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ctorial

저스틴 H. 민 "무엇이 아시아인답게 만듭니까?"

2022.04.27GQ

저스틴 H. 민의 조용한 상승 곡선.

빈티지 티셔츠, 프론트 제너럴 스토어. 플란넬 셔츠, 폴로 랄프 로렌. 팬츠, 디젤. 시계, 지샥. 실버 네크리스, 마틴 알리. 레드 체인 네크리스, 헤븐 by 마크 제이콥스. 벨트는 빈티지 제품.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저스틴 H. 민은 최근 자기 계발서를 아주 많이 섭렵했다. “가장 최근에는 제임스 클리어의 <아주 작은 습관의 힘Atomic Habits>을 끝냈어요.” 햇빛이 구름에 설핏 가려진 LA의 로스 펠리스Los Feliz 골목길을 걸어 내려오며 민이 말한다. 그는 아주 열정적인 독자다. 어릴 때 속독 수업을 들었고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Lydia Davis에 열광하며, 지금도 그가 좋아한다는 서점으로 이끄는 중이다.(서점으로 가는 와중에도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신간을 향한 극찬을 늘어놓았다.) 자기 계발서를 읽게 된 것은 근래의 일이다. “그 분야는 어쩐지 별로였어요.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요즘 조금씩 끌리기 시작했죠.”

빈티지 스웨터, 프론트 제너럴 스토어. 빈티지 티셔츠, 래기디 스레드. 팬츠, 구찌. 벨트, 콜리나 스트라다. 시계, 스와치. 네크리스, 마틴 알리. 레인보 브레이슬릿, 록산느 애슐린. 러버 밴드 브레이슬릿은 스타일리스트의 것.

왜인지 모르겠다고 했지만, 사실 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민은 이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가 완전히 바뀔 만한 일종의 ‘스타 메이킹’ 길을 가고 있다. 그는-<문라이트>, <미드소마>, <미나리> 등 웰메이드 작품을 제작하거나 배급한 곳으로 달리 설명이 필요 없는 영화사-A24가 제작한 SF 드라마 <애프터 양After Yang>의 주연으로 극찬받았고, 올여름에는 유령 벤 하그리브스 연기로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킨 넷플릭스 작품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다. 민은 현재 컬처 신의 수익을 보장하는 맹목적이고도 극단적인 두 부류의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다. 트위터 광인들과 코믹북 괴짜들이다.
민은 정통 할리우드 방식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그는 양적으로 증명된-인스타그램 2백만 팔로워가 그 증거다-공인이면서, 동시에 지난 2년간 대부분의 시간을 락다운 아래 보낸 보통의 인간이다.(<엄브렐러 아카데미> 출연진 전체가 캐나다 토론토에서 8개월간 격리됐다.) 그의 생일이 있는 달인 3월에는 서울에 사는 팬들이 그를 위해 지하철 광고판을 샀고, 민은 “거대한 제 사진과 함께 ‘생일 축하해 저스틴’이라고 적혀 있었어요”라고 말하며 빙그레 웃는다. 그리고 작은 문제가 있다. 그가 아시아인이라는 사실이다.

재킷, 생 로랑 by 안토니 바카렐로. 티셔츠, 에리스. 팬츠, 베르사체. 빈티지 벨트, 서치 & 디스트로이. 스니커즈, 키코 코스타디노브 × 아식스. 시계, 링, 모두 까르띠에. 네크리스, 비피 벨라. 브레이슬릿은 빈티지 제품.

민은 자신이 한국계 미국인(그의 이름 저스틴 H. 민에 적힌 H는 한국 이름 ‘홍기’의 이니셜이다)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할리우드가 아시아 남성을 점점 더 중요한 역할에 캐스팅하면서 그의 커리어도 더 높이 쌓이고 있다. 그러나 가능한 작업이 늘어나는 변화, 팬데믹 이후 ‘안티 아시안’ 정서가 무섭게 폭발한 현상은 그의 민족적 정체성, 그리고 그가 선택한 역할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전에는 겪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씨름해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여기에 자기 계발서가 도움이··· 됐다. “한 8~9년간 다음 일을 얻기 위해 전적으로 생존 모드였어요. 인생에서 처음으로 가속페달에서 조금씩 발을 떼고 다른 영역에서의 성장을 시도해볼 수 있게 됐죠.”
LA 외곽의 아시아인이 많이 모여 사는 도시 세리토스Cerritos에서, 민은 어떤 면에서 전형적인 교포 미국인으로 자랐다. 그의 부모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아버지는 지역 한인 신문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세탁소를 운영했다. “커가면서 기억나는 건, 부모님이 하루 종일 일하셨다는 거예요. 힘들었죠.” 민은 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할머니는 그가 ‘이야기 애벌레’를 키워나가는 데 영감을 주었다. “할머니는 저녁 식탁에서 북한을 탈출하고 한국 전쟁을 경험한,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고 생생한 이야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셨어요. 전 그 이야기들에 완전히 매료됐죠.”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과 달리 민은 자신을 소수자라 느끼며 자라지는 않았다. “제가 다닌 학교는 대다수가 아시아인, 한국인이었어요. 일요일마다 한인 교회에 갔고요. 내 문화에 둘러싸여 있었죠.” 민에게 학교에서 만난 백인 아이들은 “동화되고자 하고 더 많은 한국 음식을 먹으려 하는 아이들”이었다. 민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불안하거나 답답함을 느낀 적 없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탱크톱, 캘빈클라인 언더웨어. 데님 팬츠, 루이 비통. 네크리스, 까르띠에. 벨트, 앤더슨즈. 스니커즈, 키코 코스타디노브 × 아식스.

20대 중반에 민이 연기를 해보기로 했을 때 긴밀한 아시아 커뮤니티가 발판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왔다. 예를 들어 <앤트맨>에서 FBI 요원인 지미 우를 연기한 배우 랜들 박Randall Park과 <글리>에서 마이크 챙을 연기한 해리 슘 주니어Harry Shum Jr.의 데뷔를 도운 아시아계 미국인 프로덕션 웡 푸Wong Fu 팀과의 우연한 만남이 그가 첫 배역을 따내는 기회로 이어졌다. “쓰레기통 광고였어요.” 민이 히죽 웃으며 기억을 꺼낸다. 쓰레기통 회사가 투자한 코미디 스케치형 광고 영상은 유튜브와 페이스북에서 수백만 뷰를 기록했다. 이 일은 민이 매니지먼트를 찾는 데 도움이 됐다. 쓰레기통 광고. 그 기회의 의미를 민은 놓치지 않았다. “사소해 보였겠죠. 하지만 이전에 우리는 쓰레기통 광고의 주인공조차 된 적이 없었어요. 그런 자리를 갖는다는 게, 새로운 걸 실험하고 우리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게 굉장히 중요했죠. (틀에 박힌)아시아인의 자리, 그 바깥에 있는 우리를 세상에 보여주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민은 아시아인들이 이끄는 환경에서 자라고 일하면서 얻은 자신감을 할리우드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일에도 연결시켰다. “이 업계를 백인이 거의 점령한 상태라는 점을 깨달았을 때 저는 고개를 숙이고, 소란 피우지 않고, 묵묵히 자기 할 일에 집중하는 데 길들여졌어요.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죠. 그런데 목소리를 내고 나 자신을 보호하기 시작한 순간, 그건 (다른 이들에게) 충격이었어요.”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첫 번째 시즌이 끝난 후 민은 프로듀서에게 자신의 캐릭터가 어떻게 발전하고 있는지에 대해 몇 가지 의견을 제기했다. “제가 읽은 많은 대본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캐릭터는 늘 완벽하게 묘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흠이 없어요. 스크린에 비춰지는 아시아인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향한 약간의 과잉 보상 같다고 할까요. 배우로서 그런 보상은 전혀 흥미롭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 연결된 인물을 보고 싶을 거예요. 우리는 모두 망가진 데가 있잖아요. 우리는 모두 엉망진창이라고요.”

빈티지 티셔츠, 래기디 스레드. 빈티지 후디, 챔피온 at 프론트 제너럴 스토어. 팬츠, 키딜. 벨트, 아데마 쿠이블. 선글라스, 자크 마리 마지. 시계, 태그호이어.

민은 그 대화가 생산적이었고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전한다. 그로부터 1년 후,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기리는 시위가 절정일 때 민은 <엄브렐러 아카데미> 제작부 전체에 메일을 보냈다. ‘’우리 작품에는 다양한 배우가 출연합니다. 아주 훌륭한 일이죠. 그러나 저는 카메라 밖에서도 우리가 다양성을 향해 좀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엄브렐라 아카데미>의 세 번째 시즌을 촬영하고자 팀이 다시 소집됐을 때, 현장은 역대 가장 다양한 스태프 구성이었다.
민의 행동은 미세했지만 엘리엇 페이지 등 그의 동료 배우들은 충분히 알아차렸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우리는 민이 더 이상 일어설 필요가 없는 지점에 와 있기를, 그가 그런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민의 행동은 믿을 수 없이 존경스러웠습니다. 목소리를 내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그의 성실함, 용기, 그리고 진정한 배려가 반영된 일입니다.” 엘리엇 페이지가 내게 보내온 메일이다. 만약 민의 목표가 스크린에서 아시아계 미국인을 좀 더 알아가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애프터 양>은 민의 경력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완벽한 도약대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작가 코고나다Kogonada가 각본과 연출을 맡은 <애프터 양>에서 민은 양Yang을 연기한다. 양은 입양한 딸이 고향인 중국의 역사와 유산에서 멀어지지 않게끔 가족이 구입한 로봇이다. 이 작품은 민이 매료되었던 ‘정체성’에 대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한 장면에서는 양이 아예 이런 질문을 대사로 던진다. “무엇이 아시아인답게 만듭니까?”

셔츠, 벨트, 모두 콜리나 스트라다. 스웨터, 엠포리오 아르마니. 팬츠, MSGM. 선글라스, 젠틀 몬스터. 시계, 스와치. 테니스 브레이슬릿(왼쪽 손목), 밀라모어. 테니스 브레이슬릿(오른쪽 손목), 마테오. 레인보 브레이슬릿, 록산느 애슐린.

영화와 배우들의 연기는 아름답지만, 그러나 작품에는 한 가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영화에서 ‘Yang’의 이름(기사를 쓰고 있는 내 이름이기도 하다)을 잘못 발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대로 발음하면 “양Yahng”인데, 영화에서는(그리고 서반구의 거의 모든 곳에서) “얭Gang”으로 불린다. 그러나 민은 이 잘못된 발음이 신중하게 고려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코고나다 감독과 저는 그에 대해 여러 차례 대화를 나눴어요. 실제 버전으로 할까요, 아니면 미국화된 발음으로 할까요? 우리는 서양 부모들이 Y-a-n-g으로 적힌 이름을 잘못 발음할 것이라는 스토리를 가져가기로 결정했어요. 원래 발음에 가깝도록 발음하는 데 그들은 그다지 노력하지 않으리라는 거죠.”
“양의 여정이 나의 여정이에요. 그리고 그건 미국에 있는 아시아인 모두의 비슷한 여정이리라고 생각합니다. 보세요. 저는 그 언어를 사용하면서 자랐고, 아시아 음식을 먹으면서 컸고, 토요일마다 한글 학교에 갔어요. 그게 나를 한국인으로 만들까요? 모르겠어요. 제가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니까, 저는 한국인으로 보이고, 아시아인으로 보여요. 그 사실이 저를 한국인으로 만들어줄까요?” 민은 그 답에 온전히 도달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탐색은 재미이자 여정의 일부라고 말한다.
그의 침대 옆 벽에는 그의 ‘감정 수레바퀴를 유지하는 장치’가 붙어 있다. ‘영감을 얻는’, ‘불안한’, ‘무기력한’, ‘평화로운’ 등 자신의 감정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게끔 수십 개로 분류한 표식을 붙여둔 원형 차트다. 몇 년 전 상담사가 제안한 방법으로, 상담사는 자신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좀 더 건강한 표현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최근 민은 더 나아가 발전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느끼고 방출할 수 있는 지점에까지 도달할 수 있었어요. 저는 성격이 이성적인 편이기 때문에 감정을 식별하고 그에 대해, 또는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작성하려는 경향이 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는 ‘일단 감정을 인지하면 거기서 벗어나는 방법을 합리화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어. 그냥 느껴버리자’, 이런 연습에 몰두하는 중이에요.”

재킷, 팬츠, 모두 프라다. 셔츠, 헤븐 by 마크 제이콥스. 벨트, 아데마 쿠이블. 네크리스, 비피 벨라. 스니커즈, 키코 코스타디노브 x 아식스.

요즘 민은 배우로서 작품 활동에도 같은 맥락의 연구를 철저히 적용 중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아티스트가 수행하는 ‘표현의 경제성’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 자신만의 테크닉으로 이를 적용해보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작가 리디아 데이비스의 글은 가끔 오직 세 문장짜리일 때도 있는데요, 이게 아주 강력합니다.” 그는 코고나다 감독이 편집실에서 <애프터 양>을 다듬어나가는 모습을 경외심으로 지켜보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는 잘라내고, 또 잘라내고, 계속 잘라냈어요. 칸에서 상영한 후에도 계속 줄여나갔죠.”
민은 자신의 퍼포먼스도 이와 비슷한 완성도로 만들고 싶어 한다. “테이블 위로는 조금만 남기고, 아래에 많은 것을 미스터리로 두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애프터 양>에 함께 출연한 콜린 패럴이 연기하는 모습을 관찰하면서도 민은 진정한 무비 스타를 판가름하는 것은 정말 작고 미세한 선택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눈썹을 슬쩍 들어 올리거나 손가락을 튕기는 것 같은. 민은 그 선택에 매일 조금씩 가까워지는 중이다. “저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당신이 내게 원하는 무엇이든 투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Writer
    YANG-YI GOH
    Photographer
    YOSHIYUKI MATSUMURA
    Stylist
    Jon Tietz
    Hair
    Hee Soo Kwon
    Tailoring
    Suzi Besik and Alvard Bazikyan at Susie’s Custom Design inc.
    Production
    Seduko Productions
    Prop Styling
    Matt Soko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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