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이 살아 숨쉬는 '아일랜드 리스모어성 (Lismore Castle)' | 지큐 코리아 (GQ Korea)

낭만이 살아 숨쉬는 ‘아일랜드 리스모어성 (Lismore Castle)’

2022-04-05T12:17:05+00:00 |travel|

아일랜드 리스모어성의 정원에 평온과 낭만이 자란다.

아일랜드 워터퍼드 카운티 Waterford County에 있는 리스모어성의 대표 정원사 대런 톱스는 “100년 동안 방치된 것처럼 보이는 정원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고 회상한다.

1185년, 7세기경 수도원이었던 부지에 세운 아일랜드 리스모어성 Lismore Castle은 신화와 마법이 넘치는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장소로 꼽힌다. 성은 험난한 언덕 꼭대기에서 비를 머금은 듯 밝은 녹색의 블랙워터 계곡 Blackwater Valley을 내려다보고, 멀리로는 안개 덮인 녹밀다운산 Knockmeal down과 마주하고 있다. 영국의 시인이자 탐험가 월터 롤리 Walter Raleigh 경이 한때 이 성에 살았고, 1627년에 현대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로버트 보일 Robert Boyle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성의 운명은 레이디 샬럿 보일 Charlotte Boyle과 훗날 데본셔 Devonshire 공작이 된 하팅턴 Hartington 후작이 결혼하며 변화를 맞는다. 위대한 수집가이자 건축가, 미학자인 데본셔 공작은 리스모어성에 관심과 열성을 보였다. 고딕 양식을 부흥시킨 건축가 아우구스투스 푸긴 Augustus Pugin에게 의뢰해 첨탑과 중세 연회장을 모방한 공간을 추가했고, 정원사 조세프 팍스턴 Joseph Paxton 경을 고용해 계단식 정원을 만들었다. 지금 그 정원은 어느 때보다 무성하다.

풀이 무성한 산책로는 사과나무와 프랑스 국화가 마구 자란 과수원 사이를 가로지른다.

“윌리엄과 내가 친구였을 때 리스모어성에 처음 갔어요. 이끼와 지의류, 멕시코 벼룩으로 가득한 벽을 도저히 지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1753년부터 리 스모어성을 소유한 데본셔 가문의 일원이 된 로라 벌링턴 Laura Burlington이 리스모어성과의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이후 2000년대 초반부터 윌리엄과 로라 부부가 이 매혹적인 장소를 관리하게 됐고, 공공에게 정원을 개방하고 있다. 윌리엄 벌링턴 William Burlington은 성이 대중과 좀 더 연결되기를 바랐지만, 로라가 지적한 것처럼 푸긴의 장식은 “실제 공간보다 훨씬 더 웅장해 보이도록” 고안되어 협소하다. “성 내부를 대중에게 공개한다면 우리 모두는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있게 될 거예요.”
그러나 예술에 매우 조예가 깊은 부부는 2005년에 성을 갤러리 리스모어 캐슬 아트 Lismore Castle Arts로 개조했다. 그들의 ‘아트 컬렉션’은 정원까지 확장돼 프란츠 웨스트 Franz West가 디자인한 (‘잉글리시 핑크’라 묘사되곤 하는 색상의) 소파, 실험적인 아티스트 로저 히온스 Roger Hiorns의 실제로 불꽃을 일으키는 설치 작품 ‘복스홀 Vauxhall’이 정원의 식물들과 함께한다. 로라가 속삭인다. “정원에 예술 작품을 두는 건 참 좋은데요, 때로는 너무 과할 수도 있어요. 나라면 차라리 꽃을 키웠을 거예요.” 부부의 의견이 늘 일치하는 건 아니다.

예술가 헨리 브루데넬-브루스 Henry Brudenell-Bruce가 제작한 오크 벤치가 있는 선디엘 정원 Sundial Garden.

약 10에이커(약 4만 제곱미터, 1만2천여 평) 규모의 정원은 다채롭고 변화무쌍하다. 벽으로 둘러싸인 어퍼 가든 Upper Garden은 17세기에는 부엌 정원이었고, 현재는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식물 재배지로 남아 있다. 로어 가든 Lower Garden은 6대 공작인 윌리엄 캐번디시 Wiliam Cavendish가 산에서 퍼온 토양으로 영양을 공급하는 방식을 도입, 영국의 전리품인 진달래와 매그놀리아, 작약을 심을 수 있었다. 윌리엄의 할머니인 디보 데본셔Debo Devonshire가 미리 심어둔 매그놀리아는 봄이 되면 풍성하게 영광을 터뜨린다.

야생에 가깝게 관리되는 정원.

산처럼 우거져 국지성 기후 환경인 리스모어성 정원에는 이국적인 나무 양치류가 번성하고, 마른 덮개로 덮인 듯한 겨울 동안에는 샐비어와 달리아가 고고하게 살아남는다. 정원은 2013년 대표 정원사로 대런 톱스 Darren Topps가 임명되면서 또 한 번 탈피했다. 톱스는 영국 콘월 지역에서 거대한 지오데식 돔 아래 다양한 생물군계가 숨 쉬는 거대한 정원 ‘이든 프로젝트 Eden Project’를 막 끝내고 온 참이었다. 톱스가 리스모어성 정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를 회상했다. “정원 자체보다는 그 장소의 잠재력, 그리고 그곳에 자신들의 흔적을 분명히 남기고자 하는 윌리엄 경과 로라의 열망에 더 감동받았습니다. 특히 어퍼 가든에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렬하게 들더군요. 당시에는 그저 꽤 전형적인 생목 울타리로 뒤덮여 있었어요.” 그러나 흉포한 마름병이 그 울타리를 파괴했을 때, 역설적으로 가능성이 열렸다. 톱스는 “생목 울타리 뒤로 수많은 죄를 숨길 수 있었겠죠. 하지만 일단 치워버리면 숨을 곳이 없어요. 다만 테두리를 넘고 선을 흐리게 할 기회인 것은 분명했죠.”

정원에서 보이는 성 카르타고 대성당 St. Carthage’s Cathedral.

“아이디어가 엄청나게 많았어요.” 로라가 톱스에 대해 소개한다. “전 이 정원이 흩날리는 장미들로 몹시, 아주 몹시 로맨틱해지길, 그러면서 야생적으로 관리되기를 바랐어요. 시아버지가 ‘수염이 자라게 놔두는 것 같구나’ 그러시더군요.” 톱스가 덧붙인다. “몇 년 동안 농약도 사용하지 않았고, 관리된 잔디 대부분은 야생화 들판으로 바뀌었습니다. 1년생과 2년생 식물은 아주 역동적으로 유지되고 있죠. 매년 조금씩 다른 변화가 나타났어요.”
한편 벌링턴 부부는 집을 둘러싸고 있는 잔디와 자갈도 전부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100년은 족히 방치되었던 것 같은 정원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였죠. 살충제, 농약 같은 액제 살포 없이 진입로에도 전부 씨앗을 뿌리기로 했어요. 식물이 자라지 않도록 일부러 정리해둔 곳은 차가 다닐 길뿐이었죠.” 로라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다층적이고 감각적인 꿈을 꾸는 곳일 뿐이에요. 아주 풍부한, 일종의 폭발적인 경이로움이죠. 저는 항상 새로운 조경 방식에 놀라고, 대런이 식물을 배치하는 방식에 감탄합니다.”

직접 심은 셜리 양귀비, 레이디스맨틀, 야생당근, 스위트시슬리 그리고 다른 여러 식물.

대런 톱스가 제시한 정원 비전은 윌리엄 벌링턴의 흥미도 자극했다. 예를 들어 윌리엄이 베를린에서 돌아왔을 때, 그는 트럭에 베를린 장벽 두 쪽을 싣고 왔다. “(정원을 걷다 보면)어쩌다 두 개의 암석 덩어리를 보게 될 거예요. 윌리엄도 이곳이 더욱더 야생 속을 경험하고 탐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길 원했죠. 여기에는 아주 많은 양치류와 당신이 푹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 가득할 겁니다. 운 좋게도 별달리 다친 사람도 없고요.” 윌리엄의 이런 엉뚱한 조력은 톱스에게 활력과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가령 태풍으로 인해 고목이 쪼개져버렸을 때 톱스는 그 목재를 퍼걸러(정원에 덩굴 식물이 타고 올라가도록 만들어놓은 아치형 구조물)로 활용했는데, 이 프로젝트에는 당대의 조경 스타일을 반영하면서 조세프 팍스톤이 19세기에 만든 포도원을 리노베이션하는 일도 포함된다. 원래는 포도나무 열두 그루가 자라고 있었는데, 공작의 식탁에만 올리기에는 포도 수확량이 너무 많아 복숭아, 오이, 고추, 멜론 같은 부드러운 과일도 추가했다. “다시 키우기 아주 좋은 품종이에요.” 식물들의 ‘천연 수영장’을 톱스가 옹호한다. “아무 화학물질 없이도 이 식물들이 정화 시스템이 되어줍니다.”

로라 벌링턴은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방문객들의 위안처가 된 리스모어성 정원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곳은 다층적이고 감각적인 꿈을 꾸는 곳일 뿐이에요. 아주 풍부한, 일종의 폭발적인 경이로움이죠.”

코로나19가 최악으로 치솟던 상황에서 이곳 정원사들은 지역 사회에 과일과 채소를 제공하기 위해 성실히 일했고, 정원은 지역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런 일에 톱스는 너스레를 떨거나 우쭐해하지 않는다. “모두가 빨리 외출해서 신선한 공기를 쐬고 싶어 안달 난 상태였죠. 이 정원에는 어느 누구나 다양하게 경험할 일이 있어요.” 로라 역시 동의한다. “그리고 제 생각에 이 거칠고 아름다운 장소에 머무르면서 정원 사이를 거니는 일은, 우리가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현대 미술이 사람들에게 훨씬 더 잘 가 닿게, 오감으로 느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관심사에 대한 교류 효과를 얻는 거죠. 정원을 보러 온 사람도 있고 현대 미술을 보러 온 사람도 있는데, 양쪽 모두 반대편이 없었다면 경험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시선을 얻어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