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길이라면 창부터 활짝 열겠어.
MERCEDES-BENZ The New EQA
출퇴근길 나란하게 이어진 빌딩 숲을 통과하는 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심심할 수 있는 한 시간 남짓을 빌딩 숲 덕분에 지루하지 않게 오갈 수 있었다. 딱히 볼 건 없지만 그냥 켜놓은 TV처럼 빌딩 숲은 묘한 익숙함과 안정감을 딱딱한 표정으로 전하고 있었다. 엉뚱한 망상 하나가 스멀스멀 피어오른 건 이런 일상적 순간에서다. 브레이크 없는 망상은 평소 갖고 싶었던 물질적 욕심까지 데려왔다. 홈 스피커. 회색빛 건물이 있던 자리에 쌍둥이 빌딩처럼 홈 스피커를 우뚝우뚝 세우고, 관리가 좀 필요해 보이던 오래된 빌딩 외벽에는 매끈한 알루미늄을 두른다. 우퍼를 감싼 빗살은 꼭 창문 같기도 한데, 저런 세로형 창이 길게 난 사무실이라면, 야근을 핑계로 야경을 기다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 가끔은 물어보고 싶다. 밤하늘을 가까이 두고 살아온 사람들은 별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POLESTAR Polestar 2
긴 터널을 지날 때면, 어느 지점에선가부터 일정한 간격으로 한 음씩 높아지는 멜로디 소리가 났다. 아마도 트레드밀 같은 터널을 지루하게 달리고 있을 운전자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놓은 효과음일 텐데, 가끔은 호각 소리가 나기도 하고,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도 했다. 오싹하게도. 사운드 터널은 그때마다 든 생각이었다. 불쑥불쑥 놀래키듯 내는 자극적인 소리 말고, 터널을 통과하는 내내 듣기 좋은 음악이 잔잔하게 흐른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음악적 취향이나 장르를 생각해보지는 않았고, 또 음악을 듣기 위해 창문을 내려가며 터널의 매캐한 공기까지 들일 수도 없을 테니, 어디까지나 ‘저건 정말 별로야’에서 출발한, 심술 조금 섞인 귀여운 상상 정도. 도넛같이 동글동글한 헤드폰 디자인도 목욕탕 타일처럼 붙여놓은 지금의 터널보단 훨씬 나을 텐데.
VOLKSWAGEN The New Arteon
모두 잠든 밤. 전진하는 차의 보닛 위로 가로등 빛이 콕 떨어졌다 사라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초콜릿 칩을 떨어뜨리는 쿠키 공장의 레일처럼 가로등 불빛이 보닛에, 루프에 그리고 트렁크에 찍혔다 사라진다. 하루의 절반은 밤일 텐데, 그 긴 시간 동안 가로등은 뚝딱이처럼 서서 아래를 지나는 차 위로 불빛을 떨어뜨리고 있겠지. 쓸쓸하며 아름다운 특별한 풍경이지만,
이왕이면 이런 밤이라면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이런 밤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본 모습일 수도 있겠다. 돋보이는 선명한 원색을 입고, 인사하듯 친절하게 기울어진 채 도로를 비추고 있는 테이블 램프. 키가 큰 나무보다 높이 서서 가는 빛을 떨어뜨리는 가로등 대신, 소곤대는 귓속말을 듣듯 기울어져 비추는 은은하고 따뜻한 램프라면, 적어도 이 예쁜 길을 과속하며 지나는 차는 드물 텐데.
FORD BRONCO
오프로드라면 신나게 바퀴를 굴릴 포드 브롱코 앞에 커다란 골프공을 이리저리 놓아두면 어떨까. 필드가 아닌 바위밭에 떨어진 골프공도 난처한 건 매한가지. 바퀴를 천천히 씰룩이며, 좌우로 기울이며 하나씩 타고 넘는 브롱코의 발재간이 귀엽다. 그곳이 어디라도 브롱코라면 못 갈 곳이 없을테니까. 그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장애물이 골프공이 아니라 딱딱하고 묵직한 볼링공일지라도 브롱코는 기꺼이 웃으며 타고 넘겠지. 브롱코의 터프한 엔진 소리를 상상하며, 뒤뚱이는 차체를 떠올리며 매끈한 도로 위를 달리는 지금, 내가 운전하는 ‘진짜 브롱코’를 달래본다.
- 피처 에디터
- 신기호
- 포토그래퍼
- 김래영