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자동차의 미래는 전기차일까 | 지큐 코리아 (GQ Korea)

결국 자동차의 미래는 전기차일까

2021-11-01T17:13:46+00:00 |car|

차원이 다른 전기차를 만들기 위해 어라이벌은 공장부터 재창조했다.

조립 셀은 총 네 대의 로봇 팔로 구성된다. 셀 하나의 크기는 테니스 코트 정도로 전기 버스와 밴을 이곳에서 조립한다.

지난 1월의 어느 저녁, 영국 옥스퍼드셔주 밴버리의 외곽에 자리 잡은 한 창고 건물에서 주세페 몬타노를 만났다. 엔지니어인 그는 유럽 우주국의 화성 탐사 로봇인 엑소마스 로버 개발에 참여한 인물이다. “어릴 적부터 우주 탐사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문을 연 그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바퀴가 달린 납작하고 커다란 뭔가를 손봤다. 그건 마치 크리스마스 연극을 위해 설치하는 무대 받침처럼 생겼다. 몬타노는 스물두 살이 되던 해 이미지와 GPS 데이터를 결합하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한 뒤 계산을 통해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카메라에 대한 아이디어를 정리해 유럽 우주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인턴십 자리를 얻었으며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에는 에어버스에서 일했다. 암스테르담에서 테크노 디제이로 활동하기도 한 몬타노는 꽤 멋스러운 맨 번 스타일, 일명 꽁지머리를 고수한다. 탐사 로버가 화성에 착륙하기도 전에 유럽 우주국을 나온 데는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블록 개발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위모 WeMo라고 불리는 이 블록은 영국 전기차 스타트업인 어라이벌이 추진 중인 제조 공정 혁신의 증거라 할 수 있다.
별안간 꿈틀거리더니 창고 바닥을 쏜살같이 가로지른다. 최대 1천 킬로그램까지 실을 수 있는 위모는 고유 수용 센서로 주변 환경을 감지하고 위치, 속도, 사물을 인식한다. 또 다른 특징은 모든 방향으로 이동 가능한 메카넘 휠이다. 덕분에 구체 위를 달리듯 급격히 방향을 틀거나 생각지도 못한 각도로 회전한다. 위모는 모듈 식으로 설계했기 때문에 다른 블록과 결합하거나 협력하는 건 물론이고 심지어 무리를 지어 행동할 수도 있다. 다른 블록을 찾아 접근하는 블록을 가르키며 몬타노는 “서로 결합해 커다란 트럭을 실어 나르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이전 밴버리를 방문한 관광객들은 마을 중심지의 구불구불한 오솔길이나 곡식으로 수북한 상점들 혹은 드문드문 남은 옛 건물을 둘러보며 이곳을 한때 풍요롭고 아름다웠던 소도시 정도로 여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밴버리는 이른바 모터스포츠 밸리라는 엔지니어링 중심의 혁신 클러스터로 변모했다. 2차 대전 당시 군사 목적으로 사용된 뒤 쓸모가 없어진 비행장과 항공기 공장 부지를 활용해 밸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열 개밖에 없는 포뮬러 원 레이싱팀 중 여섯 개 팀이 이곳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2015년 설립된 어라이벌은 밴버리에 R&D 시설을 지었다. 레이싱카 제작을 위해서가 아니다. 밴이나 버스 등의 상업용 전기차를 개발해 탄소 배출을 저감하는 한편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어라이벌의 관심사다. 그런 측면에서 이 전기차 스타트업은 자동차 생산의 미래를 내다보며 두 가지 숙제를 안게 됐다. 생산 과정에서 탄소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자동차 산업의 표준이 된 거대 조립 공장을 둘러싼 환경 및 사회 문제의 명확한 해결책은 무엇일까?

어라이벌의 모바일 로보틱스 부문 책임자 주세페 몬타노와 그가 개발한 운송 플랫폼 위모. 최대 1천 킬로그램까지 싣고 나를 수 있으며 AI로 움직임을 통제한다.

현재 주요 도시를 달리는 약 9천만 대의 화물차는 대부분 예외 없이 디젤 엔진을 사용한다. 영국의 리서치 업체인 ID테크엑스의 조사에 따르면 2018년 한 해 화물 트럭에서 배출된 탄소는 2천 톤에 달한다.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5퍼센트를 차지하는 수준이다. 아이슬란드 포드에서 CEO를 지낸 윌리엄 그림시는 팬데믹과 그로 인한 변화들의 영향으로 이 수치가 점차 증가할 거라고 전망한다. 그의 예측에 따르면 앞으로 시내 중심가는 보행자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및 사회적 공간으로 변모하고 쇼핑은 주로 온라인에서 이뤄지게 된다. “30년 뒤에는 시내에서 자동차를 찾아보기 어려워지고 교외의 초대형 쇼핑몰도 사라지겠죠. 미래에는 주차장이 아니라 모빌리티와 배송 시설이 더 많이 필요할 테고, 화물 밴이나 버스가 우리 경제의 중심이 될 거예요. 서둘러 다가올 변화에 맞춰 계획을 세워야 해요.”
어라이벌의 비전은 이런 신경제가 가져올 새로운 전기차 수요를 겨냥한다. 모듈 타입의 플랫폼과 신소재, 클라우드 기반 관제 시스템을 활용해 승객 및 화물 전용 밴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기존 전기차보다 생산 비용을 줄여 내연기관 자동차와 엇비슷한 가격으로 판매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상용 디젤 차량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돌리겠다는 것이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어라이벌은 사전 주문으로 12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UPS는 어라이벌에서 제작한 화물 밴으로 시험 운행을 실시할 예정이다. 영국의 최대 버스회사 중 하나인 퍼스트버스는 이미 1층짜리 전기 버스를 일부 노선에 시험적으로 도입했다.
“자동차 업계에서 화물 밴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 중 하나예요. 게다가 단순하고 직관적이죠.” 어라이벌의 설립자인 데니스 스베르들로프가 설명했다. “승용차를 구입할 땐 브랜드나 인테리어 등 다양한 기준이 동시다발적으로 작용해요. 하지만 상용 차량은 기능과 가격만 따지거든요.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죠. 스타트업 입장에선 아주 가끔 차를 바꾸는 소비자들에게 우리 차가 최고라고 설득하는 것보다 문제점을 개선한 상용 차량을 제공함으로써 더 큰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다른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테슬라, 다임러, 폭스바겐, 볼보 등 대다수 자동차 제조사들도 상용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포드는 베스트셀러 밴인 트랜짓의 순수 전기차 버전을 2022년에 출시할 예정이다. 출시 가격은 3만6천 파운드 정도다. 디젤 엔진을 탑재한 동일 모델은 현재 2만9백50파운드에 판매되고 있다. 스베르들로프는 “상용 차량 구매자의 대부분은 저마진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가성비를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그들에게 전기차이기 때문에 돈을 더 낼 필요가 없다고 제안해요. 확실한 한 방이죠. 경제적 합리성과 효율성에 공감하는 순간 승패가 결정나죠”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어라이벌은 규모의 경제와 거리가 멀다. 전기차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 소규모 생산 공정에 주력한다. 스베르들로프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려면 생산량을 30만 대까지 끌어올려야 하는데 이 경우 생산 시설에 대한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어요”라고 설명했다. 지난 1백여 년간 자동차 생산 방식의 핵심은 규모의 경제였다. 헨리 포드의 조립 라인이 대표적이다. ID테크엑스 소속 전기차 애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와이어트는 상당수 전기차 제조사들은 내연기관 자동차를 생산하던 라인에서 전기차를 만들며, 엔진 대신 모터와 배터리를 얹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런 방식으로는 전기차의 강점을 극대화하는 게 불가능해요. 하지만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들은 내연기관을 선호하며 여전히 내연기관의 개선과 발전이 자동차의 미래라고 고집해요.”
내연기관용 차량에 배터리를 추가하는 방식은 기후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볼보에서 자사의 0XC40 SUV 휘발유 모델과 스웨덴 전기차 브랜드 폴스타 2의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측정한 결과, 전자는 14톤에 불과한 반면 후자는 24톤이나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전기차가 탄소를 더 많이 발생시키는 원인은 바로 배터리 팩에 있다. 볼보 측의 설명에 따르면 전기차에 탑재되는 배터리 팩 탓에 추가로 발생하는 탄소는 7톤에 이른다. 폴스타 2가 탄소 배출량 저감 효력을 발휘하려면 최소 10만 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는 분석이다.
거대 제조사들이 오랫동안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시장에 진입하는 데 가장 큰 벽은 천문학적인 초기 비용이다. 조립 라인은 그 자체로 엄청난 투자가 뒷받침돼야 하며 일단 도입되면 변경이나 조정이 힘들다. “자동차 공장에서 비용과 에너지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 건 강판을 모양대로 자르고 붙이는 공정과 페인트를 칠하고 말리는 도장 공정이에요.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작업들이기도 하죠”라고 폴 니우엔후이스가 설명했다. 그는 카디프 대학에서 자동차 산업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결국 탄소 배출 저감의 실효성을 위해서는 강판, 도장 작업을 건너 뛰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어라이벌이 하려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데니스 스베르들로프는 살짝 마른 체형에 그을린 피부를 지녔다. 머리는 삭발에 가까울 정도로 짧다. 1978년생인 그는 조지아 태생이다. 이른바 포스트-소비에트 세대에 속하는 사업가로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스베르들로프의 부모는 그가 태어난 직후 당시 러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며 금융과 산업의 중심지였던 레닌그라드로 이주했다. 스베르들로프는 열두 살 때 직접 구한 부품으로 PC를 조립해 사용했고 독학으로 코딩을 익혔다. 이듬해 소련은 붕괴했다. 레닌그라드는 상트페테르부르크가 되었으며 러시아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번지기 시작했다.
스베르들로프가 스물두 살에 설립한 첫 회사인 IT 비전은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이었다. 2007년에는 통신업체 및 휴대전화 제조업체 요타를 공동 설립했다. 5년 뒤 요타를 우스마노프라는 억만장자에게 매각한 후 스베르들로프는 통신부 차관을 지냈다. “러시아 시민들은 오래전부터 거리에 나와 시위를 하며 변화와 개선을 촉구했어요. 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저한테 주어졌으니 그걸 잡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장차관들과 그들의 가족이 해외 계좌를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기 때문이다. “아내와 자녀들이 프랑스에 살고 있었고 저는 관료이기 이전에 사업가였거든요. 어쩔 수 없었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떠날 때가 됐다고 판단했죠.”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 정착한 스베르들로프는 차세대 기술에 투자할 목적으로 키네틱 트러스트라는 투자회사를 설립했다. 첫 투자 대상은 바로 전기차였다. 그는 2010년 참석한 컨퍼런스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노키아의 임원이 연사로 등장해 애플의 추격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노키아의 생산량은 애플을 웃돌았다. “그런데 2년 뒤 애플이 노키아를 완전히 제쳐버렸죠. 그런 엄청난 변화의 흐름이 자동차 산업에도 일어나는 중이에요. 전기차, 자율주행 기술, 인공지능 시스템, 로봇 관련 신기술, 시각화 시스템 같은 용어들이 수시로 언급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자동차 산업은 기술 산업으로 변모하는 추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고 스베르들로프가 지적했다. “자동차가 별개의 산업으로 분류되던 시대는 이미 지났어요. 자동차는 바퀴 달린 디바이스로 진화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품을 조립하고 제공하는 전 과정에 소프트웨어 아키텍처를 도입해야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선으로 소프트웨어 설치가 가능한 자동차가 거의 없다는 건 심각한 상황이에요. 이 업계는 10년이나 뒤처져 있어요. 자동차를 디바이스로 이해하고 접근하는 관점이 부족해요.”
2015년 10월, 스베르들로프는 알레한드로 아각 포뮬러 E 회장과 함께 중국을 출발해 유럽으로 떠나는 긴 비행에 올랐다. 두 사람은 레이싱에 AI를 도입하는 방안을 논의했고, 스베르들로프는 비행 도중 roborace.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레이싱은 첨단 기술의 집약체로 통한다. 따라서 디바이스로서 자동차의 가능성을 실험하기 위해 무인 레이싱카를 개발하는 것이 주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무인 완전자율주행 자동차 경주 대회인 로보레이스에 쓰이는 자동차 통제 소프트웨어는 점차 발전해 현재 어라이벌의 클라우드 기반 관제 시스템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어라이벌이 가장 중점을 두는 분야는 자동차가 아니라 자동차를 생산하는 마이크로 공장이라 할 수 있다.
어라이벌의 밴버리 R&D 연구소 내부는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로 빈 공간이 많다. 한쪽에 설치된 화면에선 로보레이스 경주차, 초기 화물 밴, 버스 모델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화물 밴 ‘제너레이션2’는 포드 트랜짓과 비슷한 크기로 차체가 낮고 전체적으로 약간 각진 디자인이다. 큼지막한 앞 유리가 전면부의 90퍼센트를 차지하며 낮게 설계된 차체 덕에 화물칸에 오르내리기도 수월해 보였다. “화물 밴 운전자들과 긴밀하게 협력하며 그들의 의견을 모았어요. 하루에 1백 번 넘게 운전석을 오르내린다고 하더군요.” 이곳의 디자인 최고 책임자인 제레미 오퍼의 설명이다.

마이크로 공장의 핵심은 바로 조립 셀이다. 좁은 공간에서도 신속하게 조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만큼 에너지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이 적다.

“그래서 낮은 차체를 설계했어요. 화물칸에 들어갈 때마다 높은 계단을 오를 필요가 없죠. 버스도 마찬가지예요. 승객과 작업 인력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캔틸레버 공법으로 좌석의 한쪽 끝만 바닥에 고정했어요. 보다시피 내부 청소가 훨씬 쉬워졌고 늘 청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요.”
어라이벌의 버스도 차체가 낮게 설계된다. 커다란 유리창이 외부를 뒤덮은 탓에 얼핏 투명해보일 정도다. 기본 디자인은 화물 밴과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좀 더 완만하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하지만 진짜로 봐야 할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자동차 생산 패러다임을 뒤바꾸기 위한 어라이벌의 야심 찬 핵심 기술로 투명 아크릴 수질로 제작한 큼지막한 보호 케이스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밝게 도색된 네 개의 로봇 팔이 검은색 무광 지지대를 둘러싸고 있었다. QR 코드가 부착된 자동차 부품을 싣고 위모 트롤리들이 지지대로 모여들었다. QR 코드는 로봇 팔에 달린 카메라에 부품의 용도와 행선지 정보를 제공한다. 이따금 오류가 생긴 건가 싶을 정도로 카메라가 QR 코드를 오래 응시하기도 했지만, 움직일 때는 어찌나 재빠른지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만큼 해체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장치가 바로 어라이벌의 조립 셀이다. 조립 셀이란 몇 대의 건설 로봇으로 구성된 소규모 작업 단위를 일컫는다. 이론적으로는 테니스 코트 크기나 그보다 작은 공간에서 하나의 셀이 화물 밴을 처음부터 끝까지 조립 생산하는 게 가능하다고 한다. 어라이벌은 향후 고속 이동 위모 로봇으로 상호 연결된 스무 개의 조립 셀을 도입해 생산 라인을 구축할 계획이다. 강판이나 도장 작업을 건너뛰기 때문에 여기에 필요한 공간도 일반 자동차 공장에 비해 현저히 작다. 우선 비스터, 옥스포드셔, 록 힐,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 총 2만 제곱미터 면적에 마이크로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가동 시 연간 화물 밴 생산량은 1만 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통상적인 자동차 조립 라인은 규모가 훨씬 크다. 폴란드에 최근 지은 폭스바겐 공장은 부지 면적이 2.2제곱킬로미터에 이르며 연간 화물 밴 생산 대수도 10만 대나 된다. “그만한 생산량을 맞추려면 공장이 열 개나 더 필요하겠죠. 하지만 우리의 시스템에선 20만 제곱미터의 땅만 있으면 돼요. 게다가 생산 기간도 절반이고 공장 설립에 4억 4천만 달러, 운영에 1억 2천만 달러의 비용만 들이면 충분해요”라고 어라이벌 북미지사 CEO 마이크 에이블선은 말했다. “폴란드에 있는 폭스바겐 공장은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들여 짓는 데만 2년이 걸렸을 거예요.”
마이크로 공장을 제대로 운영하고 자동차 생산에 따르는 막대한 에너지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어라이벌은 고심 끝에 강철 소재를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920년대부터 자동차 제작에 결코 빠진 적 없는 강철을 포기하는 대신 그만큼 단단하고 변형과 가공이 가능한, 그리고 열처리나 냉각 처리 없이도 도장이 가능한 소재를 찾아야 했다. 숙제의 해답은 노퍽의 작은 농장에 있었다.

강철 휠 아치와 열가소성 플라스틱 휠 아치에 대한 충격 실험 결과. 왼쪽에 놓인 강철 판의 피해 정도가 더 크다.

롭 톰슨이 복합 재료에 흥미를 갖기 시작한 건 런던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 재학 중일 때였다. 학교 과제로 제작한 가구에 강철 대신 쓸 만한 소재를 수소문하다 아예 직접 만들게 됐다고 한다. 당시 톰슨이 선택한 재료는 열가소성 수지인 폴리프로필렌이었다. 폴리프로필렌은 가볍고 튼튼한 데다 변형이 쉽다. 액체 상태일 때 안료를 첨가하면 어떤 색이든 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밧줄부터 옥상 방수 매트, 모형 비행기까지 다방면에 쓰이는 소재이기도 하다. “열가소성 수지의 또 다른 놀라운 특징은 공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산업용 수준의 결과물을 제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라고 톰슨은 설명했다. “적은 비용으로 소량에서 대량까지 뭐든 만들 수 있죠.”
학업을 마친 톰슨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 중국에서 소재 개발 공장을 운영하는가 하면, 노키아에서 디자인 책임자로서 금속 사출 성형이나 목재 접착 신기술 등의 실험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는 “보고에 끌려 다니느라 개발 프로젝트에 진척이 없는 상황”에 질려 버렸다고 한다. “큰 조직의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면 이상과 현실이 달라 수시로 좌절을 겪어요”라고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톰슨과 그의 부인은 첫아이가 태어나자 런던의 집을 팔고 노퍽의 한 농장으로 이사했다. 모교에 출강하며 받는 강의료를 제외하면 가급적 자급자족하며 생활했다. 아이들과 함께 식재료를 재배하고 수확하며 만족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톰슨은 어라이벌의 엔지니어들과 티타임을 갖게 됐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이 어라이벌에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내게 목재로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어요.” 톰슨은 첫 만남에서 오고 간 이야기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다지 지속가능한 방식이 아니었죠. 나무가 다 자라기까지 1백 년이 걸려요. 그래서 첨단 고성능 소재가 그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죠. 솔직히 다시 회사 조직에서 일하는 게 내키지 않았어요. 그런데 대량으로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열가소성 소재에 자체 개발한 강화 소재를 혼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면 가능할 것 같았어요. 소재를 직접 개발하면 외부 업체에 의존할 필요가 없고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아도 되겠죠. 그러면서 까짓것 한번 해보자, 그렇게 됐어요.”

어라이벌의 부품 전문 자회사 엘리먼츠 CEO 트레이시 이.

어라이벌의 부품 전문 자회사 엘리먼츠의 CEO 트레이시 이의 설명에 따르면, 톰슨이 제안한 방식은 필연적으로 탄소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는 기존 공급망 체계와 브렉시트 같은 무역 포퓰리즘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지역 공급자와 손잡음으로써 물류, 운송 관련 문제들을 경감시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생산 측면에서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어요. 영국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은 촘촘하게 맞물린 공급망에 의존해요. 따라서 납품이 조금이라도 지연되면 제대로 대처할 수 없어요. 반면 우리는 대부분의 부품을 국내에서 조달해요. 피치 못할 상황으로 인해 수입 품목을 항공기로 전부 조달해도 적자가 발생하지 않아요.”
어라이벌에 소재 부문 책임자로 합류한 톰슨은 곧바로 복합재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목표는 열가소성 수지에 고강도 유리섬유 강화제를 조합해 변형과 가공이 가능한 소재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톰슨은 어라이벌의 미래가 경쟁력 있는 소재에 달렸다고 확신했다. 어라이벌은 진공 성형 처리 기법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 기법으로 색깔을 입히면 경미한 흠집 정도는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그만큼 수리나 정비에 드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어라이벌이 집중하고 있는 분야는 또 있다. 바로 재활용이다. 차체를 자르고 남은 플라스틱이나 수명을 다한 자동차에서 회수한 소재는 다양한 분야에서 재활용할 수 있다. 어쩌면 강판 대신 플라스틱으로 만든 자동차의 안전성이 의심될 수 있다. 하지만 톰슨은 “플라스틱을 사용한 상용차는 도로에서 생각 이상으로 쉽게 볼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특히 데본과 서머싯 등 일부 지역에선 소방차에 폴리빌트 열가소성 수지로 제작한 차체를 채택했다. 이는 철보다 내열이 우수한 특성을 고려한 결정이다.
어라이벌의 제품 전략 담당 부사장 벤 자딘은 열가소성 복합재가 오히려 철보다 더 단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R&D 연구소에는 포드 트랜짓 밴의 휠 아치에서 떼어낸 강철 판과 톰슨의 열가소성 플라스틱 판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8.5킬로그램의 갓돌로 충격을 가하자 강철 판은 눈에 띌 정도로 움푹 파이며 페인트가 벗겨졌다. 동일한 상황에서 플라스틱 판은 변형이 미미했다. 칠이 벗겨진 흔적도 없었다. 진공 성형법으로 색을 입힌 효과다. 게다가 변형된 부분은 원래대로 펼 수 있으며 표면에 생긴 흠집도 간단히 메울 수 있어 정비나 수리를 따로 맡길 필요가 없다.

어라이벌이 개발 중인 전기차 모터 블록의 프로토타입.

알루미늄으로 만든 섀시는 스케이트보드와 비슷한 플랫베드 구조로 설계해 다양한 크기의 바퀴를 교체해 부착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같은섀시로 크고 작은 버스와 밴을 제작하는 게 가능하다. 모듈형이라서 원하는 크기대로 밴드를 주문할 수도 있다. 이처럼 어라이벌은 소재와 조립 부문에 자체 기술을 적용하고 있지만 딱 하나, 배터리 기술에는 아직 손을 대지 않은 상태다. 장기적으로는 배터리도 자체 개발하는 게 목표지만 현재로서는 LG 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셀을 구매해 사용한다.
“부품은 레고 블록 같아요. 배터리를 포함한 스마트 부품들은 자유롭게 섀시에 추가하거나 뺄 수 있어요.” 자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핵심은 장치를 인식하고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예요. 배터리를 예로 들면 필요에 따라 열 개를 장착해도 되고 그보다 덜 얹어도 상관없어요. 소프트웨어가 충전량과 주행 가능 거리를 자동으로 계산하고 운전자가 얼마나 급가속을 하는지, 각 배터리 셀의 잔량은 어느 정도인지, 중요한 정보를 모두 알려주거든요. 버스의 경우 승객 수와 언덕 경사, 운행 당일 기후 같은 정보도 제공받을 수 있어요.”
밴버리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0분을 달려 비스터 지역에 위치한 어라이벌의 공장에 도착했다. 어라이벌이 영국에 설립한 첫 마이크로 공장으로 버스 조립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영국 운송회사 퍼스트 그룹의 주문으로 네 대의 전기 버스를 생산할 예정이다. 어라이벌 설립 후 첫 수주이기도 하다. UPS가 미국 내에 도입하기로 한 전기 밴을 올해 안에 시범 운영하는 계획도 있다. 별 문제가 없다면 최대 1만대의 판매 계약을 체결하게 될 것이다.

어라이벌의 최고 디자인 책임자인 제레미 오퍼. 그의 뒤로 보이는 전기 밴 프로토타입은 UPS를 통해 시험 운행할 예정이다.

ID테크엑스의 와이어트는 어라이벌의 잇따른 성과를 주목하며, “마이크로 공장들이 안정적으로 차량을 생산해 납품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중요한 관건이에요”라고 말했다. “2022년에는 포드, GM, 르노, 닛산도 상용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어요. 과연 기존 공장을 전기차 생산으로 전환하는 방식과 어라이벌이 생산 규모를 끌어올리는 전략 중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일지 판가름이 나겠죠.”
러프버러 대학의 경제사회학자 매트 비달도 어라이벌의 경쟁력에 의문을 던졌다.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상당하지만 어라이벌이 실제로 어떻게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지 뚜렷하게 밝혀지지 않았어요. 오랜 제조업의 역사에서 우리는 비용을 줄이면서 생산량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어요. 어라이벌이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하지만, 과연 GM이나 토요타 같은 거대 회사들과 경쟁이 가능한 수준으로 규모를 키울 수 있을까요?”

열가소성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어라이벌 전기 밴. 스케이트보드처럼 생긴 알루미늄 섀시에는 LG 에너지솔루션의 배터리 셀을 탑재한다.

아비나시 러구버 어라이벌 사장을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전했다. 그의 어조는 전반적으로 쾌활했지만 비달 교수의 지적에 대해서는 잠깐이나마 격분한 것처럼 들렸다. “지금껏 자동차 공장은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야 했지만 우리는 공정 혁신을 통해 그 비용을 상당 부분 줄여나가고 있어요. 차량에 들어가는 부품의 종류는 상대적으로 적고 조립 셀만 충분히 짓는다면 대량 생산도 가능해요.” 사실 그가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올해 초 기업인수목적회사 CIIG 머저와의 합병을 통한 나스닥 진출을 추진하며 투자자들에게 이미 한 차례 설명한 바 있다. 현대 · 기아차, UPS,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투자를 이끌어낸 전력을 가진 어라이벌은 상장으로 약 6억 6천만 달러의 자금을 확보했다.
러구버와 어라이벌 북미지사 CEO 에이블선은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들이다. 에이블선의 설명에 따르면 마이크로 공장은 차량 생산 방식의 혁신 외에 부수적인 효과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다양한 부품과 소재의 생산 시설을 한 곳에 집약시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역 사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동차 공장은 일종의 승자 독식 게임 같아요. 공장 유치에 성공하기만 하면 수천 개의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거든요. 이 같은 막대한 영향력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은 더 많은 인센티브를 얻어내기 위해 지자체 정부에 불리한 협상을 강요할 가능성이 있어요. 게다가 공장 하나가 문을 닫을 때 생기는 경제적 피해도 엄청나죠. 수천 개의 일자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지역 경제를 파탄으로 내몰아요.”


“자동차 생산은 디트로이트에서”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어라이벌은 신경 쓰지 않았다. 미국 본사를 샬롯에 짓기로 정했을 때 삶의 질과 인재 유치 가능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했다. 에이블선은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샬롯은 공항에서 가깝고 삶의 질도 뛰어난 곳이에요. 이 지역에 세금을 납부하고 그곳의 인재를 채용하지만 우리의 존재 여부가 이 도시의 생존에 큰 영향을 끼치진 않아요. 사실 자동차 공장은 그 자체로 오염물질을 내뿜고 막대한 에너지를 잡아먹는 괴물이기도 해요. 그런데도 특혜를 베푸는 것처럼 도시에 들어와 인센티브를 요구해요. 그러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지역 사회는 완전히 망가져버려요. 조립 라인은 변경이 어려운 탓에 변화하는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도 불가능하죠. 사실상 단점밖에 없는 시스템이에요.”
어라이벌은 지역 사회의 필요에 부응해 공장을 여러 소도시에 분산시켜 짓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적은 생산량을 소화하는 공장이라면 마을의 교회 강당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탈산업화 시대로 접어들며 공장들의 해외 이전이 흔해졌어요. 하지만 우린 지역 사회로 되돌아가자는 입장이에요. 우리 방식이라면 비용을 낮출 수 있고 관리와 운영이 수월하기 때문에 도시마다 공장을 짓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예요. 기존 생산 체계는 낡고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요.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