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조위라는 장르 | 지큐 코리아 (GQ Korea)

양조위라는 장르

2021-11-02T17:45:08+00:00 |interview|

양조위. 수식어가 필요 없는 전설의 배우가 할리우드에 입성했다. 게다가 당도한 곳은 마블 유니버스다.

재킷, 셔츠, 모두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프로듀서 조나단 슈워츠 Jonathan Schwartz는 데스틴 대니얼 크레튼 Destin Daniel Cretton 감독에게 빌런으로 캐스팅하고 싶은 꿈의 배우가 누군지 물었다. 영화 속 영웅의 헤어진 아버지 웬우는 세련된 지하 세계의 보스, 고대 중국의 전사이자 강력한 파워를 가진 모던한 남자이기도 해야 했으므로 꽤 보폭이 넓은 배우가 필요했다. 그때, 배우 한 사람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 “양조위.”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절대 안 한다고 할 거예요.” 슈워츠가 답했다. “시도라도 해보죠.”
동시대 최고의 홍콩 배우이자 국제 영화계의 가장 위대한 스타 중 하나인 쉰아홉 살 양조위는 흑백 영화 시절 인기 절정을 누린 배우들의 그것처럼 절제된 매력을 갖고 있다. 그의 연기는 그 영화가 쿵후 영웅물이든, 경찰 드라마든, 필름 누아르 러브 스토리든 양조위라는 장르로 만들어버린다. 지난 40여 년 동안 이안, 오우삼, 류덕화, 그리고 친구이자 가장 많은 작업을 해온 왕가위 같은 아시아 거장 감독들의 뮤즈였다. 왕가위의 영화는 특히 양조위의 커리어에서 특정한 톤을 만들어냈다. 초현실적인 서사시 <2046> 속 주모운 역할에서 연필 콧수염과 천진난만한 성격이 도드라졌던 덕분에 서양 관객들에게 전달된 그의 매력은 이런 닉네임을 선사했다. 아시아의 클라크 게이블.
양조위는 항상 할리우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마틴 스코세이지와 함께 일하거나, 로렌스 블록의 범죄 소설 시리즈를 각색한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기회를 만나지 못했다. 미국 영화는 전통적으로 아시아 남자 배우에게 주연을 맡기는 데 박한 경향이 있고, 양조위는 거대 자본이 들어간 영화가 중국어를 구사하는 홍콩 중화계 배우에게 배역을 제안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마블 영화를 연출한 첫 아시아계 미국인 감독으로서, 크레튼은 전혀 다른 접근을 생각했다. “우리가 그런 배우를 원한다면, 배우가 질문을 던지고 싶을 만한 가치가 있는 캐릭터여야 했죠. 그래서 양조위가 ‘예스’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그를 염두에 두고 그가 흥미를 느낄 만한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물밑 작업을 시작했어요.”
슈퍼히어로 영화들 중 빌런을 가장 먼저 캐스팅한 경우가 몇 번이나 될까? 크레튼은 그렇게 미국계 아시아인의 공급 문제를 독특한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마블 코믹스는 샹치의 캐릭터를 1970년대 초 전형적인 아시안 악당 ‘푸 맨추 Fu Manchu’를 통해 이미 구현한 바 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마블은 푸 맨추 저작권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았고, 그런 캐릭터를 원하지도 않았다. 크레튼과 그의 팀에겐 완전히 다른 악당이 필요했던 것이다.
웬우로 들어가자. 과거의 범죄자이자 현재는 테러리스트 조직의 수장인 아버지. 양조위가 회상하길, 크레튼과 처음 역할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감독은 영웅은 아니지만 굉장히 다층적인 면을 가진 역이라고 설명했다. 다중적인 악당이라는 복잡성, 그리고 크레튼 감독의 직설적이면서도 열린 해석 덕분에 양조위는 배역을 수락했지만 준비에만 두 달을 보냈다.
“솔직히 현실 세계에서 슈퍼 파워를 가진 사람을 상상할 수 없지 않습니까.” 어느 저녁, 그는 홍콩에 있는 집에서 열린 줌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웬우처럼 약자이자 실패한 아버지 같은 사람은 상상할 수 있죠.” 뒤로는 우아한 도자기와 꽃병 컬렉션이 가지런한 선반을 두고 소년 같은 미소를 띤 채 가느다란 골드 체인이 살짝살짝 보이는 흰색 티셔츠 차림의 준비된 모습으로 양조위가 말했다.
궁극적으로는 웬우가 악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식들에 대한 사랑에 이끌린 것으로 이해했다고, 그는 배역에 인간미를 부여하는 해석을 내놓았다. “나쁜 아버지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을 깊이 사랑한 사람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그러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는 자신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방법을 몰랐던 것 같아요.”

양조위의 삶 역시 그가 출연한 영화와 상당히 닮아있다. 그가 일곱 살이었을 때 나이트클럽의 매니저인 그의 아버지는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어머니를 떠났다. 1960년대 후반의 홍콩에서는 해체된 가정이 드물었고, 버림받은 기억은 그를 사적이고 은둔하는 성격으로 만들었다. “아버지가 나를 떠난 후 사람들과 어떻게 지내야 할지를 몰랐어요. 아직 어린아이일 때,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아버지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들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좋은지를 이야기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때부터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걸 멈췄던 것 같아요. 뭔가로부터 억눌리기 시작했죠.”
수치심은 어머니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사라졌다. 로버트 드 니로, 알 파치노, 진 해크먼 같은 배우들의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특히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사파이어처럼 반짝이는 진한 파란색 눈동자에 섹시하게 담배를 피우곤 했던 1960년대의 아이돌 알랭 들롱에게 마음을 뺏겼다.
그러나 어린 양조위는 배우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는 스무 살의 가전제품 세일즈맨이 되었다. 1982년, 당시 지인인 배우 주성치가 홍콩 TVB 연기 아카데미에 오디션을 보라고 제안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놀랍게도 양조위는 합격했고, 첫 TV 쇼에 출연하기 전까지 약 1년 동안 일주일 내내 쿵후를 포함해 연기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았다. 이는 그동안 숨겨왔던 자신의 일부를 밖으로 표현해내는 수단이자, 자신의 분노나 두려움을 캐릭터에 전달하는 법을 배우게 된 계기였다.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찾게 된 거죠. 다른 사람들 앞에서 울고, 웃고, 내 모든 감정을 꺼내놓을 수 있었어요. 부끄러워하지 않고요.”
십 대 시절 양조위는 말수가 적었지만 종종 거울 앞에 서서 자신에게 말을 걸곤 했다. 후에 이 방식은 그의 연기에 적용됐다. 왕가위 감독의 1994년 영화 <중경삼림>에서 그는 비누, 거대한 가필드 고양이 인형, 바닥에 던져놓은 셔츠와 3분 가까이 대화를 나누는, 사랑에 힘겨워하는 경찰을 연기했다. 격려가 필요한 친구를 대하듯 사물들에게 말을 건네고, 그들의 체중이나 청결 상태에 대해 농담을 하거나 몇 가지 비밀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 연기는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감독 크레튼에게 지울 수 없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양조위는 이소룡의 전설적인 무술 트레이너 엽문으로 등장하는 <일대종사>부터 대본도 없이 4년여의 프로덕션을 거쳐 완성된 초현실적 작품 <2046>까지 왕가위 감독과 총 7편의 영화를 함께하게 된다.
양조위를 전 세계 관객에게 알리게 된 작품이자 칸 영화제에서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은 2000년 작 <화양연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주 집을 비우는 아내를 둔 작가를, 똑같이 남편이 늘 집에 없는 이웃 여자는 장만옥이 연기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운다는 것을 알게 되며, 서로를 원망하는 동시에 사랑에 빠진다. 카메라 앞에 홀로 앉아 황폐함과 욕망, 조용한 분노부터 부드러움까지를 한 장면에서 보여주는 양조위의 매혹적인 연기만큼이나 영화 역시 톤의 걸작이다.
양조위는 세계 대전 시대의 드라마로 이안이 감독한 <색, 계>에서 일본이 점령한 상하이에서 암살자가 되려는 여자와 야성적인 정사를 나누는 중국 정부 관료 역으로 드물게 악인으로 변신했다. 이 작품을 접한 후 양조위는 스스로에게 놀란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그 캐릭터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했다. 그에게 연기란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있는 것처럼,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자신의 일부를 찾아내는 것과 같은 이상적인 무엇이었다.

그는 지금이 2021년이라는 걸 믿을 수 없을 만큼 드물게 사적인 삶을 살고 있다. 아내 유가령은 소셜 미디어를 활발하게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조차 양조위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양조위의 58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아내의 인스타그램 포스팅 속 사진은 그의 본질을 완벽하게 표현하듯, 양조위가 공터에서 혼자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함께한 사이로, 그들은 2008년 부탄에서 왕가위가 준비해준 결혼식을 조용하게 거행했다. 긴 시간을 보낸 관계만큼이나 가장 최근의 <2046>을 포함해 많은 영화에 함께 출연했는데, 양조위는 같은 일을 하며 서로 연기의 깊이에 대해 이해하며 곁에 있는 아내의 존재를 감사한다. 그들 사이에 아이는 없고, 실제로 스크린에서 아버지 역할을 연기한 적도 거의 없다. “실패한 아버지 역할을 연기해달라고 제안받은 적은 있지만, 내 아버지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를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역은 거절했습니다.”
양조위는 도쿄, 홋카이도에서 홀로 보낸 행복한 시간을 추억했다. 소설책 한 권을 들고 호텔에 체크인한 후, 몇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아트 갤러리나 뮤지엄을 홀로 걷다가 하루의 끝에 이자카야에 들러 사케와 함께 각종 내장들-간, 천엽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가장 좋아하던 부위로 기억하는 소 혀 같은 것들-을 먹는다. 또 스키, 스노보드, 서핑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스턴트맨 같은 취향을 갖고 있다. 이런 취미는 고독한 성격 때문에 갖게 된 거라고 그는 얼른 설명했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로부터 거리를 두려고 했던 거죠. 그러면서 혼자서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배우기 시작했어요. 행복을 위해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만 기댈 수는 없잖아요?”
양조위가 세트장에 온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 첫 촬영은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였다. 그는 트레일러에서 나와 의상을 갈아입고 준비를 마친 후 카메라 근처에 의자를 두고 앉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는 매일 이 과정을 반복했다. 크레튼이 말한다. “양조위는 절대 전화를 받거나 자리를 뜨지 않더군요. 그냥 와서는 하루 종일 앉아서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이를테면 세팅과 대역들의 움직임 등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어요. 그래서 촬영분이 시작될 때 나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말해줄 게 없었어요. 처음엔 설명하려고 했어요. ‘자,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이에요.’ 그러면 그가 아주 정중하게 이렇게 말해요. ‘네, 알고 있어요. 계속 보고 있었으니까요.’ ”
양조위가 어떤 장면을 찍을 땐(이미 ‘컷’을 한 지 한참 후까지도) 세트장에 경건한 침묵이 깔렸다고 크레튼은 설명한다. 매우 더운 날이었는데, 양조위는 소를 훔쳐 거대한 전투를 일으키는 젊은 시절의 웬우를 연기하는 중이라 긴 로브와 가발을 착용해 남들보다도 더 더운 상태였다. 첫 번째 컷을 찍자마자 크레튼은 프로듀서인 스튜어트를 쳐다보며 “더 할 말이 없어요. 다른 테이크를 다시 찍을 필요가 없거든요. 이걸 쓰면 될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샹치 역을 맡은 서른두 살의 중국계 캐나다인 배우 시무 리우는 양조위의 위상에 대해 이런 표현을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말론 브란도, 브래트 피트, 조지 클루니를 하나로 합친 만큼.” 그는 종종 자신이 양조위와 한 작품에서 같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한다. “하루는 티브이 예능 프로그램을 찍고, 그다음 날 어린 시절의 우상과 함께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같이 영화를 찍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자라면서 제게 영웅이었던 사람, 그가 바로 양조위예요.” 그런데 리우가 가장 놀란 건 양조위의 겸손한 매너였다. “양조위를 만난다 해도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물론 아시아 사람이라면 그를 못 알아본다는 게 거의 불가능하지만. 길에서 만난 아무개라고 생각해보아도 그는 정말 친절했어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으면서도 내겐 꽤 익숙한 느낌인 아버지같은 편안함을 주었어요.”
리우는 양조위와 한 신에 등장하면서, 스크린으로 보아온 특유의 빨려 들어갈 듯한 눈빛과 대립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믿기지 않는 순간을 맞이했다. “한번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많은 것을 전달할 수 있는 배우입니다. 그 시선을 마주한다는 건, 영혼의 깊은 곳까지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이죠. 그걸 스크린을 통해 느껴보시는 것 또한 우리 영화를 볼 때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예요.”
촬영 틈틈이 양조위는 초기 시절 TVB 때 이야기를 들려줬다. 과거 홍콩 액션 영화에서 거의 끊어질 듯 아슬아슬한 와이어에 매달려 스턴트를 해야했던 것과는 달리, 특수 효과를 이용해 안전하게 촬영하고 있는 마블 영화 촬영의 차이 등을 들면서.
양조위는 할리우드에 진출한 것이 그의 홍콩 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흥미롭게 받아들이기도 했고 다소 감동받기도 했다. “1980년대 제 TV쇼 커리어가 시작됐을 때부터 팬이던 많은 분이 부모처럼, 때론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저를 무슨 아들대하듯이 여겼어요. ‘아이고, 외국의 유명한 대학교에 공부를 하러 갔다지? 잘됐다. 네가 잘돼서 정말 기쁘다. 아주 장하다’ 이런 느낌 말이에요.”
양조위는 더 많은 악역을 연기해보고 싶은 매혹을 느꼈다. 그에게 이번 작품의 배역이 그의 새로운 시작이 아닐는지 물었고, 그는 심플하게 “네”라고 답했다. 오랜 연기 경력에도 여전히 그를 놀라게 할만한 도전으로 가득한 미지의 개척지가 열린 것이다.
“악인들은 좀 더 복잡한 캐릭터와 동기를 갖고 있어요. 일반적이지 않죠. 그래서 실제 세계에서는 경험하기 어렵겠지만 영화에선 (나쁜 행동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이야기 속을 탐험할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