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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들은 왜 방송에 출연하고 나면 맛이 없어질까

2022.06.02김은희

맛있고 훌륭한 음식과 자주, 오래도록 마주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이것은 만드는 이뿐 아니라 먹는 사람에게도 던져야 할 질문일 것이다.

그곳은 진정 내가 발굴한 몇 안 되는 음식점이었다. 인적이 많다고 할 수 없는 동네 골목길의 초입, 그것도 건물의 2층에 자리 잡은 중국 음식점이라니. 산책길에 발견하고는 홀린 듯이 그대로 걸어 2층까지 올라갔다. 그렇게 시킨 첫 음식이 무엇이었는지는 세월이 칠팔 년 흘러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음식의 높은 완성도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볶음밥은 고슬고슬하니 밥 자체에도 간이 되어 있었다. 간짜장은 주문과 동시에 볶은 소스와 소다 없이 뽑아 순한 면의 조화가 빼어났다. 외식으로서 ‘원톱’의 지위를 누렸던 1980~1990년대의 중식이 타임머신을 타고 2010년대에 출현한 느낌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아직 남아 있어도 신기한데 새롭게 문을 열다니. 집에서 걸어 5분 거리라 나의 방문은 잦아졌고, 차츰 전 메뉴를 먹으며 음식점 사람들과 조금씩 안면을 트기 시작했다. 결국 카운터를 보는 또래의 대표와 이야기를 나눠보고 궁금증을 풀었다. 원래 아버지가 서울의 번화가에서 대규모 중식당을 꾸렸었노라고 했다. IT 업종에서 일했으나 가업을 되살리고 싶어 은퇴하고 중국에서 양을 치던 아버지를 모셔왔다는 것이다. 그렇게 훌륭한 동네 중식당이 탄생했다.
새로운 음식점을 즐기던 어느 날 변화가 찾아왔다. 토요일 오후, 홀이 한적한데도 직원들이 매우 분주히 움직였고 구석의 방으로 큰 요리 접시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설마? 나가면서 슬쩍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방송국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당시만 해도 가장 큰 권위를 누리던 맛집 프로그램이었다. 아, 그렇군요. 잘됐네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 나왔지만 마음 한구석이 어두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동네 중식당으로서의 좋았던 시절이 이렇게 막을 내리는구나. 곧 방송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이 음식점 앞에 길게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름값으로는 한국 최고의 중식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목란이 문을 닫는다는 뉴스가 알려졌다. 나도 충격을 받았다. 팬데믹 시국으로 모든 자영업, 특히 요식업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건 이견이 없을 사실이다. 그래도 그렇지, 다른 곳도 아닌 목란인데? 음식점뿐만 아니라 셰프의 브랜드 파워가 있는 곳 아닌가. 뉴스만 놓고 섣부른 추측은 금물이나, 나는 동네 중식당이 인기를 얻은 이후의 일들을 쭉 떠올려보았다. 소위 ‘바이럴’의 시대, 비단 음식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어떻게든 알려지기만 하면 영업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단순하게 손님이 많이 찾아오면 돈도 많이 벌고, 그럼 오래오래 영업이 가능할 거라 미뤄 짐작한다. 하지만 세상만사가 그렇게 간단히 돌아가지는 않는다. 음식점에 인기는 독과 같아서 멀쩡하게 장사를 잘하던 음식점의 수준을 확 떨어뜨리거나, 최악의 경우 폐업으로도 몰 수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방송 등의 노출로 인해 손님이 많이 몰리는 음식점은 대체로 비슷한 길을 걷게 된다. 일단 손님이 많이 찾아오는 것은 확실하나 막말로 ‘영양가’가 낮아질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노출되는 순간 음식점은 음식보다 인증을 위한 장소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방송을 보고 찾아오는 손님은 음식점이 어떤 음식을 내고 맛을 추구하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 음식점 방문은 일종의 ‘도장깨기’ 같은 놀이로 전락하니 사람들은 방송에서 소개한 음식을 놓고 사진을 찍어 SNS에 인증하는 걸 목표로 삼는다.
이처럼 음식을 먹는 자체에 관심이 덜한 손님으로 음식점이 가득 차게 되면 객단가가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진다. 어차피 방송에 등장한 음식 외에는 관심이 없기에 다른 메뉴에 눈을 돌리지 않기도 하지만, 술을 비롯한 음료류를 시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식업계에는 “음식값으로는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이득은 술을 팔아서 낸다”라는 말이 있다. 식종 혹은 음식점별로 취급하는 주류가 각각 다른 가운데 음식점에서 만들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인력을 들이지 않은 요소가 어느 정도 팔려줄 때 음식점의 숨통도 트이게 마련이다. 물론 음식점의 이득을 위해 억지로 술을 시켜야 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술을 포함한 음료류가 음식 맛을 더 잘 살려준다는 건 식음료 즐기기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이자 규칙이다. 하지만 소위 ‘도장 깨기’가 목표가 되면 다른 건 크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한편 이런 방문객이 늘어나는 데 반비례해 단골의 발걸음은 줄어들거나 끊긴다. 손님은 많고 대기는 길며 자리를 잡아도 느긋하게 즐길 수 없게 되는 것도 있다. 한편 주문이 특정 메뉴로 몰리다 보니 만들고 싶어도 만들지 못해 메뉴 자체가 축소되거나, 최악의 경우에는 몰리는 손님에 지쳐 음식의 완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럴 때 인내심을 가지고 음식이 되돌아올 때까지 참아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과거 우리 동네 중식당도 그런 상황을 겪었다. 한참 동안 완성도가 많이 떨어졌으며, 방송 출연 직후 군만두가 메뉴에서 사라졌다. 그렇다, 반죽을 직접 도톰하게 밀고 속을 실하게 채운 뒤 만두피에 야들야들함이 일정 수준 남아 있도록 튀기지 않고 구운 만두였다. 이제 그런 게 흔치 않은 현실이므로 을지로의 오구반점 같은 곳을 맛집 반열에 올려놓기도 한 군만두는 그 중식당의 자랑거리였다. 한창 개발 중이었을 때 만두와 피를 우연히 맛보기도 했었던 군만두는 홀이 손님으로 꽉꽉 들어차자 자취를 감춰버렸다. 만두 같은 걸 빚을 엄두도 낼 수가 없어진 것이다.
이런 패턴이 계속되면 음식점의 사람들은 지친다. 일단 손님이 많아지니 물리적으로 쉴 새가 없지만 정신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아진다. 그런 가운데 음식점이 방송 출연을 했다는 사실이 인근에 알려지면 예상이 쉽지 않은 문제가 벌어지기도한다. 돈가스 전문점 연돈을 기억하는가? 2018년 <백종원의 골목식당>에 소개된 이곳의 이야기는 매체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방문객이 몰리니 소음과 흡연 등의 문제가 생겨 주변 가게는 물론 상권 전체의 반발을 겪었다. 당시 뉴스에 따르면 민원이 끊이지 않았고, 돈가스집 사장은 멱살을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연돈은 백종원의 도움을 받아 제주도로 이전했지만 상황은 결코 나아졌다고 볼 수 없다. 음식점에 방문하는 것 자체가 콘텐츠가 되어버려 새벽부터 텐트를 치고 대기하는 상황 등이 유튜브를 통해 알려지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동네 중식당도 방송에 나간 뒤 예기치 못한 쪽에서 홍역을 겪었다고 했다. 그야말로 동네 음식점이므로 산책을 나섰다가 우연히 대표와 마주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단 민원이 자꾸 들어온다고 했다. 음식점의 설비 등이 대상인데 아무래도 주변 상권에서 넣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추측이었다. 한편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손님도 늘어났다고 했다. 그가 스마트폰으로 보여준, 맥주병을 휘두르며 행패를 부리는 여성의 동영상은 충격적이었다.


마지막으로 부동산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은 적법하게 맺은 계약을 이행한다고 하더라도 부담이 아주 큰 상수인 가운데, 종종 돌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높다. 임차인의 음식점이 큰 인기를 얻자 몰아내고 임대인이 운영에 뛰어들어 분쟁이 나는 이야기는 뉴스에 심심치 않게 소개된다. 목란의 폐업 소식 이후 이연복 셰프는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며, 작은 규모로 새롭게 시작할 계획으로 건물을 낙찰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정도의 뉴스에서 행간을 읽기란 무리겠지만, 건물주가 되지 않는 한 장사에서 마이너스 요소를 완전히 떨칠 수는 없다는 말쯤은 할 수 있으리라.
중식당이 있는 동네를 떠나서 한참 못 가보다 목란의 뉴스를 듣고 생각이 나 일부러 들러보았다. 여전히 북적거렸지만 적어도 방송이 몰고 왔던 거대한 파도는 이제 완전히 지나 보낸 것 같았다. 누군가 일부러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방송 출연으로 호되게 고생한 전력 같은 건 모를 정도의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간짜장을 비롯한 음식들은 여전히 맛있었지만 군만두는 시간이 충분히 흘렀다고 생각하는데도 메뉴로 돌아오지 않아 있었다. 그렇다면 아마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지만, 인기라는 독을 삼켰던 과거를 생각하면 이만하기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만드는 사람도 그런 평지풍파를 겪은 이후 괜찮은 건지, 음식만 놓고서는 읽을수가 없었다. 차라리 다행인 걸까? 글 / 이용재(음식 평론가)

피처 에디터
김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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