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오른 바 참, 앨리스, 르챔버, 제스트. 순위로는 못다 한 이야기들.
CHAMㅣ임병진 at 바 참
임병진이 바에 설 때마다 날달걀을 떠올린다. 동글동글한 형태에 균열이 일어날 때의 긴장감. 싱긋 웃던 임병진이 바에 서서 칵테일 메이킹을 시작할 때, 그 매서운 눈빛은 방금 깨진 달걀처럼 상대를 긴장시킨다.(마침 그의 얼굴도 반듯한 달걀형이다.) 바 참은 2020년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50위로 진입한 뒤 다음 해에 34위, 그리고 올해는 28위로 꾸준히 상승했다. “베스트 바 50에 든 것만으로 영광이고 큰 행복이죠. 순위는 크게 개의치 않아요.” 청담동, 한남동 등지에서 스피크 이지 바가 한창 유행할 때, 당시 가장 주목받던 바텐더 중 하나였던 임병진은 서촌으로 가 빛이 훤하게 드는 곳에 바 참을 열었다. 한국의 로컬 재료, 로컬 술로 창작한 그의 기발한 칵테일은 대부분 이곳에서 탄생했다. 파고드는 탐구 정신, 거기다 실행력, 스피드, 정확성, 미적 감각까지 지닌 그는 일찌감치 완성형 바텐더였다. 당연히 바 참, 그리고 임병진이 서울 바 신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하다. “저, 그리고 저희 크루들이 서울 바 신의 흐름을 만든다든지, 대단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무언가를 유행시키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요. 다만 제가 느낀 것을 고객들도 지루하지 않게 공감할 수 있었으면 했죠. 피터팬처럼요.” 지역의 술, 특산물, 문화 등을 새롭게 바라보고 해석한 그의 칵테일은 한국 문화를 모르는 외국인에는 낯설어 새롭고, 한국을 잘 아는 이들에게는 한편으로 친숙해서 더 새롭다. “팬데믹으로 코로나 맥주가 아주 힘들었을 테니, 코로나에 라임 하나 넣어서 한잔씩 드시는 거 어떨까요?” 칵테일만 보면 좀처럼 다가가기 힘든 완벽의 바텐더 같지만, 시덥잖은 농담도 건넬 줄 아는 그다. 바 참, 팜 투 바를 지향하는 바 뽐, 그리고 근처에 또 하나의 공간이 곧 탄생한다. 그리고 그는 ‘비밀’이라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CHAM’s COCKTAIL
ALICE CHEONGDAMㅣ박용우, 김준석 at 앨리스 청담
“바 신에 세대 교체가 일어나고 있어요. 이 친구들을 주목할 때라고요.” 아시아 베스트 바 50 2022의 40위에 오른 바 앨리스의 오너 바텐더 김용주에게 섭외 메시지를 보냈을 때, 그의 회신에서 침이 튀는 것 같았다. 그가 지목한 앨리스의 두 헤드 바텐더, 박용우와 김준석은 비슷하면서 몹시 딴판이다. “용우가 성실한 모범생이라면 준석이는 감각 좋은 날라리죠.” 김용주 대표의 말처럼 둘의 MBTI 유형은 ‘ENFP’로 같지만, 칵테일은 극과 극을 달린다. 박용우의 칵테일에 단단한 기둥이 있다면, 김준석의 칵테일은 보다 마시기 편한 스타일이다. “둘의 개성을 잘 살리면 무척 다른 두 가지 칵테일이 나오고, 반대로 둘이 조율하면 가장 대중적인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죠.” 이 둘을 필두로 앨리스 청담은 새로운 장막을 연 셈이다. 7년 전 바 앨리스의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감지한 그 날것 같은, 후끈한 온도가 지금까지 유지되는 비결을 알 것 같았다. “일단 저희끼리 잘 놀아요. 재미없으면 일을 못 하거든요. 놀 듯이 재미있게 일하면, 손님들은 저희가 주인공인 쇼를 보러 오는 셈이죠.” 최근 아시아 베스트 바 50 발표 참석을 위해 방콕을 찾았을 때, 박용우는 탁주로 만든 사워 칵테일, 홍국쌀로 만든 탁주 ‘붉은 원숭이’를 이용한 떡볶이 칵테일을 선보였다. 한국 술 양조장 술샘과 협업해 우리 술로 한국 식문화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영감은 어디서 오죠?” 같은 질문은 어리석은 것 같아서 꿀꺽 삼켰다. 그들이 보고, 듣고, 겪는 그 모든 것이 영감인 게 분명해서. “팬데믹 동안 각자의 공간에서 술을 익히신 분들이 바에 많이 찾아오세요. 술에 대한 지적 수준이 높아진 것은 반갑고 좋은 일이지만, 자신이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점을 인지하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열린 마음으로요.” 활짝 열린 미소로 그렇게 말했다.
ALICE’s COCKTAIL
ZESTㅣ김도형 at 제스트
“기존에 없던 바를 만들고 싶었어요. 단순히 맛있고 화려한 칵테일, 그것보다는 좀 더 가치를 담고 싶었죠. 칵테일부터 공간까지 하나의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도록요.” 제스트의 시작은 하필 팬데믹과 함께였다. 될까? 고백하자면 처음 제스트를 방문할 때 조금쯤은 의구심이 들었다. ‘지속 가능성’이란 자고로 노력의 지속 없이 결코 지속될 수 없으니까. 시트러스 껍질이란 뜻의 ‘제스트’와 ‘제로 웨이스트’의 의미를 더해 ‘제스트’라 이름 지은 이곳은 까다롭고 엄격한 원칙을 세워놓았다.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캔 음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대부분의 재료를 자연으로부터 가져온다.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산지와 직접 소통하기도 한다. 1년 반 전 문을 연 제스트는 올해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48위로 첫발을 뗐다. 그러니까 지속 가능성의 어떤 가능성을 증명한 셈이다. 그리고 함께 의기투합한 세 명의 바텐더-우성현, 박지수, 권용진-과도 건강하게 관계를 지속 중이다. “지속 가능성이란 말이 꼭 환경에만 연관되는 건 아닐 테니까요.” 매주 준혁이네농장을 방문해 작물의 표정을 살피고, 농부, 양봉가 등과 연대하며 김도형을 필두로 네 명의 바텐더가 함께 꿈꾼 ‘파인 드링크’는 찬찬히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좋은 바텐더요? 인성이 가장 중요하죠. 기술이야 오랜 시간 일하며, 혹은 연습을 통해 채울 수 있겠지만 사람의 근본 인성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요. 저희는 기계처럼 일하고 싶지 않아요. 저희가 하는 모든 행동의 이유를 알고, 항상 진지하게 생각하는 태도로 임하고 싶어요.” 1년 6개월 만에야 정상 영업을 할 수 있게 된 제스트는 기나긴 소프트 오프닝에 마침표를 찍고 그랜드 오픈을 향해 간다.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무엇이든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이유는 결국 한 잔의 칵테일에 모두 담길 것이다.
ZEST’s COCKTAIL
LE CHAMBERㅣ임재진, 엄도환 at 르챔버
“아시아 베스트 바 50 발표하는 날은 후보에 오른 바텐더들과 다 같이 모여서 발표를 기다려요. 이번에는 용주(앨리스 청담 대표)랑 옆에 앉아서 더 순위 높은 사람이 한턱 쏘기로 했죠. 앨리스가 40위, 저희가 39위였으니 이번엔 제 차례였죠.” 르챔버의 공동 대표 임재진이 말했다.(순간 만화 <바텐더>의 “세상에서 가장 결속력 있는 집단이 바텐더”라는 말이 스쳤다.) 르챔버는 7년 전 처음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 진입한 뒤 단 한 번의 이탈 없이 꾸준히 베스트 바에 올랐다. 체중을 실어 문을 열면 열리는 스피크 이지 컨셉의 르챔버는 이제 좋아하는 헌책을 펴듯 익숙한 공간이 되었지만, 분명 대체될 수 없는 숙성된 맛이란 게 이곳에 있다. “저희요? 물론 (바텐더로서) 고인물이죠. 싱싱함 대신 완숙미란 게 있어요. 잘 익은 과일로 만든 청처럼. 잘만 보관하면 오래갈 수 있겠죠.(웃음)” 바텐더로 사회 생활을 시작해 영향력 있는 오너 바텐더로 거듭난 둘의 칵테일 메이킹 실력이야 두말할 것 없이 정평이 났지만, 여전히 절대적으로 완벽한 칵테일은 없다고 믿는다. “엄청 행복한 바가 되길 바라진 않아요. 다만 좋은 추억으로 남는 바였으면 좋겠어요.” 아빠와 딸, 엄마와 아들처럼 청담동 바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의 손님도 종종 눈에 띄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까. 거기다 두 오너 바텐더는 각각 살림과 대외 활동을 사이좋게 맡아 지속 가능한 파트너의 훌륭한 선례를 남기고 있다. 르챔버를 구심점으로 한 새로운 시도도 끊임없다. 한껏 날카로운 술이 오크통에서 세월과 자연 속에 마모되어 둥글고 깊은 맛을 내듯이, 르챔버 공간에서도 점점 깊은 맛이 느껴지는 듯했다. 과연 멋지게 숙성된 ‘고인물’이었다.
CHAMBER’s COCKT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