처럼 다시 쏘아붙였다. 붉은색 리어 램프에서 꼬리처럼 긴 잔상만이 남았다.
DS DS7 CROSSBACK ― 파충류의 비늘을 닮은 DS7의 리어 램프는 반짝이지 않는다. 숯처럼 안에서 은은하게 빛난다. 그래서 가늘 게 뜬 눈을 닮은 리어 램프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수리의 눈처럼 깊고 매섭게 느껴진다. 높은 하늘에 떠서 먹잇감을 노리는 수리같이, DS7은 고지에 올라서서 차분히 쫓아야 할 흔적을 살핀다. 꺾이지 않고 흐르듯이 둥글게 내려앉은 루프 라인 덕분에 고지에 올라서도 몸을 숨기기 좋다. 노련한 추격자는 서두르지 않을 셈이다. DS7은 저 멀리, 높이 떠 있는 해가 내려올 때를 기꺼이 기다릴 참이다. 그래서 기울어진 해가 붉은빛을 내려 뿌리면, 해를 닮은 색을 입고, 그제야 매듭 같은 똬리를 풀며 은밀하게 추격을 시작할 것이다. 회색 수트같이 단정한 차체 위로 붉은색 하늘빛이 서서히 물들고, 엔진은 조금씩 들썩인다.
FORD EXPEDITION ― 붉은 하늘을 향해 호령하듯 달려든 건 익스페디션이었다. 그의 넘치는 힘과 존재감은 숨기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이어서, 차라리 이렇게 드러내놓고 떠들썩하게 쫓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다. 커다란 몸집에 어울리는 3.5리터 가솔린 엔진이 뿜어내는 속도와 힘은 마치 거대한 물소 무리의 움직임과 비슷해서, 돌진하는 익스페디션의 길목을 막는 건 누구라도 불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이 거대한 추격자는 누구보다 빠르게, 숨어 넘는 태양이 쉽게 내다 보이는 들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판을 가로지르기 전, 목표를 노려보며 뒷발질로 땅을 뭉개 차는 물소처럼, 익스페디션은 눈앞에서 숨어드는 태양과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붉은색 리어 램프가 뿔처럼 번뜩이고, 커다란 그릴은 거친 콧김이라도 뿜어져 나오듯이 느리게 떨렸다.
- 콘텐츠 에디터
- 신기호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