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건 나눠 먹어야지. 이른 봄, 지금 맛봐야 하는 생기.
돌멍게
해산물을 포장해 전국 각지 택배 박스에 넣느라 분주하던 손이, 싱싱한 멍게를 묻자 그야말로 털 난 돌덩어리처럼 생긴 까만 것 하나를 가리킨다. “돌멍게라는 건데, 돌멍게는 바위에 붙어 살아서 양식이 안 되고 무조건 자연산이거든요. 지금이 딱 맛있을 때예요.” 그러고는 주먹만 한 돌멍게를 콱 움켜쥔다. “이렇게 숨구멍에서 물이 쭉 나오면 싱싱한 거예요. 살아 있어도 물을 안 뿜을 때가 있는데 그건 뭐 자기가 입 닫아버린 거니까 할 수 없고. 그래도 제철인 2월까지는 대개 싱싱하죠.” 노량진수산시장 부산자갈치의 강상욱 대표가 누를 때마다 돌멍게가 연신 물줄기를 뿜는다. 아보카도와 비슷한 감도로 부드럽게 잘린 속내에서는 멍게의 것보다 연한 바닷내가 풍겼다. 어떤 것에서는 열대 과일 같은 달큰한 향이 나서 코를 의심케 한다. “돌멍게는 향이 달라요. 이건요, 반을 갈라가지고요, 안에 실 같은 지저분한 것만 떼서 얼른 살을 먹고, 껍데기를 잔 삼아 소주를 따라서 마시잖아요? 정말 맛있습니다.”
한라봉과 딸기
“요새는 나도 헷갈려. 요즘은 다 제철이라고 하잖아요. 하우스 재배하니까.” 과일 장사 25년 경력 마포농수산물시장 현대청과 오명환 사장이 장난스레 웃는다. “그래도 예부터 봄이라 하면 딸기지. 제주도 남쪽 서귀포에서 나는 한라봉도 맛있고.” 그의 말대로 현대사회는 사시사철 국적 불문 싱싱한 과일을 먹을 수 있는 시대. 그럼에도 제철 수확의 매력은 맛의 풍미로움이다. “때 맞춰 나오는 과일은 이렇게 윤택하다고. 과일도 사람 피부랑 똑같이 보면 돼요. 윤택해야 해. 이파리가 쌩쌩하고, 새팔새팔한 것. 딸기는 (꼭지 부분의) 하얀 부분이 적고 빨간 부분이 많은 걸 고르는 게 좋고, 한라봉은 이파리가 달려 있고 기둥이 서 있는 게 좋아요. 그런 게 맛있어요. 그리고 크다고 맛있는 게 아니에요. 과일은 비싸다고 맛있는 게 아니고 크기가 크면 비싸다고. 뭐든지 적당해야 해요.”
섬초
“섬초는 비금도에서 자라는 노지 시금치예요. 단으로 묶어 파는 일반 시금치는 길쭉하죠? 얘는 납작해요.” 화악산유통 김도훈 대표가 납작한 풀덩이를 들어 올린다. 노지, 지붕 따위로 덮거나 가리지 않은 땅. 신안 비금도 노지에서 나는 섬초는 한겨울 바닷바람에 맞서느라 땅바닥에 붙어 자란다. “그리고 일반 시금치는 끝(뿌리)이 파란데 섬초는 빠알갛죠.” 과연. 연보랏빛 담은 고운 섬초는 어떻게 먹어야 맛있을까? “별거 없어요. 끓는 물에 살짝만 데치세요. 소금으로 간해도 되고, 간장을 조금 넣어도 되고. 마늘 넣고 참기름 넣고 깨소금 넣고, 시금치 요리가 다 똑같지 뭐. 그래도 섬초가 식감이 좀 더 통통하고 맛이 달아요.” 겨울을 뚫고 자란 봄의 생기다. 한편, 옆집의 태성유통 김순례 사장은 냉이를 추천한다. “냉이는 뿌리를 많이 먹거든요. 뿌리가 ‘자알’ 생긴 냉이 골라다 된장국이나 청국장에 넣어 끓이면 맛있지. 냉이는 이때 먹어야 해요. 2월 좀 넘잖아요? 꽃이 펴버려. 금방 펴버려. 지금 씨앗으로 머물 때 먹어야 맛있어요.”
홍가리비
분홍색 비닐 앞치마를 맨 연안수산의 강용준 씨가 홍가리비를 쓸어 담는다. 11월부터 2월까지, 초겨울부터 초봄 내 먹어야 제맛이라는 홍가리비는 이름 그대로 붉은빛 껍데기가 특징이다. 이왕이면 다홍치마,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법. 개중에서도 곱고 예쁜 것으로 골라달라 하자 전문가의 노하우가 따라붙는다. “껍질이 매끈매끈 깨끗한 건 중국산이에요. 국산은 따개비도 붙어 있고 갯지렁이도 묻어 있는데 중국산 껍데기는 매끌매끌합니다.” 요즘은 세척해서 판매하는 국산 홍가리비도 있으니 이 구분법이 필승은 아니겠으나 신선한 조개류를 고르는 법에는 불문율이 있다. “입을 다물고 있거나 건들면 다무는 걸로 고르세요. 그래야 살아 있어요. 홍가리비는 회로 먹어도 맛있습니다. 굴처럼 까서 날로 드시면 이거 1킬로그램도 금방 사라집니다.”
- 피처 에디터
- 김은희
- 포토그래퍼
- 김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