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솔직하게 울고 웃은 사이먼 도미닉, 정기석의 한 해.
GQ 누가 그랬다면서요. 2021년의 사이먼 도미닉 사주가 향후 10년의 사주다.
SD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올해 클럽하우스를 좋아해서 자주 했거든요. 제 생일날 거기서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는데 어떤 분들이 사주도 봐줬어요. 근데 “올해는 쉴 수가 없다. 올해는 일복 터지는 해다”라고 해서 웃어넘겼죠. 에이 설마~ 하고. 그 때가 <고등 래퍼 4> 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러고나서 <놀면 뭐하니?> 했고, 이어서 <환승 연애>를 했죠. 사실 ‘맨 오브 더 이어’에 뽑혔다길래 왜 뽑혔는지 생각해봤어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내가 받을 자격이 되나? 그래서 맨날 제게 옷 입혀주고 메이크업 해주는 스태프들한테 물어봤어요. 그분들이 제 스케줄을 많이 하니까. 근데 다 똑같이 하는 말이 올해 제일 바빴다고. 그래서 아, 내가 열심히 살긴 했구나.
GQ 왜 뽑힐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SD 저는 음악이라는 본업이 있잖아요. 방송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그건 음악 외적인 일이니까요. 물론 감사한 일이지만 그런 것들은 크게 일로 느껴지지 않아요. 대신 놀러 나간다고 생각을 하죠. 사람들 만나러 가는 자리고요.
GQ 뮤지션으로 받은 ‘맨 오브 더 이어’가 아니라서?
SD 네. 어쨌든 사이먼 도미닉이라는 이름으로 올해 앨범을 못 내서 열심히 살았다고 할 수가 없는 그런 기분? 조금 아쉬웠어요.
GQ 앨범은 안 냈어도 ‘정기석’은 일을 계속해왔잖아요. 어떤 걸로 에너지를 채우면서 달려왔는지.
SD 머니?(웃음) 모토가 변했거든요. 옛날에는 적게 일하고 많이 벌자가 모토였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많이 일하고 많이 벌자. 근데 돈이 외로움을 위로해주지는 않아요. 통장에 돈이 꽂혀도 “와 대박!” 이런 게 이제 없어요. 진짜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일이 계속 걸려 있어서 정말 밖에 안 나갔거든요. 혹시라도 나갔다가 확진자랑 동선이라도 겹치면 일에 지장을 받거든요. 일만 하고 집에만 있는데 뭐가 위로가 되고, 뭐가 재밌겠어요. 그래서 올해는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가 없었던 것 같아요.
GQ 그럼 오늘 작업하다가 나왔다던 곡은 뭐예요?
SD OST 작업요. 인터뷰가 나갈 때쯤엔 나왔을 수도 있어요. 아뇨 나와야 돼요. 나왔겠죠? OST 작업은 콘셉트가 정해져 있다 보니 보통 작업보다 상대적으로 힘들더라고요. 그거 때문에 이틀 붙들려 있었어요. 잠도 거의 못 자고, 밥도 안 먹고 이 작업에만 매진했는데도 못 보내고 나왔어요. 오늘 아침까지 보내야 했는데 데드라인을 한 번 더 미룬 거죠. 최근에 번아웃이 왔거든요. 그러니까 좋은 게 바로 나올 수가 없죠.
GQ 그래도 꾸준히 음원을 냈어요. ‘Party Forever’, <고등 래퍼 4>,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프로그램 음원들 그리고 ‘밤이 되면’까지요. 로꼬 씨랑 한 게 많은데 어떤 시너지를 주는 친구인가요?
SD 로꼬랑 오래 친했는데 AOMG에서 음악적으로 같이한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고등 래퍼 4>도 같이한 거고, <스우파>도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 친구랑 하면 제가 걱정이 별로 없거든요. 랩을 했을 때도 그렇고, 심적으로도 저한테 안정을 주는 친구예요. 언제나 믿고 맡겨도 되는 그런 친구. 로꼬 옆에 있으면 더 열심히 하게 돼요.
GQ MSG워너비로도 대활약했죠. 래퍼로서 발라드 예능을 하는 게 고민될 법도 한데, 쌈디 씨는 자존감이 높아 보여요. 그런 모습이 밉지 않고요.
SD <놀면 뭐하니?>는 정말 제가 노래하고 싶어서 한 거예요. 요즘 노래방 못 가니까, 합법적으로 노래할 수 있는 기회라서요. 제가 자존감이 높고, 뭐 래퍼로 잘나가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한 이유였어요. 어떻게 보면 저를 사랑해준 방법 중 하나인 거예요. 제 마음이 시킨 거죠.
GQ 노래할 때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SD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그 시간들 덕에 제가 뭔가 하나를 할 수 있다는, 직업을 하나 더 갖게 된 느낌? 본캐는 ‘사이먼 도미닉’이라고 친다면 부캐는 ‘정기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거라서요.
GQ 올해의 ‘정기석’을 이야기할 때, ‘눈물’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나 혼자 산다> 보면서 깜짝 놀랐어요.
SD 그거 보고 다들 걱정하시더라고요?
GQ 콸콸 쏟으시던데요. 우는 모습 보이는 게 주저되지는 않았어요?
SD 전혀요. 20대 때 생각해보면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어요. 유치하게. 그땐 그럼 지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의 약점을 드러내지 말자’, 그렇게 살아가니까 그런 강박이 오히려 제 약점이 되더라고요. 분명히 언젠가 터질텐데 인간관계에서 솔직하지 못하고. 분명히 약한 놈인 거 아는데 계속 센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 척하니까 주변 사람들이 결국에는 절 이해 못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나는 널 모르겠다고요. 근데 나이가 들수록 저도 감정을 못 참는 거예요. 쌓이고 쌓이다보니 독이 돼서, 술만 먹으면 계속 터지더라고요. 그게 2016~2018년? 슬럼프가 왔죠.
GQ <DARKROOM> 앨범 내기 전?
SD 맨날 울고. 그게 다 제가 사랑하는 음악이 잘 안되니까 답답함에서 나오는 슬픔인 거죠. 나도 내고 싶어.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거야?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도 일의 일부인데 사람들은 결과로만 판단하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닌데. 그러다가 <DARKROOM>을 냈더니 사람들이 “사이먼 도미닉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 빠져?”, “왜 우울해하지?” 하고 반응했어요. 전 보여주기 싫었던 마음을 다 내서 보여줬던 거거든요.
GQ 그 이후로는 많이 편해졌나요?
SD 갈수록 솔직해지는 거죠 제 자신한테. 그냥 울면 우는 거고,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해요. 나 못하겠다, 나 지친다, 힘들다. 이젠 그런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요. 주변 사람들이 힘들고 지칠 때까지 이야기할 수 있어요.(웃음)
GQ 실컷 울고 웃었던 한 해였네요.
SD 래퍼가 예능을 하고, 그런 걸로 욕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간 거 같아요. 예능에 처음 나갔을 때는 악플이 많이 달렸어요. 근데 이제는 시대가 또 바뀐 거 같아요. 음악에 자신 있고,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다면 어디를 나가든 뭔 상관이에요. 사람들한테 내 음악을 한 번 더 듣게 만드는 기회인거죠. 이런 건 있죠. 사람들이 저한테 더 이상 궁금한 부분이 없지 않을까. 제 이름이 실시간 검색창 1등에 자주 오르지 않는 이유가, 많은 분이 절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요. 거의 10년 넘게 방송을 했으니까요. <환승 연애> 섭외 왔을 때 제작진들한테 물어봤어요. “왜 저를 섭외하셨어요? 저 이런 거 잘 못할 거 같은데? 저 말주변 없을 거 같지 않나요?”
GQ 입담 좋잖아요.
SD 저보다는 코드 쿤스트 이런 친구들이 말 잘하죠. 아무튼 감사하게도 프로그램 기획했을 때 제가 먼저 떠올랐다고, 원래 저 하던 대로 하면 된다고 해주시더라고요. 그렇게 이야기해주시는 제작진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죠.
GQ 사이먼 도미닉, 정기석의 한 해를 지켜보면서 한 사람의 스펙트럼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광고에 성우로도 참여했죠.
SD 목소리는 저한테 큰 무기거든요. 트랙 안에서도 다양한 스타일로 톤을 잡기도 하고. 쓰일 데가 많다고 생각해요. 광고 쪽에서도 찾아주시는 걸 보면 나도 참 쓸데가 많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근데 만약에 어디에 또 쓰고 싶냐고 하면 발라드에 더 써보고 싶어요. 발견하지 못했던 목소리들이 나와서 재밌었어요.
GQ 다큐멘터리 내레이션 해보시는 건 어때요?
SD 한 번 했어요. <사투리의 눈물>이라고. 하하.
GQ 내년의 키워드는 뭐가 되고 싶어요?
SD 음… ‘앨범 오브 더 이어(A.O.T.Y)’요. ‘올해의 앨범상’이 받고 싶다는 게 아니라 사이먼 도미닉 이름을 걸고 앨범 내고 싶어요. 히트하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DARKROOM>은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냈지만 <화기엄금> 같은 경우에는 제가 내고 싶었던 색깔의 앨범이었거든요. 그런 앨범 또 만들고 싶어요. 저한테 인정받아서 세상 밖으로 내보낼 수 있는, 내가 원하는 ‘깔’의 앨범.
GQ 벌써 새벽 한 시네요. 마지막 질문은 잠시 행복 회로를 돌려볼까요? 스케줄이 없고, 눈 내리는 연말에 뭐 하고 싶어요?
SD 눈 올 때는 비 오는 날처럼 집에서 눈 보고 있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일 없으면 안 나갈 것 같은데요? 택시도 안 잡히고 신발도 더러워지잖아요. 하하. 집에서 겨울 영화 보고 OST 들을래요. 진짜 많이 보긴 했지만 올해도 <나 홀로 집에> 볼 거 같고요. 제가 뉴욕의 겨울을 진짜 좋아하거든요. 투어 때문에 갔었는데, 티브이에서만 보던 걸 직접 보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케빈처럼 큰 크리스마스트리도 보고. 근데 <나 홀로 집에>는 다들 많이 보셨을 테니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아이드 와이드 셧>을 추천할게요. 얼마 전에 두 번째로 다시 봤는데 뉴욕의 겨울, 크리스마스가 나와서 좋더라고요.
GQ 오 궁금한데요? 그럼 저도 크리스마스 때 그 영화 볼게요.
SD 아, 그게….크리스마스 때 보기엔 좀 묘하고 무섭고 기괴한데. 눈 오는 겨울날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영화 다 보고, 사운드 트랙 중에 ‘Strangers in the night’ 들으면 연말 느낌 물씬 나요. 그리고 마라샹궈 시켜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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