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과 <오징어 게임>에는 공통점이 있다. 무모한 도전 같은 내기들, 함께 즐기는 시청자, 그리고 추억을 소환한다는 점. 추억은 어떻게 힘을 갖게 되는가.
최근 <오징어 게임>에 관한 수많은 밈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무한도전>과의 유사성 논란이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딱지치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심지어 마지막 오징어 게임까지 모두 <무한도전>에 나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줄다리기는 드라마 세트와 예능 CG의 비주얼이 흡사하고, 지는 팀은 아래로 떨어진다는 아이디어도 똑같다. “중단 요청”, “형이 왜 거기서 나와…?”, “야! 남자가 무슨 빨간 머리냐?” 등등 <무한도전>에는 <오징어 게임>의 특정 장면과 쏙 빼닮은 자막들도 있었다. 정말 <무한도전>은 한국의 <심슨 가족>인 걸까?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월트 디즈니와 21세기 폭스의 합병을 예언하며 작가진이 미래에서 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샀던 <심슨 가족>처럼 <무한도전>에는 다 있었다.
<무한도전>은 2018년 3월 31일에 5백63부작으로 종영했지만 한국에서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재소환된다. 2013년부터 매달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여론조사에서 2018년 3월까지 총 48번 1위를 차지할 만큼 충성도 높은 시청자들이 있었고, 지금까지 <무한도전>의 모든 에피소드를 암기하고 있는 팬덤도 막강하거니와 13년간 누적된 방송 분량 자체가 많기 때문에 활용될 수 있는 소스가 많다. 케이블 TV에서는 늘 <무한도전>의 재방송이 나오고, OTT 플랫폼 웨이브에서는 늘 24시간 <무한도전>만 틀어주는 채널이 인기다. <무한도전>의 인스타그램 팬 계정 이토뭐(“이번주 토요일에 뭐 해?”의 줄임말)는 재치 있는 ‘짤방’ 덕분에 종영 이후에도 꾸준히 인기를 모아 현재까지 팔로워만 21만 명에 이른다. 2020년 7월 아예 MBC와 공식 제휴를 맺어 저작권 무상 사용을 허가받아 <무한도전>의 공식 팬페이지가 됐다. 유튜브에서도 <무한도전>을 재편집한 영상들이 1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올리고 있다.
많은 사람이 <무한도전>을 추억하는 게 <무한도전>이 완벽한 예능 프로그램이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당시에는 크게 의식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이 지금 다시 보면 눈에 밟히기도 한다. <무한도전>에서 노홍철 장가 보내기 프로젝트나 광희와 유이의 소개팅을 주선하던 에피소드는 요즘 방송되면 분명 논란이 되지 않았을까? 그저 남자 출연자의 호감을 받는다는 이유로 여성의 모든 행동이 남성을 유혹하는 것처럼 프레이밍하는 것을 유머로 소비할 때, 상대에 대한 충분한 존중은 결여되어 있다. 외모를 소재로 누군가를 놀리거나 ‘바보’ 캐릭터를 덧씌울 때, <무한도전> 멤버가 아닌 프로그램 바깥을 향할 때 이는 누구에게나 이렇게 대해도 된다는 신호를 은연중에 만든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가요제’는 기존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뮤지션 고유의 음악 세계에 대한 충분한 존중 없이 시청자들을 신나게 해줄 수 있는 음악, 즉 음원 차트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스타일만 고집한다는 지적은 방송 당시에도 있었다. 특히 박명수가 아이유의 음악을 당시 유행하던 EDM으로 임의로 바꾸었을 땐 시청자들에게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종영 직전까지 김연아는 물론 스테판 커리, 잭 블랙 같은 해외 스타까지 섭외할 수 있는 유일한 방송이었고, 심지어 <무한도전> 위기설이 제기될 때도 10퍼센트 이상 시청률을 유지했으며, ‘토토가’로 90년대 노래 열풍을 불러온 데 이어 H.O.T.의 재결합까지 성사시켰다. 해외 동포들에게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의 무도’ 편을 통해 우토로 마을과 하시마섬 강제 징용 문제를 알리는 공익적인 역할도 예능 프로그램으로서 드물게 해냈다. 초기의 <무한도전>이 누구보다 인터넷 유행을 빨리 흡수하거나 선도하며 특정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았다면, 이른바 ‘국민 예능’이 된 이후에는 그간 쌓아온 인지도와 영향력으로 다양한 시청자층이 볼 수 있는, 지식·교양까지 아우르는 콘텐츠를 선보였다. 다만 유재석을 필두로 한 멤버들과 김태호 PD가 만드는 <무한도전>은 방송과 함께 나이를 먹은 중년들이 주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예능 프로그램 안에서 ‘추격전’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창조하던 <무한도전>은 중년 남성들이 10~20대가 좋아하는 오버워치 게임과 웹툰, 힙합의 세계를 배우는 것을 ‘도전’이라 표현하게 됐다. 주 1회 예능 프로그램의 호흡은 TV 밖 세계의 트렌드를 따라가기엔 뒤처질 수밖에 없지만, <무한도전>이 구축한 입지는 이미 아는 유행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기획 거리가 되게 했다.
<무한도전>은 TV의 위상이 유효했던 시대의 마지막 예능 프로그램이다. 플랫폼이 다양해진 만큼 각자의 취향은 세분화되고 모두가 열광하는 무언가는 사라지고 있다. tvN과 JTBC 같은 케이블과 종편 방송국이 힘을 얻으면서 너무 많은 채널이 생겼고, 유튜브와 OTT가 강세를 보이면서 올드 미디어는 예전만 한 영향력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무한도전>을 시작할 땐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더라도 시청자들이 예능 캐릭터들과 천천히 유대감을 쌓을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일이 가능했다. <강력추천 토요일>의 한 코너이던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시절에는 소수의 마니아들에게만 관심을 받던 ‘대한민국 평균 이하를 표방한 못난 남자들’이 패션쇼와 댄스 스포츠, 봅슬레이에 도전한 에피소드들이 10년 넘게 축적됐다. 그렇게 구축된 멤버들의 캐릭터와 서사는 한국 예능 프로그램 역사에서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자산이다. <무한도전>이 너무 뛰어나서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과거와 같은 무게를 갖는 ‘국민 예능’이나 ‘국민 드라마’는 앞으로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교롭게도 <무한도전>이 지금 기억되고 소비되는 방식은 <무한도전>을 통해 재발굴된 90년대 음악들과 닮았다. 90년대는 음악 프로그램 시청률이 15~20퍼센트씩 나오던 시대였다. 충성도 높은 팬덤이 중요한 지금의 케이팝 아이돌 그룹과는 달리 당시엔 모두가 아는 노래와 퍼포먼스들이 아주 많았다. 그 기억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토토가’ 열풍을 만들 만큼 여론을 주도하고 막강한 소비력을 자랑하는, 한국 사회의 핵심 세대다. 그렇게 90년대 음악을 다시 소비했던 세대가 지금은 <무한도전>을 OTT를 통해 ̒다시 보기’하고 상황에 맞는 ‘짤’을 발견한다. 90년대 가요가 위대하다면 그건 그때 음악이 남다른 음악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같은 기억을 공유한 이들이 이따금 노래를 소환하며 그 생명력을 연장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무한도전>의 힘은 스마트폰 없이 1시간 넘는 TV 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던 시절을, 다시 오지 않을 올드 미디어의 시대를 재소환하며 노는 세대에게서 나온다.
<무한도전>의 특정 에피소드들과 쏙 빼닮은 <오징어 게임>은 동네 친구들과 ‘오징어 게임’을 하고 ‘달고나’를 먹던 세대의 추억에 뿌리를 둔다. 그리고 유년 시절의 놀이를 2백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드라마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업계에서 그 정도 입지를 가진 창작자들은 한국의 40~50대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권력을 갖고 있는 세대이기에 다시 오지 않을 시대를 추억하는 일을 거대한 콘텐츠로 만들고 소비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리고 어렸을 때 ‘오징어 게임’을 한 적이 없어도 <오징어 게임>을 즐기는 Z세대가 있는 것처럼, 매주 본방송을 기다려본 적 없는 이들도 <무한도전>의 재가공 콘텐츠를 볼 수는 있다. 혹은 전혀 관심 없는 기성세대만의 풍경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때로는 추억에도 권력이 작용한다. 글 / 임수연(<씨네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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