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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준 "군대 가면 매일 이렇게 뛰겠구나 싶더라고요"

2021.12.03GQ

서강준의 중심에는 흔들림 없는 서강준이 있다.

후드 니트, 셀린느 옴므 by 에디 슬리먼.

GQ 요즘 서강준을 들썩이게 만든 일상은 뭔가요?
KJ 밤에 한강변을 자주 산책하곤 해요. 어제는 걷다가 갑자기 뛰고 싶더라고요. 그대로 3킬로미터 정도 뛰었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어요. 집으로 돌아와서는 허기를 채우고 고양이 화장실 청소를 하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다가 새벽 2시쯤 잠들었어요. 평소보다 일찍 잤죠.
GQ 그러고 보니 인터뷰를 통해 야행성이라고 밝히기도 했죠. 밤의 어떤 기질과 잘 맞나요?
KJ 밤은 오롯이 제 시간처럼 느껴져요.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수 있으니까. 확실히 이런저런 생각도 많아지고요.
GQ 모두가 잠든 시간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기 좋죠.
KJ 맞아요. 자연스럽게 그렇게 돼요.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많이 생각해요.
GQ 최근 그렇게 자문한 건 뭐예요?
KJ 얼마 전 드라마 촬영이 끝났어요. 평소 같으면 친구들과 약속을 잡았을 텐데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자꾸 들더군요. 왜 그런지 저를 들여다봤어요. 뭐가 귀찮은 걸까? 촬영하느라 많이 지쳤나? 나름 여유를 갖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GQ 앞으로의 시간에 대해서도 자주 골몰해요?
KJ 미래에 대한 그림은 잘 그리지 않아요. 당연히 궁금하죠. 하지만 미래라는 건 언젠가 현재가 될 테니까. 그래서 현재에 충실한 편이에요.

수트, 르메르. 터틀넥, 에르메스. 하이톱 스니커즈, 컨버스.

화이트 옥스퍼드 셔츠, 리. 팬츠, 르메르.

GQ 얼마 전 생일이었죠? 이십 대의 마지막 생일.
KJ 그러게요. 지인들과 가볍게 술자리를 가졌어요.
GQ 별일 아니라는 표정 같네요.
KJ 이십 대의 끝자락이라는 건 인식하지만 나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요. 삼십 대도 숫자 차이일 뿐이라고 여겨요. 굳이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면 설렘이 커요. 나중에 만나게 될 작품과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있어요.
GQ 그럼 이십 대를 돌아보면 어때요?
KJ 해볼 건 다 해봤구나. 정신없이 일도 했고 여행도 많이 했어요. 딱히 후회하는 건 없어요.
GQ 연기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어요?
KJ 저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다, 하는 게 없어요. 주로 대본을 읽으면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 순간의 이끌림에 집중해 여기까지 왔어요. 아쉬움은 늘 있지만 후회는 없어요. 진심을 다해 했으니까. 그리고 제 선택이니까.
GQ 자신의 의지와 뜻대로 하는 게 옳다고 여기는 타입이죠? 지난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더군요.
KJ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참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스스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남을 탓하지 않고 후회가 남지 않거든요.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어떤 결정이든 제가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GQ 언제 진심이 통했다는 걸 느껴요?
KJ 인간관계에서도 그렇지만 아무리 진심을 다하더라도 통하지 않기도 해요. 그리고 통하는 것을 목표로 진심을 다한다면 그건 진심이 아니라 통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그런 건 원하지 않아요. 그저 진심을 다하는 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GQ 여기까지 달려온 와중에 자부심도 있겠죠?
KJ 제 일을 사랑했다는 것에서 자부심을 느껴요. 늘 원하는 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큰 고민이 생기거나 잘 해결되지 않을 때도 이 일을 좋아했어요.

니트, 터틀넥, 블랙 팬츠, 모두 디올 맨. 슈즈, 후망.

데님 셔츠, 리바이스. 데님 팬츠, 어텐션로우, 하이톱 스니커즈, 컨버스.

GQ “연기는 삶의 목표라기보다 젊은 날의 꿈”이라고 말한 적 있죠.
KJ 기억나요. 그땐 그랬어요.
GQ 현재 생각은요?
KJ 꼭 풀어야 하는 숙제 같아요. 어렵고 잘 풀리지 않지만 굉장히 좋아해서 꼭 해야만 하는 숙제.
GQ 무슨 의미인지 알아요.
KJ 어떻게 연기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왓쳐>에서 제가 연기한 김영균이 가족을 죽인 범인과 마주하는 장면이 그랬죠.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결국 계속 고민만 하다 촬영에 들어갔어요. 근데 반전처럼 갑자기 해결되더군요. 이런 예기치 못한 순간을 간혹 경험해요. 그때마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아요. 그 찰나의 행복 때문에 나름의 괴로움, 힘듦을 버틸 수 있었죠. 하지만 그런 순간을 마냥 좇지 않으려고 해요. 잘 풀리지 않더라도 절로 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갖기 시작하면 진심을 다하지 않게 될 수 있으니까.
GQ 그런 거 있어요? 만만치 않은 연기를 꾸준히, 성실하게 하게끔 이끌어준 남다른 점이랄까.
KJ 열등감인 것 같아요.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들의 작품을 보면 질투 섞인 감정이 와락 쏟아져요. 난 왜 저렇게 못 할까? 나도 노력을 다하는데 저들은 그 이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는 걸까? 저 장면을 찍을 때 어떤 고민을 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더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돼요.
GQ 누구든 만날 수 있다면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누구에게 얻고 싶어요?
KJ 에단 호크요. 진짜 좋아하는 배우인데, 그의 작품을 보면 열심히 한 정도가 아니라 그가 어떤 마음으로 연기에 임했고, 얼마나 고민을 많이 했는지가 느껴져요. 단 한 장면이라도 에단 호크가 연기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요.
GQ 또 자극받거나 열등감이 발휘되는 분야는요?
KJ 외골수적인 부분이 있어서 진짜 좋아하는 게 아니면 별 관심을 두지 않아요. 연기 말고는 욕심내는 게 없죠. 원래 성향이 무덤덤해요. 하고 싶으면 하고, 재거나 계산하지 않아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그냥 흘러가는 편이에요.

코듀로이 캡, 폴로 랄프 로렌.

아이보리 터틀넥, 칼라 니트, 스웨트 셔츠, 모두 토즈.

GQ 인터뷰들을 보면서 중심이 잡혀 있고 생각이 깊고 진솔한 사람이라 여겨도 좋을 것 같았어요.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한다면 뭐가 떠올라요?
KJ 자유분방한 기질도 꽤 있어요. 방금 저에 대한 설명도 어느 정도 맞지만 그런 면만 있다면 너무 딱딱하고 재미없잖아요. 나이가 들어도 자유로움만큼은 잃지 않고 싶어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마음 가는 대로 해보는 거죠.
GQ 연기적인 면에서도 그런 식의 태도가 드러나요?
KJ 네, 최대한 대본에 갇히지 않으려고 해요. 허용되는 선에서 느낌에 따라 자유롭고 솔직하게 연기하려고 해요. <치즈인더트랩>, <제3의 매력>,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가 그렇게 연기한 작품이에요. 근데 최근 촬영을 마친 드라마 <그리드>에선 완전히 새로운 방식에 도전했어요. 스릴러라는 장르적 특성상 계산을 해서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게 맞겠더라고요. 쉽지 않았지만 제 연기가 풍부해질 수 있는 경험이 됐다는 점에서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GQ 근데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와 상관없이 작품이나 캐릭터의 영향을 받기도 해요?
KJ 캐릭터에 깊게 몰입할 수 있겠지만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그렇게 된다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캐릭터 입장에서 생각하고 대본에 묘사되지 않은 부분을 상상으로 채워나가는 작업을 계속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게 돼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스태프에게 서강준이란 사람은 여전한데 작품에 따라 성격이 약간씩 변한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전에는 몰랐어요.
GQ 제일 크게 영향을 받은 건 언제였나요?
KJ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 차분하고 잔잔한 분위기의 작품이었는데 찍는 동안 저도 내적으로 침잠했던 것 같아요.
GQ 내밀하고 요란하지도 않은 서강준을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이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KJ 어머니죠. 외모는 아버지를, 내면은 어머니를 빼닮았어요. 성향도 비슷하고 어머니와 잘 통해요. 잠시 활동을 쉬었던 작년이 저한테 고민이 많은 시기였어요. 하루는 밤 늦은 시간에 어머니한테 연락했더니 제 이야기에 공감해주시면서 당신께서 겪었던 개인적인 고민들을 하나씩 들려주셨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가족이지만 어머니에 대해서 다 알지 못했구나, 어머니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구나.
GQ 말이 나온 김에 지금 가장 큰 고민은 군 입대로 인한 공백기일 것 같아요. 입대일을 코앞에 두고 있다고 들었어요.
KJ 그쵸. 전날 밤에 숨이 차도록 달렸다고 했잖아요. 군대 가면 매일 이렇게 뛰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했어요. 올겨울은 유난히 춥겠구나, 집 앞 편의점에서 즐겨 사 먹는 팥호빵과도 잠시 이별해야 하는구나. 하하.
GQ 아까 언급한 열등감과 마찬가지로 그토록 좋아하는 연기를 잠시 내려놓으면서 느끼게 될 갈증이 오히려 어떤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KJ 네, 작년에 잠시 쉬면서 공백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됐어요. 일이든 지극히 개인적인 부분이든, 한 발 떨어져서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예전에는 촬영장에 대한 부담감이 컸는데 쉬면서 새삼 떠올려보니 고맙고 그리운 곳이더라고요. 즐거운 기억도 많고요. 마찬가지로 군 복무로 인한 공백기 동안 스스로를 돌아보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코트, 인스턴트 펑크. 데님 셔츠, 리바이스. 데님 팬츠, 어텐션로우. 하이톱 스니커즈, 컨버스.

재킷, 발렌티노 at 무이. 집업, 마틴 로즈 at 지. 스트리트 494 옴므. 팬츠, 마르니 at 지.스트리트 494 옴므. 하이톱 스니커즈, 컨버스.

GQ 미루어보건대 서강준이란 사람은 변함없겠죠?
KJ 그렇겠죠. 그러면 좋겠어요.
GQ 하루에 비유하면 어디쯤 와 있다고 생각해요?
KJ 이제 막 오전이 지나지 않았나 싶어요.
GQ 서강준식 시간표로 말하면요?
KJ 오후 5시쯤요. 운동을 갔다 와서 씻고 간단히 요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죠. 제 하루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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