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큐 코리아 7월호 커버의 주인공 '스티븐 연' | 지큐 코리아 (GQ Korea)

지큐 코리아 7월호 커버의 주인공 ‘스티븐 연’

2022-06-21T18:24:56+00:00 |interview|

“스티븐, 거기에서 무얼 하고 있나요?” 스티븐 연의 미래가 궁금해서 지금을 물었다. “다리를 만들거나 닫힌 문을 부숴버리는 일요. 그러곤 다시 떠나야죠.”

BB 배스 로브 2백87만원, 터틀넥, 플레어 팬츠, 뮬 가격 미정, 모두 발렌시아가. 모든 선글라스 가격 미정, 모두 AKILA 아이웨어.

GQ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스티븐의 4년 전 <지큐> 화보를 찾아봤어요. (페이지를 보여주며) 정말 젊었군요!(웃음) 기억해요?
SY 그럼요. 그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중요한 건 두 명의 아이가 있어서 이젠 더 이상 저 때의 그···, 아니, 이걸 어떻게 설명하죠?(웃음)
GQ 영화 <미나리> 이후 어떻게 지냈어요?
SY 계속 바빴어요. 그사이 팬데믹은 심각했고, 비극도 있었죠. 다행히 이제는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금씩 현실로 돌아가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GQ 팬데믹이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 건 분명하죠.
SY 맞아요. 팬데믹을 통해 배운 것이 많아요. 저는 성장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 2년 동안 거의 일을 받지 않았어요. 많이 바빴거든요. 그 후에 시작한 작품이 영화 <놉>이에요. 그리고 작은 영화를 하나 더 했고요.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요. 같이 일하기 정말 좋은 배우였어요.

GQ <놉> 1차 예고편을 봤어요.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더군요.(웃음) 그래서 스티븐에게 직접 물어봐야겠다 싶었어요.
SY 미안해요. 저는 이야기할 수 없어요.(웃음) 예고편, 저도 봤어요. 포인트는 ‘뉴 클래식’이라는 거죠. 본 적이 없는데 본 것 같은 느낌, 뭔지 알죠?
GQ 알 것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그동안 조던 필 감독의 영화들은 “규정할 수 없는 장르”라는 평가를 받곤 했잖아요. 그래서 함께하는 배우들은 조던 필과의 작업을 ‘도전’이나 ‘시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종종 있고요. 스티븐도 <놉>의 출연이 ‘도전’이라고 생각했을까요?
SY 제 생각에 조던 필 감독은 인간에 대해서, 나아가 저 깊숙이 있는 인간 존재에 대해서 늘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동안 그의 작품들은 사회적인 이야기를 꾸준히 다뤄왔죠. 계층 구조나 사회적 인식 같은 것들요. 아마도 감독은 작품을 통해 집단 지성을 더 끌어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우린 인간으로서 어떤 존재인지를 물으면서요.
GQ 그래서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과정이 아니었겠네요.
SY 네. 그의 영화에 참여하려면 배우로서 굉장히 열려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먼저 이해가 되어 있어야 하죠. 사회적으로요. 과거를 바라보는 태도라든지, 지금껏 사회가 무엇을, 또 어떻게 정의해왔는지 등등.

GQ 감독은 정의되어왔던 것들을 다시 새로 바라보고요.
SY 맞아요. 작품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정의하는 거죠. 어쩌면 정의하지 않고 그냥 놓아두는 것일 수도 있어요. 바라보는 거죠. 영화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순 없지만, 제가 연기한 캐릭터는 아마 미국 사회에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양 사람’일 거예요. 그 캐릭터를 위해 조던과 저는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인물이 완성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같이 지나왔어요.
GQ 더 듣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테니까, <미나리>의 제이콥 얘기를 꺼내볼까 봐요. <놉>의 캐릭터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동양 사람’이라면, <미나리>의 제이콥은 그 시대, 보통의 이민자였던 ‘아버지’를 보여주잖아요.
SY 제이콥을 연기하는 동안 어려웠던 건 제 안에 남아 있는, 저의 아버지 세대의 이미지를 부수는 일이었어요.
GQ 흥미로운 건, 1세대 이민자를 직접 보고 겪었던 사람들은 그 세대를 강압적이고 고집스러웠다고 기억하는 반면, 제이콥은 그렇지 않았죠. 오히려 더 섬세하고 젠틀했어요.
SY 우리가 표현하는 ‘아저씨’나 ‘꼰대’는 어디까지나 우리가 바라보는 시선에서 만들어진 모습이에요. 그 사람을 보는 우리의 관점인 거죠. 맞아요. 그 시대의 어떤 아버지는 강압적이고 고집스러웠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무언가에(대부분 생존이겠죠) 최선을 다하려 했던 인간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아이작 감독에게 고마웠던 건 그렇게 모든 캐릭터에 ‘잘못’을 부여했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죠. 그 캐릭터가 옳았다거나 좋은 사람이었다는 게 아니라,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게 했다는 거죠. <놉>에서 연기한 캐릭터가 그런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요.

GQ 개봉을 앞둔 이쯤에 대체로 어떤 생각이 들어요?
SY 여러 가지요. 이때 모든 감정을 다 느끼는 것 같아요. 걱정도 되고, 궁금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쁘고요.
GQ 극장에서 본인이 출연한 영화를 보기도 하나요?
SY 극장에서는···, 본 적 없어요. 단 한 번도요.
GQ 으흠?
SY 단순히 제 연기가 보기 싫어서는 아니고요,(웃음) 뭐랄까,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정말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완성된 작품은 늘 대단하고, 그걸 볼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죠. 캐릭터를 연기한 경험도 굉장히 즐겁고요. 아마도 극장을 찾지 않는 건···, 많은 관객이 있는 거기에서는 이런 감정들을 오롯이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요.

GQ 스티븐의 촘촘한 필모를 보다가 문득 윤여정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배우에게 때론 경험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말요.
SY 윤여정 선생님은 정말···, 놀랍네요. 정확한 표현이에요. 저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요. 모든 경험은 그 자체로 새롭거든요. 어떤 상황 때문에 비슷한 역할을 계속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약간 덜 재미있다는 것뿐이거나 새로운 것을 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것일 뿐이죠. 윤 선생님 말씀이 옳아요.

GQ <미나리>가 개봉할 때 작품이 어느 한쪽의 국적으로 놓이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 이게 한국 영화냐 미국 영화냐 같은. 이건 어쩌면 스티븐의 ‘정체성’과도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런 틀을 깰 수 있는 스티븐의 역할이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해봤고요. 아주 잠깐이지만. 스티븐도 이런 고민해본 적 있어요?
SY 저도 잘 모르겠어요. 디아스포라의 일부인 사람으로서 제가 축복받았다고 여기는 부분은 홀로 서 있다는 느낌을 안다는 거예요. 절대 슬픈 표현은 아니에요. 저를 국적이나 지위로 평가하지 않고, 그냥 한 인간으로 볼 수 있게 해주거든요. 굉장히 명료하게. 재미있는 건, 제가 글로벌한 규모의 영화를 작업할수록 상호 간의 연결성을 점점 더 느낄 수 있었어요.
GQ 뻔한 예상이나 정의하는 식의 구분이 없는 거죠?
SY 비슷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요. 제가 유튜브에서 한국 힙합 뮤지션들, 래퍼들이 한국어로 노래하는 것을 많이 봤는데, 진짜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은 독일에서 태어나서 스페인에서 자랐고, 근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다거나 뭐 그런 식의 마인드 세트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젊었을 때 스스로에게 줬던 한계는 지금 보면 되게 멍청한 행동이 되어 있더라고요.
GQ 스티븐도 그런 사람이죠. 과거에는 아시안 배우가 맡는 역할이라는 게 뻔했는데, 스티븐의 행보는 좀 다르죠.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의 미래가 궁금했고요.
SY 앞으로 제가 특별히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막연하게는 아주 외로운 곳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GQ 그럼 10년 뒤, 스티븐은 어떤 사람이 돼 있을 것 같아요?
SY 음, 몰라요.(웃음) 저는 계획이 정말 없어요. 그저 이 멋진 사람들과 계속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나마 계획이라면 지금처럼 좋은 일을 계속 좇고 따라가는 거 정도? 그리고 재밌을 것 같은 작업이라면 일단 해보는 거? 그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요. 아, 그런데 저도 제가 너무 스트레스 받지 않는 선에서 계획을 좀 세울 수 있다면 좋을 것도 같아요.(웃음)
GQ 그런데 그런 게 없어서 좋네요. ‘여기까지 올라갈 거야! 이만큼 이룰 거야!’
SY 아, 그것도 제가 진짜 생각 많이했는데요, 제가 배운 건, 뭐 완전히 다 배운 건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배우겠지만, 아무튼 제가 깨달은 건 ‘그 어떤 것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다’는 거예요.
GQ 에? 지금 엄청나게 많은 걸 가졌잖아요?
SY 그러니까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내가 가진 게 별로라거나 무쓸모라는 게 아니에요. 이를테면 내가 좇던 게 ‘내가 찾던 바로 그것’ 같을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내 가족의 의미, 나의 내면, 감사함, 좋은 일을 하기 같은 것들에 집중하고 있어요. 알아요. 아주 클리셰처럼 들린다는 거.
GQ 클리세보다 만트라에 가까워 보이는데요?(웃음) 많은 사람이 성공보다는 일상의 작은 것에 집중하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SY 음? 그러네요! 보세요, 저는 지금 이렇게 미니밴에 앉아서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웃음) 우리 가족들이 바로 저기 있고요.

GQ 올해는 또 어떤 계획들을 갖고 있어요? 아, 계획하지 않는다고 했죠?
SY 하하! 정말 감사하게도 정해진 일이 꽤 있어요. 이제 프로덕션을 시작할 수 있게 됐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좀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전달하고 싶어요. 그중 하나가 ‘백남준 다큐멘터리 작업’이 될 것 같아요.
GQ 독특한 관점에서 바라보기 그리고 전달하기. 제작자로서의 스티븐 연은 이런 모습이겠네요.
SY 전 제가 다리를 만들거나 닫힌 문을 부숴버리는 걸 도울 순 있지만, 그다음에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계속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죠. 누구라도 제가 부순 문을 통해 오려고 한다면 그들이 있을 자리를 마련해주고 그들을 도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