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선장 없는 항해, 첼시 FC는 어디로 가나

2022.05.06신기호

현재 첼시 FC는 인수 비용과 별개로 향후 10년간 1조 5천9백55억원의 투자 보장을 인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세상에!

영국 런던에 ‘킹스로드King’s Road’라는 길이 있다. 이 명칭은 허풍이 아니다. 17세기 국왕 찰스 2세가 버킹엄궁에서 큐가든 궁전으로 행차할 때 사용한 전용 도로였기 때문이다. 요즘도 평범하지 않다. 현대 미술의 큰손 사치갤러리를 비롯해 패셔너블한 로드 숍들이 있다. 이곳에 축구 경기장이 하나 있다. 명칭은 스탬퍼드브리지, 주인은 첼시 FC다.
아쉽게도 첼시 FC의 20세기는 동네 분위기만큼 ‘포시posh’하지 않았다. 1부 리그 우승은 1954-55시즌이 유일했다. FA컵과 UEFA컵 위너스컵은 찬란한 역사라고 칭하기 어려웠다. 당시 구단주였던 켄 베이츠 회장은 좀처럼 돈을 쓰지 못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부채가 원인이었다. 그리고 빛 좋은 개살구로 살던 2003년 깜짝 놀랄 뉴스가 전해졌다. 러시아 슈퍼 리치,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베이츠 회장의 지분 전량을 인수하고 모든 빚까지 탕감하며 새로운 구단주가 된 것이다. 팬들은 베이츠 회장이 떠났다는 변화에 기뻐하는 동시에 새 오너에게 의구심을 품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서른여섯 살짜리 러시아 갑부라니?”
모든 물음표는 기우였다. 인수 첫해인 2003-04시즌에만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1억 2천1백30만 파운드(약 1천9백32억원)를 썼다. 상대 클럽과 선수가 달라는 대로 다 주니 스타들이 몰려들었다. 웨스트햄 풀백 글렌 존슨을 시작으로 레알마드리드의 제레미와 클로드 마켈렐레, 블랙번의 데미안 더프,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파르마의 아드리안 무투, 인테르나치오날레의 에르난 크레스포가 속속 푸른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첼시는 자신들의 근육을 키우는 동시에 경쟁자들의 잠재적 전력 강화를 막는 효과를 누렸다. 2003-04시즌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2위, UEFA 챔피언스리그 4강이란 호성적을 남겼다.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돈이 첼시를 단 1년 만에 잉글랜드와 유럽의 챔피언 후보로 만들었다.


시즌이 끝나자마자 첼시의 지갑이 다시 열렸다. 2003-04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한 조제 모리뉴 감독을 영입했다. 페테르 체흐, 아르연 로번, 디디에드로그바, 히카르두 카르발류, 파울루 페헤이라 등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첼시는 1억 파운드 이상을 썼다. 첼시는 거침없이 달려 50년 만에 잉글랜드 패권을 차지했다. 리그 38경기에서 단 1패만 당했다. 실점(15점)과 승점(95점) 모두 프리미어리그 신기록이었다. 리그컵 우승, UEFA 챔피언스리그 4강 실적이 뒤따랐다. 안드리셰브첸코(2006년), 페르난도 토레스(2011) 등 초고액 영입이 이어졌다. 2007년엔 최신식 훈련 시설을 갖춘 코범트레이닝센터까지 개관했다. 풍부한 자금과 강력한 스카우트망은 유럽 전역의 유망주들을 흡수했다. 아브라모비치 체제 9년 만에 첼시는 독일 뮌헨에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꿈을 이뤘다.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았던 아브라모비치 회장은 2003년부터 2021년까지 18년 동안 선수 영입에만 3조 3천5백억원을 썼다. 해당 기간 첼시는 프리미어리그 우승 5회, FA컵 우승 5회, 리그컵 우승 3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UEFA 유로파리그 우승 2회 등 찬란한 업적을 쌓았다.
그런데 세상에, 2022년 3월 22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했다.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첼시에 불똥이 튀었다.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코로나19 방역 위반에 대한 거짓말 해명으로 사퇴 위기에서 탈출할 천재일우로 삼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측근들의 영국 내 자산을 동결한다는 관측이 나왔다. 전쟁 발발 닷새 만에 아브라모치비 회장은 “클럽 관리를 재단에 맡기겠다”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존슨 내각의 칼춤이 클라이맥스를 향했다. 푸틴 측근 7인의 영국 내 자산에 대한 긴급 동결안이 빛의 속도로 통과되었다. 자산 동결 대상자 7인 중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이름이 가장 위에 있었다. 푸틴이 러시아 최강 권력자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 가장 은밀하고 확실하게 지원한 ‘푸핵관’이었기 때문이다. ‘푸틴 궁전’으로 알려진 초호화 저택도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선물로 알려졌다. 3월 2일 아브라모치비 회장은 클럽 매각을 공식 선언했다.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친親푸틴 행적과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의 정치적 술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셈이다. ‘첼스키’의 18년 화양연화는 우크라이나 침공 열흘 만에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현재(4월 첫째 주) 첼시 측은 미국계 기업 합병 전문 회사인 레인 그룹에 클럽 매각을 위탁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현황과 달리 세계적 갑부들의 관심이 쇄도했다. LA다저스(MLB)의 공동 구단주 토드 볼리는 스위스계 갑부 한소르그 위스와 팀을 꾸려 첼시 인수에 나섰다. 시카고컵스(MLB)를 소유한 리케츠 가문, 보스턴 셀틱스(NBA)와 아탈란타(세리에A)의 구단주 스티븐 팔리우카도 인수 제안서를 제출했다. 영국파 중에는 리버풀과 영국항공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마틴 브로턴이 2012런던올림픽 전 조직위원장 서배스천 코와 컨소시엄 형태로 인수전에 참가했다. 국내 팬들의 관심은 영국의 땅 부자 닉 캔디와 손을 잡은 하나금융투자 쪽에 쏠렸지만, 예상했던 대로 1차 심사에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클럽 운영 노하우도 부족할뿐더러 한국인 에이전트의 비상식적 공개 행보가 신뢰를 떨어뜨렸다. 축구 클럽의 가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축구 시장 안에서의 경쟁력이다. 첼시는 만점에 가깝다. 18년에 걸친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투자 덕분에 첼시는 세계적 클럽으로 발돋움한 상태다. 올 시즌 기복이 심한 모습이긴 하지만, 토마스 투헬 감독의 팀은 여전히 국내외 패권을 노릴 전력을 갖췄다. 사업 역량도 좋다.
2019-20시즌을 기준으로 첼시는 연매출 6천2백44억원을 기록했다. 전 세계 축구 클럽 중 여덟 번째에 해당하는 실적이다. 소셜 미디어에서는 페이스북 5천1백만명, 인스타그램 3천3백만 명, 트위터 2천만 명, 유튜브 3백60만 명을 각각 보유했다. 두 번째 가치 평가 대상은 부동산. 축구 클럽은 홈경기장과 훈련장이라는 대형 부동산을 보유한다. 전술한 대로 첼시의 홈경기장 스탬퍼드브리지는 런던의 금싸라기 땅에 있다. 런던 서남쪽에 있는 코범트레이닝센터는 넓은 대지와 최신식 시설을 갖춰 부동산 가치가 높다. 2003년 아브라모비치 회장의 첼시 인수 금액은 2천2백33억원이었다. 2021년 미국 <포브스>는 현재 첼시의 시장 가치를 약 3조 9천56억원으로 평가했다. 18년 동안 시장 가치 상승률이 1천6백 퍼센트가 넘었다는 뜻이다. 이런 매물이 시장에 나왔으니 슈퍼 리치들이 군침을 흘릴 수밖에 없다.


영국 정부는 5월까지 첼시 인수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인수 제안서의 최종 제출 시한은 4월 11일이다. 현지 보도에 따르면, 미국파 3개 팀(볼리&위스, 리케츠 가문, 팔리우카)과 영국파 1개 팀(브로턴&코)으로 압축되었다. 일단 아브라모비치 회장 측이 인수자를 선정하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영국 정부가 최종 승인권을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정부가 클럽 자산 동결 기간 중 일상 업무에 필요한 자금을 임시 변통해줬기 때문이다. 기존 구단주가 정치적 이유로 축출되었기에 새로운 주인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평판이 중요한 심사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일단 리케츠 가문은 과거 인종 차별 실언이란 흠결이 크다. ‘정치적 올바름’ 항목에서는 브로턴과 코 컨소시엄이 가장 안전한 선택지다. 두 사람 모두 영국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다. 브로턴은 2010년 스코틀랜드왕립은행의 중재자 자격으로 리버풀의 재정 악화 사태를 매끄럽게 처리해 현지 축구 팬들 사이에서 지지를 받는다. 코는 영국 스포츠 영웅이자 체육계 거물이다. 1980년과 1984년 하계 올림픽 남자 1500미터 종목에서 2연패를 달성했다. 현역 은퇴 후 상원의원,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거쳤으며 현재 국제육상경기연맹 (IAAF)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하지만 영국파는 자금 계획 및 사업 역량 면에서 미국파에 뒤진다. 현재 첼시 측은 인수 비용과 별개로 향후 10년간 1조 5천9백55억원의 투자 보장을 인수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자금력에서는 미국파가 탄탄하다. 이들 모두 스포츠 비즈니스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 시장에서 잔뼈가 굵은 후보자들이라서 첼시를 성공적으로 경영할 능력이 충분하다. 글 / 홍재민(축구 전문 기자)

    패션 에디터
    신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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