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이유 | 지큐 코리아 (GQ Korea)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출근길 지하철에서 한 이유

2022-06-13T12:28:31+00:00 |hot topic, living|

사진 기자의 취재기를 통해 바라본 장애인 이동권의 현주소. 그 후 20년, 이들의 이동권은 얼마나 달라졌나.

장애인 이동권 문제가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주도하는 ‘이동권 보장 촉구 시위’는 출근 시간대 지하철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탑승해 장애인 이동권의 필요성과 투쟁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장연의 이러한 출근길 시위를 취재해보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졌다. 사진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전장연 시위는 무수히 취재해왔지만,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는 처음이라 긴장됐다. 사진이 아닌 기사로만 봐도 힘든 취재 현장이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출근길 시위 현장은 발을 동동 구르는 시민들과 장애인들, 그리고 취재진이 뒤엉켜 연일 아수라장이었다. 데스크가 지시한 스트레이트 기사를 마감한 뒤, 개인적으로 좀 더 깊이 있게 이동권 문제를 다루고 싶어 시위 현장에 나온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일반적인 취재와 다르게 스토리 사진 취재는 오랜 시간 취재원과 공감을 나누는 게 중요하기에 2주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시위 현장을 찾았다. 그제야 몰랐던 부분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알게 된 사실은 이동권 시위의 역사다. 역사는 2001년 1월 22일 지하철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 노부부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설을 맞아 아들을 보기 위해 역귀성한 이 노부부는 오이도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해 사망했다. 이 사건은 사고 자체도 문제였지만 석연치 않은 대처로 인해 논란이 커졌다. 관계부처들은 사고 사실을 보고조차 하지 않았으며, 그사이 사고 현장을 수습해 사고의 원인 규명까지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대처에 장애인들이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해 지하철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 버스 도입, 특별 교통수단 도입 등을 요구하며 이동권 보장 투쟁을 이어온 것이 20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장애인 이동권 시위’다.
그렇다면 20년 넘게 투쟁한 결과 무엇이 달라졌을까? 물론 많은 것이 변했다. 장애인 콜택시가 도입되고 저상 버스가 확대됐다.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취재 중 만난 장애인 A 씨는 아쉬움도 있다고 말한다. 시민들의 인식이다. “제도적으로는 변한 부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인식은 20년 전과 크게 차이가 없어요.”아직도 지하철을 비롯한 장애인 콜택시 등 장애인을 위한 대중교통 수단은 완전하지 못하다. 취재를 하며 경복궁역에서 혜화역까지 지하철로 이동하는 장애인들과 동행해봤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동하려면 우선 경복궁역에서 충무로역으로 이동해 4호선으로 환승한 뒤, 반대 방향인 명동역으로 이동해서 다시 한성대입구 방면 열차를 타고 혜화역으로 가야 한다. 더욱이 일부 지하철역은 지하철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아 승강장에서 다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다른 역으로 이동하는, 이른바 ‘엘리베이터 환승’을 해야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이동 방법과 거리를 생각하면 지난한 과정이다. 엘리베이터 환승 외에도 문제점은 여럿 있다. 지하철 엘리베이터는 일반 시민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평균 5~7분을 기다려야 탑승할 수 있으며, 사람이 많이 몰릴 때는 30분 넘게 기다리기도 한다. 게다가 역마다 한 대씩뿐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라도 나면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사실 동행 취재를 하기 전까지는 엘리베이터 대기 시간과 붐비는 출근 시간대 정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만약 직접 취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엘리베이터 환승’은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사용이 어렵다면 휠체어용 리프트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지하철역에는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기 힘든 상황에 대비해 계단에 휠체어용 리프트를 설치해놓았다. 하지만 많은 장애인이 리프트 사용을 꺼린다. 취재하며 만난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최용기 소장은 리프트는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위험한 기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 대신 리프트를 이용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리프트가 설치된 곳은 대부분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죽는다고 봐야 하죠”라며 리프트의 위험성에 대해 말했다. 많은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는 것은 목숨을 건 ‘공중 곡예’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차라리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을지언정 리프트를 탈 생각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이유다.
실제로 서울시가 지하철역에 휠체어용 리프트 설치를 시작한 1988년부터 지금까지 많은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에는 양천향교역에서 리프트를 이용하던 장애인이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장애인들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와 더불어 ‘1역사 1동선’ 완비를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용기 소장은 집과 직장 바로 앞에 지하철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찔한 경사에 설치된 리프트 때문에 장애인 콜택시만 이용한다고 밝혔다. 최 소장이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할 때 동행했다. 동행 취재를 하면서 장애인 콜택시 역시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여럿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선 배차 시간이 정확하지 않고, 출퇴근 시간대와 같은 특정 시간대에는 이용이 어렵다는 단점도 있어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최 소장은 지난 4월 15일 여의도 이룸 센터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은평센터에서 여의도까지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해 이동했다. 추모제가 열리는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최 소장은 오후 2시 10분경에 콜택시를 호출했다. 배차 시간이 정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날 콜택시는 50분이 지난 오후 3시에야 배차가 됐다. 하지만 이 정도 배차 간격은 무난한 편이라고 했다. “출퇴근 시간대에는 1~2시간이 우습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 가끔 배차를 빨리 받아 약속 시간 한참 전에 도착하는 경우도 있지만, 늦게 도착하는 것보다는 빨리 배차되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리고 이날 최 소장은 추모제에서 마무리 발언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예상보다 돌아가는 콜택시가 빨리 배차되는 바람에 마무리 발언을 하지 못하고 다시 은평 사무실로 가야만 했다. 배차된 콜택시를 타지 않으면 다시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20년 가까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해온 최 소장은 “세월이 흐르면서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과 여건이 과거보다는 분명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한다. 최 소장은 “2001년 일본에 갔을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장애인이 언제 탑승했으며 몇 호 차에 탔는지 세세하게 관리했다. 시민들 역시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점이 부러웠다”며 해외 사례를 덧붙였다. 이처럼 장애인 이동권은 장애인들에게는 생존에 가까운 문제이기에 많은 장애인이 이동권 확보를 위해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근길 시위가 길어지자 많은 시민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특히 시위가 주로 이뤄지는 3호선을 이용하는 시민들은 아침마다 긴장한다. 매일 경복궁역에서 내려 출근한다는 시민 A 씨는 전장연의 출근길 시위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는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는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많은 사람이 붐비는 출근길에 시위를 하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다”고 답했다. 실제로 전장연과 관련된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보면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해 마련한 ‘방법’이 충돌한 셈이다.

앞서 언급한 ‘시민들의 의식 문제’가 아닌 ‘공감’을 얻지 못했기에 이러한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는 것일 테다. 분명한 건 취재 중 이동권을 주장하는 장애인과 시위에 불편을 느낀 시민을 모두 만나봤는데, 서로 공감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칼럼 작성 기준) 새 정부 출범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장애인 이동권 문제에 대한 접근은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과거에 비하면 장애인 이동권은 분명 많이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다. 새 정권에서는 지금의 목소리를 반영해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가 해소되길 기원한다. 공감은 파도와 같아서 한번 일어나면 꾸준히 지속될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 글 / 이동률 (<더팩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