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영화 4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금 이 영화 4

2022-03-29T06:55:31+00:00 |movie|

해외 유수의 영화제에서 수상 릴레이를 이어가며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영화 네 편. 상영관은 적지만 감동은 크다.


외부와 단절된 아이슬란드의 산기슭, 고요한 양떼 목장, 인간과 동물의 관계, 신화 및 종교적 모티브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발디마르 요한손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 <램>은 모든 설정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한다. 눈 폭풍이 휘몰아치던 크리스마스 날 밤, 주인공 잉그바르와 마리아 부부가 돌보는 양 한 마리가 새끼들을 출산하는 과정에서 쓰러진다. 분만을 돕던 부부는 막 태어난 새끼 하나를 보듬고 집으로 돌아온다. 마리아는 어미젖 대신 젖병으로 먹이를 주고 아기 어르듯 양을 품에 앉고 흔드는가 하면, 잉그바르는 창고에 있던 아기용 침대까지 꺼내와 정성스레 보살핀다. 그리고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 날, 부부에게서 새끼를 빼앗긴 어미 양이 다가오면서 평온이 깨진다. 영화 <램>은 양을 자식 삼은 부부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돼 꿈속을 헤집는 양 떼, 집착이 부른 새끼 양의 충격적인 실체, 등장하는 모든 인간과 동물에게 닥칠 끔찍한 운명까지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끌고 간다.

노웨어 스페셜
영화 <노웨어 스페셜>은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아빠와 아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나간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젊은 아빠 존, 그리고 그의 네 살배기 아들 마이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데, 존은 갓 태어난 아들을 두고 해외로 떠나버린 아내를 대신해 자신이 떠난 후 마이클을 맡아줄 가정을 찾기 시작한다. 계속해서 시간은 흐르고 점점 야위어 가는 얼굴을 마주한 뒤 이제는 죽음이란 걸 이해시켜야 할 때가 다가온다. 영화 <스틸 라이프>로 베니스영화제에서 4관왕을 차지한 우베르토 파솔리니 감독이 무려 7년 만에 선보인 <노웨어 스페셜>은 우연히 신문에서 접한 기사에 영감을 얻었다. 실화 기반의 어느 창문 청소부의 이야기로 ‘특별한 곳은 어디에도 없다’라는 제목처럼 아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아빠를 통해 ‘내가 없어도 너의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를 던지기도 한다. 세상에 홀로 남겨질 아들을 위한 한 남자의 깊고 인간적인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눈물을 펑펑 쏟아낼지도 모른다.

프랑스
미디어가 낳은 스타 기자의 빛과 그림자를 그려낸 <프랑스>는 올해 상반기를 통틀어 가장 기대를 받는 작품 중 하나다. 뉴스 채널의 저널리스트 프랑스 드 뫼르는 대통령도 난감해 하는 돌직구 질문으로 여느 셀러브리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쏟아지는 찬사와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한 몸에 받지만 이면의 취재 과정은 시청자들을 기만하는 태도로 가득하다. 분쟁 지역의 저항군을 배우 삼아 한 컷 한 컷 연출에 나서고, 탈출 난민과 거짓 동행을 하는 등 치밀한 각본 속에 완성된 보도영상은 진실과 허구라는 미디어의 양면성을 익살스럽게 풍자한다. 자아도취에 빠진 프랑스라는 인물의 내면을 클로즈업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는 장면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풍자적 희비극’이라는 새 영역을 개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랑스 거장 브뤼노 뒤몽의 독창적인 연출 기법과 자유자재로 표정과 행동을 바꿔가는 레아 세이두의 연기는 두 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영화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드라이브 마이 카
제74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드라이브 마이 카>는 일본의 젊은 거장 감독으로 떠오른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신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에 수록된 동명의 소설을 각색했다. 영화는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이야기 안에 이야기가 펼쳐지는 액자식 구조를 취한다. 죽은 아내에 대한 상처를 지닌 연극 연출가 겸 배우 가후쿠가 그의 전속 운전사 미사키를 만나 삶을 회복해 나가며, 아내의 외도를 목격하고도 모른 척했던 그가 아내의 죽음 이후 연극 연출을 하면서 과거의 상처를 되짚어가는 모습들이 나열된다. 주인공의 사연을 전하는 도입부를 지나면 빨간색 사브 900 자동차 안에서의 대화, 아내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의 풍경 너머로 상실과 외로움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는 두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연대하는 이야기는 미묘하게 진한 감동이 올라온다. 극중 연극 <바냐 아저씨>를 연습하는 장면에서 일본인, 한국인, 대만인 등 다양한 문화권의 배우들이 각자 언어로 대사를 한다는 점도 눈 여겨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