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디지털이 똑똑해질수록 우리들은 멍청해질까?

2022.03.08김은희

진화된 인간형으로 가는 지름길일까,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내리막길일까. 업데이트 오류 앞에서의 사색.

스마트폰이 생긴 이후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장 확실히 변한 것 중 하나는 기억력이다. 과거 나는 백과사전 수준의 고유명사 기억력을 자랑했다. 특히 제3세계 예술가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이 발군이었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오타르 이오셀리아니, 에르키 쿠렌니에미 등등. 지인들은 내가 사전이라도 되는 것처럼 묻곤 했다. 그 감독 이름이 뭐였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맞어, 맞어.
하지만 그것도 옛말이다. 지인들은 내게 묻는 대신 스마트폰을 검색한다. 그 편이 더 정확하니까. 문제는 이젠 나도 대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어느 순간부터 고유명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단어들이 쓰나미에 쓸려간 듯 뒤죽박죽되어 떠다닐 뿐 연결할 수 없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한 뒤에야 이 사람이었지 탄성이 나온다. 디지털 기기 보급으로 인한 기억력 감퇴, 주의력 결핍 등을 디지털 치매라고 부른다. 그러나 나는 치매라는 의학적 용어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디지털 치매라는 용어는 새로운 기술의 탄생으로 인한 변화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간다. 이러한 기술에 대한 거부감 내지 불안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2천5백 년 전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했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해 사람들은 스스로 기억하는 힘을 잃어버릴 거라고, 결국 어리석어질 거라고 말이다. 플라톤의 견해는 역사적 시기마다 반복된다. 인쇄술이 발명됐을 때도 수도사들은 책의 보급이 사람들을 어리석게 만들 거라고 경고했고, 텔레비전은 발명과 함께 바보상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사람들은 정말 그리스 시대보다 더 바보가 된 걸까. 소크라테스 같은 희대의 철학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걸까?


나는 디지털 치매보다 기억의 외주화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기억의 외주화는 지인과의 대화 중에 나온 말이다. 인간들이 움직임을 마차, 자동차, 비행기 등에 외주하고 계산을 주판과 계산기, 컴퓨터에 외주했듯 기억도 갈수록 확장된 형태의 도구에 맡기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정보에 접속할 수 있다. 17세기 세계 최대의 장서가였던 옥스퍼드의 학자 로버트 머튼은 새 시대의 정보 과잉에 경악했다. 매일 새로운 뉴스와 소문, 논쟁이 쏟아진다고 말이다. 그가 보유했던 책은 약 1천7백 권이었다. 참고로 내가 보유하고 있는 책은 약 2천 권이다.(전자책 포함.) 그러니까 세계 최고의 장서가가 동아시아의 평범한 작가보다 더 적은 수의 책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여기에 인터넷의 정보까지 더하면 격차는 더 벌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로버트 머튼보다 아는 게 많을까? 더 똑똑하다고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외주화를 필연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했을 때, 중요한 건 우리가 그것을 얼마나 제어할 수 있느냐다. 서평가인 지인은 iOS를 업데이트하는 과정에서 투두리스트 앱의 내용을 날렸다고 했다. 북토크와 원고 마감, 출판사와의 미팅 날짜가 모두 사라진 것이다. 내일 약속이 있었는데 뭐였지? 서평가가 말했다. 심지어 지금 당장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 원고를 써야 할지, 밥을 먹어야 할지, 화장실을 가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약간의 과장을 더하며) 서평가는 투덜댔다. 우리는 기술에 우리의 요소들(기억하고 말하고 소통하고 생각하고)을 넘겨주면서 무엇을 얻거나 잃게 된 것일까. 스마트폰은 진화된 인간형으로 가는 지름길일까, 디스토피아로 향하는 내리막길일까.


넷플릭스의 신작 드라마 <아카이브 81>은 불탄 VHS 테이프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이한 존재와 맞닥뜨리는 내용이다. 주인공의 직업은 디지털 복원 전문가다. 보통 사람은 플레이할 디바이스가 없는 저장 장치의 콘텐츠를 현대의 디지털 아카이브에 보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열화된 영상과 음성이 원본에 가깝게 복원되기도 하고 뒤죽박죽된 순서가 원래의 자리를 찾기도 한다. 드라마는 기억의 보존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과정이 해서는 안 될 일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잃어버린 유년의 기억, 가족과의 행복한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거의 망령이 우리의 덜미를 잡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잊혀진 기억은 잊혀질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기억은 드라마에서처럼 극적이지 않다. 싸이월드의 복원된 사진첩을 연다고 귀신이 모니터에서 기어나오진 않는다.(그러나 과거 내 모습이 귀신보다 충격적일 가능성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거의 내용이 아니라, 과거가 생각보다 쉽게 망실된다는 점이다. 문명의 역사는 기록 시스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문자를 발명한 이래 꾸준히 기록 장치를 발전시켰다. 그때마다 기억은 영원하고 완벽할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천만에, 우리에게 남은 건 거의 없다. 가장 찬란했던 문명의 기록도 대부분 불타거나 땅에 묻혔다. 과거의 아날로그 매체들이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에 반해 디지털 기록은 영원할 거라고 말이다. 클라우드에 모든 정보가 저장되니까, 스마트폰과 구글을 가지고 있으니까 모든 것을 알고 기억하게 될 거라고. 그러나 정말 그럴까. 그렇다 한들 좋은 일일까?


인터넷의 창시자이자 구글 부사장인 빈트 서프는 망각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21세기가 잊혀진 세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비트 로트 Bit Rot, 디지털 부식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 때문에 정보들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트 로트는 과거의 정보에 접근하는 기술적 경로가 사라지는 현상을 가리킨다. 싸이월드처럼 정보를 가지고 있는 주체 또는 서버가 사라지거나 특정 포맷이 사라져 정보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다. 그는 대안으로 디지털 양피지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디지털 양피지는 간단히 말해 모든 포맷을 열 수 있는 기술이다. 이로써 인류는 기억 상실을 극복할 수 있다는 거다.
미국 의회도서관은 2010년, 트위터의 모든 트윗을 수집하는 아카이브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시작한 지 8년 만에 계획을 철회하고 일부 트윗만 선별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트위터의 성격이 변했고 다른 SNS가 많이 생겼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애초부터 논쟁의 여지가 있었다. 트윗들이 보존할만한 가치가 있을까? 우리의 기억은 어느 선까지 의미 있을까? 선별된 기억은 어떤 의미일까 등등. T. S. 엘리엇은 1934년에 쓴 시에서 이런 사태를 일찍이 예견한 듯 보인다. “말에 대한 지식은 주지만, 침묵에 대한 지식은 주지 않으며/ 글에 대한 지식은 주어도, 말씀에 대해서는 무지하게 만드네/ 우리의 모든 지식은 우리를 더 무지하게 만들고….”
디지털 시대 이후 기억과 망각의 변증법은 다른 차원의 고민으로 들어선 듯 보인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저장하려 하고 어떤 사람은 디지털이 기억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고유함을 뺏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의 바탕엔 애초부터 커다란 오해가 있다. 그건 디지털이 비물질적이며 저장 용량은 무한한다는 생각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서버 팜을 유지하기 위해선 도서관의 수십 배가 넘는 에너지가 든다. 다시 말해 디지털은 처음부터 물질적이었다. 그러니 스마트폰이 책과 달리 기억하고 사유하는 능력을 뺏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책보다 더 많은 것을 해낼 거라고 기대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글 / 정지돈(소설가)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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