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단정하게, 단단하게. 정해인에게 불가능이란.
GQ 주식, 코인, 부동산, 데이트 어플, 중고 거래. 이 중에서 올해 해인 씨가 해본 게 있다면요?
HI 어…, <블루 해피니스> 촬영 통해서 중고 거래는 한번 해봤네요. 개인적으로는 전부 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게 아니라 할 시간이 없었어요. 2월까지는 <D.P.> 촬영했고, 끝나고 바로 드라마 <설강화> 촬영 들어갔고, 단편 <블루 해피니스>도 찍고. 집에서 눈 뜨면 차 타고 촬영장 가고, 끝나면 다시 차 타고 집에 오고 그랬죠.
GQ <블루 해피니스>를 보다 보니 궁금했어요. 감독이 말하길 이 작품의 시작점이 “요즘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 있고 열광적인지 나열해본 낱말들”이고, 그 낱말에 좀 전의 키워드들이 있었죠.
HI 맞아요. 부동산이라든지, 주식이라든지, 코인이라든지. 그런데 저는 거기에 해당사항이 없었기 때문에 캐스팅된 것 같아요.
GQ 오히려 거리가 멀어서?
HI 네. 제훈이 형이 저를 염두에 둔 게 그래서 같아요. 사적인 자리에서 우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다 “저는 주식 몰라요”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저를 좀 더 유심히 보시지 않았나 싶어요.
GQ <블루 해피니스>는 ‘제훈이 형’ 이제훈 배우가 처음으로 감독으로서 연출한 작품이죠.
HI 맞습니다.
GQ 이제훈 씨가 감독으로서 시나리오를 쓰기에 앞서 처음부터 적어두었다고 한 키워드가 또 하나 있는 걸로 아는데, 해인 씨도 아시죠?
HI 하하하하.
GQ ‘정해인’.
HI 맞춤형 대본이라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GQ 시나리오를 쓰면서 “정해인의 모습, 얼굴, 말투, 행동을 머릿속에 입히고 써내려갔다”더군요.
HI 참 감사하면서도 부담스럽죠. 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이 따라오는 거니까.
GQ 우선, 이제훈 배우와 작품에서 만난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어떻게 친해지게 된 거예요?
HI 몇 년 전에 상암동에서 열린 국가대표 축구 경기를 직관하러 갔다가 우연히 만나서 인사하게 됐는데 그 뒤로 자연스레 친해졌어요.
GQ 우연히 만나서 나눈 인사가 길어진 걸 보면 그럴 만한 교집합이 있는 것 아닐까요?
HI 제가 느끼기에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교집합 같아요. 가진 에너지도 비슷한 것 같고.
GQ 제훈 씨도 얼마 전 <지큐>와 인터뷰 나누었는데 일에 대해 굉장히 열정적인 사람 같더라고요.
HI 엄청. 장난 아니에요. 일터에서 만나는 제훈이 형, 좀 궁금해요. 배우 대 배우로서 만나보고 싶어요. 사적으로 만났을 때와 일터에서 만났을 때 다른 사람이 있잖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제훈이 형은 공과 사가 확실한 사람이에요. 정확한 사람.
GQ 그런 점도 교집합 중 하나라고 들리네요.
HI 저보다 더 섬세한 것 같아요. 이번에 형이 감독으로서 이끄는 현장을 경험해보니 저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배우에게 굉장히 섬세하고 디테일하게, 아무래도 본업이 배우이다 보니까 배우의 입장을 더 잘 알고 다가와 주더라고요. 뭐랄까, 플레이어 입장에서 얘기해주니까 이해가 더 잘됐죠.
GQ 그런데 또래 배우잖아요. 또래 배우가 본인 제작사도 차리고,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작품을 연출하고, 배우와는 또 다른 행보를 곁에서 보면 자연스레 자극이 될 것 같아요.
HI 선배님이 그런 좋은 본보기를 보이면 후배들은 그에 대해 당연히 존경심이 생기고, 나도 언젠가는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그 자극이 경쟁심이라든지, 질투라든지, 그런 자극은 아니에요. 물론 현대 사회가 경쟁 사회이긴 하지만 그냥 ‘멋있다’ 싶은? 좋은 방향성을 제시해준다고 생각해요. 젊은 배우가 그렇게 한다는 건 새로운 도전이고 참 멋진 일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먼저 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이 주는 자극이 분명히 있죠. 그리고 일단 연기, 작품에 임하는 자세가 참 멋있잖아요.
GQ 배역을 벗어나 마주하는 정해인은 어떤 사람일까, 이제훈 감독이 머릿속에 입히고 써내려갔다는 정해인의 모습, 얼굴, 말투, 행동이 어디에 묻어났을까 생각하며 <블루 해피니스>를 감상해봤어요. 이거겠다 싶은 지점이 몇 개 있더라고요.
HI 어느 지점요?
GQ 하나는, 여자친구가 드디어 함께 살게 되어 좋다고 하는 말에….
HI 되게 현실적인 얘기하잖아요.
GQ 월세, 가스비, 전기세, 관리비 다 절반이라서 좋다고 답하죠.
HI 그런데 저도 그래요, 정말. 현실적인 얘기를 먼저 해요. 뭐랄까…, 감상적인 얘기에는 공감이 몇 박자 늦더라고요.
GQ 무드 브레이커예요?
HI 실제로.
GQ 눈치가 없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HI 눈치는 되게 빨라요. 눈치는 되게 빠른데 뜬구름 잡는 얘기나 추상적인 얘기보다도 현실적인 얘기들, 현실적인 일을 해결하는 얘기들, 오늘과 당장 내일에 관한 얘기들, 이런 걸 좋아해요. 건설적인 얘기. 미래지향적인 얘기.
GQ 이미 찬영(극 중 정해인의 배역 이름)과 비슷한 점이 나왔네요.
HI 비슷한 면이 아주 많았어요. 그 사람이 지닌 기본 가치관, 인생관 같은 게 특히.
GQ 해인 씨가 느낀 찬영의 인생관은 뭐였어요?
HI 열심히 사는 것. 하루하루 노력하고 열심히 살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걸 인정해주지 않을까, 그럼 됐다 하는 것. 그리고 요행 바라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
GQ 그랬던 찬영이 주식 투자를 하고 매일 그래프만 들여다보며 전전긍긍하잖아요.
HI 전 안 그래요. 만약 제가 주식을 한다면 전 묻어두고 잊는 스타일일 거예요. 왜냐면, 그 오르락내리락하는 변화에 내 삶이 영향받고 싶지 않아요.
GQ 극 중 찬영이 자주 들은 말이 무엇인 줄 아세요?
HI 거기까진 생각 못 해봤는데. 궁금하네요.
GQ “아유, 이 순수한 놈. 넌 변한 게 없냐.”
HI 하하하하하, 나중에 형한테 물어봐야겠어요. 나한테 한 말인지.
GQ 그런데 비슷한 맥락으로, 정해인 배우와 함께 작업한 감독님들이 하는 말이 있어요. 특히 <D.P.>의 한준희 감독이 인터뷰에서 한 표현이 와 닿았는데 “정해인이 가지고 있는, 멜로 속에 스치는 융통성 없어 보이는 얼굴” 덕분에 작품이 빛을 발했다고 하더군요.
HI 푸흐흐흐흐.
GQ 처음 들어요? 현장에선 감독님들이 아무 말 없던가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은 “정말로 정직한 사람 같다. 능수능란하게 위장하고 꾸미는 게 잘 안 되는 사람”이라던데요?
HI 융통성이 없는데 조금씩 키우려고 하고 있어요. 융통성이 너무 없으면 힘들어요, 많이. 많이 다치고. 융통성이 좀 있어야 해요.
GQ 그 말이 싫어요? 정해인이라는 사람을 꿰뚫어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표현들이라고 생각했어요.
HI 싫지 않죠. 너무 좋은 말이죠. 맞는 말이기도 하고. 정직…, 저는 일에 대한 소신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일에 임하는 자세. 데뷔 초부터 저한테 스스로 계속 던지는 질문인데 ‘정해인이라는 사람은 왜 연기를 하고 있나’, ‘왜 이쪽 일을 하고 있나’, ‘왜 계속하고 있나’, 이 질문을 계속 던져요. 스스로에게. 결국에는 재미있고 즐겁고 행복해서거든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나만 행복한 게 아니라 봐주시는 분들이 같이 행복을 느끼면 좋겠고, 함께 만드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결국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거죠. 그 행복을 위해 제일 중요한 게 있어요.
GQ 뭘까.
HI 자존감. 버티는. 다들 그렇겠지만.
GQ 자존감과 버틴다. 자존감으로 버티는 건가요? 지금 해인 씨의 자존감은 0부터 100까지의 수치 중 어느 정도인데요?
HI 촬영을 하면 한 50에서 40?
GQ 생각보다 낮네요?
HI 그렇죠. 왜냐면 늘 벽에 부딪히고, 어렵고, 제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잘하는 게 있고 못하는 게 있으면 못하는 것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게 돼요. 부탁하고, “어떤 게 좋은 것 같냐” 물어보고, 주변 배우들과 동료들에게 어렵다, 도와달라 그러고. 제일 많이 하는 대상이 감독님. 감독님한테 늘 SOS 하죠. 그렇게 해서 결과물이 잘 나오면 좋은 거니까. 같이 만들어서 잘 나오면 좋은 거니까.
GQ 그렇게 물어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존감이 낮으면 자기 안에 갇히기 쉽잖아요.
HI 그건 자존심 때문 같아요. 저는 그런 자존심은 없어요. 물어봤을 때 내가 후져 보이진 않을까, ‘뭐야, 그것도 몰라?’라고 여기진 않을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걱정에 대한 자존심은 없어요. 모를 수도 있지. 잘 못할 수도 있지. 그러면 잘하는 사람한테 “알려주세요” 하고 배워서, 도움받아서, 잘하면 되는 거잖아요. 물어보지 않는 게 더 어리석다고 생각해요.
GQ 40~50 수준의 자존감이라기에는 상당한데요?
HI 지금은 촬영을 안 하고 있기 때문에 100입니다.
GQ 정해인의 2021년 키워드를 뽑아본다면요?
HI “열일”, 그리고 “새로운 도전이었다”.
GQ 새로운 도전이라는 건?
HI 전부. 매일이 늘 새로운 도전 같아요. 매 작품마다, 매 순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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