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생일에는 잠수 탈 거예요" | 지큐 코리아 (GQ Korea)

조현철 "생일에는 잠수 탈 거예요"

2022-01-10T12:00:37+00:00 |interview|

조현철이 마음을 다해 부르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페니 로퍼, 크로켓 & 존스 at 유니페어. 셔츠, 스리피스 수트, 베레모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얼마 전 ‘오, 사랑’을 부른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죠.
HC (멋쩍은 미소)
GQ 어떤 마음으로 올린 거예요?
HC 그게···. 집에서 심심해서 노래 부르면서 찍었는데, 영화하면서 만난 스태프 중 한 친구가 그걸 보곤 SNS에 올리라고 자꾸 부추겨서···. 잠시 판단력이 사라져서 올렸어요. 후회하고 있어요.
GQ 후회해요? 그래도 내리진 않았네요.
HC 올렸다 내리면 읎어 보이니까···. 자존심 때문에.
GQ ‘오, 사랑’ 저도 참 좋아하는 노래예요. 언젠가 인터뷰에서 “사랑하는 것이 생겼을 때 이야기를 쓰고 싶다”라고 말한 적이 있더라고요. 요즘 발견한 사랑의 대상이 있었나요?
HC 최근에 특별히 무엇이 사랑스럽거나 한 건 없었지만, 항상 그런 마음은 가지고 살아요.
GQ 새삼 행복하게 느낀 순간들은요?
HC 제 영화를 찍으면서 행복했어요.

니트 스웨터, 아워레가시 at 비이커. 셋업 수트, 라프시몬스 at 지.스트리트 494 옴므. 안경, 모스콧. 터틀넥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배우로서 연기할 때는 어때요?
HC 연기할 때는, 괴롭습니다. 크흫. 저에겐 연기가 고상하거나 고차원적인 무엇이 아니라 일이에요. 회사에 가서 엑셀 정리하고 퇴근하는 것처럼···. 대단한 자의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GQ 그럼에도 영화인으로서 많은 선택지 중에 연기를 계속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HC 물론 즐거운 순간이 있죠. 분명 보통의 직장과는 다른 성취감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드물게 찾아오는 순간이에요.
GQ 작품 선택에도 굉장히 신중할 것 같아요.
HC 심각하게 못 쓴 작품이 아니라면, 시기가 맞다면 웬만하면 다 하는 편이에요.
GQ 원래는 넷플릭스 <D.P.>의 조석봉 역할을 거절하려고 했다면서요. 인터뷰에 따르면 사주에서 “이 역할을 해야 잘된다”고 해서 선택했다고요?
HC 사주 보러 가서 그런 얘기를 들은 건 사실인데, 100퍼센트 그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어요. <D.P.>에서도 연기를 했고, 그 인터뷰에서도 일종의 연기를 한 거죠. 사람들을 웃기려고 과장되게 섞어서, 마치 그것만이 이유인 것처럼.
GQ 왜 그런 연기를 했어요?
HC 글쎄···. 이 일을 하면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사람들을 웃기는 일 같아서요.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아요. 흐흫.
GQ 최근 작품 <구경이>는 어땠어요?
HC <구경이>는 즐거웠습니다. 드물게 즐거운 작품이었어요.
GQ 드물게 찾아오는 즐거움이란 어떤 거예요?
HC 보통 현장에 나가면 불편한 지점들이 하나둘씩 있기 마련이에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세상에 나쁜 영향을 주면 어떡하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불편함이라든지···. 그런데 <구경이>는 그런 지점이 없었어요. 선배님들도, 현장 분위기도 모두 좋았죠. 무엇보다 이야기 자체가 너무 좋아서 마음 편하게 연기했어요.
GQ 얼마 전 <바퀴 달린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슬픈 연기를 할 때 눈물을 흘리는 게 가짜같이 느껴진다”고요. 현실에서는 슬플 때 보통 눈물을 참지 않냐고 했죠.
HC 대사를 읽는 게 아니라 말을 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 말을 해야 한다, 자기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것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하는 것 같고, 요새는 기술적으로 좀 더 완성되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현장에서 100퍼센트 진심을 다해서 그 인물에 몰입해 연기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대부분의 경우 기술을 써야 하는데, 그 기술이 들키지 않을 정도로 견고해야 사람들이 편하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GQ 기술을 쌓기 위한 어떤 연습도 하나요?
HC 연기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블랙 레더 롱 코트, 니트 톱, 모두 보테가 베네타.

GQ 제가 좋아하는 지점이 바로 그거예요.
HC 음···. 그렇지만 저도 열심히 하긴 하죠. 순간에 엄청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한데, 연기라는 게 너무 애쓰고 열심히 하려는 티를 내다 보면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수를 읽히기 쉬우니까.
GQ 지금은 인터뷰하는 배우를 연기 중인가요?
HC 네. 지금도 연기하고 있습니다. 푸흐흫.
GQ 제게 수를 읽히셨네요.
HC (속삭이듯) 아, 그런가요.
GQ 순간에 깊이 몰입하다 보면 배역이 남기는 잔상, 흔적이 크지 않나요?
HC 그렇지는 않아요. 진심으로 한 적이 별로 없어서···. 다 기술이죠.(웃음)
GQ 나의 연기가, 내가 임하는 작품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죠?
HC 제가 하는 작품이 나쁜 짓 하지 않고, 그래서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영화라는 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많은 것이 결정되고 거기서 많은 희생도 발생하게 되잖아요. 그런 희생이 유의미한 것이 되려면,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이야기가 되려고 해야죠.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작품들이 종종 있어요. 그러면 저는 죄를 짓는 기분이에요.
GQ 배우이자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오나요?
HC 제가 느끼는 것들을 다 풀어서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알기 쉽게 설명해볼게요. 저는 주로 죽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 죽은 사람의 유령들이 저에게 자기 얘기를 해 달라고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많아요. 그런데 이건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서일 뿐, 제가 유령의 존재를 철썩같이 믿는다는 건 아니에요.
GQ 어떤 이끌림 같은 거죠? 처음 찾아온 순간은요?
HC 2016년 어떤 사고가 일어난 다음부터, 남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특히나 죽은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GQ 이야기를 패치워크하듯 조각조각 완성해나가는 편인가요, 아니면 어떤 강렬한 이끌림으로 순식간에 써내려가는 편인가요?
HC 기본적으로 매일매일 일기 같은 것을 쓰려고 해요. 그렇게 계속 쓰다 보면 무언가 이상한 지점을 발견하게 되고, 거기에 이끌려서 어떤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GQ 어떤 이야기에서 재미를 느껴요?
HC 이것이 인생이구나, 삶이구나 느끼게 되는 이야기들요. 우리가 살면서 겪어야 될 일들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좋은 것 같아요. 영상물보다는 주로 책에서 그런 느낌을 받아요.

니트 스웨터, 마르니 at 지.스트리트 494 옴므. 브라운 팬츠, 헤드 메이너 at 비이커. 버킷 햇, 프라다. 안경, 젠틀 몬스터. 셔츠, 슬립온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HC 책은 또 다른 영역이라서 함부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어쨌든 글은 계속 쓰겠지만 제 글을 세상에 내놓고 장사를 하겠다는 정도의 염치는···. 저도 염치는 있어서요.(웃음)
GQ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군요.
HC 제가 좋은 이야기라는 확신이 들 때, 그것을 좋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을 하려고 해요. 영화는 어쨌든 희생이 발생하는 작업이니까 그 고통을 최소화하려는 편이고요. 그래서 많이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아요. 거기에 더해서, 저는 저의 이야기가 이야기 자체로서 세상에 나오는 것이 좋을 뿐, 이것을 제가 썼다, 제가 찍었다고 드러내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어요.
GQ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로 활동한 것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써볼 생각은요?
HC 그 마미손이라는 분의 행보가 저는 좀···.(웃음)
GQ 좋은 이야기, 좋은 사람, 좋은 작품···. ‘좋은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는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GQ 아니요. 저는 스스로 절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GQ 왜요?
HC 세상의 모든 비극이라는 것이,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나는 좋은 사람, 좋은 어른. 항상 그 지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GQ 그럼에도 현철 씨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요?
HC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 고통을 덜어주려고 하고, 함께 덜어내려고 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GQ 그런 사람의 모습에 가 닿으려고 노력 중인가요?
HC 당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깃발을 거기다 꽂아두고 향해 가는 느낌이긴 하죠.
GQ 그 깃발에 가까워지는 여정에서 영화인으로서의 삶이 도움이 되나요?
HC 그렇죠. 특히나 연출은 많은 대중을 상대로 하는 일이니까, 세상에 좋은 이야기를 건넨다면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고, 고통을 덜어주는 일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핑크 후디 저지, 프라다. 안경, 모스콧.

GQ 감독으로서의 조현철은 어떤 모습이에요?
HC 현장에서 사람들을 많이 웃기려고 해요.
GQ 필살기 유머 같은 것도 지니고 다녀요?
HC 필살기는 없지만 저를 바보로 만들면 돼요. 바보가 되면 사람들이 편하게 느끼죠. 감독이라는 자리가 제가 어떤 사람인지와는 상관없이 제일 꼭대기에 있잖아요. 거기서 권위, 권력이라는 것이 생기는데 그 격차를 줄이려고 의도적으로 애를 써요. 농담도 장난도 많이 치고, 직접 운전해서 스태프들 데려다주고, 밥도 많이 해주고요.
GQ “조현철의 요리나라”(인스타그램 프로필에 적힌 문구)가 떠오르네요. 크리스마스이브이자 생일인 12월 24일에도 그 나라가 펼쳐질까요?
HC 생일에는 잠수 탈 거예요.
GQ 정말요?
HC 잠수 타는 게 생일날 최고로 관심받을 수 있는 방법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