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정면 돌파.
GQ 오늘 같은 날 “뻗치다”라는 사투리 쓰는 거죠?
HJ 오, 어떻게 아셨어요?
GQ <섬총사 2>에서 하준 씨가 이야기했잖아요. 힘들고 피곤할 때 쓰는 전라도 사투리라고요.
HJ 맞아요. 워따 뻗치네. 죽겄다. 뻗치니까 말 걸지 마라잉? 이런 느낌으로 쓰는 말이에요. (웃음)
GQ 오늘 촬영 말미에는 바닥에 찰랑이는 에너지까지 그러모아 폭발시키는 느낌이던걸요. 언더아머의 태그 라인이 새삼 떠올랐어요. ‘나를 돌파’.
HJ 으허허.
GQ 그 말 처음 들었을 때 인상이 어땠어요?
HJ 아직 짧은 인생이지만 제가 살아온 인생과 맞닿는 말이라고 느꼈어요. 나를 돌파! 연기하겠다고 무작정 서울행 버스를 탔던 그 시절의 제 모습이 탁 떠오르더라고요. 손에 쥔 것 하나 없는 섬마을 청년의 맨땅 헤딩기였죠. 잘 보이지 않는 길 앞에서 제가 가진 건 열정뿐이었고, 포기라는 선택지는 없었어요. 오로지 정면 돌파밖에는.
GQ 서울행 버스에 오른 그때의 위하준을 지금 리플레이하면 어떤 느낌이에요? 거기엔 어떤 감정들이 뒤섞여 있죠?
HJ 두려움,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열정과 패기.
GQ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자신감으로 무장한 청년이었나요?
HJ 그럴리가요. 데뷔하고 몇 년 동안은 자존감이 바닥을 쳤어요. 항상 불안하고 눈치 보면서 주위를 신경 썼죠. 연기에 자신도 없었고, 연기하고 나면 늘 후회였어요. 이 길이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어요. 근래 찾아온 변화예요.
GQ 또렷한 시점이 있었어요?
HJ 특별한 시점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나를 믿자, 믿자, 믿자. 사소한 일상에서 여러 해 다짐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온 것 같아요. 결정적으로는 제 연기를 봐주시는 분들이 좋게 평가해주신 점이 크게 작용했죠. <오징어 게임>의 뜨거운 인기도 빠질 수 없고요. 요즘은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먼저 들어요.
GQ <차이나타운 > 오디션 볼 때 운전도, 담배도 못 하는데 무작정 할 수 있다고 말한 일화도 여러 번 이야기했죠.
HJ 그땐 정말로 절실했어요. 일단 되고 봐야겠다는 생각이었죠. (웃음)
GQ 할 수 있다. 그 다짐이 진짜 할 수 있도록 이끌어요?
HJ 그런 것 같아요. 물론 두려움이 더 크지만, 아 모르겠다, 그냥 한번 해보자, 하면 결국 하게 되더라고요. 나중에 돌이켜보면 하길 잘했다, 뭐라도 해냈네, 그런 생각들이 남아요.
GQ 섬 출신이라 바다를 마치 침대 다루듯 편안하고 멋지게 수영하는 걸 상상했는데, 극심한 물 공포증이 있다면서요?
HJ 중학교 때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거든요. 그 뒤로 트라우마가 생겼어요. 가슴 위로 물이 차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호흡이 가빠져요.
GQ 그런데 <오징어 게임>에선 어떻게 가능해진 거예요?
HJ 언젠가는 이 트라우마에 맞서야겠다고 늘 마음은 먹고 있었어요. 그건 배우로서의 책임감이기도 하니까요. 극 말미의 바다 신을 준비하는 초반에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뛰쳐나왔어요. 너무 무서웠거든요.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까, 매일 조금씩 나아지더라고요. 나중에는 잠수도 할 수 있게 됐고요.
GQ 무슨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HJ 그냥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는. (미소)
GQ 김연아가 트리플 악셀을 할 때처럼 말이죠. 트라우마를 극복한 스스로가 대 견하게 느껴져요?
HJ 뿌듯하죠. 해보지도 않고 포기했으면 그 신을 만드는 데 많은 분이 더 어려움을 겪었을 테니까요. 뿌듯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GQ 애크러배틱, 격투기, 복싱···. 어릴 때부터 강도 높은 운동을 즐겼다면서요. 원래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넣는 걸 즐겨요?
HJ 어릴 때는 그랬어요. 강해지고 싶었거든요. 특출나게 뛰어난 게 없으니 강해져서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어요. 독하다, 대단하다, 운동 잘한다, 이런 말들이 제겐 희열이었어요. 그리고 애크러배틱은 어려운 기술을 성공할 때의 쾌감이 엄청 커요. 체육관 다녀보신 분들은 알 거예요. 공중에서 돌면서 발차기 같은 어려운 기술에 성공했다? 그 순간은 영화처럼 다 같이 벌떡 일어나서 박수치고 기뻐해줘요. 그날은 체육관 동료들에게 아이스크림 쏘는 날이에요.
GQ 어릴 적 본 무술 영화 장면들이 떠오르네요.
HJ 고향 친구들에게 “나 어릴 때 어땠어?” 물어보면 길바닥에서 백덤블링하고, 담 뛰어넘고 그런 아이였대요. 그런 것들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봐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더 신이 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체계가 잡히기도 전에 너무 몸을 막 써버려서 지금은 무릎, 어깨, 허리, 고관절이 다 아파요. 부상이 잦아서 요즘은 거의 재활 치료 중이에요.
GQ 그런데도 <배드 앤 크레이지>, <오징어 게임>, <샤크:더 비기닝>, <미드나이트>등 최근 작품을 보면 액션 신이 굉장히 많잖아요.
HJ 정말 그랬네요. 막상 작품의 기회가 오면 제 몸 상태가 어떤지 새까맣게 잊어버리더라고요. 그런데 어쩔 수 없어요. 오랫동안 간절히 꿈꿨던 거니까요. 뒤늦게 촬영하면서 제 자신을 원망하죠. 아, 죽겠다 하면서.(웃음) 액션 장르는 계속 열망해왔고, 지금도 계속 열망하고 있어요.
GQ 최근 드라마 <배드 앤 크레이지>에서는 미친 인격체 K 역할을 맡았죠. 끝내주는 액션 너머, 캐릭터 해석도 쉽지 않았을 것 같던데요.
HJ 모든 배우가 ‘K’가 가장 어려운 캐릭터라고 입을 모았을 정도예요. 인간이 아닌 한 인격체이니, 정상적인 접근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고요. 처음에는 전에 연기하듯이 K를 인물로 간주해 해석하고 접근했어요. 그런데 대본에서 상상한 것처럼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K가 등장할 때의 짜릿한 쾌감이 있어야 하는데 잘하고 있는 건가···. 확신이 없었어요. 갈팡질팡했죠. 그러다가 점점 내려놓기로 했어요. 어차피 이 인격체는 사람이 아니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감독님도 만화적으로 더 오버해서 표현해도 좋다고 디렉션을 주셨고요. 무엇보다 동욱 형과의 케미가 좋았어요. 동욱 형은 아이디어도 굉장히 많고 애드리브도 대단해요. 서로 맞춰주면서 티키타카가 좋았죠. K는 극 중반쯤부터 제대로 잡혔다고 보면 돼요. 그런데 왜 벌써 끝나는 거죠. 이제야 K의 바이브가 막 올라오고 있는데, 더 놀 수 있을 것 같은데!
GQ 잠시만요, K가 잠시 여기 와 있는 것 같은데요?
HJ 아하하. 그 정도로 굉장히 아쉬워요. K를 만나고 굉장히 자신감을 얻게 됐거든요. 그 전까지 저는 재밌고, 웃기고 망가지는 역할은 절대 못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래, K도 했는데 뭘 못 하겠어? 제가 완전히 전복된 느낌이에요.
GQ 마치 수열에게 ‘King’이 존재했던 것처럼요? 그리고 <섬총사 2 >보면 의외로 살갑고 애교도 있더라고요.
HJ 맞아요! 저도 <섬총사 2>보면서 새롭게 알았어요. 내가 마냥 무뚝뚝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구나, 살가운 모습도 있구나 하고요. 그동안은 ‘난 이런 사람’으로 단정 지으며 살아와서 더 재미없고 발전이 없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는 제 스스로 만든 틀이 많이 깨진 느낌이에요. 새롭게 발견하는 제 모습들을 보면서 ‘이것이 원래 나의 진짜 모습이었나?’ 헷갈릴 지경이에요. 미처 바라봐주지 못한 제 모습이 연기를 통해 자꾸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닐까 싶고요. 그래서 저의 앞으로가 더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내게서 어떤 모습이 더 뿜어져 나올까?
GQ 언젠가 순박한 시골 청년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죠?
HJ 네. 그때는 아직 못 보여드린 사투리를 대방출해야죠.
GQ 얼마 전에 고향인 완도 홍보대사도 맡았더라고요. 완도에는 서울보다 일찍 봄이 찾아오겠죠? 봄이 오면 데일리 운동 가방에 무엇을 더 담고 싶어요?
HJ 마음 같아서는 오늘 촬영에 등장한 복싱 글러브랑 샌드백 들고 다니고 싶죠. 그런데 휴대할 수가 없으니까···.
GQ 재활 치료하는 사람 맞아요? 질문을 가볍게 바꿔볼게요. 새봄을 맞이하는 기분으로 새 신을 신는다면요?
HJ 오늘 촬영한 아이템 중 커리 플로우 9 농구화요. 농구화는 보통 딱딱하고 불편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오늘 신은 농구화는 러닝화 겸용으로 신어도 좋을 정도로 편하더라고요. 아, 제가 모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저 원래 운동할 때 언더아머만 신었어요.
GQ 농구화 신고 지금 당장 가고 싶은 데 있어요?
HJ 집에 가고 싶어요.
최신기사
- 콘텐츠 에디터
- 한재필
- 피처 에디터
- 전희란
- 포토그래퍼
- 안주영
- 스타일리스트
- 김정미
- 헤어
- 박하 at BLOW
- 메이크업
- 이보련 at BLOW
- 어시스턴트
- 정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